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디란타 대공의 심기가 불편하다! 누가 봐도 불편해 보인다!
그 소식을 리엔 황태후가 들었으면 그녀는 아주 기뻐했을 것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심기가 불편하다는 건 열이 받았든 뭐든 어쨌든 별로 긍정적인 감정 상태는 아니라는 의미였다.
뭐 나쁜 일이라도 있었나?
하지만 무슨 나쁜 일이 있어야 그 사람을 이렇게까지 동요시키지?
―쿵쿵.
리벨은 시스테인이 들어갔다는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이 사람은 무슨 퇴근하자마자 인사도 없이 집무실이야?
“……리벨?”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들어가도 돼요?”
그녀의 말에 답하는 목소리도 그러했다.
“예.”
평소와 같은데.
―달칵.
집무실 문을 직접 연 리벨이 그의 집무실 안쪽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희로애락의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는 아주 멀쩡한, 다시 말해 평소 같은 표정의 시스테인이 그녀를 반겼다.
“……?”
무심코 그를 살피던 리벨은 그의 푸른 눈동자를 보면서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눈이 좀…… 빛나는 것도 같고…….
아니, 안광이란 말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무슨 사람이 슈X맨도 아니고 눈에서 빛이 날 리가 없지!
새삼 집무실 조명을 받는 금발이 반짝이는 걸 보니 아무래도 잘생긴 얼굴에 홀린 듯했다. 리벨이 홱홱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면서 그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 있었어요?”
그래도 심기가 불편하다고 본 사람들이 있었으니 물어보긴 해야 했다.
내가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탁.
리벨의 몸이 그의 집무실 책상에 닿았다.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 놓고 있던 시스테인은, 이번엔 새하얀 장갑을 벗었다.
다소 더러워진 것 같은 장갑은 금세 쓰레기통 속으로 사라졌다.
“어?”
리벨은 그 장갑에 흙먼지와 함께 나뭇조각 같은 게 박혀 있는 걸 분명히 보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예식용 천 장갑에 뭐가 박힐 정도면 맨손도 다쳤을 수 있었다.
“어디 다친 건 아니죠?”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움직임이 너무 멀쩡했다.
그녀의 물음에 시스테인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더니 별안간,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마음을 가다듬을 일이 있긴 있으셨던 모양인데…….
리벨이 그를 살필 때였다. 시스테인이 불쑥 말했다.
“잠시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리벨이 슬쩍 물러섰다.
“아, 자리 비켜 드릴까요?”
역시 심기가 불편한 거지!
그런데 이 사람이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닌데.
리벨은 그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사용인들이 알아채게 하는 것도 모자라 사람을 금방 내보낼 정도로 불편함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이 사람이?
물론 나쁜 일은 아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사람이 꽉 잠그고 사는 것보단 낫지. 나은데!
그런데!
왜 이러는 거지, 이 사람?
다른 데서 무슨 일이 있었다고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분풀이하는 사람은 아닌데.
리벨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녀가 잠시 생각에 빠져 있을 동안에도 시스테인은 답이 없었다.
그러다 한참 후에 답했다.
“아니요.”
그럼 어떻게 쉬겠다고? 리벨이 눈을 깜박일 때였다. 시스테인이 입을 열었다.
“대공령으로 가겠습니다.”
“네?”
대공령엔 몬스터가 많다고 하지 않았…… 아, 혹시 빡치면 샌드백 치는 거랑 비슷한 건가?
아니 그 전에, 결혼 생활이 무슨 직장도 아니고 쉬고 온다는 건 또 무슨 소리야? 쉬고 싶으면 쉬는 거지.
“곤란하시다면,”
시스테인은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따라오시려면 따라오셔도 됩니다.”
왠지 뒤가 구린데? 생략된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데? 리벨이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같이 가면 거기 있는 몬스터들하고는 어떻게 되는 거지? 리벨은 수많은 의문을 가진 채 슬그머니 물었다.
“……혹시 생략된 이야기가 있나요?”
안다! 당신의 화법 a to z……, 아니, z까진 아니고 한 y까진 안다!
이럴 땐 뭔가 말하지 않은 게 있다!
그 말에 시스테인은 간단하게 답했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건 일찍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리벨이 눈을 깜빡였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대공령에 갑자기 가겠다고? 안 가다가? 얼마 전엔 갈 필요도 없다고 했잖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무슨 일로 가는지, 물어봐도 돼요?”
리벨이 결국 물었다. 시스테인은 짧게 눈을 감았다 떴다.
간단한 답이 떨어졌다.
“몬스터 관리 때문입니다.”
리벨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얼마 전까진 괜찮다고 하셨잖아요. 혹시 대공령에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그 말에 의아함이 담겼음을 느낀 시스테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저도 모르게 테이블 아래의 주먹을 꽉 쥐었다.
아직 흥분이 식지 않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태였다.
진실을 감추거나 거짓을 말하려면,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몇 배는 머리를 굴려야 하는데 마력이 들끓는 상태의 그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리벨이 눈앞에 있는데도 마력은 가라앉기는커녕 더욱 끓어올랐다.
기묘한 흥분 상태가 저를 뒤덮는 것 같아, 시스테인이 더운 숨을 터뜨렸다.
“……몬스터 관리 겸,”
그가 입을 열었다. 제가 뭔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달뜬 숨을 내뱉은 그가 말을 이었다.
“정신 수양을 위해서 갑니다.”
“…….”
“…….”
그 말에 방 안에 침묵이 찾아들었다.
리벨이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보통…… 정신 수양을 죽을 위기 속에서 하나요?
“무슨 일 있었던 거죠?”
그답지 않은 변명을 하며, 그는 오늘따라 유난히 뒤흔들린 느낌이었다.
“후우.”
결국 시스테인이 크게 숨을 내쉬고는 눈을 감았다.
“예.”
그러고는 시인했다. 리벨이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이었어요?”
뭐가 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흔든 거지? 그녀의 질문에 시스테인이 답했다.
“마력 제어가 잘 안 됩니다.”
“……!”
리벨이 살짝 입을 벌렸다.
그녀는 설마 하는 마음에 바깥이 내다보이는 창문으로 달려갔다.
창밖 멀리로 보이는 라이아 약초 화단은 이미 말라비틀어지다 못해 불탄 것처럼 새까맣게 죽어 있었다.
“세상에.”
리벨이 말을 잇지 못하는 가운데, 시스테인이 말했다.
“이대로 제어되지 않으면, 폭주하게 됩니다.”
“폭주요?”
단어만 들어도 불길했다. 리벨이 돌아보니 시스테인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제 안의 마력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혀 보겠다는 듯이.
“예, 그럼 죽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죽을 수도 있다는 게 내가 아니라 본인이었냐고!
무슨 그런 말을 내일 아침은 비가 오겠습니다, 하는 기상청 캐스터 톤으로 해? 리벨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이일단 그럼 자세한 건 나중에 물어볼게요. 대공령, 다녀와요.”
빨리, 빨리! 리벨이 두 손을 펴 보이며 말했다.
“…….”
시스테인은 그 말에 곧바로 묵례하고는 방을 나섰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설마 저 사람, 나한테 허락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 * *
시스테인은 몇 시간 후, 바로 말을 타고 떠났다.
그리고 그가 나간 직후 석간신문을 받은 리벨은 속보로 대문짝만하게 실린 디엘렌 저택의 사진을 보았다.
정확히는 디엘렌 저택이었던 것의 사진.
“헐.”
[(속보) 디엘렌 가 저택, 처참하게 반파돼]
[디엘렌 가, “괴한의 침입으로 붕괴돼…… 가문 식솔들에게는 피해 없어”]
어떤 괴한이 귀족가의 기사들을 뚫고 무려 백작가의 저택을 무너뜨린단 말인가?
무슨 각X탈이야?
[디엘렌 가 저택 반파
한동안 디엘렌 별저에서 지내기로
범인 몰라…… 감찰기사단 의뢰]
[디엘렌 가가 금일 오후 거처를 본가 저택에서 별저로 변경했다.
그러면서 디엘렌 본저의 재건축을 의뢰했다.
익명의 제보자에 따르면 금일 오후 디엘렌 영지를 굉음이 뒤흔들었고, 조사 결과 디엘렌 저택의 기둥이 반파되어 무너져 내린 것으로…….]
[전문가들은 “강력한 마력 방출로 기둥이 무너져 순식간에 저택이 무너졌다”며 “마법 사고로 인해 무너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한편 디엘렌 가에는 마법사가 없다.]
……마력 방출? 리벨은 시스테인을 떠올렸다.
‘마력 폭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했던 그. 리벨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설마.”
그런데 그, 자신에 대한 기사가 떴을 때도 폭주하지 않았던 사람이 뜬금없이 디엘렌 가를 때려 부수로 가진 않았을 것 같은데.
하지만 백작저를 함부로 부순 괴한을 잡겠다며 디엘렌 가가 길길이 날뛰지 않는 걸 보면, 범인은 그들이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
가령, 폭주한 시스테인이라거나.
“……디엘렌 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
리벨이 헬리아에게 말했다. 그 옆에 서 있던 하녀이자 황태후의 그림자, 미엘에게도 그녀는 눈짓했다.
같이 알아보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그녀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헬리아가 불쑥 입을 열었다.
“사실, 얼마 전 가주님 앞으로 출처 모를 사진 몇 장이 도착했습니다.”
“……사진?”
설마 기자들은 아닐 테고. 리벨이 되묻자 헬리아는 조금 주저하다가 말했다.
“모두 대공비 전하를 촬영한 것이었습니다.”
“뭐라고?”
그그그그럼 내가 이런저런 취재하는 모습 다 들켰다는 소리?
설마 변신도?
하지만 헬리아의 표정이 그저 곤란하기만 하고, 놀란 기색이나 의아한 기색은 없는 걸 보니 바뀐 모습은 촬영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누가 보낸 사진인지 알아보라 하시어 알아보았는데, 디엘렌 가의 롤란드가 보내온 사진이라고 했습니다.”
리벨이 눈을 크게 떴다.
이 새X가 뭔 짓을 한 거야,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