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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70)화 (70/167)

제70화

“무슨 일로 오셨나요?”

렐라 의상실의 여주인은 롤란드를 조금 당황한 얼굴로 맞이했다.

의상실에는 보통 귀부인이나 귀족 영애의 하녀들이 들르곤 했으니, 귀족 남자가, 그것도 이렇게 흙먼지 속에 뒹굴다 온 듯한 차림새로 오는 모습을 보는 건 흔하지 않은 탓이었다.

“이것 때문에 왔는데.”

하지만 롤란드는 제 몰골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어차피 이판사판이었다.

렐라 의상실 지하에 뭐가 있는지는 몰라도, 그 갈색 머리 남자는 그랬다.

이곳에 오면 돈에 기반한…… 명예와 권력을 거머쥘 수 있을 거라고.

그 말이 모두 사실은 아니라고 해도, 롤란드는 지금 돈, 명예, 권력 셋 중 하나라도 얻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이건…….”

그가 품에서 내보인 검은 카드에, 의상실 주인의 표정이 달라졌다.

“‘손님’이시군요.”

그녀의 얼굴에서 쾌활해 보이던 영업용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마치 귀족가의 사용인들처럼 공손해진 그녀가 롤란드를 안내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그녀가 손짓한 곳에는 탈의실이 있었다.

[수리 중]

그렇게 쓰여 있는 판을 치워 버린 그녀는 문을 열어젖혔다.

“……!”

롤란드는 문 안의 풍경에 눈을 크게 떴다.

목재 건물이었던 의상실이었지만, 문이 열린 곳 안쪽으로 편평한 대리석으로 포장된 길이 드러났던 것이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한 의상실 주인이 방 안쪽의 설렁줄을 잡아당겼다.

―달카닥!

그러자 의상실 입구의 [영업 중]이 [자리 비움]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의상실의 불이 서서히 꺼졌다.

“마법?”

그렇게 중얼거리는 롤란드에게 의상실 주인이 웃어 보였다.

“이 정도 마법 물품은 이곳에 계신 분들에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면서 고개를 숙였다.

“마담 데아르라고 불러 주십시오.”

그녀는 이리 보고 저리 봐도 평민들 사이에서 살던 자 같지 않았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묻어나는 걸 보니 분명, 최소 백작가 이상의 격식 있는 집안에서 예의를 익힌 것이 분명했다.

이 통로 뒤에 있는 자들이, 막돼먹은 자들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애초에 디엘렌 연회에 막돼먹은 자들을 초대하지도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크흠.”

롤란드는 새삼 제 옷을 몇 번 턴 다음 대리석 통로로 걸음을 옮겼다.

“……는 것이…….”

“……지 않나요?”

“그것보다는…….”

도란도란 대화 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가까워져 왔다. 대리석 통로 끝에는 밝은 공간이 있었다.

―또각, 또각.

롤란드의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이 끝에 사람들이 많은가? 대체 뭐가 숨겨져 있는 거지?

그의 걸음이 이내 뜀박질로 변했다. 그리고 통로를 벗어난 순간.

“……!”

롤란드는 눈을 크게 떴다.

“몇 번에 거시겠습니까?”

“나는 7번.”

“예끼, 행운의 숫자라고 7번에만 거는 건가?”

“그럼 자네는, 죽고 싶어서 불길하게 6번에 거나?”

통로에서 누가 나오든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제 할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가문의 연회장보다 넓은 것 같은 공간에는 온갖 ‘게임’을 즐기는 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행운과 불행은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니겠나? 난 6번으로 쭉!”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즐기는 건, 롤란드도 살면서 몇 번 본 적 있는 것이었다.

“……도박장이잖아?”

롤란드는 어이가 없어 말을 툭 뱉어냈다.

지금 여기서 돈에 기반한 명예와 권력…… 뭐를 얻을 수 있다고 한 건가?

확실히 도박장이니 돈을 얻을 수야 있겠다.

하지만 이런 곳에 오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명예는 바닥에 처박힐……

“……어?”

사람들의 면면을 무심코 둘러보던 롤란드는 눈을 크게 떴다.

도박장이라고 실망한 것도 잠깐.

마담 데아르라고 했던가?

그를 안내해 준 자부터 심상치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이곳에 있는 자들 중 많은 자들은 롤란드가 한 번쯤은 본 적 있는 사람들이었다.

“저 사람은 의전원 사람이잖아?”

의전원 사람부터 중앙 사교계를 오가는 귀부인이나 귀족들까지.

“디엘렌 영식께서 오셨네. 말씀 올리게.”

그때 마담 데아르가 지나가던 자에게 말했다. 하얀 셔츠에 검은 정장 바지를 입은 자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롤란드는 그 대화에 놀라 데아르를 돌아보았다.

“난 아직 나를 소개한 적이 없는데?”

그러자 마담 데아르는 제 입에 검지를 대어 보였다. 쉿, 하라는 듯.

그러고는 사람들 사이로 섞여서 사라져 버렸다.

“에이! 이번에도 6번이라니!”

“자네, 아직도 행운의 숫자 같은 걸 믿나? 응?”

그러는 동안에도 각 테이블마다 서넛씩 모여 앉은 사람들은 도박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시끄럽던 테이블에 시선을 돌린 롤란드는 제 눈을 의심했다.

“……이벨라 자작?”

돌아가는 숫자판을 필사적인 표정으로 보고 있는 건 이벨라 자작이었다.

저자가 오는 도박장이 이곳이었나? 롤란드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이 장소에 대한 신뢰도가 박살이 나려고 했다.

“어머, 이번에도 제 차지네요.”

하지만 그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영애를 보고, 롤란드는 다시 제 눈을 의심해야 했다.

그녀는 중앙 사교계에서도 요즘 일등 신붓감으로 떠오르고 있는 쥬리 백작 영애였다.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는 귀족들과 유명 인사들이 모인 자리.

이곳은 도박장이 아니었다.

이벨라 자작이라면 모를까, 저들에게 이 정도 돈이 오가는 테이블은 그저 ‘게임’에 불과했다.

이곳은 또 다른 사교계, 아니, 더 은밀하고 더 직접적인 거래가 오가는 대화의 장이었다.

―꿀꺽.

롤란드가 긴장감에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킬 때였다.

마담 데아르가 다가와 말했다.

“‘살롱의 주인’께서 찾으십니다.”

살롱의 주인? 이런 자들을 모일 수 있게 하는…… 살롱의 주인이라고?

분명 거물일 것이다.

롤란드가 눈을 크게 떴다.

*  *  *

그날 밤.

리벨은 디란타 저택의 이곳저곳을 다시 돌아보고 있었다.

“여기가 전에 말했던 정찰용 탑이라는 거지?”

“예. 날이 좋으면 건너편 산맥의 나무까지 하나하나 보입니다.”

그건 날씨가 아니라 보는 사람의 눈이 좋은 것이 아닐까?

리벨은 어색하게 웃으며 슬그머니 정찰탑 문에서 손을 뗐다.

이전에 둘러볼 때는 그저 낯설기만 했지만, 서류로 몇 번이나 확인하고 다시 둘러본 저택은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보다 익숙해진 저택의 모습을 직접 눈에 담고, 현장에서 일하는 사용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가문의 안주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오히려 리벨이 결혼한 시기를 생각하면 조금 늦었다고도 할 수 있었다.

“마님, 오셨습니까!”

“오실 줄 알았다면 미리 청소라도 해 두는 건데, 이런 더러운 모습을…….”

하지만 가는 곳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녀를 맞이하는 사용인들은, 왠지 그녀를 지나치게 반기고 있었다.

더러운 모습 어쩌고 하더니, 바닥에서는 윤이 났다.

저기, 지금 청소용 걸레 들고 가는 거 다 봤거든? 나 때문에 치운 거야, 설마?

“……늦게 저택을 돌아보고 있는데도 다들 환영해 주네.”

리벨의 난감한 듯한 웃음에 헬리아가 고개를 숙였다.

“감히 마님을 환영하지 않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그야 그렇긴 한데, 이게 사람이 진심으로 반기는 거랑 반기는 척하는 거랑은 보이는 것부터 다르기 마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사람들은 그저 윗사람이 와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리벨을 반기고 있었다.

대체 왜?

그 떨떠름한 친절은 리벨이 기사관에 찾아갔을 때에는 최고조가 되어 있었다.

“일동, 마님께 경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사열해 있던 기사들이 일제히 그녀에게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밤늦은 시간인데도 훈련 중이었던 듯, 밭은 숨을 쉬거나 땀을 흘리고 있는 기사들도 있었다.

“이 시간까지 수련을 해?”

리벨이 까만 밤하늘을 가리켰다. 그 말에 기사관 관리자로 보이는 기사가 고개를 숙였다.

“항시 비상시에 대비할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는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초롱초롱한 눈빛이기도 했다.

그 기사뿐만이 아니었다. 사열된 기사 모두가 정말 열렬한 시선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리벨이 슬그머니 뒤로 몸을 뺐다. 이 사람들이 대체 왜 이래?

“……수련도 좋지만 건강도 챙겨. 알지?”

리벨의 말에 기사들이 깍듯이 답했다.

“명을 받듭니다!”

명까진 아니고……. 그들은 감동받은 얼굴로 리벨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대체 왜 이렇게 감동스러워하는 거야? 원래 디란타 사람들이 다 이런가?

그런 것치고는 처음에 결혼해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이런 사람들은 없었던 듯했다.

대공가인 만큼 철저하게 주변을 경계하는 탓에, 가는 곳마다 있는 것이 기사여도 그랬다.

그녀와 마주친 기사들은 예의만 차릴 뿐 이렇게 열렬(?)하게 그녀를 환영하지 않았다.

지금 가주인 시스테인이 옆에 없다고 이러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녀 혼자 기사들과 마주한 경우는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초롱초롱한 그들의 눈에서는 일종의 유대감까지 느껴졌다.

리벨만 정체를 모르는 것 같은 출처 모를 유대감이.

“???”

가풍이 원래 이렇나?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가주인 시스테인이 너무 딱딱한 사람이었다.

리벨이 의아하게 여길 때였다.

―히히힝!

다소 흥분한 것 같은 말의 울음소리와, 정신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벨의 귀에 들릴 정도면 굉장히 시끄러운 거였다.

“무슨 일이야?”

리벨이 기사관 입구 쪽을 돌아볼 때였다.

기사 한 명이 급히 기사관으로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전, 전하께서 다소 심기가 불편하신 듯합니다.”

“뭐?”

그 사람이 심기가 불편해? 물론 사람이 심기가 불편할 순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시스테인 폰 디란타라면 말이 달라졌다.

심기가 불편할 수야 있지만 절대 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기사가 놀라 달려올 정도로 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고?

리벨이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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