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주 (1) >
‘마약상’이 28일인 오늘 정식 개봉했다. 그리고 지금 조조로서 ‘마약상’이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중이었다. 상영관을 채운 약 30명의 관객. 화린을 포함해 모두는 성인이었다.
그럴 수밖에.
애초 ‘마약상’이 청소년 관람 불가였으니까. 뭐가 됐든 ‘마약상’이 처음 시작되고부터 관객들의 기대감은 높았다. 스크린에 블랙과 레드가 섞인 거친 느낌의 타이틀이 뜰 때부터, 주연인 탑배우들의 이름들이 나올 때까지.
하지만 무엇보다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그리고 강우진]
까메오로 ‘마약상’에 출연한 강우진의 이름이 스크린에 박혔을 때였다. 최근 수많은 이슈들을 뿌리던 그였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남사친’의 히트가 가장 큰 몫을 담당했다. 여기 온 관객들 대부분이 ‘남사친’을 봤을 정도.
그 덕에 기대감과 궁금증은 더 커졌다.
강우진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남자든 여자든 수십 관객들이 아주 작게 귓속말을 할 정도였으니.
“강우진 이름 나왔다, 까메온데 이름이 제일 처음에 나오네?”
“인기 많아서 그런 거 아닌가? 여튼 궁금하다. 여기서 강우진 어떻게 나올지.”
“이미지 자체는 ‘남사친’이랑 비슷하지 않으려나? 거기서 좀 더 거칠게 연기하는 정도?”
“연기는 잘하니까 평타는 칠 듯.”
귓속말의 주제는 대부분 비슷했다. 까메오인 강우진이 어떻게 나올까? 연기는 어떤 식으로 했나? ‘남사친’의 ‘한인호’와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을까? 그리고 어떤 마스크로 등장할지도.
다만, 관객들의 관심은 금방 ‘마약상’ 내용으로 옮겨붙었다.
‘마약상’은 시작부터 자극적이며 긴박했으니까. 진재준이 연기한 주인공 ‘정성훈’의 등장 뒤로 ‘마약상’은 눈길을 떼기 힘든 속도감을 보였다. 따라서 화린과 수십 관객들은 대형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했다.
하지만 영화란 게 늘 그렇듯 완급 조절이 있다.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고, 세계관을 인물 간의 대사로서 풀어내는 장면도 필요하다. 연신 내달리기만 하면 숨이 차오르기 마련이니까. 즉, ‘마약상’ 역시 느슨해지는 순간이 도래했다.
따라서.
-스윽.
집중하던 관객들이 엉덩이를 들썩이거나 딴짓을 하기도 했다. 잠시잠깐 집중도가 떨어졌으니까. 하지만 관객들의 관심이 옅어질 쯤, 대형 스크린에 배경이 휙 바뀌며 낯선 분위기와 풍경이 출력됐다. 우수수 쏟아지는 폭우 역시 그랬다.
어라? 뭔가 다른데?
-♬♪
웅장하게 깔리는 음악. 곧, 약간 늘어졌던 관객들의 집중이 살짝 높아졌을 무렵.
-덜컥.
스크린 속에선 주차된 4대 세단 중 끝의 차에서 담배를 문 인물이 내렸다.
“엇? 저거 강우진?”
담배를 입에 문 ‘이상만’의 첫 등장. 모든 환경이 그의 임팩트를 살렸다. 쏟아지는 장대비, 정장 입은 건달 사내들, 상영관에 웅웅 울리는 음악, 생생한 앵글 무빙.
그리고.
[“후우-”]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나타난 ‘이상만’의 파격적인 캐릭터, 통제된 폭력성이 보이는 마스크. 그 이상만을 연기하는 배우 강우진. 그가 스크린에 나오자마자 약간 흩어졌던 집중이 단숨에 응집됐다.
움직임을 멈춘 화린은 혼을 빼놓은 채 혼잣말을 뱉었고, 수십 관객들의 잔 움직임이 늘어났다.
모두의 눈은 스크린 속 이상만에 고정됐다.
그 정도로 이상만의 임팩트는 강렬했다. 영화 러닝타임 약 1시간 만에 나온 캐릭터지만 긴장감을 단숨에 끌어올렸다.
여기서부터 관객들의 청각과 시각이 기민해졌다.
왜인지 이상만이 나온 뒤부터 폭풍전야의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의 대사 한 마디.
[“가까이 오라고. 다 젖는다.”]
[“아아! 죄송합니다!”]
[“아니면 그러길 원하는 거냐?”]
[“아, 아닙니다. 형님!!”]
행동 하나하나엔 오묘한 무게감이 실렸다. 유연하며 흐물흐물한 듯하면서도 잔악성과 폭력성이 섞인 냄새는 또 어떤가?
이에 관객들은.
“어후 소름.”
“뭔가 좀 무섭지 않아?”
팔뚝을 쓸어댔다. 차갑게 뿌려대는 상영관의 에어컨 바람이 그 느낌을 부추긴다. 피부에 닿는 서늘함과 스크린 속 ‘이상만’의 비정함은 잘 맞아 떨어졌다. 와중, 입을 작게 벌린 화린은 그저 스크린 속 강우진에 온 신경이 뺏겼다.
‘달라. 지금껏 보여준 연기나 분위기가 아예 없어. 목소리도 바꾼 건가? 우진님 특유의 그 낮은 톤은 살리긴 했는데······저 가래가 낀 것 같은 톤은 어떻게 낸 거지?’
화린은 덕질하는 팬으로서 또는 배우로서 강우진의 연기에 칭칭 감긴다.
‘한인호 때의 순수한, 따듯한 감정이 진짜 1도 안 보여. 솔직히 대단해. 담배를 빠는 모션부터 작은 손동작, 시선 처리, 하다 못 해 눈 깜빡이는 것도 모두 가볍지 않아. 하나하나 전부 저 캐릭터의 위세를 부추겨. 이미 알고는 있었는데 연기 디테일이 정말······’
강우진의 연기를 앞에서 경험한 그녀가 이 정돈데, 화린의 주변에 분포된 수십 관객들은 어떨까? 화린이 옆옆 자리에 있는 여자들이 팔뚝을 쓸어대는 걸 힐끔했다. 저 모습이 충분히 이해되는 그녀였다.
‘이상만이 등장하는 타이밍 자체도 죽여줬고, 뭣보다 우진님의 저 연기와 캐릭터 변신이 예상을 너무 뛰어넘었어.’
이쯤.
[“춤을 춘다.”]
이상만이 길게 줄지은 주황 가로등을 보며 대사쳤다. 몽롱하지만 미약한 미소가 깃든 그의 눈동자가 가깝게 클로즈업된다. 그러면서도 이상만은 아까부터 목 부근이나 팔뚝 등을 긁는다.
처음이야 그냥 그랬지만 관객들은 이상함을 느꼈다.
“야 근데 쟤 아까부터 막 긁지 않아?”
“어어. 나도 뭔가 희한하다 싶었어.”
“떡밥인가?”
동시에 스크린 속 이상만의 얼굴에 불쾌함이 심화됐다. 깔리는 음악 역시 더욱 무거워졌고. 분명, 이상만은 본인의 문제점을 관객들에게 피력하고 있었다.
그 문제점은.
-두두두두둑!
-후두두두두둑!
폭우를 지나.
[“불겠어.”]
[“예?”]
[“바다가 불겠다고.”]
부하의 죽음을 건너.
[“공구리.”]
음침하고 어두컴컴한 계단을 이상만이 턱턱 올라갈 때 극한으로 진해졌다. 누가 봐도 계단 위쪽의 모습은 불길하기 짝이 없었지만, 괴팍하며 무던했던 이상만의 표정엔 미약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으니까. 앵글은 정면, 스크린엔 계단을 오르는 이상만의 얼굴이 가득해졌다.
[“······”]
움찔대는 얼굴 근육, 점차 이빨이 보이듯 활처럼 휘는 입술, 광기가 서린 눈동자, 재빨라지는 몸짓.
맹목적이다.
그런 점진적인 이상만의 표현 변화가, 변질이 수십 관객들에겐 다소 충격이었고.
“뭐, 뭐야. 왜 저래.”
“으- 저 표정 밤에 꿈에 나올 듯.”
“뭐지? 사실은 미친놈이었나? 정신병자?”
디립다 커진 눈으로 스크린을 직시하는 화린은 이상만의 변화를 눈치챘다.
‘해방, 해방감이 보여. 방금까지는 지긋지긋한 일터였고 지금은 자기만의 놀이터로 가는 듯한······그리고 웃음이 불안해. 저 웃음 자체가 이상만의 말로를 보여주는 듯이.’
정확했다. 지금 이상만은 관객들 모두에게 스포를 보이는 것과 같았다. 내가 짓는 웃음은 죽음과도 같다고. 그것을 강우진은 대사가 아닌 연기로서 보인 것이며, 관객들은 이상만의 웃음 뒤 언뜻 보이는 죽음을 ‘불안함’으로 느끼는 중이었다.
하지만 모든 관객들의 불안함은 금세 확신으로 바뀌었다.
-덜컥!
영화 속 반쯤 미친 이상만이 책상 서랍을 열었을 때 보이는 여러 기구들 때문. 곧, 이상만이 정장 재킷을 벗어 던지고는 셔츠 소매를 걷었다.
[“후웁- 후우.”]
거칠어지는 호흡만큼 얼굴에 생기가 가득해진다. 이어 소파에 앉은 이상만은 해방됐고 관객들은 인지했다. 이상만은 마약중독자였구나. 이어 이상만이 관객들의 인지를 몇 배는 강렬히 심어준다.
[“흐흐”]
소파에 앉은 이상만이 실실 쪼갠다. 딱 그런 표현의 미소. 스크린엔 이상만의 뒤쪽, 빗물이 철철 흐르는 창문까지 잡힌다. 이때.
-우르르르, 콰광!
강렬한 천둥 번개가 쳤고 긴장감이 팽배하던 관객들 반 정도가 깜짝 놀랐다.
“꺅!!”
“우왓!!!!”
“꺄악!!”
“깜짝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스크린 속 이상만은 고개를 천장으로 천천히 올린다. 그의 얼굴 전체를 위에서 보는 앵글. 점차 클로즈업. 이내 상영관 전체로 기묘한 웃음소리가 퍼졌다.
[“으흐흐-”]
아니, 죽음의 소리였다. 이 순간 드넓은 상영관의 수십 관객들은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얼음처럼 굳어 스크린을 응시할 뿐.
씬의 흡입력이 가히 대단했으니까.
“······”
“······”
“······”
화린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모두의 머릿속에는 일맥상통한 생각이 자리 잡은 상태였다.
‘강우진 연기 존나 잘하네.’
씬스틸러 그 이상을 보았기에.
약 1시간 30분 뒤.
어느새 화린이 있던 상영관의 스크린엔 블랙 화면과 함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
웅장한 OST 역시 영화의 마무리를 알린다. 컴컴했던 상영관의 조명도 약간은 밝아졌다. 쿠키 영상은 없으니 이제 관객들은 상영관을 빠져나가야 했다. 허나 왜인지 수십 관객들은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뭐랄까, 다들 잔뇨감이 남은듯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남자끼리 왔던.
“오졌다, 시발. 존나 재밌네. 연기 구멍 하나도 없고.”
“솔까 간만에 지리는 영화 나온 듯.”
“와- 진짜 나 이거 한 번 더 보고 싶은데? 야 그리고 강우진 뭐임? 쟤 연기 돌았어.”
“쌉인정. 아니, 진짜 미친놈인가? 까메오라매? 왜 주연들 연기를 씹어 먹냐?”
“근데 강우진 쟤는 한량 때도 지리긴 했음.”
“아- 덜 꼴리는 박대리?”
여자끼리 왔든.
“좀 잔인하고 무서웠는데 재밌긴 했지?”
“응응! 완전! 진재준 존멋.”
“아- 난 좀 별로. 살짝 역겹다고 해야되나? 이런 류 영화가 나랑 안 맞나 봐. 근데 중간쯤 강우진 시강은 쩔었어, 진재준보다 더 눈에 띄던데?”
“대박이었지. 좀 지루할 참에 딱 나와서 집중력 훅 올라감! 하···나 강우진 좋아했어, 진짜 배역은 좀 쓰레긴데 멋있더라.”
“연기를 잘해서 그런 거지. 다들 ‘남사친’ 봤잖아? 근데 한인호는 보이지도 않더라? 그냥 다른 사람인 줄.”
커플들까지 모두 비슷했다.
“이야- 강우진 연기 잘하네. 오늘 집 가서 ‘남사친’봐야겠다.”
“봐봐, 내가 보라고 했잖아 오빠. ‘남사친’에서 강우진은 겁나 츤데레면서 따듯한데, ‘마약상’에서 강우진은 완전 미친놈. 어떻게 배역마다 저렇게 연기가 다르지?”
“괜히 언론에서 괴물 신인이라고 빨아주는 게 아니었네.”
좌석을 차지하고 있던 수십 관객들이 움직인 건 엔딩크레딧의 끝부분 정도부터. 먹었던 팝콘이나 음료 컵을 상영관 바로 앞 쓰레기통에 버리면서도 그들의 입은 쉬지 않았다.
재밌는 것은.
“강우진 SNS 있지?”
“응, 있음. 강우진 너튜브는 본 적 있어?”
“응응.”
대부분의 관객들이 뱉는 배우의 이름이 강우진이라는 것. 그런 그들의 뒤쪽으로 모자에 마스크 그리고 안경을 쓴 화린이 따랐다. 그녀는 약간 몽롱한 상태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우진님······와, 진짜.’
가뜩이나 두터운 팬심이 한없이 뛰어오르고 있었다. ‘강토템’과 결 다른 신앙심이랄까? 즉, 그녀의 덕질이 몸집을 어마무시하게 키운다는 뜻. 뭣보다 오늘의 관객들 중 그녀만이 강우진의 연기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었다.
왜?
화린은 강우진이 행한 모든 캐릭터를 봐왔으니까. ‘흥신소’의 ‘김류진’으로 입덕하여 직전의 ‘이상만’까지. 물론, 어느 것 하나 겹치는 느낌은 없었다.
‘저런걸 메소드라고 하는 건가? 근데 뭔가 메소드보단 좀 더 방대해. 배역마다 연기법이 달라.’
대체 그는 어떻게 되먹은 배우일까. 화린은 배우로서는 질투를, 팬으로서는 경외를 느꼈다.
‘남사친이랑 마약상이 거의 비슷하게 오픈돼서 우진님의 다채로운 연기가 더 두드러져.’
뭐가 됐든 화린은 엘리베이터에 오른 뒤, 지하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강우진 생각을 했다. 당연히 오늘 종일 그의 생각이 떠나지 않을 예정. 곧, 주차장에 잠든 자신의 외제차를 깨운 그녀가 운전석에 올랐다.
이때야 얼굴을 가렸던 허물들을 벗는 그녀.
-스윽.
모자 덕에 헝클어진 긴 머리를 쓸어 넘긴 화린이 시동을 걸려다가.
“참참!”
대뜸 양손을 짝 쳤다.
“평점, 평점 줘야지!”
첫 타자로 관람한 ‘마약상’의 평점을 매기려는 모양. 당연히 감상평까지. 그녀도 잘 알고 있어서였다. 신작 영화의 흥행은 초반 평점이 중요하다는 걸. 이내 화린은 자신의 핸드폰을 집어선 검색사이트에 접속했다. 당연히 검색어는 ‘마약상’.
첫 줄에 바로 뜨는 ‘마약상’의 정보.
그중 평점란을 터치한 화린의 눈이 약간 커졌다.
“와- 벌써.”
방금 조조 영화가 끝났음에도 퍽 많은 관람객의 평점과 감상평이 달려 있었으니까.
[「마약상」/ 2020년 10월 28일 개봉]
[평점 9.7]
[관람객·네티즌 감상평/ 198명 참여]
-존나 재밌다 그리고 강우진은 진짜다/ t****
-좀 잔인하고 무서웠음....근데 배우들 연기 엄청 잘함....특히 강우진/ g****
-진재준의 재발견ㄷㄷ 말이 필요없음 그냥 보셈/ c****
-강우진의 까메오 캐스팅이 신의 한 수였다./ 1*****
-아니 강우진은 왜 이제야 배우하는 거냐? 연기 진심 지리던데? 얘 진짜 마약 해봤나 싶더라/ 9*****
-씹존잼 몰입감 지리고 강우진은 금방 탑배우될 듯 진짜 연기 미친놈같이 함/ f****
여기서도 이상만의 존재감은 강렬했다.
< 독주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