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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55)화 (155/167)

155화

전장 한복판과 달리 수도는 어수선해도, 다친 사람이나 망가진 물건은 없었다.

물론 황성은 엉망이었지만 그에 대해서는 이미 조치가 끝난 상태였다.

[얼마 전 황성에 있던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서는, 곧 공식적인 발표가 있을 예정이다.

황성과 제국을 어지럽히려던 자들은 모두 잡혔으며, 황가는 건재하니 염려하지 마라.]

황가에서 공식적인 입장을 내보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수도의 평민들은 대부분의 불안감을 걷어 내고 일상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번에 마물들이 나타난 영지들도 있다면서?”

그리고 당연히 평민들과 상인들이 이곳저곳을 오가게 되면서, 다른 영지의 소문도 퍼지기 시작했다.

“뭐? 마물이면 원래 디란타 고개, 아니 디란타령에만 나타나던 것들 아니었나?”

“맞아. 근데 그것들을 글쎄…….”

그리고 평민들 사이로, ‘전국 각지에서 빠르게 나타나 마물들을 처리하고 사라진’ 황가의 기사들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마물이 나올 줄은 어떻게 알고 기다렸겠어? 설마 마물을…….”

물론 그 소문을 처음엔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다.

너무 기다렸다는 듯이 황가의 기사들이 나타나 영지를 구해 준 게 수상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 소문도 곧 쏙 들어가 버렸다.

“황성에도 마물들이 나타났대!”

사실이 퍼지면서부터였다. 게다가.

“반역자가 필레 공작이었대!”

“뭐? 얼마 전에 황성 앞에 서 계시지 않았나?”

“그게 다 반역의 일환이었다는 거야…….”

그러자 소문은 빠르게 뒤집혔다.

하긴, 황가가 뭐가 아쉬워서 저들 사는 곳까지 박살 내면서 연기를 했겠는가?

“그럼 반역자들이 마물을 어디서 끌고 온 거 아냐?”

“그럼 설마 디란타 대공 전하께서도?”

마물이 디란타령에만 있는 건 유명한 사실이었으니 디란타 대공을 의심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내 아들 친구의 사촌이 황성기사인데, 그분은 이번 반란 진압에 큰 공을 세우셨대.”

“그럼 그 간악한 놈들이 어떻게든 디란타에서 마물을 빼돌린 것이구만!”

평민들은 점점 시끄러워졌다. 그러면서 그들은 황성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럼 폐하께서 그놈들의 계획을 간파하고 기사들을 내보내신 건가?”

“황성을 먼저 지키실 줄 알았는데.”

“그러게나 말이야. 얼마 전에 떴던 그 신문 기사도…….”

마침 슈의 신문 기사 때문에 황가가 자신들의 안전에만 관심이 있다는 인식이 있던 참이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 이후로 그 인식 역시 확 뒤집혔다.

“황성을 물샐틈없이 방비하는 대신 다른 영지에 먼저 기사들을 보내신 거야.”

“이번에 황가 기사님들이 아니었으면 쓸려 나갔을 영지가 한둘이 아니라며?”

“마물이 보통 몬스터가 아니잖어.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래…….”

평민들은 새삼 감탄하며 황성 쪽을 거듭 돌아보았다.

특히 마물에게 습격받았다는 타 영지에 가족이나 친지가 있는 자들은 더욱 황가에 감사했다.

“소문과는 다르신 분이셨던 게야.”

“하긴, 귀족들에게나 불편한 분이셨지 우리 평민들에게 언제 나쁜 일 하신 적이 있었소?”

“이렇게 살 만하게 만들어 준 것도 다 현 황제 폐하의 덕이 아니오?”

그러면서 민심은 점점 황가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카리스와 리엔의 폭군이라는 오명(?)이 벗겨지고 있었다.

*  *  *

그러는 한편, 필레 공작이 일단 잡히자 비밀 살롱에 투입됐던 시즈들은 축배를 들고 있던 귀족들을 끌고 왔다.

당연히 그들은 반역에 가담했던 자들이었다.

“왜 반란하는 사람들 주제에 정장 입고 끌려와?”

리벨은 그 꼴을 보면서 당연히 당황했다. 나인은 침착하게 답했다.

“반역 성공을 기념해 축배를 들다가 잡혀 왔다고 합니다.”

얼씨구?

그런 건 다 끝나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살려 주십쇼!”

“저희는 아무 죄도 없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다며 주장하는 사람들의 정장에는 흙먼지가 묻어나고 있었다.

제국 역사상 가장 고운 자태로 사형당한 사람들이 될 듯했다.

“이건 꿈이야!”

어떤 놈은 끌려가면서 현실 부정을 하기도 했다.

그들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하긴, 내일이면 제 세상인 줄 알았는데 내일이면 땅에 묻히게 생겼으니.”

리벨은 뇌까릴 때였다. 시스테인의 목소리가 불쑥 옆으로 끼어들었다.

“다 잡혀 온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까까까깜짝이야! 리벨은 움찔했다.

이렇게 귀족답지 못한 자태를 뽐낼 때는 옆에 오면 좀…… 좀 난감하다고요!

사실 디란타 대공령에서 밑장 다 깐 것 같지만 어쨌든 그의 앞에서 ‘기자 벨’로 있는 건 아직 어색했다.

귀족가의 영애 리벨로 있어야 하는……데…….

리벨은 슬그머니 시스테인을 살폈다.

그녀의 막말(?)을 다 들었을 텐데도 그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그들은 게이트를 타고 떠나기 전, 카리스가 앉아 있던 테라스에 있었다.

그곳은 반란 세력이 줄줄이 잡혀가는 모습을 보기엔 아주 좋은 장소였다.

“그러……게요. 파악했던 것보다 수가 적네요.”

리벨은 표정 변화가 없는 그를 살피다가 간신히 그의 말을 받았다.

그때였다.

“본관에서 두 분을 보고자 하십니다.”

소리 없이 나타난 건 그림자였다.

리벨은 움찔했지만 시스테인도 나인도 놀라지 않았다.

그가 나타난 기척을 들은 것이 분명했다.

이 귀신 같은 사람들!

“본관 정리는?”

리벨이 그림자를 돌아보며 물었다. 본관에서 온 그림자는 그녀가 이름을 붙여 준 그림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이미 두 분께서 디란타 대공령에 계실 때 끝났습니다.”

빠르기도 하셔라.

그 말에 리벨과 시스테인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시스테인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갈까요?”

리벨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그래도 힘든 일들은 다 끝난 것 같다!

잡혀가는 놈들 보니까 새삼 실감이 났다.

*  *  *

“흐음.”

황성 본관의 알현실. 황좌에는 카리스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밑 계단에는 황태후 리엔이 앉아 있었다.

리벨은 그녀가 굳이 의자를 두고 그곳에 앉은 이유가 뭔가 싶었지만, 알현실에 붙잡혀 온 자들의 얼굴을 보니 알 것도 같았다.

저 해사한 황태후 폐하의 표정을 마주하면…… 누구라도 공포에 떨게 될 터였다.

특히 저렇게 반역죄로 잡혀 온 입장에서는 더더욱.

“길게 말할 필요는 없겠지.”

그때 카리스가 입을 열었다.

그는 잡혀 온 자들의 면면을 보면서 지루한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알현실로 들어오는 시스테인과 리벨을 보면서 간단히 손을 들어 인사해 보였다.

“왔구나, 내 아가들.”

반면 리엔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직접 반겼다.

“어서 와. 정말 기다렸어.”

그렇게 말하면서 리엔은 시스테인은 물론, 리벨까지 꼬옥 끌어안았다.

리벨은 멈칫했다. 당연히 아들인 시스테인만 끌어안아 줄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갑작스레 느끼게 된 온기도 나쁘지 않았다.

리벨이 볼을 긁적일 때였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아가.”

그 아가는 시스테인을 뜻하는 것 같기도, 리벨을 뜻하는 것 같기도 했다.

리엔이 두 사람에게 손짓했다.

“이리 온. 재미있는 구경이 될 테니.”

그러면서 밝게 웃는 얼굴은 마치 새해 구경을 간 사람의 표정처럼 해맑았다.

저기, 지금 앞에 모가지가 달랑달랑한 사람들이 있는데요?

재미있는 구경이 혹시 저 사람들 모가지로 골프 치는 거?

살벌한 상상이 떠올랐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뛰어나갈 수도 없으니, 리벨은 곱게 리엔을 따라갔다.

그리고 반대편 기둥 뒤에서 카메라를 들고 진을 치고 있는 동종 업계 종사자들을 발견했다.

“기자들도 부르셨어요?”

보통 이런 모습은 기자들한테 기사 내게 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지 않나?

하지만 기자들이 기사를 내는 것만큼 투명하고 빠르게 소식이 전달되는 방법도 없긴 했다.

생각에 잠겨 있는 리벨에게 리엔이 아주 작게 속삭였다.

“왜, 네가 직접 기사를 올리고 싶―”

“아아아닙니다!”

리벨은 재빨리 부정했다. 그러자 리엔의 얼굴이 해사해졌다.

“우리 아가, 전장에서 돌아오더니 제법 용기 있어졌구나.”

내 말을 다 막고.

리벨은 그 말에 반역자들 무리를 쳐다보았다.

저 혹시 저기로 보내지는 건가요?

―톡톡.

하지만 리엔은 그저 어깨만 두드려 주고 지나갈 뿐이었다. 리벨이 숨을 돌린 순간이었다.

리엔이 다시 황좌 밑 계단에 앉는 동안, 리벨과 시스테인을 위한 의자가 준비되었다.

―탁.

시스테인이 정리해 준 자리에 앉고 보니, 반역자들의 얼굴이 잘 보였다.

그중엔 롤란드 디엘렌도 있었다.

쯔쯔.

전부터 눈치는 더럽게 없더라니 줄을 타도 어떻게 저길 타냐?

“할 말은?”

그때 카리스가 물었다.

그러자 모여 있던 반역자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이구동성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합니다, 폐하!”

“저자가 영지를 내어 주지 않으면 영지 주변의 상단을 압박하겠다고……!”

턱짓으로 필레 공작을 가리키는 자도 있었다.

그자에게 카리스의 시선이 꽂혔다.

“변명 말고 다른 말을 듣고자 하는 건데.”

“하지만 폐하, 정말 억울하옵니다!”

귀족 하나가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리벨이 감탄했다. 이야, 저 정도면 연기력만큼은 만점이었다.

목숨이 걸려 있어서 그런지 진정성이 느껴지는 연기였다.

하지만 카리스는 당연히 까딱도 하지 않았다.

“요컨대 압박을 받아서 어쩔 수 없이 길을 내준 것뿐이다?”

귀족은 그가 말을 들어 주자, 희망이 생겼다고 생각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억울하옵니다! 이자들과 저는 다릅니다!”

그 말에 카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은, 네 영지로 몬스터가 가는 길만 내어 주었을 뿐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말인가?”

“예!”

귀족은 당당하게 외쳤다. 리벨은 이마를 짚었다.

거기서 예를 당당하게 외치면 어떡해? 반역도 머리가 좋아야 하는 거구나…….

아니나 다를까, 카리스의 얼굴에 짙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길을 내어 달라는 협박을 받았을 때, 이미 마물이 제국 곳곳에 나타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거로군.”

“그, 그…….”

그 말에 귀족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그제야 제 손으로 무덤을 팠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도 황가에 고하지 않았다는 거지.”

카리스의 말에 귀족은 얼굴이 하얘졌다가,

―털썩!

이내 혼절하고 말았다. 카리스는 그를 일별하고는 손짓했다.

“싹 다 매달아.”

그때 황태후 리엔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칼. 벌에는 차등을 두는 것이 어떻겠니? 저자의 말대로 잘못의 크기가 다른데.”

그녀의 말에 귀족들의 얼굴에 다시 희망이 차올랐다.

카리스는 그 말에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하지만 흥미롭다는 얼굴이었다.

“……!”

리벨은 감이 왔다.

황태후 폐하께서 반역자들에게 자비?

게다가 황제 폐하의 흥미롭다는 표정까지?

이건……

이건……!

저놈들은 곱게는 못 죽을 것이다!

리벨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리엔의 화사한 미소가 알현실을 밝혔다.

그녀의 손끝이 혼절한 귀족을 가리켰다.

“일단 저자는…….”

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리엔의 손끝을 따라갔다.

“필레 공작 바로 앞 순서에 처형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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