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3)
“응, 알았어요. 바로 거절하는 거로······음? 잠깐만.”
강우진의 대답에 멈칫한 최성건이 귓속말로 되물었다.
“우진씨 방금 거절이라고 했어요? 내가 잘못 들은 거지?”
내가 들은 게 맞나? 싶어서였다. 또는 현실부정. 그래, 그렇지? 잘 못 들었을 거야. 하지만 강우진은 덤덤했다. 아니요? 제대로 들으셨는데. 우진은 강조하듯 낮게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거절해주세요.”
“···!!”
순간 테 없는 안경을 훅 벗은 최성건의 두 눈이 디립다 커진다. 너무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으니까. 하지만 현재 강우진은 심히 냉정해 보인다. 특히나 눈빛이 흔들림이 없다. 진심. 저건 진심이었다.
“아, 아니 그게 무슨···”
최성건은 우진을 보며 살짝 멍때렸다. 그러다 불현듯 정신을 차렸다. 별종, 그래 홍혜연이 그랬었다. 강우진은 너무도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라고. 최성건은 일단 건너편 최도민 실장에게 미소를 보인 뒤.
“하하, 실장님 잠시만.”
옆자리 우진에게 바싹 붙어 다시금 속삭였다.
“거절? 아니 뭐 시나리오 몇 장 본 게 다잖아요? 근데 무슨 거절이야?”
“오디션은 안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아니지. 아니야, 우진씨 일단 침착해봐요.”
“침착합니다.”
“더 침착하자고, 더더. 하- 진심입니까? 진짜 이 기회를 뻥 차겠다고?? 저렇게 최도민 실장이 밀어주는데?”
필사적으로 말리는 최성건이었지만, 포커페이스가 진한 강우진의 컨셉은 변함이 없었다.
“예. 뻥 찰까 합니다.”
틈이 없다. 설득될 얼굴이 아니다.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없다. 어찌나 심지가 딴딴한지 우진을 보는 최성건이 순간 아찔함을 느꼈다. 하지만 최성건은 일단 최선을 다해 차분함을 유지했다. 뭐가 됐든 여긴 박스무비 본진이었다.
당장은 좋은 말로 관계를 유지하는 게 맞았다.
따라서 최성건은.
“아- 최 실장님, 하하.”
시선을 우진에서 건너편 최도민 실장에게 돌렸다. 억지웃음은 보너스.
“예예, 우진씨가 시나리오가 아주 좋다네요.”
“그래요? 하하, 당연하지 무려 우현구 감독님 건데. 근데 그 말을 왜 대표님이 해요?”
동시에 최성건이 우진의 옆구리를 티 안 나게 찔렀다. 아욱, 뭔데. 아 장단 맞추라는 건가? 얼추 정답이었다. 거절이고 뭐고 일단은 이미지를 챙기라는 사인. 곧, 강우진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보고 싶은 시나리오입니다.”
“그렇지, 하하하. 근데 시나리오를 바로 드리긴 좀 그래요. 오디션 볼 사람이 작품 먼저 알고 오면 너무 밀어주는 인상을 줄 수 있으니까.”
여기서 최성건이 끼었고.
“그렇죠, 당연하죠. 혜택 줬다가 말 새면 골치 아파지니까.”
그가 딴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우현구 감독님 역시 대단하십니다. 쉬시는 걸 잘 못 봤어요, 이번에도 금방 차기작 들어가시네?”
“감독님 성격이 그렇잖아요? 원래 쉬는 걸 잘 못 하셔. 최대표님도 인사 몇 번 하셨죠? 홍혜연씨 때문에.”
“예, 물론이죠.”
솔직히 이 미팅에선 별 필요 없는 잡소리들이었다. 그저 시간을 끄는 용도.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바로 나가는 건 이상하니까. 강우진이 bw엔터 소속이 된 것도 포함됐다. 어쨌든 이래저래 약 30분간 잡소리를 잇던 최성곤이.
“아, 예예. 그럼 어- 스케줄 맞춰보고 최대한 빨리 연락드리겠습니다.”
자리서 스윽 일어났다. 당연히 강우진도 따랐다. 최도민 실장도 마찬가지.
“나 또 기다려?”
“아아 ‘한량’ 쪽이나 작품 준비하는 것들 때문에 그렇습니다, 스케줄이 쪽나면 좀 거시기하니까. 제가 연락 드릴 거니까 걱정마십쇼.”
“빨리 연락 줘요? 나 진짜 감독님한테 혼나.”
“물론입니다, 그럼 고생하셨습니다.”
최성건과 강우진이 적당히 인사 후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나온 복도. 다음이 엘리베이터. 누른 것은 지하 1층.
이때까지도 둘은.
“······”
“······”
대화가 없다. 그저 약간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게 다였다. 다만.
-텅!
승합차에 타자마자 조수석에 앉은 우진에게 최성건이 달려들었다. 여긴 안전하다고 판단한 듯.
“우진씨! 대체 왜?!! 왜 거절하겠다는 겁니까? 이유는 있을 거잖아??”
어우 깜짝이야. 이유? 있지. 강우진은 바싹 붙은 최성건 때문에 얼굴을 살짝 뒤로 뺐다. 그러면서 속으로 답했다.
‘그럼 어째? 작품이 F급이라는데.’
사실, 강우진은 아까 회의실에서 몰래 아공간에 다녀왔었다. 그리고 확인했다.
-[3/시나리오(제목: 협의), F급]
-[*완성도가 매우 높은 영화 시나리오입니다. 100% 리딩이 가능합니다.]
거장 우현구 감독의 차기작이 F급임을. 그것을 보자마자 강우진은 탄식했다. 아니, F급? E급도 아니고 F급?? 같은 F급이라면 가장 처음 리딩했던 쪽대본이었다. 등급 중에선 최하위. 당연히 우진은 이걸 해야 되나 싶었다.
‘E급도 아니고 F급이면 할 이유가 없지 않냐? 근데 이 영화는 대체 어떻게 망하길래 F지?’
관객수 폭망? 아니면 다른 이유? 영화가 망하는 건 너무도 무궁무진했다. 아예 제작조차 못 하고 무너지는 작품도 수두룩하니까. 다만, 우진은 좀 의아하긴 했다.
‘근데 막 엄청 어마무시한 거장 감독이라매? 근데 F급으로 망하는 거여? 왜지.’
하지만 생각해봐야 의미 없었다. 망하는 이유야 어찌 됐든 강우진에게 ‘협의’라는 영화는 메리트가 없었다. 남들 눈에야 긴 시간 연기를 고독히 독학한 강우진이지만, 진짜 우진은 이제 배우 된 지 한 달 차.
이왕이면 잘 되는 작품에 들어가는 게 낫잖아?
‘뭐, 어디서 보니까 망해도 작품성 좋으면 오케이라곤 하던데, 그런 건 좀 뜬 다음에 챙겨도 되겠지.’
뒤로 강우진은 고민했다. 운전석 두 눈을 디립다 크게 뜬 최성건에게, ‘그 영화 F급이거든요? 모르셨죠?’ 따위로 답하진 못하니까. 그러다 돌연 우진은 어디서나 쓰는 흔한 단어를 떠올렸다. 적당한 허세와 묵직함이 포함된.
‘그래, 그게 치트키긴 하지.’
과거 송만우 PD에게도 써먹었던 단어였다.
“그냥 느낌이랄지. 감이 좀 안 좋았습니다.”
일말의 표정 변화 없이 의연하게 답하는 강우진. 뻔뻔함의 극치가 여기 있었다. 뭐가 됐든 최성건이 단번에 알아들었다. 다만, 이해는 더욱 수렁에 빠졌다.
“···뭐요? 느낌? 감? 지금 감이라고 했어요?”
“네.”
“고, 고작 감이 안 좋다고 우현구 감독을 깠다고?”
“깐 게 아니라 거절을.”
“그게 그건데?”
되물은 최성건이 뜬끔 우진의 얼굴을 빤히 본다. 눈엔 약간의 걱정이 섞였다.
“우진씨, 지금 어디 아픈 거 아니죠? 두통이 심하다거나. 어?”
“멀쩡합니다만.”
“근데 무슨 감을 운운하고 있어?”
“사실입니다.”
“사실이면 더 문제고.”
와중 강우진은 컨셉에 충실했다. 이쯤에 쎈척을 좀 함유하고.
“하지만 오디션 건은 거절 부탁드립니다.”
“······”
말문이 막힌 최성건은 하마터면 덤덤한 강우진에게 욕을 뱉을 뻔했다. 정말 신박한 미친놈이었으니까.
‘이거는 배짱 배포 그런 수준이 아니잖아?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대체.’
홍혜연도 보통은 넘지만, 강우진은 그녀를 초월했다.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아니, 감?? 뭐 이딴 괴짜가 다 있지?
꽁지머리 최성건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종잡을 수 없는 수준이 아니라···이건 그냥 미친 또라인데??!’
앞으로 이 또라이를 옆에서 보필해야 했으니까.
이른 오후쯤.
박스무비 영화사에서 bw엔터에 도착한 후, 소속사를 나온 강우진은 휘적휘적 거리를 걸었다. 최성건이 집까지 태워준다는 건 거절한 그였다. 컨셉질을 시작한 이후 우진에겐 개인 시간이 매우 소중했으니까.
“겁나 피곤하네.”
혼잣말을 뱉은 강우진이 멈칫했다. 그리고 어이없게 웃었다. 혼자 있을 때도 근엄한 목소리를 뱉었으니까.
‘나 미친놈이냐? 왜 혼자 있을 때도 무게 잡고 난리? 아, 그러고 보니 나 웃는 것도 오랜만이네.’
강우진은 자책하듯 자신의 목 쪽 성대를 찰싹찰싹 때렸다. 지나가는 사람이 이상하게 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진은 지하철 계단을 내려갔다. 수많은 사람이 보였다.
여기서 새삼 신기함을 느낀 강우진.
‘이 사람들이 날 알아보는 날이 진짜 오는 거지?’
소시민인 그에게 무려 소속사가 생겼다. 심지어 4000만 원이라는 거금과 좋은 조건을 쾌척하며 자신을 모셨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흥신소’를 찍었고, ‘프로파일러 한량’ 촬영을 눈앞에 두고 있다.
‘뭔 거장 감독이 엮인 대형 영화사랑 미팅도 했지.’
계속해서 일은 커지는 데다 착각 포함 여러 눈덩이가 추가되고 돌돌 굴러간다. 어쩌면 부담을 느낄 상황이기도 하나, 이 모든 일의 시초인 강우진은 의외로 평온했다.
‘너무 현실 같지 않아서 그런가.’
이때였다.
-우우웅, 우우우웅.
청바지 뒷주머니에 껴진 우진의 핸드폰이 긴 진동을 뱉었다. 발신자를 보니 탑여배우 홍혜연이었다. 여기서 다시금 픽 웃는 강우진.
“어쩌다 홍혜연님이 친구처럼 전화해주는 인생이 됐냐?”
그런 그가 큼큼거리며 냉정함을 되찾았다.
“네.”
핸드폰 너머로 홍혜연의 웃음이 들렸다.
“사인했다면서요. 우리랑 하기로 했다는 거 들었어요.”
대표 아저씨 빠르네. 강우진이 어깨를 벽에 기대며 답했다.
“했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나한테 잘 부탁할 건 뭐람? 뭐, 나도 잘 부탁해요. 이제 같은 식구니까. 근데 이건 그냥 내 궁금증인데, 우리 회사 선택한 가장 큰 이유가 뭐예요?”
이유? 강우진은 잠시 생각했다. 근데 뭔가 핵심적인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잔잔한 여러 가지가 섞인 판단이었으니까. 조건이나 계약금 얘긴 너무 속물처럼 보이고. 쿨한 컨셉엔 안 어울렸다.
‘여기선 그냥 홍혜연님으로 둘러댈까? 이유 중에 그것도 있긴 했으니까.’
곧, 강우진이 건조하게 말했고.
“그냥 이래저래. 홍혜연씨도 계시니까요.”
“······”
핸드폰 반대편 홍혜연이 잠시 침묵했다. 그녀의 답이 들린 건 몇 초 뒤였다.
“츤데레라는 소리 자주 듣죠?”
한편, 이 시각 강우진이 bw엔터와 계약했다는 사실은 홍혜연만 들은 게 아니었다. 최성건이 우진과 관련된 곳에 발 빠르게 연락을 돌렸으니까.
‘프로파일러 한량’의 송만우 PD나.
“bw엔터라- 홍스타가 그리 신경쓰더만. 뭐, 나쁘진 않지. 최성건 대표가 그 강우진을 어떻게 컨트롤할지가 핵심이겠고.”
당연히 ‘흥신소’의 신동춘 감독에게도.
“오- bw엔터? 최 대표 인맥 좋지, 영향력도 쓸만하고. 근데 우진씨는 계약금을 받았을라나?”
그런 신동춘 감독은 현재 편집 기사 둘이 있는 제작사 편집실에 있었다. ‘흥신소’의 후반 작업인 편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참이었으니까.
눈에 힘이 들어간 것이 신동춘 감독의 전투력이 상당하다.
“자, 그럼 시작합시다! 우리 이거 무조건 ‘미장센 단편 영화제’ 본선 올려야 돼요, 컷들이 기가 막히니까 무조건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든 우진에게 폼나는 정장을 입힐 작정처럼 보였다.
다음 날 17일 아침, 강우진의 원룸.
샤워한 모양인지 강우진이 머리를 탈탈 털며 화장실서 나왔다. 이어서 냉장고에 있는 바나나우유를 벌컥벌컥. 목젖이 시원하게 위아래로 움직인다. 곧, 우진이 세상 쾌청한 소리를 냈다.
“키야- 역시 뜨끈한 샤워 다음은 빠나나 우유지.”
팬티만 입은 채 바나나우유를 원샷한 우진은 평소 컨셉질 강우진과는 180도 달랐다. 뭐, 당연하겠지만. 이어 그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사실 강우진은 모닝 운동을 다녀왔다. 촬영 관련 체력을 기르기 위함이었다. 물론, 간단한 달리기긴 했지만.
‘시작이 반이니까.’
여하튼 오늘은 딱히 스케줄이 없었다. 최성건은 이래저래 준비할 게 많겠지만, 정작 강우진은 기다리는 게 다였다.
그쯤.
“아, 맞다.”
뭔가가 떠오른 모양인지 강우진이 움직였다. 탁자에 올려진 대본 중 ‘프로파일러 한량’ 3부 책대본을 집은 것. 아니, 정확히는 대본 옆에 붙은 검은 사각형을 찔렀다.
-푹!
그대로 우진은 아공간에 진입했다. 빠르게 펼쳐지는 한없이 캄캄한 시야. 이젠 제 집처럼 편한 공간에 도착한 우진이 몸을 돌렸다. 둥둥 뜬 흰 사각형을 찾은 것이었고, 총 3개로 늘어난 상태였다.
-[1/시나리오(제목: 흥신소), B급]
-[2/대본(제목: 프로파일러 한량 1부), S급]
-[3/시나리오(제목: 협의), F급]
어제 우현구 감독의 시나리오 ‘협의’가 추가됐으니까. 이렇듯 강우진이 뜬금 아공간에 진입해 ‘협의’를 확인한 이유는 심플했다.
“간만의 시나리오기도 하고, 거장 감독이라는데 리딩해보는 건 나쁘지 않겠지?”
궁금해서였다. 아쉽게도 시나리오 자체를 읽진 못하지만 상관없었다. 우진은 ‘협의’의 남자 배역 전부를 리딩(경험)할 수 있으니까. 어쩌면 이게 왜 F급인지도 판단할지 모르고.
곧, 강우진이 ‘협의’ 흰 사각형을 선택했다. 금세 다른 문구가 나타났다.
-[3/시나리오(제목:협의)를 선택하셨습니다.]
-[리딩(경험) 가능한 인물을 나열합니다.]
-[A:이도준, B:박대현, C:김왕우······G:제임스]
배역을 쭉 훑던 강우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제임스? 외국인인가?”
호기심이 땡겼다. 외국인은 처음이었으니까. 덕분에 우진은 바로 ‘제임스’ 배역을 택했다. 동시에 로봇 같은 익숙한 여자 음성이 들려왔다.
[“기본 언어 외의 새로운 언어가 감지됩니다. ‘English’를 먼저 습득합니다.”]
그런데 그녀의 말이 평소와 좀 달랐고.
[“‘English’ 리딩 준비 중······”]
[“······준비 완료. ‘English’ 리딩을 시작합니다.”]
듣고 있던 강우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뭐라는 거야? ‘English’? 야, 여자! 갑자기 뭔.”
하지만.
“읍!”
대답 대신 거대한 회색이 강우진을 덮쳤다. 이내 우진이 감았던 눈을 떴을 땐, 캄캄한 아공간이 아닌 온통 회색인 공간에 둥둥 떠 있었다. 피부로 온도도 느껴졌다. 살짝 서늘했다. 떠 있는 감각도 확실했다. 아랫배가 알싸했으니까.
“뭐지? 퇴장!”
우진은 아공간 밖으로 나가는 주문을 외쳤지만 돌아오는 건 메아리뿐. 이 순간 우진은 당황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판단이 안 섰으니까.
바로 그때.
“어?”
저 멀리서 뭔가가 다가온다. 아니, 날아오는 건가? 그것은 점점 가까워졌다. 속력은 빨랐다. 곧, 강우진이 그것의 형태를 알아차렸다.
“···A?”
알파벳 A였다. 색은 흰색이었다. 강우진의 몸집만 한 A가 빠르게 날아든다. 재밌는 건.
“읏!”
빠르게 날아온 A가 우진의 몸에 붙자마자 사르륵 스며든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기다렸다는 듯 B가 날아왔고, 그 다음이 C. 즉, 알파벳이 차례로 날아오고 있다.
알파벳은 거칠 것 없이 강우진에게 돌격했다.
그리고 마지막 Z까지.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거였다. 이번엔 대군이었다.
“뭔데 저건.”
강우진의 눈앞엔 수백 수천이 넘는 흰색 영어단어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이렇게 얼마나 지난 걸까? 강우진이 녹초가 됐을 때 여자 목소리가 다시 들렸고.
[“새로운 언어 ‘English’ 리딩을 종료합니다.”]
강우진은 어느새 자신의 원룸으로 돌아와 있었다. 다만, 알파벳들이나 단어들이 몸에 스며들던 서늘한 감각은 여전히 생생했다.
그래, 마치 배역 리딩때와 흡사했다.
심지어 약간 멍하게 앉은 강우진에겐 생생한 게 하나 더 있었다. 영어였다. 일평생 기본 빼곤 공부도 안 해본 언어가.
“What happened?(대충 당황함)”
수십 년 공부한 것처럼 너무나 선명했고.
“Oh my goodness···”(대충 충격)
발음도 유창했다.
“···미쳤다. 이거 맞냐?”
강우진에게 ‘English’가 각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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