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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뜸 착각당했다 괴물 천재배우로-30화 (30/201)

거장 (2)

예? 사천만 원이요? 강우진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삼천 만 원도 약간 놀랐는데, 난데없이 천만 원이 훅 올랐다. 뭔가 또 일이 멋대로 굴러간다. 왜 그러세요, 갑자기? 강우진은 대놓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최성건 대표에게 우진은 거대한 괴물 배우다.

자신의 가치를 물어보는 건 최성건 대표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 뿐이었다. 강우진은 여전히 마음속 충격이 가시지 않았지만,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그리고 최성건의 답을 낮게 되풀이했다.

“사천 만 원입니까.”

“네. 가능합니다, 우진씨.”

강우진은 현실이 약간 무감각해졌다. 그렇잖은가? 그가 디자인회사에 다닐 때만 해도 천만 원은 일 년을 꼬박 모아도 될까 말까 한 돈이었다. 그게 몇 초 만에 왔다 갔다 한다. 당황스럽다. 당황스러운데 우진은 일단, 억지로 냉정을 붙잡는다.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저 꽁지머리 아저씨가 멋대로 착각한 거고. 난 무죄지.’

이제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야 했다. 매우 의연하게. 다만, 말이 길어질 필요는 없다. 말실수는 컨셉의 적이다. 자칫 대사가 허술하면 잔챙이로 보일 가능성 있었다.

‘순간, 순간이 살얼음판이네.’

아무도 몰랐지만 우진은 혼자서 치열한 전쟁을 펼치는 중이었고, 나름 세련되면서도 냉정한 대사를 떠올렸다.

“왜 그 금액이 책정됐는지 궁금합니다.”

설명 내놔. 아니나 다를까 최성건 대표가 진중하니 양손을 모았다.

“···사실, 요즘은 계약금을 피하는 추셉니다. 나간다 하는 탑들은 오히려 계약금을 안 받고, 집이나 기타 등등을 받죠.”

“예.”

“영화 또는 드라마 두어 개 터져서 급부상한 라이징 신인 배우도 비슷합니다. 걔들 연습생 포함 계약 기간 7년 털면 이적할 때 계약금보다 외제차 하나 받아요.”

“네, 대충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이적’입니다. 계약금은 대부분 아티스트가 이적할 때 발생합니다. 배우든 아이돌이든 뭐든 간에 첫 계약 땐 계약금이 잘 없죠. 무조건 연습생부터 시작하니까. 애가 좀 괜찮다 싶으면 용돈 식으로 몇십 쥐여주는 정도?”

곧, 최성건 대표가 덤덤한 강우진을 가리켰다.

“근데 우진씨는 좀 별납니다. 확실히 쌩무명에 해봐야 이제 두 작품이고 하나는 단편 영화. 그러나 이런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본인도 잘 알고 계시죠?”

“계속 말씀하세요.”

“다만, 냉정하게 말씀드리면 대중들에겐 우진씨는 아직 일반인입니다. 연예계서 돈은 결국 인지도의 척도에서 나옵니다. 만약, 우진씨를 모르는 엔터가 이 계약금을 보면 정신 나갔냐고 할 겁니다. 인지도가 제로니까. 반대로 대본리딩에서 우진씨를 본 엔터들은 기꺼이 투자하죠. 미래만 보고.”

“······”

“결국, 여긴 인지돕니다. 엔터나 대중들이나.”

최성건 대표가 잠시 멈췄다가.

“우진씨 연기 미쳤습니다. 간만에 배우의 연기보고 감동했어요.”

설명을 이었다.

“연출자 작가 홀려서 ‘프로파일러 한량’에 합류한 것도 대단합니다. 하지만 연예계란 곳은 언제나 미래가 불투명합니다. ‘프로파일러 한량’이 망한다면 우진씨의 무명은 길어집니다. ‘흥신소’는 단편이라 사실상 대중들이 잘 안 보고.”

틀린 소린 아니었다. 작품의 미래 힌트를 아는 건 강우진뿐이니까.

“그렇게 되면 저나, 우진씨에게 접근한 엔터들은 일반인에게 계약금 사천만을 준거죠. 그런 불확실성 때문에 우진씨의 연기력은 별개로, 다른 엔터들은 사, 오천만 이상을 주진 않을 겁니다. 타 엔터들은 심지어 윗선 승인도 따야 하고.”

아, 반려는 아주 엿같지. 강우진이 속으로 공감하고 있을 때, 최성건 대표가 돌연 챙겨온 투명 파일을 펼쳤다. 계약서였다.

“근데 사실 계약금은 이 상황에 큰 의미가 없어요. 그저 성의 또는 우진씨의 연기를 높이 사는 인사치레. 아시겠지만 여기서 핵심은.”

곧, 최성건 대표가 계약서 중 한 부분을 검지로 찍었다.

“정산 비율과 계약 기간입니다.”

그렇구나. 강우진이 또 한 번 새로운 것을 깨우쳤다. 그리고 허세 한 스푼이 필요할 듯했다. 뭐, 신동춘 감독님한테 들은 말들을 좀 쓰지 뭐. 우진이 목소리를 깔았다.

“저에겐 돈과 시간과 교육을 들일 필요가 없죠.”

비죽 웃던 최성건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해요. 그건 어디 엔터든 큰 메리트기도 합니다. 아마 지금의 우진씨는 어느 엔터에서 조건을 들어도 성에 안 찰 겁니다. 하지만 점점 우진씨의 몸집이 불어날수록 소속사는 필요하죠.”

“예.”

“그래서 생각해 봤어요. 계약금 플러스 우진씨가 달콤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 아마 맛보기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시장의 동태파악?”

멋대로 답을 내린 최성건 대표가 펼쳐진 계약서를 우진에게 밀었고.

“연습생 거친 신인배우 기준 정산 비율은 5:5에서 6:4정도. 하지만 우진씨는 완성된 상탭니다. 즉, 소속사는 돈 한 푼 안 들여도 된다는 소리.”

목소리에 힘을 넣었다.

“정산 비율 9:1, 물론 저희가 1입니다. 그리고 계약 기간 1년.”

뭐지. 이 파격적인 조건은. 이때 최성건이 의미심장하게 말을 이었다.

“한 마디로 저희 bw엔터가 어떤지 맛만 먼저 보시라는 얘깁니다. 연장할지 말지는 1년 뒤 결정하시죠. 어때요?”

되물음에 강우진이 계약서에 시선을 내리며 낮게 답했다.

“계약서, 설명 부탁합니다.”

같은 시각, 한 드라마 세트장.

여러 섹션이 나눠진 세트장은 공사 마무리가 한 창이었다. 여기에 턱수염 송만우 PD가 보였다. 한창 세트를 돌며 여러 가지 체크를 하는 모양.

“여기 소리나. 안 들려요? 끽끽거리잖아?”

그때.

-♬♪

그의 핸드폰이 벨소리를 뱉었다. 발신자를 확인한 송만우 PD는 대수롭지 않게 전화를 받았고.

“어- 최실장님. 리딩날 본다는 배우는 잘 확인했어?”

남자 목소리가 핸드폰을 통해 들렸다. 대형 영화사 ‘박스무비’의 최실장이란 사람이었다.

“예예. 잘 봤습니다. PD님, 그- 있잖습니까? 대본리딩장 뒤집은 친구. 강우진. 혹시 그 친구 번호 좀 알려주실 수 없습니까?”

“번호?”

“예. 사실 리딩날에 직접 명함도 주긴 했는데 한 일주일 연락이 없어서요. 영화사 이름을 봤을 텐데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알만하다는 듯 턱수염 송만우 PD가 픽 웃었다.

“뭐, 그 친구가 이름값 보고 움직이진 않지. 워낙 딴딴한 친구라. 근데 내가 번호를 막 알려주긴 좀 힘들지 않겠어요?”

“좀 급합니다.”

“흠, 절대 거기 박스무비 영화사를 무시하는 건 아닐거고- 사정이 있지 싶은데.”

말끝을 흐리던 송만우 PD의 머리가 급작스레 회전했다.

‘박스무비에서 강우진을 컨택했다라- 거기 지금 그 감독이랑 작업 시작했을 텐데?’

송만우 PD는 최근에 봤던 기사 하나가 떠올랐다. 국내 거장 감독 중 한 명이 박스무비에서 제작을 시작했다는. 시기를 좀 섞어보면 답은 꽤 간단했다.

‘강우진을 낚으려는 건가?’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다.

‘만약에 그 감독 작품에까지 강우진이 합류하게 되면···이건 뭐 필모가 어마무시해지는 건데.’

뭔가 머릿속 그림을 그리던 송만우 PD가 돌연 비죽 웃었다.

“그렇게 급하면 내가 우진씨한테 물어봐 줘요?”

몇십 분 뒤. 다시 bw엔터 대표실.

마주 앉은 강우진과 최성건 대표. 꽁지 머리 최성건 대표는 계약서를 꼼꼼히 우진에게 설명하기 바빴다. 퍽 열정적이다. 강우진은 설명을 들으면서도 최성건 대표를 티 안 나게 힐끔했다.

‘뭐가 됐든 이 상황은 여러 오해가 포함됐겠지? 홍혜연님의 입김도 작용했을 거고.’

분명, 그녀 역시 힘을 보탰을 터였다. 그렇다는 건 딴 엔터에 가면 절대 이 정도의 조건을 받을 수 없다는 것. 가만 생각해보면 여기 bw엔터만큼 조건이 좋을 곳이 없긴 했다. 최소 강우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경험’이 필요한데 비율 9:1과 1년 계약?

이 맛보기 계약은 우진에게 안성맞춤.

‘뭐, 나도 아는 사람이 있는 게 좋긴 해. 그게 무려 홍혜연님인 건 보너스고.’

우진에겐 연예계는 어색했다. 같은 팀이 될 소속사마저 낯설다면 피곤은 배가 된다. 어차피 어느 쪽이든 컨셉질은 필요하잖아? 그럼 좀 마음이 편한 곳이 낫지 않나?

강우진은 최성건 대표 몰래 혼자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약 10분쯤. 열정적이었던 최성건 대표의 브리핑이 끝났고, 그가 건너편 강우진과 눈을 맞추며 물었다.

“어떠십니까? 확실히 말씀드릴 건 하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일단, 여기서 여유 좀 때려주고.

“······”

무표정인 강우진이 대화의 공백을 만들었다. 그의 입이 열린 것은 1분 뒤였다.

“대표님, 조건 2개 정도 추가할 수 있습니까?”

“···들어볼게요.”

“하나는 제 과거에 관해 묻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작품은 제가 원하는 것만 하겠다는 겁니다.”

“과거···에 관한 건. 예, 혜연이한테 대충은 들었어요. 무슨 사정이 있을 거라고. 작품 관련은 아예 권유도 말라는 얘깁니까?”

“아니요. 그저 작품 결정은 제가 하고 싶다는 겁니다.”

즉, 작품의 결정권을 가지겠다는 소리였다. 최성건은 괜찮다 싶었다. 작품을 안 하겠다면 문제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뭐든 상관없지. 최성건 대표가 미소짓는다.

“둘 다 가능해요. 계약서에 추가할 수도 있고.”

대답을 듣자마자 강우진이 손을 내밀었다. 움직임에도 근엄함은 필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순간, 약간 눈 커진 최성건 대표가 우진과 악수하면서도 되물었고.

“그 말은 저와 계약하겠다는?”

“맞습니다.”

금세 꽁지머리 최성건 대표의 입이 귀에 걸렸다.

“하하하! 그래요, 그래. 어이구 제가 너무 크게 웃었네요. 간만에 쾌감이 터져가지고.”

여기서부터 최성건 대표는 재빨리 움직였다. 금세 수정된 정식 계약서를 우진에게 내밀었고.

-스윽.

“잘 부탁합니다, 우리 bw엔터 2호 배우님.”

강우진이 사인했다. 소속사가 생긴 순간이었다. 동시에 우진이 챙겨온 명함을 꺼내면서 궁금한 것을 뜬금 물었다.

“리딩날 받은 명함입니다만. 엔터가 아니라 영화산데 제게 꼭 연락을 달라고 해서요.”

명함을 받은 최성건의 웃음이 짙어졌다.

“하하, 대단한데요? 계약과 동시에 일이 들어올 줄은. 보자보자- 어디 영화사냐.”

순간, 꽁지머리 최성건의 눈이 확장됐다.

‘박스무비??’

박스무비 영화사는 대형이었으니까. 최성건이 빠르게 명함을 뒤집었다. 명함의 주인 이름이 보였다.

‘최도민 실장. 제작 PD로 박스무비에선 실세지. 근데 얘도 대본리딩때 왔었나?’

생각하던 그의 머릿속에 순간 전구가 띵 켜졌다.

“아, 우현구 감독. 알죠? 국내 거장 감독 중 한 명인. 이 양반이 차기작을 박스무비랑 해요. 그리고 우현구 감독이랑 최도민 실장이 친하고. 아! 그럼···최실장 얘가 우현구 감독 영화에 우진씨를 밀어볼 참인가?”

잠시간 생각하던 최성건 대표가 무표정인 강우진과 눈을 맞췄다.

“우진씨. 이 최실장이란 사람은 일단 만나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니, 무조건 만나보죠.”

이 순간.

-우우웅, 우우우웅.

우진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였고 발신자를 보니 송만우 PD였다. 최성건 대표도 봤는지 받으라는 손짓을 했다. 곧, 우진이 핸드폰을 귀에 붙였고.

“예, PD님.”

핸드폰 너머로 송만우 PD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진씨. 박스무비 명함 받았다면서요?”

“예. 근데 그걸 어찌.”

“최실장이 나한테 전화 왔었어요. 우진씨, 번호를 알려달라 그러더라고? 그래서 안 된다고 했고. 대신 내가 물어본다고 했어요.”

타이밍 봐라? 안 그래도 지금 그 얘길 하고 있었다. 동시에 핸드폰 너머 송만우 PD가 읊조렸다.

“우진씨, 뭐 알아서 할 테지만. 그 영화사는 한 번 만나는 봐요. 나쁘지는 않을 거야, 큰 곳이고.”

“예, PD님. 제가 연락하겠습니다.”

“응. 그래요, 또 연락할게.”

-뚝.

전화를 끊자마자 강우진이 통화 내용을 최성건에게 대충 전달했고, 이젠 우진의 매니저인 최성건이 빠르게 자신의 핸드폰을 집었다.

“최실장 지금 전화해볼게요.”

이어 상대방과 통화하던 최성건이.

“우리 우진씨한테 명함 주셨다면서요? 아 자세한 건 만나서 말씀드릴게요, 하하. 예예.”

약간 놀랐다.

“어? 지금 바로 보자고요??”

두 시간 뒤. 점심 무렵, 박스무비 영화사.

박스무비 영화사는 논현동 한 빌딩의 7층부터 9층까지를 사용하고 있었고, 각 층의 복도나 사무실 벽면엔 수많은 영화 포스터가 즐비하게 걸렸다.

모두 박스무비가 제작한 영화들이었다.

강우진과 최성건은 8층의 중형 회의실에서 찾을 수 있었다. ㄷ자 책상 중간쯤 앉은 둘. 우진은 몰래 눈알을 굴려, 회의실 벽에 붙은 영화 포스터를 구경하는 중이었다.

이쯤.

“늦네.”

꽁지머리 최성건이 검지로 책상을 두드리며 약간 짜증 냈다. 벌써 30분째 만나기로 한 최도민 실장이 도착하지 않았으니까.

“우진씨랑 연락 안 된 거로 찡찡대는 거야 뭐야.”

30분은 선을 넘었다. 필시 의도가 숨겨진 늦음이었다. 어쨌든 최성건이 테 없는 안경을 벗으며 작게 한숨을 뱉었다.

이때.

-끼익.

회의실의 유리문이 열리며 키 작은 남자가 입장했다. 최도민 실장이었고.

“하하하, 아이고 죄송해요. 오다가 갑자기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겨가지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강우진이 속으로 치를 떨었다.

‘아- 저 멘트. 옘병, 디자인회사에서 자주 들었던 거다. PTSD 오지네.’

그렇게 짧은 인사가 오간 뒤 최도민 실장이 무표정인 우진을 보며 미소짓는다.

“드디어 이렇게 보내요 우진씨? 나 엄청 기다렸어요.”

“촬영이 있었습니다.”

“아아- 그랬어? 그래도 너무 오래 걸렸어요. 하하, 일주일 넘게 연락이 없어서 좀 서운할 뻔했네. 이제 필모 쌓기 시작한 배우가 날 무시하나? 싶었다니까?”

기분 좋게 웃는 것 같지만, 강우진은 최도민 실장을 보며 삽시간에 직감했다. 저 아저씨 지금 삐졌네. 말투에 서운이 섞였으니까.

이때 최도민 실장이 챙겨온 종이뭉치를 책상에 올린다.

“감독님한테 싹- 말해놨는데, 하도 우진씨 연락이 없어서 제가 혼날 뻔했습니다. 아아, 탓을 하는 건 아니구요.”

손을 작게 흔드는 최도민 실장에게 꽁지머리 최성건이 물었다.

“죄송한데 실장님, 지금 말한 감독님이라는 게 혹시 우현구 감독님이 맞습니까?”

바로 어깨가 스윽 올라가는 최도민 실장.

“예, 맞습니다. 우현구 감독님. 딱히 숨길 것도 없죠. 이미 기사도 돌았고. 음, 우진씨 오디션 보셔야겠어요. 근데 말이 오디션이지, 제가 봤던 우진씨 연기면 전부 압살하겠다 싶어요. 합류하는 게 어렵진 않겠다는 말입니다.”

입꼬리를 올린 최도민 실장이 올려둔 종이뭉치를 앞으로 스윽 밀었고.

“이게 시나리옵니다, 한 번 훑어봐요.”

무심히 시나리오를 집은 우진은 일단, 우현구 감독의 시나리오 표지를 확인했다. 그리곤 별수롭지 않게 첫 장을 넘겼다. 와중 최성건은 뇌 시동을 켠 상태였다.

‘저 최도민 실장이 대놓고 밀어주는 형국인데? ‘프로파일러 한량’에서 바로 거장 우현구 감독 작품에 합류하면 우진씨 파급력이···’

최도민 실장이 자신감 넘치는 설명을 뱉은 건 이때였다.

“당연하겠지만 자금력은 뭐 말도 못 합니다. 우현구 감독님 차기작인데 투자자들이 돈 싸 들고 줄 서는 형태라.”

그러거나 말거나 강우진은 편하게 시나리오 장을 넘겨댄다. 언뜻 안 보고 대충 넘기는 듯 보일 지경. 그런 그를 옆에서 빤-히 보던 최성건이 턱을 쓸었고.

‘최도민 실장 병신인 건 원래도 그랬어, 일은 일이지. 저 병신 때문에 이 미친 기회를 날리는 건 말이 안 돼. 저리 밀어주면 빨아줘야지.’

자신의 역할을 확고히 다짐했다. 이쯤, 강우진은 시니컬한 표정으로 검지를 살짝 들었고, 그 검지는 시나리오 옆으로 움직인다. 물론, 아무도 이를 눈치채진 못했다.

그렇게 멈칫.

아주 찰나의 멈칫거림을 마친 강우진이 낮은 침음을 뱉었고.

“음-”

옆에 앉은 최성건이 우진에게 붙어 귓속말했다.

“우진씨. 이건 때려죽여도 승낙해야 할 기횝니다. 솔직히, 이런 상황 신인이나 무명한텐 절대 안 와요.”

“그렇습니까?”

“그럼요, 무려 우현구 감독 작품 합류잖아요? 일단은 받아먹죠.”

이어진 강우진의 대답은 매우 건조했다.

“예, 거절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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