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4화 (114/154)

간절한 노력과 사소한 우연

이 「고도이의 군단」 모집 공고에 대한 라틴 아메리카 식민지인들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또한 폭발적이었다. 

"미친놈." 

"아니, 그러니까 저 검둥이들한테 총칼을 쥐여주겠다고?" 

"제정신이 아니구만. 이걸 지금 정책이랍시고 내놓은 거야?" 

"어휴, 하여간 남창 놈 아니랄까 봐···." 

"도대체 이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러는 건지 나 참." 

단, 긍정적이라기보다는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방향성으로. 

그야 당장 페루 부왕령에서 투팍 아마루 2세가 잉카 제국 재건을 부르짖으며 궐기하였다가 무참히 진압된 지 불과 15년도 지나지 않은 와중이었다. 

이는 비록 실패로 끝났으나 콩키스타도르가 당도한 지 수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옛 제국을 그리워하는 인디오와 메스티소들이 남아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고, 나아가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을 부르짖던 혁명가들이 원주민 세력과의 협력을 포기하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결국 저 원주민들이 옛 잉카나 아즈텍 제국을 재건하게 되면 그동안 지배 민족이자 노예주로서 호사를 누리던 이들이 거꾸로 피지배 민족으로서 고초를 당하거나 빈털터리 신세가 되어서 조상들의 고향 땅으로 내쫓기게 될 테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크리오요 노예 농장주들만의 지주공화국이다. 

결코 저 인디오들을 도와 동포들을 배신하려는 게 아니다-라는걸 단지 말이 아닌 행동으로서 입증해야만 했던 것이다. 

한데 이제는 하다 하다 왕국의 재상이라는 놈이 몸소 저 즐거움의 부산물들에게 무기를 쥐여주겠다니. 

"이거 우리도 이만 들고일어나야 하는 거 아냐?" 

"해도 해도 정도껏이지, 이건 선을 넘었잖소!" 

"국왕 폐하께서 이런 말도 안 되는 폭거에 동의하셨을 리가 없소!" 

"이게 다 저 빨갱이 남창 때문이다!" 

"명예 홍인 고도이는 부끄러움을 알거든 자결하라!!!" 

곧 고도이 축출이라는 대의를 내걸고 궐기한 누에바 그라나다의 미란다를 뒤쫓아 사방에서 반 고도이의 기치를 내건 노예 농장주들이 잇달아 궐기하기 시작했다. 

고도이의 군단이 이름만 거창할 뿐 실상 이름 뿐인 권리 신장과 푼돈으로 인디오나 메스티소들을 꾀어서 고기 방패로 쓰고 버리려는 식민지 보조병과 계획에 지나지 않았다는 건 이들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본국에서 미란다가 이끄는 크리오요 반란군에 맞서서 본국인이나 현지 백인조차 아닌 인디오와 메스티소들만으로 이루어진 병과를 계획하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이들에겐 기함할 만행이오, 생명의 위협이었으니까. 

자고로 존중은 공포에서 나오는 법. 

무기를 쥔 인디오와 메스티소들에게서 이제 와 존중을 기대하기엔 그동안 이들이 저질러온 업보가 구름을 뚫고 바벨탑을 쌓아 올려 조물주의 분노를 일으키고도 남았으니.

이들에겐 본국의 의도나 규모에 상관없이 외인부대 계획 자체가 알레르기성 발작을 일으키고도 남을 폭거였다. 

"···? 저 시건방진 식민지 놈들은 또 왜 저래?" 

하지만 이때 예상치도 못한 고도이의 구원투수가 나타났으니. 

"아니 그럼 지들이 자원입대해서 꽉꽉 채워주던가. 안 그래도 병력 모자라서 난리인데 뭔." 

"저놈들 설마 진짜로 저 파리의 빨갱이들이 우리 동맹국이라고 믿고 있는 거 아니겠지." 

"에이, 아무리 무식한 식민지 놈이라도 그렇지. 설마 그러려고." 

"뭐야, 그렇다면 평범한 매국노였나." 

"음, 죽어도 싸군." 

다름 아닌 스페인 왕국군이었다. 

그도 그럴 게 반동적인 스페인 왕국군은 고도이 내각의 친불정책과는 별개로 혁명 프랑스를 조금도 우호적으로 여기지 않고 있었다. 

프랑스와의 굴욕외교를 안보 문제 해결로 선전한 고도이 내각과는 달리 스페인군은 언제나 프랑스와의 전쟁 가능성-침략이 되었건 피침략이 되었건-을 경계하고 있었고, 이들에게 작금의 평화는 그날에 대비한 준비기간에 불과했다. 

당연히 이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노예해방 문제 따위가 아니었다. 

그래서 당장 본토에서 전면전이 벌어진다고 가정했을 때 얼마나 많은 육군을 동원할 수 있는가, 였지. 

그리고 그동안 대륙의 섬이나 다름없는 안보적 특혜를 누리고 있었던 스페인 왕국군에게 장장 100년 만에 유럽 대륙에서의 전면전을 상정하라는 건 그야말로 뼈를 깎는 노력과 예산과 인력을 동시에 요구로 하는 난제였으니. 

중앙정부의 역량 부족과 국민적 공감대 부족과 예산 부족으로 국민개병제를 도입하기 어려운 스페인군의 관점에서 볼 때 고도이의 군단은 이 난제를 해결해줄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아무렴 식민지 주둔군을 충성스러운 메스티소들과 인디오 동맹군에게 짬때릴 수 있다면 그만큼 더 많은 스페인군을 프랑스와의 국경지대에 배치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그만큼 저들이 배신할 가능성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할 테니 논의에 있어서건 실제 진행에 있어서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문제를 고도이가 너무 성급하게 결정 내렸다는 불평 정도야 있었지만-. 

"런던이랑 내통한 반역자들이 선하신 국왕 폐하를 위하기는 개뿔이!" 

"아니 그럼 본국에서 국민개병제 돌리다가 총을 맞아야겠냐? 당연히 하등한 식민지 놈들부터 군대 끌려와야지 이놈들이 빠져서는!" 

"그러니까 조국을 지킬 병력은 없는데 속주에서 반란을 일으킬 병력은 있다? 허! 내 기가 차서 진짜!" 

"듣자 하니 우리 에스파냐가 로마의 후예가 맞기는 했던 모양이야?" 

"···잠깐, 생각해보니까 하필이면 저놈 친위대 이름도 군단(La Legion)이잖아." 

이는 어디까지나 본국에서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지, 하등한 식민지 놈들이 감히 마드리드의 의사결정에 끼인다는 것 자체가 수구적이고 권위적인 스페인 군부의 심기를 거스르고야 말았다. 

그야 당장 본국이 위태로운 마당에 메스티소인가 인디오인가가 그리 대수던가? 

충성심에 하자가 있다는 딱지가 붙은 해방 노예들조차 가져다 써야 할 판이니 당연히 조만간 크리오요들에게 징병령이 내려갈 테고, 그래도 위태롭다면 그때 불평불만 많은 본국인-가령 카탈루냐-들까지 징병하느냐 마느냐가 논의되어야 올바른 서순이지. 

하등한 식민지 놈들 주제에 어딜 감히 전지전능한 조물주의 지상 대리인이신 국왕 폐하의 군인들에게 군대 가기 싫다고 떼를 쓰고 있다는 말인가? 

"당장 국가안보가 위태로운 마당에 이 천한 식민지 놈들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쓰벌, 차라리 그럼 진짜 거하게 징병령을 때리시던가요! 저 홍인 놈들에게 진짜 총칼을 쥐여주셔야만 했습니까? 예?!" 

"그래? 그럼 이제라도 식민지 징병령 때릴까? 다 같이 손잡고 군대 올래?" 

"···빨갱이 남창은 물러가라! 선하신 국왕 카를로스 4세 만세!" 

"내 이럴 줄 알았다, 이 하등한 식민지 놈들아!" 

결과 고도이의 자기 보신을 위한 도박수는 백인우월주의 노예농장주와 수구꼴통 군부의 정면충돌로 화하며 스페인령 라틴 아메리카 전역을 불사르기 시작했다. 

실마리를 제공한 런던에게는 기대 이상의 대폭발인 동시에 전혀 의도치 않은 전개였고, 프랑스에 맞서기 위하여 고도이의 계획에 찬성했던 스페인 군부에도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격이었다. 

저 혁명 타령하는 폭도들에 맞서 왕국을 지켜냈어야 했을 귀중한 병력자원들이 프랑스와의 국경지대가 아니라 크리오요 반란 진압에 마구 빨려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누구도 원하지 않았을 대참사요, 에스파냐 식민제국을 두 조각 내기에 더할 나위 없는 내란이었으나-. 

"이야기 들었지?" 

"그래. 백인들 쏴 죽이면 돈 주고 출세까지 시켜준다더라." 

"고도이 당신은 신인가? 고도이 당신은 신인가? 고도이 당신은 신인가?" 

"크흑, 꼭 한번 저 조까튼 노예주 놈들 좀 다 쏴 죽여보고 싶었습니다···!" 

"야그들아, 연장 챙겨라!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우리가 저놈들 합법적으로 쏴 죽여보겠냐? 안 그래?!" 

누군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흡족한 전개요, 젊은 영웅 고도이를 신앙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묘수였으니. 

그리 오래지 않아 고도이의 군단은 아라곤-카탈루냐까지 견제해야 했던 본국군을 대신하여 크리오요 반란 진압의 주역으로 떠오르고야 말았다. 

*** 

탈탈탈···. 

"오, 오오오!" 

저 증기자동차 진짜로 굴러간다! 

솔직히 증기기관차는 몰라도 증기자동차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햐, 저게 진짜 굴러가기는 하는구나? 

머리로는 와트식 개량조차 없었던-그러니까 진짜로 끓일 물을 톤 단위로 준비해야 했던 구식 증기자동차도 멀쩡히 굴러갔다는 걸 알고야 있었지만, 이렇게 눈으로 굴러가는 걸 직접 보고 있자니 또 색다른 기분이었다. 

이거 혹시 스팀펑크 각인가? 

[스팀펑크는 또 뭔가?] 

그 왜, 엔간한 건 증기기관이랑 테슬라 코일로 다 굴러가는 세계관들 있어. 

[테슬라 코일은 또 뭔데?] 

···별거 아니었으니까 그냥 넘어가시죠. 

어차피 나도 반쯤은 농담으로 하는 소리였으니까. 

그리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마침내 성공하셨군요, 퀴뇨 씨!" 

"혹시 증기기관차 말고 이 증기자동차부터 선물해주시면 안 돼요? 구형은 몰라도 이건 꽤 마음에 드는데!" 

오늘의 주인공을 축하해주는 거니까. 

폴짝폴짝 뛰면서 신형 증기자동차 주위를 맴돌고 있는 마리 테레즈의 말대로, 퀴뇨 씨의 새로운 자동차는 거대한 물탱크를 전면에 흉물처럼 끌고 다니던 그의 첫 작품들과는 사뭇 달랐다. 

훨씬 날렵했고, 무엇보다도 가벼워졌으며 자동차라기보다는 보일러를 단 수레처럼 보이던 초라하고 투박한 외양은 온데간데없이 엔진이 있고, 사람이 탈 좌석이 있으며, 뒤에 화물이나 사람을 태울 수 있는 공간까지 준비되어있었다. 

비록 브레이크 문제는 끝내 해결하지 못해서 나뭇조각을 타이어에 달아서 필요할 때마다 직접 마찰을 가하는 식으로 어중간한 타협을 봐야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21세기인의 관점에서 봐도 아, 좀 옛날 자동차구나-하는 느낌 정도는 줄 수 있는, 그야말로 최소한의 요건은 충족시켰다. 

딱 마차와 자동차 사이의 과도기적인 놈이라고 할까. 

그럼 이제 보기 좋게 적당히 도색이라던가 장식들도 달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시연만 끝내면-. 

"더는 못하겠네." 

···아니 또 왜요. 

첫 시험주행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퀴뇨 씨는 기뻐하기보다는 초췌하고, 착잡해 보였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내 발명품이라는 말인가." 

"퀴뇨 씨께서 직접 제작하고, 또 개량한 발명품이잖습니까? 당연히 퀴뇨 씨의 작품이고 말고요." 

"아니, 아닐세. 난 내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아네. 난 이런 것들은 생각해보지도 못했어. 보완이 필요하다는 건 알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잡지 못했지. 이건 내 작품이 아니야. 그 제임스 와트라는 친구의 발명품이지." 

휘청. 

조종석에서 내리던 퀴뇨 씨가 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내게 기댔다. 

"그 친구에게 이 늙은이 대신에 축하한다고 대신 좀 전해주겠나?" 

"그럴 순 없습니다." 

"이 늙은이의 마지막 부탁이네." 

거 진짜 치사하게 구시네! 

"그래도 안 됩니다." 

설령 제임스 와트의 기술력을 빌려왔다고 하더라도 엄연히 이건 당신의 발명품이다. 

비록 수십 년 전에 당신이 만들었던 첫 작품들과 비교하면 너무나 다른 모습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늙어버린 당신이 며칠 밤을 새워가며 고민해서 완성한 역작이잖아. 

그럼 떳떳해져야지. 

"도대체 언제부터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의 발명가였다는 말입니까?" 

"···하지만 세간에서는 다들 그렇게 말하잖는가." 

"멋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들 말하지요. 그렇지만 그의 특허는 증기기관 그 자체가 아니잖습니까? 「화력 기관에서 증기와 연료의 소모를 줄이는 방법」이지." 

다시 말해 제임스 와트의 특허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증기기관이나 피스톤이 아니라 퀴뇨 씨가 보자마자 좌절하셨던 증기를 냉각시켜 물을 재사용하게 해주는 바로 그 「응축기」다. 

벌써 몇 번을 읽어봐도 이게 무슨 소리인지, 무슨 원리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도 이제 이것만큼은 분명히 외웠다. 

제임스 와트는 증기기관의 발명가가 아니다. 

증기기관을 작동시키는데 들어가는 석탄과 물의 필요량을 혁명적으로 절약하고 성능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부품을 발명한 사람이지. 

그러니까 퀴뇨 씨의 증기자동차 개발에 제임스 와트의 기술력이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면, 증기자동차까지 제임스 와트의 발명품이라는 소리가 아니라 그의 기술력이 본디 개발목적-증기기관의 보완과 성능개량-대로 올바르게 사용되었다는 의미일 뿐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아무런 기반도 없이 무에서 유를 창조했습니까?" 

퀴뇨 씨와 억지로 눈을 마주쳤다. 

"뉴턴이 자연철학이라는 학문을 창조했습니까? 아르키메데스가 햇빛을 모아 적선을 격퇴했다고 그가 거울을 발명한 건 아니잖습니까. 이 세상에 무에서 창조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아무리 세기의 천재라도 마찬가지지요. 

소위 세기의 발명품이라는 건 사소한 발견과 지식이 차곡차곡 모여서 하나의 결실을 이룬 걸 두고 멋모르는 사람들이 그 화려함에 속아 호들갑 떠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여간 혓바닥만 산 친구로군." 

"유감스럽게도 이 혓바닥 놀리는 게 제 생업인지라." 

변호사건 정치인이건 간에 말이지. 

사업가, 는 차라리 마담 롤랑이고. 

"만일 퀴뇨 씨께서 이 증기자동차의 발명가가 아니시라면 이 세상엔 발명가라는 건 존재할 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발견과 발명이란 누군가의 일생을 건 간절한 노력과 사소한 우연의 결실을 영감이라는 실로 정성껏 기워 맞춘 누더기니까. 제 말이 틀렸습니까?" 

"허." 

퀴뇨 씨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자네 같은 무뢰배가 도대체 어떻게 파리 시민들을 홀렸는지 이제서야 알 것 같군." 

"칭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무슨 수로 공주마마를 홀렸는지도 말이야." 

"·········." 

[왜? 이것도 칭찬으로 받아들여야지. 무려 진성 왕당파 입에서 튀어나온 패배 선언이잖은가.] 

입 닥쳐, 막시밀리앙. 

"이런 사기꾼 한량 같으니라고." 

"잠깐, 그게 위로해준 사람에게 할 말이에요?" 

"송구하옵니다, 마마. 하오나 이번만큼은 헤아려드릴 수 없겠습니다." 

껄껄껄. 

퀴뇨 씨가 웃었다. 

허탈하게-그러나 후련하게. 

그의 갈수록 희미해져 가는 동공이 투박하기 그지없는 물 끓이는 괴물 수레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그가 제임스 와트의 기술력을 응용해 개량한 한결 세련된 삼륜 자동차로 향했다. 

"잘 보이지 않는구만." 

퀴뇨 씨가 중얼거렸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이렇게 멀리서는 도통 보이지를 않아." 

"저런, 외눈 안경이라도 드릴까요?" 

"아니, 됐네. 이제 와서 그런다고 뭐 보이기나 하겠나." 

뚝. 뚝. 

비가 내렸다. 

밤하늘은 맑고 청명했으며, 겨울바람은 건조하고-무엇보다도 실내였으나. 

어째서일까 우리에게만 비가 내렸다. 

"안 보여. 안 보인다고···." 

"아바마마께서도 자주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쓱쓱. 

마리 테레즈가 손수건-을 꺼내려다 말고 제 소매로 퀴뇨 씨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다들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거겠죠." 

"예에, 그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게 다 나이를 먹어서 그렇습니다. 아무렴 어찌 사나이 대장부가···." 

퀴뇨 씨는 더는 말을 이어 나가지 못했다. 

휘청거리는 늙은 다리로 마리 테레즈의 부축을 받으며 기어가듯이 그의 괴물 수레로 다가가 기댄 채 어깨를 들썩거릴 뿐. 

그곳은 그야말로 그 둘을 제외한 누구의 접근도 용납하지 않는 성역처럼 보였기에. 

"니콜라 퀴뇨 씨." 

짧은 고별사와 함께 자리를 비워주기로 했다. 

"당신은 실패자가 아닙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다만, 그날따라 조금 거센 소나기가 내린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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