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악몽에 갇히는 건 익숙한 일이다.
시스테인이 생각했다.
어릴 때도 자주 이랬다.
주로 디란타 대공령…… 정확히는 그곳이 아직 디란타 고개였던 때에.
그는 며칠을 내리 폭주해 있고는 했다.
그때마다 방이 박살 나고 저택이 박살 나기도 했다.
덕분에 광증이 있다는 소문이 다시 한번 퍼진 적도 있었다.
그것도 디란타 고개에 있던 시종에 의해서.
그 후로 디란타 고개에 있던 자들은 싹 바뀌었다. 물론 그의 어머니 리엔에 의해서.
광증이 있다는 소문이 더 밖으로 새어 나가선 곤란했으니까.
「…….」
어릴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온몸에 뭉친 마력이 산재해 있는 느낌.
눈을 뜨면 엉망인 방과 두려움에 찬 시종들의 시선이 저를 반길 것이다.
그는 십 년도 더 넘은 때의 기억을 선명하게 되살려 냈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십니까?’
시종들은 두려운 눈으로 묻곤 했다. 어렸을 때의 그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가 밤의 일을 정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늘, 악몽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꿈인 걸 알면서도 현실과 견고하게 벽을 세우는 꿈을 부수기 위해서.
그가 익숙한 악몽에서 헤맬 때였다.
‘……스, 시스!’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
시스테인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 곳에는, 부서진 현실과 꿈의 경계가 있었다.
그가 눈을 크게 뜬 순간이었다.
“시스, 정신 차려 봐요!”
늘 그를 가로막던 의식과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보인 것은 리벨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볼과 귀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
그걸 보는 순간 시스테인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가 몸을 일으켰다.
“리벨.”
몇 번 눈을 깜빡이던 그는 흐릿했던 시야를 완전히 회복했다.
마력은 아직 진정되지 않아, 붉어진 시야로 리벨이 보였다.
“리벨?”
“일어난 거 맞죠?”
리벨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하, 시스테인이 짧은 숨을 내뱉었다.
상황 파악이 잘 되질 않았다. 악몽에 갇히는 거야 익숙한 일이다.
하지만 악몽에서 몸부림치다 눈을 떴을 때, 앞에 사람이 있는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저를 걱정하는 피투성이의 사람이.
제 마력에 공격당했을 게 분명하면서도 피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 건, 정말 처음이었다.
“리벨.”
그의 목소리에 리벨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괜찮아요?”
리벨이 보기에도 그의 주변을 감싼 마력은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여전히 묘한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리벨이 멈칫했다.
“눈……, 눈에서,”
“……아.”
그녀가 말을 더듬자, 시스테인이 제 손으로 눈을 덮었다.
리벨은 그 모습에 무언가를 깨달았다.
“설마 폭주할 때마다 그래요?”
리벨이 작게 속삭이며 물었다. 시스테인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저번에도 폭주 때문에…… 눈이 푸르게 빛났던 거구나.
리벨은 그의 손을 잡았다.
“손 떼 봐요.”
하지만 시스테인은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최대한 외부 자극을 줄여야―”
리벨은 고개를 저었다.
온몸이 푸르게 빛날 때, 리벨은 분명히 보았으니까.
그가 마력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을.
분명 마력으로 빛나고 있는 눈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리벨이 그의 손 위로 제 손을 얹었다.
“내가 봐 줄게요. 난 마력을 가라앉힐 수 있잖아요.”
“…….”
시스테인이 멈칫했다.
아직 의식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그녀의 말이기 때문일까.
그녀가 하는 말은 반드시 따라야 하는 정답처럼 느껴졌다.
결국 시스테인이 눈을 가린 제 손을 떼어 냈다.
“…….”
“…….”
두 사람의 시선이 아주 가까이에서 마주쳤다.
리벨은 푸르게 빛나는 그의 눈을 보다가, 두 손으로 덮어 주었다.
식은땀이 났는지 다소 차가워진 얼굴에 리벨의 손이 닿았다.
온기에, 시스테인이 살짝 입을 벌렸다.
“악몽…… 꿨어요?”
리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시스테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악몽을 꿨다는 걸 털어놓는 것도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는 어릴 때를 떠올렸다.
아주 어릴 때, 그때는 어머니와 함께 있었으니 어리광도 부렸던 적이 있는 것 같다.
어릴 때가 아니라 마치 다른 생의 기억이나, 책 속에서나 본 다른 이의 기억처럼 낯설기 그지없는 모습이 눈앞을 스쳤다.
어린 시절의 그는 베개를 든 채, 울면서 리엔에게 안겨 있었다.
‘아가, 꿈이 무서웠어?’
그녀는 졸린 눈으로도 시스테인을 감싸 주었다.
하지만 지금 그를 안아 주는 건 리벨이었다.
리벨은 그의 눈을 감싸 주었다가, 시스테인을 끌어안았다.
“무슨 꿈을 꿨는지는 몰라도, 꿈이에요.”
현실은 여기예요. 리벨이 속삭였다.
시스테인은 아직도 꿈이 선명하기만 했다.
‘괴물.’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느꼈던 무력감과 절망, 분노 같은 것들이.
다시 마력이 들끓으려는 걸, 그가 억눌렀다.
리벨이 옆에 있는 덕일까, 꿈속을 헤맬 때보다 그건 훨씬 쉬웠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
시스테인은 문득, 등에 닿는 리벨의 손이 축축하다는 걸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제 눈가에도 무언가가 묻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리벨?”
왜 이제야 맡았는지 모를 피 냄새가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시스테인이 제게서 리벨을 떼어 냈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피투성이였다.
“이제 괜찮은 거예요?”
리벨의 목소리에 시스테인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붉은 시야가 순식간에 거두어지고, 의식이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빠르게 돌아왔다.
“괜찮으십니까?”
그가 리벨을 붙들었다. 피가 나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그는 제가 누워 있던 자리에 리벨을 눕혔다.
“……!”
그러는 사이, 그의 시야로 엉망이 된 침실이 스쳐 지나갔다.
침대맡의 조명도, 다소 떨어진 벽도, 침대 이곳저곳도 그을리고 찢기고 갈라져 있었다.
어릴 때의 그가 침실에서 자주 보던 것들이었다.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 그가 리벨을 살폈다.
지금 걱정할 건 시스테인의 상태가 아니었다. 그녀의 온몸에는 자잘한 상처가 나 있었다.
아직도 피가 흐를 만큼의 상처가.
“다 스친 거예요.”
“아니,”
시스테인은 리벨의 말을 끊고서도, 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제가 폭주할 때 어떤 모습인지 몰랐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알고 있었다.
폭주하는 자리에 있던 자들은 모두 무사하지 못했으니까.
카리스도 중상을 입었고, 악몽에 몸부림칠 때에는 방을, 크게는 저택을 반쯤 무너뜨리기도 했다.
한마디로, 괴물이 된다는 의미였다.
“계속…… 옆에 계셨습니까?”
시스테인의 목소리에 리벨이 옅게 웃었다.
“두고 나갈 순 없잖아요. 사용인들도 있는데.”
그렇게 웃는 리벨의 볼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시스테인은 그곳에 제 옷소매를 가져다 댔다.
지혈하듯 꾹 누르자, 리벨이 따끔했는지 입술을 일자로 굳게 물었다.
“사용인들이 무슨 상관입니까.”
시스테인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위험합니다. 제 상태가 이상하면, 최대한 먼 곳으로―”
“비밀이잖아요.”
그때 리벨이 그의 말을 부드럽게 가로챘다.
“…….”
시스테인이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제 푸른빛이 사라진 시스테인의 눈은 잔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리벨은 그 눈을 보면서 떠올렸다.
저는 괴물이 아니라고 했던, 그의 말을.
“…….”
그가 무슨 꿈을 꿨는지 알 것 같다. 그는 아마 어린 시절의 꿈을 꿨을 것이다.
어쩌면 그의 아픈 기억을 다시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악몽을 꾼 게, 나와 무관할까?
하필이면 벨 이야기를 한 밤에 그가 이런 상태가 된 게, 나와 정말 상관이 없을까?
남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그는 제 편 하나 없는 타지에서 소문에 노출되어야 했다.
그에게는, 너무나 큰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리벨은 그를 보다가 침대 머리맡의 조명을 가리켰다. 깨져 나간 조명.
“이거, 비밀이잖아요.”
그렇게 말한 리벨이 손을 뻗어, 다시 그의 눈을 감싸 주었다.
“…….”
시스테인은 그런 그녀에게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간신히 입을 뗐다.
“리벨보다, 중한 비밀은 아닙니다.”
“아뇨, 중해요.”
하지만 리벨은 그의 말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리벨.”
시스테인이 제 이름을 불러도, 리벨은 말을 이었다.
“정확히는 나보다 중하다기보다는,”
그녀는 조금 머뭇대다 말을 이었다.
“……그 악몽에, 내 탓이 있다는 걸 알아요.”
리벨은 여전히 시스테인의 눈을 감싸 준 채였다.
덕분에 그의 눈빛이 어떤지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