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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00)화 (100/167)

100화

시스테인이 업무 시간에 리벨을 찾아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도와야 할 일이 있는 게 아니라면 그녀에게 방해가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은, 확실히 그가 보기에도 이상한 상황이었다.

틀림없이 리벨도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때문에 그는 그답지 않게 궁색한 변명도 준비했다.

이건……, 그냥 업무가 일찍 끝나서 그녀를 보러 온 거다.

리벨의 업무를 돕기는커녕 제 업무를 다 마치지도 못한 채로, 그는 리벨의 집무실 문 앞에 서 있었다.

“리벨?”

하지만 그녀의 집무실은 비어 있었다.

―쿵쿵.

노크를 조심스럽게 해 보았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있었다면 문 앞을 지키고 있었을 기사들도 없었다.

자리를 비우신 걸까.

“…….”

잠시 침묵하던 시스테인이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달칵.

문은 쉽게 열렸다.

따스한 오후 햇살이 밀려들어 오는 방 안에는, 그의 예상대로 아무도 없었다.

커튼이 걷힌 창문을 통해 들어온 뜨거운 햇살이 책상과 의자를 달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주인이 없는 방이니 물러나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

시스테인은 책상 너머의 책장에서 기이한 것을 발견했다.

원래 사용인들은 주인이 물건을 찾기 쉽도록 자리를 정돈한다.

주인이 주로 앉는 자리에서 가려서 안 보이는 물건이 없도록, 책장에서도 커다란 것은 구석으로 모두 밀어 버리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책장 끝부분에는 유독 커다란 게 튀어나와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그 뒤에 숨긴 것처럼.

사용인들이 방에 무언가를 숨겼을 리는 없으니, 숨길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리벨.”

그가 그녀의 이름을 뇌까렸다.

그녀가 무엇을 숨겼든, 여기서 물러나는 것이 맞았다. 그녀의 방이고 그녀의 물건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오늘따라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건 감찰기사단장으로서 역할을 수행해 오는 동안 길러진 감이기도 했다.

저 뒤에 무언가 있다.

무언가, 내가 신경 써야 할 것이 있다.

이 저택에는 사용인들과 리벨, 시스테인 자신뿐.

매일 방을 청소하는 사용인들에게 저렇게 물건을 감추었을 리 없으니, 리벨은 아마 내게서 물건을 감추고 싶었을 것이다.

“…….”

그 결론까지 다다르자 시스테인은 입 안이 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

그는 원래 의심은 있어도 호기심은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녀가 뭔가 시스테인 자신에게 치명적인 것을 숨기진 않았을 거라고 믿으면서도, 그녀가 무엇을 숨기고자 하는지 알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그에게, 그녀는 모든 것에서 예외였다.

“…….”

내가 모르는 당신의 일이 뭘까.

잠시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가, 그가 방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

발소리 하나 없이.

마치 잠입이라도 하는 것처럼.

문 역시 소리 없이 닫혔다.

그는 리벨 몰래 방에 들어와, 리벨이 그가 보길 원치 않는 것을 보려 하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호기심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불길했다.

―탁.

책장 맨 끝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기대어져 있는 검은 서류철을 그의 손이 치워 냈다.

그러자 드러난 건 작고 노란 서류철이었다.

그가 관찰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무심코 넘어갔을 만큼, 검은 서류철이 숨기고 있는 부분은 작았다.

그는 홀린 듯 노란 서류철을 꺼내 들었다.

[능력 소유자 조사 내용]

무슨 능력인지 자세히 쓰여 있지 않은 걸 보면, 이건 이 서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볼 것을 가정하고 쓴 서류가 아니었다.

한마디로 리벨만을 위한 서류라는 뜻이다.

멈칫한 그의 손이 표지를 넘겼다.

[아이네하라

―신분 : 평민

―수도 외곽 출신. 현재 17세.

―5살 때부터 마법등에 손을 대면 마법등이 꺼지는 등 마법 물건을 고장 냈다는 주변 평가가 있음.

―현재도 마력과 관련된 물건을 만지지 않고 있음]

손을 대면 마법등이 꺼지는 사람?

시스테인은 서류를 다음 페이지로 넘겨 보았다.

[카슬란 미네이트

―미네이트 남작가 차남. 현재 22세.

―마법사가 꿈이었으나 몸에 마력이 전혀 없다는 진단을 받음.

―오히려 마력을 흡수하는 체질로 판단되어 한때 마법계의 주목을 받았으나, 그 효과가 연구하기에는 미미하여 학계의 관심이 사라진 상태]

마력을 흡수하는 체질. 시스테인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종이를 넘길수록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었다.

마력을 흡수하거나, 마법을 무효화시킨 전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능력이 미미하거나 현재는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 자들은 ‘X’로 표시되어 있었다.

“…….”

이게 무엇을 뜻하는 걸까.

마력을 가라앉히는 능력이 있는 자들을 찾고 계신 걸까.

왜?

그녀가 그런 자들을 찾을 이유야 하나밖에 없었다.

시스테인 자신의 마력 폭주 때문에.

나는 당신 한 명뿐이면 되는데.

왜 당신은 다른 사람을 찾고 있는 거지?

게다가 최근에 그녀는 유독 그를 멀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직은 근거가 부족했다. 하지만 그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리벨이 자신을 떠나려고 한다는 생각.

“…….”

―탁.

노란 서류철을 접은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방을 나섰다.

서류철을 든 채로.

*  *  *

밤. 두 사람만이 남은 시간.

오늘도 리벨은 시스테인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시스테인은 그런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

코오, 잠든 것처럼 고른 숨소리를 내지만 잠들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

시스테인이 결국 입을 열었다.

“리벨.”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울렸다.

탁하게까지 들리는 목소리에, 리벨이 움찔했다.

“……시스?”

그의 이런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리벨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가 마력이 폭주하기 전에 저를 찾았던 것이 생각나서.

핏기 없이 새하얘진 그의 얼굴은 정말로 고통스러워 보였다.

“아파요?”

그랬기에 리벨은, 자는 척하던 것도 잊고 벌떡 일어나 버렸다. 그러다가 아차 했다.

“……하.”

시스테인이 짧게 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에 익숙해지지 못한 리벨의 눈이 시스테인의 얼굴을 찾아 헤맸다.

“이쪽입니다.”

낮은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그리고 따뜻한 손이 볼을 부드럽게 감싸 이끌었다.

그 손에 이끌려, 앉아 있던 몸이 순식간에 눕혀졌다.

“…….”

그렇게 끌어와 놓고는, 시스테인은 말이 없었다.

정확히는 말할 수가 없었다.

리벨과는 달리 밤눈이 밝은 그는 그녀의 맑은 자줏빛 눈동자가 분명히 보였기 때문에.

제 예상대로 잠들기는커녕 졸음 한 톨도 없는 그 반짝이는 눈동자가.

당신은 나를 피하고 있다.

시스테인이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나를 걱정스러워하고, 내 옆을 맴돌고 있다.

하지만 나와 대화를 줄이고 거리를 두려고 하고 있다.

그녀의 행동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내게 말하지 못할 고민이라도 있으신 걸까.

결국 시스테인이 입을 열었다.

“아픕니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그의 눈에 당황한 리벨의 표정이 보였다.

“어디가요? 설마,”

그녀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마력이…… 폭주하려고 해요?”

시스테인은 지금 아주 멀쩡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부인하지 않았다.

“제가 만일 지금 폭주할 것 같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리벨은 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건,”

아직 어둠에 적응하지 못한 리벨의 눈이 시스테인의 얼굴 윤곽을 간신히 찾아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리벨이 침대 머리맡의 조명으로 손을 뻗을 때였다.

―탁.

시스테인의 손이 그녀의 팔을 부드럽게 잡아냈다.

“……시스?”

그녀가 부르자, 시스테인은 거듭 물었다.

“또 진정시켜 달라 애걸하면, 그때는 밀어내지 않으실 겁니까.”

그 말에 리벨은 살짝 입을 벌렸다.

그의 목소리는 아까와는 달리 또렷했다. 마력에는 문제가 없는 것이다.

아프지 않은 거다.

하지만 리벨은 답할 수가 없었다.

방금 시스테인의 말은, 리벨 자신이 일부러 자신을 멀리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긴, 눈에 띄었을 것이다. 그와 함께 있는 게 좋으면서도 그와의 자리를 일부러 피했으니까.

평소와는 다른 행동 양식이 그의 눈에 띄지 않았을 리가 없다.

“……언제부터, 알았어요?”

내가 거리 두고 있는 거. 리벨의 작은 말에 시스테인은 곧바로 답했다.

“아마도 첫날부터.”

그가 몸을 일으켜 앉았다.

“밤마다 그리도 잠을 못 이루시니.”

조용한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리벨이 볼을 긁적였다.

시스테인의 눈에는 멋쩍어하는 리벨의 얼굴이 잘 보였다.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는 모습도.

“무슨 일이 있으신 겁니까, 리벨.”

그가 결국 물었다.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거듭 말을 이은 시스테인이 리벨 쪽으로 다가갔다.

어둠에 조금쯤 익숙해진 리벨이, 그의 형체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가 리벨에게 속삭였다.

“저를, 밀어내시는 겁니까.”

리벨이 멈칫했다. 뜨거운 숨결에 귓가가 달아오르는 느낌이다.

리벨은 슬그머니 그에게서 다시 거리를 두려고 했다.

하지만 침대 끝에 가까운 곳이어서일까, 손은 허공을 짚었다.

“아,”

휘청거리는 그녀의 몸을 시스테인이 받쳐 안았다.

목 뒤를 그의 단단한 팔이 감싸 안으면서, 시스테인의 그림자가 리벨의 시야를 가렸다.

―탁.

그의 팔이 리벨의 어깨 바로 위, 침대 끝부분을 잡았다.

그녀가 더 멀리 피할 수 없도록, 제 팔 사이에 그녀를 가둔 시스테인이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만일, 제가 지금 아파서.”

그의 목소리는 가라앉은 기운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런 맑은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

“폭주할 것 같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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