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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88)화 (88/167)

제88화

리벨은 시스테인과 거리를 두고 저를 대신할 다른 사람을 찾는다는 계획을, 잠시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아주 잠시만.

그 전에 반역은 일어나지 않게 막아야 하니까!

그러지 않으면, 안 그래도 대화가 부족한 황가에 진정한 파국이 닥칠지도 몰랐다.

리벨은 카리스의 살벌한 미소를 생각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안 돼, 안 돼.”

게다가 원작에 따르면 반역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될 쥬리 백작 영애는, 너무 눈에 띄게 이곳에 들이대지 않았는가?

원작에 따르면, 반역을 할 만한 세력은 현 황제 카리스 집권 초기에 싹 숙청당했다.

잿더미가 된 초가삼간도 다시 불태우는 놀라운 화력으로, 그는 반역의 싹이 될 만한 것들까지 모조리 태워 버렸다.

그 후 그의 폭정에 겁을 집어먹고 슬금슬금 모인 것이 필레 공작의 세력이었다.

정확히는 카리스 황제나 황태후 리엔에게 찍힌 자들의 모임이었지만.

그들은 현 황권이 바뀌지 않으면 자신들이 살아남지 못한다는 생각에 반역을 일으킬 뿐, 제국을 위한다는 건 다 허울 좋은 핑계에 불과했다.

그런 그들만 처리하면 이 나라에는 한동안 반역을 일으킬 자들이 없었다.

그만큼 그들이 반역 같은, 현재의 세력 흐름과 다른 행동을 하면 눈에 띄기 쉽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더 주의 깊게 움직였다. 언제 어디에 황제나 황태후의 눈과 귀가 있을지 모르니까.

“어차피 시스는 그런 놈들하고 함께할 생각이 없으니까…….”

리벨은 집무실 책상에서 생각에 잠긴 채 테이블을 두드렸다.

문제는 시스테인이 반역이나 황좌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걸, 카리스가 믿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뢰 회복.”

리벨은 테이블을 두드리던 손을 멈추었다.

어차피 현 정세에서 반역을 일으킬 만한 놈들은 그놈들밖에 없다.

그럼 시스가 그놈들을 잘 포장해서 카리스 폐하께 갖다 주면, 시스테인의 신뢰도도 올라가지 않을까?

유일하게 반역이 가능할 만한 세력을 그가 알아서 카리스의 눈앞에 가져다주는 셈이니까.

게다가 마침 시스테인이 하는 일은 감찰기사단이었다.

시스테인이 감찰기사단으로서 반역의 움직임을 알아채지 못하면 못한 대로 책임을 물게 될 거고, 카리스는 그 대가로 무엇을 치르게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면으로 봐도 시스테인이 반역자들을 잡는 것이 낫다.

‘차기 황위 계승 서열 1위인 시스테인이 반역 모의를 한 자들을 직접 잡아넣는다’라는 건, 카리스에게 나름 충성이자 신뢰의 의미로도 받아들여질 터였다.

“좋아…….”

테이블을 두드리던 리벨의 손이 멎었다.

그리고 시스테인이 반역자들을 잡아다 준다면, 그건, 시스테인의 10살 때의 사건 이후로 악화된 상태 그대로인 두 사람의 관계를 조금이나마 회복하는 데에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어쨌든, 두 사람이 마주앉아 길고 진지한 대화를 하게 될 테니까.

“…….”

리벨은 카리스가 상처를 보여 줄 때 지었던 표정을 기억했다.

그 표정엔 분명히 배신감이 묻어 있었다. 일말의 충격과 함께.

그 마음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았다.

이성이 없을 때라지만 제 동생이 자신을 공격했다는 건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폭주 당시에 같이 별장에 있었다는 걸 보면, 폭주 전에는 두 사람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그 사건 이후로 틀어진 거지.

“…….”

물론 원작의 내용과 상황을 종합적으로 따졌을 때, 카리스의 당시 심정과 지금 심정은 좀 더 복잡다단할 것이다.

그가 언제든 힘으로라도 자신을 누르고 황위 계승권을 가져갈 수 있을 거라는 공포가 섞여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폭주한 시스테인이 낸 상처는 팔에 남은 흉터를 보아도 깊어 보였으니까.

게다가, 황태후 리엔은 마음을 닫아버린 시스테인에게 유독 신경을 쓰고 있으니 카리스가 불안해할 만도 했다.

정작 리엔은 시스테인을 황제로 만들 생각도 없었지만, 그녀의 변덕에 따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역시, 대화가 부족해.”

대화가! 그 집엔 대화가 부족해!

돈도 권력도 명예도 다 있는데 대화랑 시간이 부족해!

리벨이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났다.

어쨌든 반역자를 잘 포장해 가서, 그 선물(?)과 함께 대화를 좀 하다 보면…….

시스가 반역할 생각이 없다는 걸, 카리스도 조금은 믿어 주지 않을까?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시스테인의 폭주는 제어가 필요했다.

‘……리벨.’

리벨은 그가 탁한 목소리로 저를 불렀던 때를 떠올렸다.

저번처럼, 외부의 도움이 때로는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닫았던 마음이 열려 가는 지금, 그는 이전보다 좀 더 많이 흔들릴지도 모른다.

그럴 때 가족들에게마저 숨겨야 한다면, 그리고 리벨 자신마저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면.

그는 정말 기댈 데가 없었다.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

리벨이 한숨을 내쉬었다. 반역자들을 빨리 잡아넣고, 시스와 다시 거리를 두는 거다.

그러면서, 나 대신 그 사람 마력을 가라앉혀 줄 사람도 찾아보는 거야.

리벨은 마음을 다잡았다.

좋아, 어쨌든 대화의 물꼬도 터 볼 겸, 선물 한번 쌈빡하게 싸 보자! 좋아!

―탕!

리벨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무실을 나갔다.

*  *  *

다음 날 아침, 리벨은 시스테인과의 식사가 끝날 무렵 입을 열었다.

“시스, 할 말이 있어요.”

시스테인은 담담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말씀하세요, 리벨.”

푸른 눈동자는 한결같이 잔잔했다. 리벨은 그 호수 같은 눈동자를 보다가, 입을 뗐다.

“제가 사실…… 얼마 전에, 좀 수상한 사람들을 봤거든요.”

그녀의 말에 시스테인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리벨은 이제 그게, 그가 짓는 심각한 표정이라는 걸 알았다.

“어디에서, 무엇이 수상한 사람들을 보셨습니까?”

이 사람도 직업병인지 묻고자 하는 게 아주 정확했다.

리벨은 새삼 그가 감찰기사단장임을 상기했다.

물론 아는 척을 해서는 좀 곤란할 터였다. 그가 밝힌 것도 아니었으니까.

“시스가 대공령에 있을 동안 갔던 연회에서요.”

리벨이 자리를 고쳐 앉았다.

“직접 가 보려고 했는데,”

문제는 거짓말을 좀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리벨이 이야기를 주저한 이유가 이것이었다.

그에게 더 거짓말을 하긴 싫었으니까.

하지만 그에게 기자라는 사실을 들키고, 나아가 상처를 주는 것보다는 이게 옳은 선택일 것이다.

거듭 마음에 새긴 생각을 하며 리벨이 말을 이었다.

“나인 경이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요. 기사 세 명만 그곳에 잠입했었어요.”

리벨의 말에 시스테인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말해 보라는 듯 그녀에게 살짝 고개를 기울여 보였다.

“처음 그런 곳이 있다는 걸 발견한 건, 초대장을 습관적으로 태우다가…….”

리벨은 그가 없던 동안 있던 일을 털어놓았다.

물론 자신이 직접 갔다는 이야기는 빼놓은 채.

초대장에 있는 장소를 찾은 과정, 그리고 그곳의 정체까지.

“거긴 마법 문 하나만 있었대요. 어디로 통하는지도 모르는……, 기사들은 조사를 위해 들어갔고요.”

리벨의 말에 시스테인은 짧게 숨을 토해 냈다. 안도한 것 같기도 했다.

“아무리 리벨의 취미 생활이 있다고 해도, 위험을 무릅쓰진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진지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순간 리벨은 말을 멈췄다.

내내내취미가 뭔 줄 알고 그런 말을 하시는 거죠?

듣는 기자의 간이 다시 쫄리기 시작했다.

정말 사실 이미 모든 걸 알고 계신 거 아니야?

물론 알면 이렇게 마주 앉아 있지도 못할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리벨은 물어볼 수가 없었다.

저를 대체 뭐로 생각하고 있느냐고.

“……걱정 고마워요.”

리벨이 간신히 웃음을 지었다.

시스테인은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다가 뒤늦게 옅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깜빡 잊었다는 듯이.

억눌렸던 표정이 얼굴을 물들이는 모습은, 신기했다.

“아…….”

리벨은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가만히 입을 벌렸다.

사람이 웃으니까 신수가 훤하네, 아주.

조명 하나가 더 켜진 것 같았다.

아니, 웃으면 저렇게 예쁜 얼굴 두고 그동안 무표정하게 있었다고?

예쁜 무드등 사서 불 안 밝히는 거랑 비슷한 거 아닌가? 완전 낭비…….

“―아.”

저도 모르게 주접을 떨어대던 리벨이 정신을 차렸다. 이이이러면 안 되지.

“아무튼, 거기서 나와 보니까 렐라 의상실하고 이어져 있었,”

리벨은 혀를 반쯤 깨물었다. 하마터면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말할 뻔했다.

“……있었다고 해요. 그렇게 보고받았어요.”

응, 보고. 내가 직접 본 게 아니라 보고받았어요. 은근슬쩍 강조한 리벨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거기 있었던 귀족들 목록을 받았는데, 필레 공작부터 이름 있는 귀족들의 이름이 쓰여 있었어요.”

그 말에 시스테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 그 목록을 볼 수 있겠습니까?”

“아, 그건.”

취재 노트에 있는데! 리벨은 제가 점점 멍청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따 식사 끝나고 가져오라고 할게요.”

리벨이 옅게 웃었다.

지금 가져오라고 했다간, 제 글씨체로 적힌 종이가 그에게 건네질 게 뻔했다.

그럼 당연히 상황이 이상해진다.

기사들이 조사해 온 것이 아니라, 제가 조사해서 쓴 것을 들켜 버리니까.

“근데, 그건 왜요? 아는 자들이 있는지 보시게요?”

그야 감찰기사단 일 때문이겠지만, 모르는 척! 그의 정체는 전혀 모르는 척! 리벨은 필사적으로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녀의 앞에서 시스테인은 담담하게 답했다.

“수상한 자들을 수사하는 것이 제 의무이니까요.”

감찰기사단장이면 당연한 말이지만……, 저기, 표면적으로는 제도기사단장이시잖아요?

직업 감출 생각은 있으신 거죠?

리벨은 간신히 그의 말을 받았다.

“아, 하긴 제도니까요.”

제도기사단 업무에 그런 게 있을 수도 있지, 하하!

제도 방비와 황성 호위가 제도기사단의 가장 우선적인 업무이니, 수상한 자들을 수사하는 것도 당연히 제도기사단의 업무에 포함될 것이다. 아무튼 그럴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이 생기면 감찰기사단 영역으로 넘기는 게 더 정상적이겠지만.

“알겠습니다.”

리벨이 필사적으로 모른 척하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시스테인은 다시 조용히 식사를 이어 갔다.

그리고 그날 밤.

“여기, 그 수상하다는 사람들 목록이요.”

퇴근하고 돌아온 시스테인에게 리벨이 문제의 귀족들 목록을 건넸다.

[필레 공작]

그리고 목록 맨 위, 필레 공작의 이름을 본 시스테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아래로 쭉 늘어진 이름들 하나하나에 시선을 주던 그는 쥬리 백작 영애라는 글씨에서도 한 차례 움직임을 멈추었다.

“…….”

리벨은 그런 그를 살폈다.

감찰기사단장인 그는, 목록만 보고서도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는 듯했다.

“이들을 조사해 보겠습니다.”

목록을 살펴본 그의 단정한 목소리가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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