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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15)화 (115/167)

115화

바깥의 인기척을 면밀히 살핀 시스테인이 리벨을 조심스럽게 이끌었다.

바깥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감찰기사 젠은 거듭 침입의 흔적을 지우며 따라오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리벨은 게이트를 돌아보았다.

제 피에 반응해서 게이트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건 매우 큰 수확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건 사실이었다.

저번처럼 뛰어들기에는……, 게이트 너머에 그 수상한 자들이 아직 있을지도 모르고.

시스테인 말대로 저번에 게이트 너머로 넘어갔던 건 확실히 경솔한 짓이었다.

아무리 그림자들이 있었다고 해도 적이 엄청나게 많았을 수도 있잖아.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언제 또 저 게이트를 살펴볼 수 있을지 모르는데.

“……게이트 너머까지 확인해 보는 건 무리겠죠?”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면 저들의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한 계획을 알 수도 있을 텐데.

아쉬워하는 리벨에게, 시스테인이 간단히 답했다.

“카실라 대장간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리벨이 눈을 깜빡였다.

“그새 다녀오셨어요!?”

사람이 왜 이렇게 민첩해? 아니, 언제 다녀온 거야?

그냥 가서 슥 보고 다시 돌아온 건가? 그게 돼?

리벨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복잡해졌다.

하지만 시스테인은 무슨 소리냐는 듯 리벨을 돌아보았다.

“게이트를 고치러 온 자들에게 마력을 부착해 알아냈습니다.”

“아…….”

리벨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렇게도 알아낼 수 있는 거구나.

……근데 이 사람이 마력을 이렇게 자유롭게 쓸 수 있었나?

리벨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마법사라는 이야기는 못 들어 봤는데?

“……원래 마법을 이렇게 잘 썼어요?”

그 말에 시스테인이 옅게 웃었다.

전에는 어색하게만 느껴졌을 그 미소가, 이제는 조금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것 같았다.

“당신을 만난 후 가능하게 됐습니다.”

리벨이 눈을 깜빡였다.

그런 그녀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눈을 맞춘 시스테인이 속삭였다.

“적어도 당신과 함께 있을 때에는, 마력을 억누를 필요가 없으니까.”

“아…….”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리벨의 손을 시스테인이 단단하게 잡아 주었다.

물론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젠은 이제 유령을 본 것을 넘어 꿈속에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단장님이, 가주님이 저렇게 꿀 떨어지는 사람이었나?

지금 단장님 연애하시는 거?

결혼했으니까 연애는 하시겠지?

아니지, 연애를 했으니까 결혼을…… 아니…… 그래서 마님은 어디서 튀어나오신 거지?

젠의 머릿속이 복잡해졌을 때였다.

리벨이 복도의 문 하나를 가리켰다.

“……그런데 저 문, 열 수 있어요?”

시스테인이 문 쪽을 돌아보았다.

“열 수는 있습니다만, 마법으로 잠긴 거라 잠근 쪽에서 알아차릴 가능성이―”

그렇게 말하던 그가 말을 끊었다.

리벨에게만 신경 쓸 때에는 몰랐던, 아주 미세한 기척이 느껴진 탓이었다.

“……문을 열어야겠군요.”

시스테인의 말이 순식간에 낮게 가라앉았다.

리벨은 서리라도 내려앉을 듯한 말에 기겁했다.

“제 기사들이에요.”

적 아님! 절대 아님!

“아.”

시스테인의 긴장이 그제야 풀렸다.

리벨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쯤 문 안에 있을 나인과 엘브는 긴장하고 있을 터였다.

그때였다.

“문은 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안에서 비밀 통로를 찾았습니다.”

“아.”

리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건너편 방에서도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찾았습니다. 비밀 통로의 규모가 생각보다 커서 나가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엘브의 목소리였다. 감찰기사 젠은 당황했다.

두 명이나 숨어 있었다고?

근데 감찰기사인 그는 인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냥 호위기사가 아니었단 말인가?

“그럼 빨리 나가서 합류해 줘. 아, 홀에 있는 기사들한테도 슬슬 나오라고 해 주고.”

리벨이 조금 가벼워진 얼굴로 말했다.

이제 진짜들이 돌아가야 하니까.

리벨이 시스테인을 올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친 시스테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리벨을 에스코트해 복도를 벗어났다.

“…….”

감찰기사 젠이 혼란스러워하며 쫓아오는 가운데, 두 사람은 비밀 복도를 벗어났다.

리벨은 그사이 심장이 조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변신 능력을 들켜 버렸다.

그래도 그냥 들켜 버리니까 편했다.

이제는…… 죗값을 청산할 시간(?)이 오겠지만, 일단 이 일 먼저 끝내는 데에 집중하자.

리벨은 눈을 꽉 감았다 떴다.

“이쪽으로.”

시스테인은 그런 그녀를 계단 한쪽의 외진 곳으로 이끌었다.

3층에서 사람이 올라오거나, 4층에서 사람이 내려오더라도 쉽게 눈에 띄지 않을 만한 곳이었다.

“합류하라 일렀으니 두 기사는 이쪽으로 올 겁니다.”

시스테인은 간단히 말했다. 리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젠은 주변을 살피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시스테인은 그사이, 리벨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신 겁니까.”

그의 낮은 목소리는 두 사람 사이를 간신히 울릴 정도로 작았다.

“위험했습니다, 리벨.”

시스테인은 리벨을 내려다보았다.

그때 리벨이 눈을 감았다.

“잠시만요…….”

―우웅!

빛이 반짝이는 건 잠깐이었다.

그사이 그녀는 검은 머리칼의 여자로 변신해 있었다.

혹시 다른 사람과 만날지도 모르니까.

그녀가 변신하는 모습을 본 시스테인은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선천적인…… 능력입니까? 마력이 잘 안 느껴집니다.”

그 말에 리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선천적으로 마력이 폭주할 만큼 많은 사람도 있는데, 이 정도는 양반이지.

리벨은 볼을 긁적였다.

“이 능력으로 많이 돌아다녔어요.”

리벨의 말에 시스테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리 당신에게 이런 능력이 있다고 해도…….”

시스테인은 그녀의 검은 머리칼을 보다가 말했다.

“위험했을 텐데요.”

그 말에 리벨은 슬그머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게, 연회장에서 좀 이상한 걸 봤거든요.”

직업병이라고 들어는 보셨습니까?

리벨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가 말을 이었다.

“아스테아 백작 부인이 이상하게 모시고 가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가면무도회인 데다 신분도 안 드러낸 사람들을 그렇게 모시는 걸 보니까…… 감이 딱 왔죠.”

이제 무슨 감인지 알겠지, 이 사람도?

리벨이 시스테인을 흘끗 돌아보았다. 하지만 시스테인은 표정 변화가 없었다.

내가 기자인 건 생각보다 별로 큰 충격이 아닌가?

하긴 귀족가의 일은 귀족만이 알 수 있으니, 귀족 중에 기자로 투잡 뛰는 사람도 있을지도…….

슈 기자도 그렇지 않은가?

리벨이 볼을 긁적였다. 그러다가 살짝 입을 벌렸다.

“아, 맞아. 따라가서 중요한 걸 들었어요.”

시스테인이 귀를 기울이는 듯, 살짝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리벨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 말했다.

“그 사람들 있잖아요. 아마…… 게이트 고친 사람들.”

게이트 있는 방에 뭐 고치겠다고 하고 갔으니 아마 게이트를 고친 게 맞을 것이다.

시스테인은 검은 로브를 쓴 자들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사람들, 필레 공작하고만 연락이 가능하대요.”

“……?”

그 말에 시스테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필레 공작하고만 연락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공적인 조직은 당연히 아니라는 뜻이다.

게다가 외부에 존재를 최대한 알리기를 꺼리는 자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살롱의 주인, 즉 저들 세력의 우두머리하고만 연락을 한다는 걸 보면.

“중요한 정보를 얻으셨군요.”

시스테인의 말에 리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위험하지만 않으셨으면, 좋았을 텐데.”

시스테인은 그녀의 말을 부드럽게 받았다. 리벨이 웃었다.

“안 위험했잖아요.”

그녀가 두 손을 펴 보였다.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아니, 손만 좀 다쳤다. 리벨은 슬그머니 제 손을 내렸다.

하지만 시스테인이 신경 쓰는 건 그 손이 아닌 듯했다.

“아뇨, 위험했습니다.”

그의 말은 평소보다 훨씬 딱딱하고 진지하게 들렸다.

리벨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심각한 표정의 그가 푸른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 복도에 간 게 제가 아니라 다른 자였다면, 어땠을지 모릅니다.”

무슨 상황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가 뇌까렸다.

리벨이 눈을 깜빡이다가 말했다.

“그럼 제가 그 사람이 어떻게 되든 안 구해 줬겠죠.”

시스테인이 멈칫했다. 리벨이 제 검은 머리카락을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이 능력…… 숨겨 왔던 건데.”

리벨이 조금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사실 들킬 것 같았어요, 그때.”

분명 변신이 풀리기 직전이었으니까.

시스테인은 조용히 그녀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리벨은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들키면, 시스가 실망할 것 같아서.”

내가 기자임을 알면 당신이 상처받을 것 같아서.

하지만 시스테인의 벽안은 조용하게 반짝이기만 했다.

내가 기자인 건 괜찮은 걸까.

벨이면 문제가 되겠지만. 변신 능력이 밝혀진 이상, 그의 머리로 내 정체를 완전히 아는 건 순식간이겠지.

아직 바빠서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을 뿐일 터다. 리벨은 그를 보다가 말을 이었다.

“변신이 딱 풀릴 때였거든요. 근데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변신을 풀어 버릴 생각도 못 하고 끌어당겨 버렸다.

리벨이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바깥에 있는 사람이, 시스라서.”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시스, 당신이라서.”

그래서 당연하게도 외면할 수가 없었어요.

시스테인의 호수 같은 눈동자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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