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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87)화 (87/167)

제87화

리벨의 명령을 따라 그림자는 쥬리 백작가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물론 티가 나게 감시하는 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숨어드는 것만큼 그림자들에게 능숙한 것은 없었다.

그러니 쥬리 백작 영애가 어디로 뭘 보내든 리벨의 귀에 들려올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추적한 결과, 수도 시내에 들르는 거래 상단의 호위로 위장해 기사단에 잠입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와.”

징하다! 리벨은 혀를 내둘렀다. 물론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기사단 근처에 그림자를 두기는 했다.

저런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뚫릴 수도 있으니까.

그 덕분에 쥬리 백작 영애는 시스테인과 대화하기는커녕 그의 금발 한 올도 구경하지 못하고 매번 허탕을 쳤다.

하지만 기사단에 사람을 붙이는 방법에는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

최대한 먼 곳에, 티 나지 않게 숨어 있으라고 했지만.

……시스테인이 어떤 사람인가?

“기사단에 사람을 붙여 두셨습니까.”

밤, 시스테인은 두 사람만 남은 시간에 그녀에게 물어 왔다.

“아.”

슬리퍼를 신고 침대로 향하고 있던 리벨은 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하긴 감찰기사단장 바운더리에 사람 숨기는 게 좀…… 그렇긴 했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거기 오늘 붙여 놓은 사람이 아니었으면 쥬리 백작 영애는 기어코 기사단 안으로 들어갔을 터였다.

그리고 시스테인과 어떻게든 이야기를 하려고 했겠지.

리벨은 슬그머니 시스테인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의아한 듯 살짝 고개를 기울인 채였다.

오랜만에 마주친 푸른 눈동자는 평소보다 더 맑아 보였다.

“……아, 그럴 일이 있어서요.”

리벨의 말에 시스테인이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어떤? 취미에 관련된 일입니까.”

그래도 기사단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라고 했는데.

역시 감찰기사단장답게 기사단으로 향하는 누군가를 붙잡았다는 걸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 있다고!

리벨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고…….”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그녀가 잠시 고민할 때였다.

“그럼 대공령의 일이겠군요.”

시스테인의 표정이 별안간 심각해졌다.

으아아아니야! 대공령의 일은 더 아니야!

“무슨 일입니까?”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앉아서 묻지 마! 리벨은 손을 내저었다.

“제 선에서, 안주인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에요.”

엄연히 따지면 남편을 노리는(...) 영애를 해치우는(?) 일이니 안주인 일이 맞는다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무슨 이유를 들이대서든 그가 이 일에 개입해서는 곤란했다.

정확히는 쥬리 백작 영애와 시스테인이 만나면 곤란했다.

“…….”

리벨은 시스테인을 살폈다. 평소보다 평온한 얼굴.

……이 사람이 지금은 내게 마음이 있다고 해도.

쥬리 백작 영애는 그 목석같던 원작의 시스테인의 마음도 빼앗았던 사람이다.

경계해서 나쁠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 쥬리 백작 영애에 대해서 생각하면 화가 솟았다.

아니 근데, 이미 임자 있는 사람한테 이렇게 상도덕 없이 들이댈 거야? 어?

리벨이 쥬리 백작 영애에 대한 분노를 간신히 갈무리할 때였다.

“……알려 주지 않으시겠다면, 더 여쭙진 않겠습니다.”

시스테인의 입가가 움직여 엷은 미소를 그려냈다.

리벨은 그에게 차마 물을 수 없었다.

묻는 대신 혹시 감찰 통해서 알아보는 건 아니죠? 이거 불법도 아닌데? 아아아니죠?

하지만 시스테인은 웃기만 할 뿐이었다.

*  *  *

다음 날.

제도기사단 본부에 있던 시스테인은 보고를 받았다. 제도기사단 중에서도 그들 사이에 숨어 있는 감찰기사로부터 받는 보고였다.

리벨에게 묻기 전부터 이미 기사단에 침입하려는 외부인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귀에 들어와 있었다.

그 외부인이 누구인지도 궁금했지만, 그 외부인을 막았다는 자가 더 궁금해 먼저 찾아보았을 뿐이지.

“……리벨.”

그리고 그 사람이 리벨일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는 보고에, 범상치 않은 자임을 직감하고 감찰기사단을 급파시켰다.

그런데 잠입 전문인 감찰기사들은 그자를 쫓은 결과 디란타 대공저 근처에서 그의 흔적이 사라졌다고 했다.

‘디란타 별저의 경계를 강화하겠습니다.’

그 직후 감찰기사들은 이번 일을 심각한 사안으로 받아들이고 움직였지만, 시스테인의 생각은 달랐다.

그 정도 실력자에, 디란타 별저를 오가는 사람이라면 그림자일 가능성이 컸다.

한마디로 적은 아니었다. 리벨이…… 보냈을 테니까.

대체 기사단 근처에 사람은 왜 두셨을까.

물론 침입자를 막아 주신 건 감사하지만, 그녀는 마치 침입자가 올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대응하고 있었다.

“그래서, 침입자는 누구였지?”

그 말에 감찰기사가 바로 답했다.

“쥬리 백작가에서 보낸 사람이었습니다.”

“쥬리 백작가?”

시스테인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이건 그자가 가지고 있던 편지입니다.”

감찰기사가 편지 한 장을 건넸다. 그건 조금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침입자를 막은 외부인이 소지품을 빼앗았다고 하지 않았나?”

시스테인의 물음에 기사가 묵례했다.

“예. 그런데 다른 장소에 은밀히 숨겨 둔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기사단으로 접근하려다 발각되었습니다.”

대체 쥬리 백작가의 영애가 왜?

시스테인이 편지를 열어 보았다.

[디란타 대공 전하께. 은밀히 드릴 말씀이 있어, 긴히 찾아뵙고자 합니다.

- 클레어 쥬리]

“은밀히?”

디란타 대공저와 쥬리 백작가는 정말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가문이었다.

그런 관계에서도 물론…… 어쩌다 보면 은밀히 할 말이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걸 굳이 이런 불법적인 경로로 전달해야 하나?

할 말이 은밀하더라도 사람을 자연스럽게 보낼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이건 마치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는 것처럼 너무나도 은밀하지 않은가?

게다가 리벨은 이럴 일이 일어날 줄 알았던 것처럼 기사단 근처에 사람을 붙여 놓기까지 했다.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머릿속에서 근래 들었던 단편적인 정보 몇 개가 합쳐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혹시 근래 저택 주변으로 오려던 ‘손님’과 쥬리 백작가가 관련이 있나?”

감찰기사가 그 말에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예. 근래 쥬리 백작저에서 문양 없는 마차가 계속 이쪽으로 향했던 정황이 있었습니다. 조사해 보니 처음 출발했던 마차는 쥬리 백작가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는군요.”

쥬리 백작가에서 디란타 방향으로 마차를 보낸다고 해도, 중간에 있는 가문의 저택이 몇 개이며, 디란타 별저 너머에 있는 영지 역시도 많을 터였다.

반드시 그 마차가 디란타로 향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그러니 자세히 보고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쥬리 백작가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기사단에 ‘침입’하려고 했다는 정황이 발견된 지금부터는 달라지겠지만.

“그럼 보낸 마차들은 어떻게 됐지?”

“모두 모종의 이유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쥬리 백작 영애가 기사단에 사람을 침입시키려 했다는 이야기만 듣지 않았어도 이 모든 정보가 연결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연이 거듭 겹치면 더 이상 우연이 아니게 된다.

쥬리 백작 영애는 확실히 시스테인 자신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그것도, 별로 합법적이지 않은.

“그럼 처음으로 쥬리 백작가에서 저택으로 왔던 마차는?”

다른 나무 마차들이야 문양이 없었으니 막는 게 쉬웠겠지만, 가문의 문양이 박힌 마차라면 막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마차마저 디란타 별저에는 오지 않았다.

최근 마력 때문에 예민한 그의 상태를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디란타 별저에는 손님 하나 없었다.

“……그에 대해서도 조사해 보았습니다만,”

감찰기사는 조금 곤란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역시 가로막혔다고 합니다.”

“누구에게?”

리벨이 붙인 그림자라면 신분을 드러낼 수 없었을 테니 백작가의 마차를 막을 수는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감찰기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대공비 전하께서, 직접 가로막으셨다고 합니다.”

“……?”

시스테인의 눈썹이 꿈틀거릴 때였다. 감찰기사가 마저 말을 덧붙였다.

“‘신혼부부의 저택에 올 땐, 주의를 바란다’라고 하시면서요.”

“아.”

신혼부부의 저택에 올 땐, 주의하라……. 시스테인은 그 말을 뇌까렸다.

그가 사교계의 화법에 익숙하지 않다고 해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그 말은 아주 직접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신혼부부의 저택에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고. 불쾌하다고.

그리고 리벨이 불쾌해할 만한 이유라면 하나뿐이었다.

“그랬군.”

시스테인은 저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감찰기사는 그 얼굴을 보며 입을 떠억 벌렸다.

뭐지? 내일 대륙이 반으로 쪼개지나?

*  *  *

그 후로도 쥬리 백작 영애는 아주 끈질겼다.

정말 온갖 방법으로 편지를 보내려고 했다. 이쯤 되면 광기였다.

“아니, 기혼자한테 너무한 거 아니야?”

리벨은 결국 분노했다.

시스테인의 마음을 어떻게든 얻어 보려는 것이 99%쯤 확실하지만, 만일 다른 목적이었다고 해도 이 정도면 확실히 실례였다.

아니, 만일 공적으로 밝힐 수 있는 당당한 일로 시스테인을 찾은 거였으면 이렇게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 연락도 없이 다짜고짜 디란타 별저에 온 건 실수였다고 하고, 공식적으로 만나고 싶다는 요청을 했으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공식적으로 쥬리 백작가와 디란타 대공가 사이에 오간 문서는 없었다.

“이쪽에 신경 좀 끄지?”

리벨은 부글부글 끓는 속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이러다간 시스테인이 아니라 내가 폭주하겠다, 내가!

리벨이 주먹을 꽉 쥐었다.

물론 쥬리 백작 영애가 이쪽에 시선을 끄면 끄는 대로 문제였다.

그러면 필레 공작한테 갈 거잖아. 안 그래도 그 살롱에서 필레 공작하고 만나는 것 같……

“헉.”

헉!

―탕!

리벨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의 폭주부터 살벌한 티타임에 쥬리 백작 영애까지 휘몰아쳐서 생각지도 못한 것이 있었다.

“그 살롱!”

살롱에 대해서 시스테인에게 말해 본다는 걸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리벨이 머리를 싸맸다.

그사이에 뭔 일 있진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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