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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52)화 (52/167)

제52화

“네?”

내가? 이런 걸? 눈을 깜빡이던 리벨의 머릿속에 지나간 건 얼마 전 자신이 했던 아무 말이었다.

범죄 추리소설 좋아한다고 했지, 참.

싫어하는 건 아닌데…….

“고마워요.”

리벨은 작게 웃어 주었다. 그러면서 전생의 명언 한마디를 떠올렸다.

[거짓 위엔 또 다른 거짓이 쌓이게 된다.]

그렇게 거짓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고 했던가.

그러게 떳떳한 삶을 살았어야……. 리벨은 다시 머리를 싸매고 싶어졌다.

이 모든 것이 다 그 시스테인 고자 기사 때문이다!

리벨은 이 친절하기 그지없는 남편에게 무슨 말을 해 줘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미안해요!

다 미안해! 근데 죽이지만 말고 들어 보세요! 사실 그 기사 낸 데에는 깊은 사정이!

“제가 직접 처리하고 열람 가능한 서류만 선별한 것이니, 출처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때 시스테인이 말했다. 리벨이 눈을 깜빡였다.

“……이게 다요?”

리벨은 제가 보던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서부지역 사건인데, 이건.

분명 시스테인은 제도기사단장, 다시 말해 수도 방위를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왜 서부 사건을 직접 처리한 거지?

“예.”

가볍게 답한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일종의 사과의 뜻이기도 합니다.”

그의 푸른 눈이 리벨을 향했다.

감찰기사단장이 제 정체를 드러내는 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물론 역대 감찰기사단장 중에서 제 가족에게까지 그 사실을 숨긴 자들은 별로 없었다.

그러니 밝히려면 밝힐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밝히지 않은 건 시스테인 자신이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던 것이 새삼스럽게 신경 쓰였다. 그녀에게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마력이 들끓을 정도로 신경 쓰였다. 덕분에 화원의 라이아 약초도 싹 갈아 치우지 않았던가.

그 후로도 놀랍게도, 그 사실은 그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해 불편하게 했다.

감찰기사단장으로서 정체를 밝히지 않는 것이 원칙적으로는 당연한 것인데도.

무엇보다도 그녀가 조력자라면, 감찰기사단장의 얼굴을 알게 되는 즉시 비밀 유지를 위해 조력자로서 활동할 수 없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하지만 그녀가 직접 감찰기사단장의 정체를 알고도 함구하는 거라면, 그녀에게 제 정체를 직접 밝히지 않고도 그녀의 취미 생활은 유지될 수 있을 터였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것만으로 끓어오르기 시작하는 마력을 조금쯤은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사과……요?”

리벨이 눈을 깜빡였다.

“예.”

시스테인은 생각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가, 한동안 외부로 외근을 나갈 것 같습니다.”

이건 제도기사단장이 아니라 감찰기사단장으로서의 일이었다. 그가 서류철 뭉치에 시선을 주었다가, 리벨을 바라보았다.

리벨이 조력자라면 이 서류들을 보고 대충 그가 어떤 사람인지 눈치챌 터였다.

“앗, 멀리로요?”

한편 리벨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물었다.

뭘 사과하나 했더니 이거였어?

아니, 사람이 나랏일 하면 멀리로 외근도 나가고 그러는 거지, 뭘.

그녀가 간단하게 생각하는 사이 그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

“거리 자체는 멀지 않습니다만, 시간이 좀 걸리는 임무입니다.”

“아…….”

기사단이 어디에 머물 만한 일이 있나? 전쟁 말고? 리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애초에 수도에서 일어나는 일이면 그가 외근이라고 말할 일도 없을 터였다.

제도기사단 본부에서 일한다고 말하면 그만일 테니까.

그럼 다른 영지에 머문다는 소린데……. 제도기사단은 수도 방위만 하는 게 아닌가, 진짜로?

리벨은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근데, 시스.”

“예.”

시스테인은 담담한 얼굴로 답해 왔다. 리벨이 물었다.

“경께서 다른 지방의 일까지 처리하셔야 하나요?”

그 말에 시스테인은 당연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게 제 일이니까요.”

제도, 다시 말해 제국의 수도……기사단장인데? 리벨이 눈을 깜빡였다.

하긴 지방 기사단이 따로 있다는 이야긴 못 들어 본 것 같았다.

리벨은 고개를 기울인 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여하튼, 잘 다녀오세요. 이건…….”

일단 가져와 줬으니 봐야지. 리벨은 사건 일지들의 날짜를 살폈다.

마침 최근에 있던 사건들이 대부분이라, 정보에 밝아야 하는 본업에도 도움이 될 듯했다.

“다녀오시는 사이에 재밌게 읽고 있을게요. 고마워요.”

리벨의 말에 시스테인은 깍듯이 묵례했다. 딱딱하기가 아주 군대 같았다.

“곁을 오래 비우지 않겠습니다.”

그의 말에 리벨은 속으로 외쳤다.

아니, 이왕이면 오래 비워 줘요!

그녀도 때마침 나갈 데가 있는 참이었다. 소금값 담합하는 귀족가가 어디인지, 나인이 슬슬 정보를 물어 올 때가 되었으니까.

“잘 다녀오세요.”

묘하게 다른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서로의 생각은 티끌도 짐작하지 못한 채로.

*  *  *

시스테인이 외근?

준비된 리벨 앞에 뜻하지 않은 기회까지 떨어져 내렸다.

리벨은 그 기회를 놓칠 만큼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다.

일단 시스테인이 오래 자리를 비우는 이상, 리벨도 오랫동안 밖에 있을 수 있었다.

별로 시선이 쏠리지 않을 테니까.

문제는 대공가의 사용인들이 신경 쓸 것 같다는 점인데…….

이럴 땐, 95%의 진실과 5%의 구라다!

그렇게 결심한 리벨이 대화를 시도한 건 디란타의 집사 헬리아였다.

“일이 바빠서 외근이 필요할 것 같아.”

시스테인 외근 겸 나도 외근!

“일 때문이라 하시면…….”

그 말에 헬리아가 눈을 크게 떴다.

그녀도 가문의 안주인이 디란타의 기사들이 아니라, 어딘가 범상치 않은 자작가의 기사들을 데리고 나간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안전 문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정말로.”

리벨은 그렇게 말했다. 헬리아는 조금 주저하는 얼굴이었다.

그녀가 일을 나가는 몇 번 동안이나, 헬리아는 만일의 일에 대비해 리벨 뒤에 호위기사를 붙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걸 직접 만류한 건 그녀의 주인, 디란타 대공 시스테인이었다.

‘리벨이 자유로이 취미를 즐기시도록 둬.’

‘하지만 안전 문제가…….’

거듭 주저하는 헬리아에게, 그녀의 주인은 확신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기사들이라면 문제없다.’

그가 가리키는 기사들이 자작저의 수상한 기사들을 가리키는 건 틀림없었다.

‘…….’

헬리아는 디란타 대공가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었다.

당연히 리엔 황태후와 시스테인의 관계는 물론이고 황태후의 비밀 세력에 대해서도 눈치는 채고 있었다.

그랬기에 확신을 담은 주인의 말까지 듣고 나니, 그 문제의 자작저의 기사들이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헬리아는 조심스럽게 말을 뗐다.

“그런데 호위 병력 건은…….”

하지만 이건 여쭤봐야 했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리벨은 고개를 홱홱 흔들었다.

“괜찮아. 신경 안 써도 돼.”

이렇게 답하실 줄 알았다. 헬리아가 살짝 고개를 숙였을 때였다.

리벨이 불쑥 말했다.

“디란타 가 기사들을 안 믿는 게 아니야.”

그 말에 헬리아가 멈칫했다.

디란타 대공령에는 가 본 적이 없는 대공비.

하필 대공령에 몬스터가 들끓고 있으니 그녀가 대공령에 들르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그녀가 처리할 수 있는 대공비의 업무에 리벨은 소홀한 적이 없었다.

연회를 싫어하시는 모습과는 달리, 데뷔 연회를 성대하게 마쳐 시선을 받은 것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외부 활동이 너무 많았다. 일반적인 귀족가의 귀부인들과는 다르게.

그래서 기사들 사이에서 슬그머니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마님께서, 디란타 가에 신경을 쓰시는 건지 의문이 든다고.

무엇보다 그녀는 디란타 대공비가 되고서도 디란타 가의 기사들을 이끌고 외부에 나간 적이 거의 없었다.

대공비로서 나갈 때야 물론 디란타의 기사들을 대동했지만, 그녀가 주로 외출하는 ‘취미 활동’을 위해서는 디란타 가의 사람들을 데려가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그 취미로 인한 외출이 잦으니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헬리아는 아직 리벨에게 전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리벨은 날카롭게 그 부분을 지적한 것이었다.

“……기사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헬리아가 고개를 숙였다.

돌연 심각해지는 분위기에 리벨이 눈을 깜빡였다.

기사들의 마음은 모르겠고 자꾸 자작저에서 데려온 사람들이랑 나가는 걸 대공가 사람들이 좋게 볼 리가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특히 사람을 지키기 위해 검을 든 기사들인데, 정작 가문의 안주인이 나갈 때 호위하지 못한다니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내 취미가 좀…….”

하지만 이쪽도 이쪽 사정이 있었다. 이걸 다 말할 수 있으면 편하겠지만!

그랬다간 이 집 안주인이 이 집 주인에 의해서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결국 리벨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외부인들하고 같이 하는 일이다 보니까, 원래 나랑 같이 가던 사람들이 아니면 사람들이 낯을 가리거든.”

정확히는 내가 낯을 가리는 거지만. 리벨은 말하면서도 난감한 표정을 숨겨야 했다.

이걸로 설명이 될까?

하지만 헬리아는 감찰기사단장이라는 제 주인의 정체를 아는 사람 중 하나였다.

게다가 얼마 전, 주인께서는 마님께서 ‘조력자’는 아닌지 물어보셨다 하셨지.

리벨의 말에 헬리아는 제 주인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확실히 조력자라면 낯선 사람들을 데리고 일을 할 순 없을 것이다. 기존에 정보를 얻기 위해 합을 맞추던 사람들이 있을 거니까.

그리고 조력자 대부분이 권세 있는 귀족들을 상대로 정보를 수집하는 만큼, 모르는 얼굴이 나타나면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조력자시라면 모든 게 설명된다.

이건 함부로 기사들을 딸려 보내 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헬리아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알겠습니다. 기사들에게는 충분히 설명해 줄 테니 마님께서는 안심하시고 다녀오세요.”

생각보다 시원한 반응에 리벨이 눈을 깜빡거렸다.

“그럼, 다녀올게.”

가문 기사들도 안 데리고 멀리 간다는 말에 뭔 말이라도 들을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헬리아는 그녀를 쉽게 놓아주었다.

리벨은 그녀가 무슨 오해를 하는지 상상도 못 한 채, 길을 나섰다.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그리고 저택에 남은 헬리아는 리벨의 마차가 떠나는 것을 보면서 뇌까렸다.

가문의 안주인이 들어온 이후, 가주의 명령으로 바뀐 이 디란타 별저의 사용인들은 모두 제 주인의 또 다른 신분을 아는 자들이었다.

그러니 적당히 설명하면 충분할 것이다.

“흐음…….”

헬리아는 옅은 미소를 띤 얼굴로 기사단 숙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원래 조력자의 정체를 밝히는 건 같은 감찰기사단 사이에서도 금기시되는 것이다.

하지만 마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눈치 빠른 디란타의 기사들은 알아들을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그녀에게 섭섭해하는 대신, 친근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외부의 기사들만 신임하시는 것 같아.’

‘디란타를 신뢰하지 못하시는 건 아닌지…….’

그런 뒷이야기도 싹 없어질 것이다.

마님이 그냥 열심히 일하는 조력자셨다는, 한마디로 옆집(?) 사람이나 다름없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틀림없이 마님을 좀 더 친근하게 여기게 될 터였다.

헬리아 자신처럼.

빙그레 웃은 헬리아의 걸음이 빨라졌다.

*  *  *

그러는 사이, 리벨은 헬리아의 미소를 생각하면서 두 팔을 문지르고 있었다.

“아니, 근데 진짜 왜 그렇게 해맑게 웃지?”

리벨은 찜찜한 표정으로 재차 팔을 문질렀다.

나 황태후 폐하 뵌 뒤로 그런 해맑은 웃음이 좀 무섭거든?

쓱쓱쓱쓱. 팔을 문지른 그녀는 취재 준비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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