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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33)화 (133/167)

133화

“혹시 황후의 자리를 가져다 바칠 생각은 안 들던가?”

카리스의 목소리가 알현실 안을 살벌하게 울렸다.

리벨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없어요! 없다니까! 저도 줘도 안 가진다고요!

그녀가 시스테인 옆에서 빠르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하지만 카리스의 시선은 시스테인에게만 머물러 있었다.

그의 답을 꼭 들어야겠다는 듯이.

결국 침묵 속에서 시스테인이 입을 열었다.

“제가 만일 그날, 폐하께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고 해도 저는 황제가 될 수 없었을 겁니다.”

그의 말에 카리스의 입술 사이로 찬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럼 그 멍청한 필레 공작에게 이 자리가 돌아갔을까? 어머니께서 지켜보고 계신데?”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시스테인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러면서 카리스를 올려다보았다.

리벨은 그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여 자아내는 말이, 아주 긴 시간에 걸쳐 나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언제 괴물이 될지 모르는 자를 황성에 앉혀 두실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난, 괴물이 아니야.’

리벨은 저도 모르게 제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언젠가 그가 잠에 취해 했던 말이 떠올라서.

꿈에서조차 제가 괴물이 아니라고 말하던 그는 지금 제 입으로 제가 괴물이라 단정 짓고 있었다.

그 목소리가 자조적으로 들리는 건 착각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카리스는 그 호칭이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그가 괴물이라 저를 칭한 것에 카리스는 놀라지도 않았다.

대신 턱을 괴고 고개를 기울였다.

“다 지난 일이잖아. 어머니께서 고작 몇 년을 못 기다려 주셨을까.”

그가 손을 펴 보였다.

“내가 죽고 나면, 지금처럼 멀쩡한 너한테는 황위가 가는 데에 문제가 없을 텐데.”

그 말에 시스테인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가질 수 없었을 겁니다.”

그가 이렇게 정면으로 카리스의 말에 반박하는 것 역시 너무나도 오랜만에 있는 일이었다.

형제의 시선이 부딪혔다.

다시 한번 숨을 짧게 들이마신 시스테인은, 리벨 이후 처음으로, 그리고 가족에게는 정말 처음으로, 제 비밀을 털어놓았다.

“저는 아직 마력을 제어하지 못합니다.”

눈을 크게 뜬 카리스에게 그가 거듭 말했다.

“저는 아직도 한 달에 한 번씩, 괴물이 됩니다.”

그 말의 여파는 엄청났다.

―스릉!

알현실에 있던 검은 옷의 남자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

몬스터를 대하는 기사처럼. 살기가 알현실 안을 꽉 메우는 것은 리벨조차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시스테인도 카리스도 미동도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대신 카리스가 뇌까렸다. 그러다가 바로 물었다.

“그럼 한 달에 한 번 대공령에 갔던 것이 그것 때문이었나?”

역시 눈치가 빨랐다. 시스테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데 얼마 전에는 가지 않았다던데.”

카리스가 살짝 옆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다가 최근, 아주 오랜만에 들렀다지. 지난 십수 년간 대공령에는 주기적으로 들렀었는데, 근래 들어 그 규칙을 어겼다고 들었다.”

리벨은 그 말에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역시 카리스는 시스테인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네 말에 따르면 대공령에 들르지 않았던 몇 달간은, 마력을 제어할 수 있었다는 뜻인가?”

잘못 대답하면 오해로 튈 수 있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시스테인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카리스가 눈을 가늘게 뜨는 가운데, 시스테인이 리벨을 돌아보았다.

“이 사람이 있을 때에만, 제어할 수 있습니다.”

“오…….”

카리스의 시선이 리벨을 향했다. 그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리벨 이벨라.

어느 날 시스테인이 갑작스럽게 원했던 자.

제게 역병이라도 있는 것처럼 사람과의 접촉을 꺼리던 시스테인은 리벨 이벨라를 만나고부터 조금씩 달라져 갔다.

리벨, 저자에게 무슨 능력이 있기에?

제 휘하의 정보원들을 풀어 알아보아도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리벨이 옆에 있으면 끓어오르는 마력이 가라앉습니다.”

카리스가 구하기 힘들었던 그 정답을, 시스테인은 짧게 풀어냈다.

“흐음.”

카리스가 팔짱을 낀 채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자세한 것이야 따로 알아보아야겠지만 저 말이 정말이라면…….

그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요컨대, 마력을 조절할 방법을 찾았다?”

―툭, 툭……

다시 그가 의자 팔걸이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최근 행동 양식이 바뀐 건가? 안 하던 짓을 하는 것도 모자라 이렇게 찾아오기까지 하고?”

드디어 마음이 생긴 건가? 응?

카리스가 소리 없이 웃었다.

리벨은 그 얼굴에 대고 말할 뻔했다.

그럼 그 반란군 문서를 안 보내지 않았을까요? 우리 의심을 좀 접고 이야기할 순 없을까요?

리벨이 빠르게 고개를 저어 보이는 가운데, 카리스가 손을 펴 보였다.

“바로 묻지. 넌 평소에도 싹이 보이는 것들은 감찰기사단장의 이름으로 보고했잖아. 그런데 이번엔 굳이 ‘시스테인 폰 디란타’라는 이름으로 알현 요청을 했단 말이야.”

그의 눈이 번뜩였다.

“그 이유가 뭐지? 단순히 반란군의 규모가 커서인가?”

그렇게 뇌까리던 카리스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시스테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였다.

“아니면, 다른 어떤 목적이 있어서일까, 응?”

그 말에 시스테인이 입을 열었다.

“상대의 규모가 커서도 맞고, 달리 드릴 말씀이 있어서 온 것도 맞습니다.”

시스테인은 주먹이 새하얘지도록 손을 쥐었다 폈다. 리벨은 그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변화를 위해 있는 힘껏 발을 내디디고 있었다.

“그들은 아시다시피 이 나라에서 현재, 가장 큰 반란 세력으로 황가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는 자들입니다.”

시스테인의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런 자들에게, 마력을 제어할 수 있는 제가 가담한다면 그들의 승률은 더욱 올라가게 되겠죠. 이게 폐하께서 우려하시는 바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가 카리스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제게는 더 이상의 권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신뢰? 아까 말했던 거?”

어이가 없다는 듯한 카리스의 말에도 시스테인은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예.”

문답은 빠르게 오갔다. 시스테인이 리벨을 돌아보았다가 말했다.

“저는 감사하게도 제 마력을 제어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두 번 다시 어릴 때처럼 참극을 벌일 생각은 없습니다.”

말하던 그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성을 잃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가 마력을 제어할 방법을 찾고자 한 건.”

그가 잠시 숨을 내쉬었다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어서였습니다.”

그 말에 카리스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시스테인이 계속 말했다.

“만일 제가 반역을 하려 한다면 가장 승률이 높은 필레 공작에게 가야 했겠지요. 그런데 그런 제가 저들 무리를 앞장서 토벌하려는 건, 폐하의.”

그가 숨을 한 번 더 들이마셨다가 말했다.

“……형의, 가족으로서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내가 더는 당신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그 작은 신뢰를.”

시스테인은 십수 년 전부터 갖고 있던 마음이었다.

하지만 카리스는 믿어 줄 수 없었던 마음이었다.

시스테인도 카리스를 이해할 수는 있었다.

늘 목숨을 위협받았던 카리스였다.

그러는 가운데 유일하게 신뢰했던 동생에게서 공격당했으니 배신감이 컸을 것이다.

그리고 어릴 때 사건 이후부터 카리스가 황좌에 앉기 전까지, 폭군의 싹이 보이던 카리스보다는 유약해 보이는 시스테인을 내세워 황좌를 쥐게 하려던 자들도 있었다.

시스테인을 허수아비로 두고 제멋대로 권력을 휘둘러 보려던 자들이었다.

지금은 모두 어딘가의 거름이 되었겠지만.

게다가 카리스를 공격했던 시스테인은 도망치듯 그의 옆을 떠났다.

제가 다시 카리스를 해칠까 두려워서.

덕분에 감정의 골과 오해는 깊어져만 갔다.

형제 사이에 있던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등 돌린 채로 너무 오랫동안 걸어온 것이다.

그러니 작은 것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

침묵 가운데, 리벨이 그의 손을 다시 한번 잡아 주었다.

괜찮다는 뜻으로.

리벨이 고개를 끄덕여 주자, 시스테인이 마저 말했다.

“그리고, 그때의 일을 사과하고 싶어서이기도 합니다.”

카리스는 그 말에 한참 동안 시스테인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어린 시절 저를 공격하던, 이성을 잃은 시스테인의 모습을 분명히 기억했다.

카리스 역시 무골인 황가의 피를 타고나 절대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검사 중의 검사였지만, 그날, 시스테인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어린 카리스는 눈앞에 태산이 덮쳐 온다고 생각했다.

그의 검 한 자루로는 막을 수 없는 천재지변이자 재앙이.

그것을 그는 간신히 몸을 틀어 피해, 목숨을 건지는 게 고작이었다.

그날의 일은 지금까지도 악몽으로 이어졌다.

그랬던 악몽의 주체가 지금, 앞에 서 있었다.

“…….”

카리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저를 믿어 달라. 그리고 사과할 기회를 달라.

그날의 일을 말하는 것이겠지. 그가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가, 이내 손짓했다.

―스릉!

그 순간, 검을 뽑은 채 한 걸음 앞으로 나와 있던 검은 옷의 남자들이 일제히 검을 집어넣었다.

사람이 아니라 무슨 동영상 같았다.

일제히 똑같은 동작으로 검을 집어넣는 것도 모자라서, 검집에 검을 집어넣는 소리마저 일사불란했으니까.

리벨은 그와 동시에 숨이 막히는 것 같던 공기가 트이는 걸 느꼈다.

저들이 살기를 거둔 것이다.

“휴.”

리벨이 짧게 한숨을 내뱉었을 때였다.

카리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하는 질문에도 숨김없이 답하려 하겠군. 내 신뢰를 회복하고 싶다면 말이야.”

그의 말에 시스테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럼 묻지.”

카리스가 제자리에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네 말에 따르면, 네가 어머니의 명으로 다시 제국에 돌아와 디란타 대공이 되었을 때. 그때도 너는 마력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런데 왜.”

카리스가 턱을 괸 채 물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마력이 폭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거지?”

줄곧 시스테인을 의심하고 있는 카리스였으니 질문하는 것이 당연했다.

시스테인은 그 말에 짧게 숨을 내뱉었다.

그는 조금 전까지, 제가 가장 하기 힘들어했던 말을 한 셈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기도 했다.

당신에게 신뢰를 얻고 사과할 기회를 얻고자 왔다.

그 말을 꺼내는 데에만 십수 년이 걸렸다.

그 사이에 그들 사이에는 서로가 쌓아 온 오해가 견고한 벽처럼 쌓여, 서로의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다.

이제 벽을 허물고 그 너머로 고개를 내밀 때였다.

“만일 제가 그 사실을 말했다면, 폐하께서는 저를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시스테인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카리스는 곧바로 답했다.

“그야 너를 대공령에 처박아 버렸겠지.”

리벨은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시스테인이 다시 손에 힘을 주는 것을 보았다.

저건 시스테인이 가장 듣기 무서웠던 말일 것이다.

그가 마력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였다면 수도 근처에조차 있지 못했을 거라는 그 말.

“…….”

리벨은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물론 카리스가 시스테인이 상처받을 것을 생각해 말해 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듣기 두려워했던 말을 듣고 있는 시스테인을, 리벨은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야기하지 않았을 거예요, 폐하.”

그래서 입을 열었다.

생존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던 저는 대체 어디 갔는지, 이제는 황제 앞에서 입을 나불거리고 있었다.

내가 간이 부었지! 간 비대증이지! 미쳤지!

하지만 그러면서도 리벨은 카리스에게 천천히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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