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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12)화 (112/167)

112화

“왜 저를 ‘도와주신’ 겁니까? 그것도 길을 가르쳐 준 게 아니라……,”

시스테인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가 귓가에 속삭였다.

“저들에게서, 나를 숨김으로써.”

리벨은 그 말에 굳어 버렸다.

그의 말에 할 말이 없었다.

연기는 잘 못하더라도 머리 좋은 사람다웠다.

그러게.

우리 둘이 완전히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내가 시스테인을 도울 이유가 없다.

애초에 그가 이 저택의 주인과 관련이 있어 이 비밀 공간에 왔다고 생각하는 쪽이 더 신빙성이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가 똑같이 하녀 차림의 자신처럼 침입한 입장으로 보였다고 해도, 이렇게 구해 줄 이유가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제 몸 간수하기도 바빴으니까.

그를 도와줄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 비밀 공간에 그를 끌어들였다는 건, 그녀에게 반드시 ‘그럴 이유’가 있었다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그야,”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리벨의 입에서는 궁색한 변명이 튀어나왔다.

“몰래 들어온 티가 나니까.”

리벨의 말에 시스테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그러는 당신도 지금 복도로 나갈 수 없는 상황으로 보입니다만.”

그건 그렇지……. 리벨은 결국 입을 닫아 버렸다.

그런 그녀에게, 시스테인이 말을 이었다.

“그런 당신이, 이 좁은 공간에 우리를 들인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건 연기가 아니라, 추궁이었다.

그랬기에 그의 목소리는 자연스러웠다.

“가령, 당신이 나에 대해 알고 있다든지.”

시스테인의 숨결이 바로 가까이에서 느껴졌다. 리벨은 굳은 채로 숨조차 쉬지 못했다.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이, 나를 도우라 부탁하셨습니까?”

시스테인의 말에 리벨은 순간 그렇다고 답할 뻔했다.

어쨌든 시스테인에게 말했던 그 가상의 친구인 척하는 방법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시스테인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아니면 당신이,”

그의 낮은 목소리가 리벨의 귓가를 울렸다.

“―내가 아는 사람입니까?”

그 속삭임은 아주 가까이에서 들렸다.

목가에 닿는 숨을 생각해 보면, 그는 침대에서 자주 그랬듯 리벨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을 터였다.

리벨이 저도 모르게 눈을 감을 때였다.

“눈은, 감지 말고 대답해 보세요.”

……이런 어둠 속에서 그런 것까지 보인다고?

리벨은 멈칫했다.

그렇다면 내 눈 색도 보이겠……네……?

그 사실을 알아챈 순간, 리벨은 지금까지 쏟아져 내린 그의 말에 확신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난, 거짓말하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그의 말에 리벨은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때문에 거짓을 말하는 자를 살려 둔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낮은 목소리는 열기와 함께 그녀를 감쌌다.

하지만 리벨은 뒷목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는 제 비밀을 감춘 문 바로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으니까.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단 한 사람은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사이, 바깥의 목소리들이 웅웅거리면서 들리는 듯했다.

필레 공작과 새로 나타난 사람들이 뭐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아까는 잘만 들렸던 목소리들이 지금은 마구잡이로 뭉개져 그저 잡음으로만 들렸다.

온통 시스테인의 속삭임만 귓가에 남아서.

“난, 당신이 그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그가 말했다.

아.

리벨이 짧게 숨을 내뱉는 순간이었다.

다시 눈앞이 까마득해지는 기분에 리벨이 눈을 꽉 감았다 떴다.

정말 변신이 풀리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시스테인은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까부터 그녀를 감싸고 있던 기묘한 열기는 전혀 식지 않았다.

오히려 달아오르고 있었다.

―사락.

그의 손끝이 리벨의 머리칼에 닿았다. 그는 이 어둠 속에서도, 얇은 머리카락 한 올까지 잘 보이는 모양이었다.

적어도 머리카락 색이 진분홍빛이 아니라 검은색이란 건 알아챘겠지.

게다가 눈도 이미 봤다면.

“……아,”

그 순간 다시 한번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한계였다.

곧 변신이 풀릴 것이다.

한 번만 더 시야가 암전된다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모습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을 터였다.

그럼 끝이다― 리벨이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저들이 갔습니다.”

감찰기사가 속삭였다. 시스테인은 곧바로 말했다.

“그럼 잠시 나가 있도록.”

시스테인의 말에 기사는 곧바로 문에 손을 댔다.

“……?”

물론 마법적인 능력이 없는 그에게 문은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리벨은 손을 뻗어 문을 건드렸다.

―…….

소리 없이 열린 문틈으로 바깥의 빛이 쏟아져 내렸다.

감찰기사가 나가는 그 잠깐 동안, 시스테인의 시선과 리벨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 순간 드러난 시스테인의 표정엔 담담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눈앞에 있는 여자가 누군지 안다는 듯한 확신.

그때였다.

―파앗!

리벨의 눈앞이 다시 깜깜해졌다. 그녀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알기 때문에.

이 어둠 속에서는 너무나 눈에 잘 띌 빛이 온몸을 감쌌을 것이다.

―우우우웅!

변신했던 모습이 풀리면서 온몸이 좀 더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리벨의 마음은 한층 무거워진 상태였다.

“…….”

잠깐의 침묵이 지나갔다.

시스테인은 보았을 것이다. 리벨은 확신했다.

내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그는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

짧은 침묵 끝에, 시스테인이 움직였다. 그의 손끝에 아주 희미한 마법의 빛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빛은 어두운 공간에서 서로의 모습을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리벨의 어깨를 짚은 시스테인의 손에, 그녀의 진분홍빛 머리칼이 얽혀 있었다.

그리고 그런 리벨을 내려다보는 시스테인의 침착한 눈동자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맑은 푸른빛이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금발이 보였다. 이곳에 들어오느라 다소 흐트러진 모습까지 눈에 띄었다.

둘의 시선이 한참 오갔다.

“……리벨.”

이내 시스테인이 입을 열었다.

리벨은 그 말에 답하듯 그의 이름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시스…….”

정말, 이렇게 정면에서 들킬 줄은 몰랐다.

리벨은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다. 변신 현장을 들켰으니 발뺌할 여지도 없었다.

“…….”

복도에 있는 그를 본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곳으로 끌고 들어와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조금 전으로 다시 한번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리벨은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또 이어진 침묵 끝에, 시스테인이 입을 열었다.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담담하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시스테인의 얼굴에는 다소 호기심이 묻어나 있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마력 감지 능력에 들키지 않을 정도라면 그냥 평범한 마법이 아니라 선천적인 어떤 능력일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

인간의 몸에 원래 제각기 흐르는 마력의 흐름을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마법일 테니까.

리벨은 그 말에 할 말이 없었다.

신기한 능력이긴 하죠……. 리벨은 조금 침묵하다가 말했다.

“취미……하고 관련된 능력이에요.”

그녀의 말에 시스테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가 조력자라면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해가 갔다.

아니, 이런 능력을 가졌기에 조력자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이미 리벨은 시스테인 자신이 감찰기사단장임을 아는 상태였다.

그러니 이렇게까지 자신이 조력자임을 숨길 필요는 없을 텐데?

물론 조력자가 제 정체를 숨기는 게 암묵적인 룰이란 건 알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숨길 필요는 없을 텐데.

“…….”

그는 뭔가 리벨에 관한 정보에서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껏 리벨이 조력자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다른 어떤 가능성도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이 사람은, 조력자가 아니다. 그의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뭐지?

그의 안에서 리벨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어긋나 버렸다.

그녀가 아닌 척 흘려 준 것 같던 그녀에 대한 정보가, 실상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다.

제가 바보 같았던 것이다.

어쩌면 다른 힌트들을 충분히 주었는데도 제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기묘하게도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정확히는 자주 느낄 수 있었지만, 느끼기도 전에 억눌렀던 감정.

하지만 지금은 해일처럼 덮쳐 왔기에, 그는 막을 수 없는 감정이었다.

“섭섭합니다.”

그의 감정이 결정이 되어 떨어져 내렸다. 리벨은 그 말에 숨을 멈추었다.

그 말에서 그의 어떤 뭉친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제가 당신의 취미조차 이해하지 못할 자로 보인 건지, 아니면 작은 신뢰조차 드리지 못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비밀을 이렇게까지 감출 정도로요.

그의 목소리가 작은 공간을 울렸다.

“그건,”

당신이 신뢰를 주지 않은 게 아니다. 리벨은 그건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그녀가 말하려는 때였다. 시스테인은 그대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로써 당신과 나는 비밀을 하나씩 교환한 셈입니다.”

나도 당신도, 서로에 대해 ‘알아낸 셈’이니까. 시스테인이 속삭였다.

내 정체와, 당신의 그 능력.

그의 목소리에 리벨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런 그녀의 눈을 시스테인이 빤히 바라보았다.

“이제 난 숨기는 게 없습니다, 리벨.”

그가 손을 펴 보였다. 그러고는 물었다.

“리벨은, 어떻습니까?”

리벨이 살짝 입을 벌렸다. 숨기는 것……, 있었다.

그를 상처받지 않게 하려고 애써 꽁꽁 싸맸던 비밀.

하지만 이대로라면 언젠가 드러나게 될 비밀.

“리벨, 당신의 정체는 내가 생각하는 게 맞습니까? 아니면, 내게 숨기는 게 더 있습니까?”

시스테인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기자를 짐작하고 있지 않다는 건 알겠다.

“내가, 더 섭섭해질 준비를 해야 합니까?”

시스테인이 연달아 물었다. 리벨이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쿵쿵.

노크 소리가 울렸다. 화들짝 놀란 리벨의 손이 문에 닿았다.

그 순간 복도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은 벽이 사라지면서, 감찰기사 젠과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

그리고 벽 너머에 있던 감찰기사 젠은 제 눈을 의심했다.

마마마마님께서여기에왜계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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