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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55)화 (55/167)

제55화

아니, 남의 상단에 대해서 왜 그렇게 잘 알고 계세요?

“크흠.”

그걸 틸라 상단주도 느꼈는지 헛기침을 했다.

분위기가 싸해진 가운데 검은 가면은 입을 닫아 버렸다.

입만 드러난 가면 탓에 굳게 일자로 다물어진 입이 잘 보였다.

“……상단주, 혹시 다른 귀족가 어디와 척진 적이라도 있습니까?”

그게 아니면 저렇게 뒷조사를 자세하게 해 올 리가 없잖아요?

귀족가가 아무리 상대 거래처에 대해서 조사를 해 온다고는 하지만 언제 뭘 얼마나 팔아서 몇 골드를 벌었는지까지 외우고 다닌다고?

틸라 상단주의 심정이 리벨도 이해는 갔다.

그리고 리벨은 뇌 속의 프로필을 필사적으로 뒤적거렸다.

루이나 상단주 리는 한 성깔 하는 사람이었지만 귀족들과의 관계에는 깍듯했다.

물론 속으로는 불만을 가지고 있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외부적인 마찰은 없었다는 소리다.

“……상단이 귀족가와 척지다뇨, 말이 되는 소릴 해야죠.”

리벨이 말을 받아 내자 틸라 상단주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럼 블랙 경이 왜 저러시는 거지?

그 생각이 리벨의 눈에는 보이는 것 같았다.

“…….”

그러는 가운데 검은 가면은 조용히 스테이크를 썰어 입에 넣고 있었다.

이렇게 싸해진 분위기에서도 몸에 밴 귀족가의 매너를 뽐내는 걸 보면 교육은 확실히 된 자였다.

“……아무튼 저희 상단에서도 이번 프로젝트에 함께하고 싶습니다. 어떤가요?”

리벨은 굳은 분위기도 풀 겸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하얀 가면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루이나 상단에 대해서는 한번 이미 알아보았지. 이전에 서신을 보냈으니 알고 있겠지만, 내 주인께서도 흔쾌히 허락하셨네.”

그러고는 검은 가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자네의 주인께서는 어떠셨는가?”

―써걱.

그 말에 스테이크를 썰던 검은 가면의 칼이 멎었다. 마지막에 힘이라도 들어갔는지 왠지 모르게 살벌한 소리가 식당을 울렸다.

“…….”

“…….”

다시 기묘한 침묵이 한 박자 흐른 후에야, 검은 가면이 입을 열었다.

“알겠네.”

낮게 떨어지는 목소리였다. 리벨은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아까랑은 좀 목소리가 다른데?

다른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한 듯했지만 리벨만큼은 알 수 있었다.

잠입 취재 경력이 몇 년인데.

물론 어지간해서는 몰랐을 것이다. 저 짧은 말 가지고는.

“……?”

하지만 리벨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녀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분명…… 어디서 들어 본 목소린데?

리벨은 검은 가면을 유심히 살폈다. 머리 색과 맞춘 건지 머리카락까지 검은 남자는 그녀가 아는 사람 중에 매치되는 사람이 없었다.

착각인가?

리벨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샐러드 양배추를 포크로 콕 집었다.

*  *  *

불편한(?) 식사가 끝난 후 귀한 손님들은 모두 제각기 방에 모셔졌다.

두 귀족 가문을 대리하는 가면들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건 내일이었다.

오늘은 피곤하니 인사도 할 겸 안부를 나눈 것에 가까웠다.

“안부 한번 살벌하기도 하지.”

리벨이 작게 중얼거렸다. 특히 그 갑분싸머신 검은 가면!

입만 열었다 하면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는 게 몇 번만 더 마주쳤다간 심장마비 걸릴 것 같았다.

최대한 빨리 이 저택에서 얻을 건 다 얻고 빠져나가야 한다.

“일단 저택 사진은 찍었고…….”

이 비밀 회동을 위해 준비된 저택의 이곳저곳은 이미 찍어 두었다.

하지만 이걸로는 니아 상단과 틸라 상단, 그리고 미지의 두 가문이 소금값을 일부러 끌어올렸다는 걸 증명할 순 없었다.

결정적인 건, 역시 장부가 있어야 한다.

“흐음.”

리벨은 방 안에 앉은 채 고개를 기울였다. 일단 편하게 변신은 푼 채였다.

물론 누군가 들어온다면 바로 변신을 할 수 있도록 옷은 그대로 입고 있었다.

“잘하고 있으려나?”

리벨이 고개를 기울였다.

나인과 그림자들은 그녀의 옆을 지키면서도 교대하면서 이 저택의 이곳저곳을 뒤지고 있었다.

장부를 찾는다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암살이나 잠입은 그림자들의 전문 영역이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기자로서의 소양은 턱없이 부족했다.

……물론 가질 필요 없는 소양이지만 아무튼 그랬다.

한마디로 기자가 발표하면 치명적일 정보들을 접해도 그냥 필요 없는 정보라고 스쳐 지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소금값 인상 외에도 구린 부분이 있으면 같이 터뜨려 주는 게 좋은데, 그걸 알아채지 못하면 이렇게 루이나 상단 사람들을 잠의 세계로 데려간 보람도 없어져 버린다.

무엇보다.

“…….”

리벨은 뭐 씹은 표정으로 변했다. 나인도 그렇고 그림자들은 아마, 사진을 못 찍을 것이다.

그래서 사진은 직접 찍으러 움직여야 했다.

“나인. 있어?”

리벨의 작은 말에 천장에서 나인이 뚝 떨어져 내렸다.

어어어디서튀어나온거야?

리벨이 천장을 올려다보았지만 천장엔 사람 나올 구멍은커녕 먼지 한 톨 나올 구멍도 없었다.

“부르셨습니까?”

“혹시 이 저택 지도 있어?”

리벨의 말에 나인은 기다렸다는 듯 옷 안주머니에서 지도를 꺼내 들었다.

이미 준비해 뒀구나.

하긴, 잠입 전문인데 저택 지도도 없을 리가 없지.

―촤락!

테이블 위에 지도를 펼치는 그녀에게 나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직접 움직이실 생각이십니까?”

리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자들도 좋지만, 너희는 사진을 못 찍잖아.”

그녀가 카메라를 들어 보였다. 나인이 멈칫했다.

“……카메라를 다루는 교육까지는 받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도 저번의 그 허접한 사진 사건(?)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리벨이 픽 웃었다.

“괜찮아, 내가 찍으면 되지.”

그 말에 나인은 안주머니에서 또 뭘 꺼냈다. 아니, 도라에X 주머니라도 있나?

이번에 튀어나온 건 웬 작은 손수건 같은 것이었다.

“이건?”

근데 손수건치고는 왠지 묵직한 데다 너무 검었다.

나인이 짧게 묵례했다.

“강하게 흔들면 로브로 변합니다. 제가 밀착 호위하겠습니다만, 혹시 저와 떨어지게 된다면 그 로브를 쓰고 최대한 빨리 넓은 공간으로 빠져나오십시오.”

“아하.”

저번에 단체로 어디서 로브를 꺼내 왔나 했더니 이런 마법 물품이 있었던 모양이다.

고개를 끄덕인 리벨이 주머니에 검은 손수건을 집어넣었다.

“기억해 둘게.”

그러고는 지도를 다시 살폈다.

일단 내가 여기서 잡아야 할 증거는 귀족들과 상단의 비밀스러운 교류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저들이 소금값 인상의 주범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저들이 소금값 인상으로 이득을 봤다는 증거인 장부와…… 저들의 계약서까지 습득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좋아, 간다.”

리벨은 챙 넓은 모자를 벗어 버렸다. 그리고 나인에게 손짓했다.

“앞장설까요?”

“아니, 옷 갈아입을 건데.”

그 말에 나인은 소리 없이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러니까 하늘로 솟은 거야, 땅으로 꺼진 거야? 어디서 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리벨은 슬그머니 옷을 갈아입었다.

“이제 나와도 돼.”

그 말에 나인은 이번엔 그녀의 뒤에서 나타났다.

“모시겠습니다.”

아깐 분명 앞에 있지 않았니? 정말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다.

“잠깐, 모습 좀 바꾸고.”

리벨은 눈을 감고 집중했다. 이번에 바꿀 모습은 저번에도 변신해 보았던 갈색 머리의 평범한 남자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입은 옷은, 미리 준비해 둔 이 저택의 하인 복장이었다.

원래 가장 흔한 사람으로 변하는 게 잠입의 기본이지.

“자, 가자.”

리벨이 걸음을 옮겼을 때였다. 나인이 불쑥 말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럼 잠입인데 조심해야지. 잠깐 멈칫했던 리벨이 걸음을 옮기자 나인이 말을 이었다.

“저택 전체의 분위기가 묘합니다.”

“?”

묘해? 리벨이 고개를 기울였다.

“중요한 거래니까 그런가?”

“그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저희 외에도 저택을 은밀히 돌아다니는 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인하고 동종업계 종사자? 리벨이 슬그머니 그를 돌아보았다.

“암살자…… 같은 거?”

나인은 신중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살기가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상당한 실력자들입니다.”

황태후 리엔의 그림자들은 암살과 잠입을 주요 장기로 교육받은 자들이었다.

그런 그림자 중 하나인 나인이 상당하다고 인정할 정도면 확실히 교육받은 자들이 분명했다.

“……귀족들이 거물들인가?”

그런 정도의 인력을 키워 낼 수 있는 가문들이면 몇몇 가문으로 한정될 게 분명했다.

살짝 고개를 기울인 리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조심할게. 일단 안 보이게 따라와 줘.”

둘이 뭉쳐 다니는 하인은 원래 좀처럼 없는 법이다.

그 덕에 나인을 달고 다니더라도 하인 복장으로 같이 다닐 순 없었다.

“…….”

리벨이 나인이 있던 자리를 돌아보니 그는 이미 자리에 없었다.

천장이고 벽이고 땅이고 어디로든 숨은 게 분명했다.

저거 어떻게 하는지 궁금한데, 물어보면 나도 알려 주려나?

내 변신 능력하고 비슷한 건가?

―달칵.

리벨은 입맛을 다시면서 방을 나섰다.

“일단…….”

자고로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있다.

이 동네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기자 활동을 할 때는 그랬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유명해서 그런지, 대부분 구린 게 있는 놈들은 정말 자기가 머무는 곳 근처 내지는 너무 당연해서 뒤져 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곳에다가 비밀 문서를 숨기곤 했다.

“문제는…….”

이 저택이 오픈되는 게 이런 비밀 회동이 있을 때뿐이라는 건데.

리벨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그렇다면 기껏해야 틸라 상단주 리카스가 사용하는 방이나, 이번 회동으로 사용되는 공간 정도만 뒤져 보면 될 것이다.

사용도 안 하는 곳에 상단주가 들어가면, 그곳에 뭔가 있다는 의심을 받을 게 뻔하니까 그도 제가 들르는 곳에 숨겨 놨겠지.

“…….”

물론 내일이면 계약서 실물은 리벨의 손에 쥐여질 터였다.

정확히는 계약을 하는 루이나 상단주의 손에.

하지만 그 자리에서 카메라를 들고 계약서를 찍을 순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러니 오늘 밤 내로 뭐든 증거를 찾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다.

“좋아…….”

일단 리벨은 손에 걸레와 양동이를 들었다. 청소하는 척하면서 이곳저곳 뒤져 보는 거다!

그렇게 수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리벨은 상상치도 못한 현장과 맞닥뜨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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