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조
"허허허, 이것 참."
오랜 방랑 생활로 지저분하고 난잡하던 수염은 온데간데없이.
거울 앞에서 몇 년 만에 말끔히 다듬어진 턱수염과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던 퀴뇨 씨가 어색한 웃음을 터트렸다.
"뭔가 낯설구만."
"차차 익숙해지셔야지요."
"아니, 그런 이야기가 아닐세. 그게 아니라-."
퀴뇨 씨가 슬며시 이쪽을 돌아보았다.
"도저히 이게 내 인생 같지 않네."
뜨끔.
"그냥 뭔가 현실감이 없어. 어제도 잠에서 깨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와 있을 것만 같았네. 아무도 찾아와주지 않는 허름한 움막에서 술과 담배로 하루하루를 지새우며 그저 죽음이라는 안식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이미 원래대로 돌아오셨잖습니까."
툭.
가볍게 퀴뇨 씨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또 이제부터 되찾으러 가실 예정이고요. 자, 역사의 승리자로 기록될 준비는 되셨습니까?"
"···하여간 물에 빠지면 입만 둥둥 떠다닐 놈 같으니라고."
퀴뇨 씨가 어색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멋들어진 정장, 부르주아지처럼 곱게 다듬은 머리와 수염, 그리고-붉게 칠해진 퀴뇨 3호기.
모든 것이 그가 오늘 역사적인 시험 운행의 주인공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도 원체 백발이라 밀가루 가발을 쓰실 필요는 없겠네요."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가벼운 농담이었다.
퀴뇨 씨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조금 전부터 마차 차체를 개조하여 완성한 퀴뇨 3호기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럼 다녀오겠네."
퀴뇨 씨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선전포고라기엔 나약하고, 출사표라기엔 보잘것없는 선언이었다.
"예에. 다녀오십시오."
툭.
그래서 나도 손에서 힘을 빼고 그의 굽은 등을 밀어주었다.
혹여나 또다시 그의 가느다란 다리가 몸통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리지는 않을까 근심이 되어서였다.
탁.
하지만 이번만큼은 퀴뇨 씨는 조금도 휘청거리지 않고 성큼성큼 앞으로 내디뎌 혼자 힘으로 퀴뇨 3호기에 올랐다.
나 또한 퀴뇨 3호기를 이끌고 현장까지 옮겨줄 짐마차에 올랐다.
와아아-!
그러자 마침내 마차가 퀴뇨 3호기를 끌고 폭발적인 함성으로 우리를 반기는 군중들에게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아마 그들 중 이미 추레하게 늙어버린 퀴뇨 씨를 반긴 이는 한 줌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대부분은 나의 열광적인 지지자들일 테고, 그게 아니면 나의 치정사에 열광하는 군중일 것이며, 그조차 아니라면-퀴뇨 씨의 또 다른 실패를 보고 비웃기 위하여 찾아온 야유꾼들일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야 어쨌건 퀴뇨 씨의 발명품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은 「괴물수레」에 불과했으니.
"오, 생각보다는 그럴듯하게 생겼는데?"
"에이. 그래봤자지 뭘. 또 벽이나 안 부딪히면 다행일걸."
"으악! 모두 비켜요, 비켜! 퀴뇨의 괴물수레가 나가신다! 벽과 울타리들을 숨겨라!"
"위원장 동지! 뭔가 또 보여주십시오!"
"그래서 세분 중에서 누구랑 가장 진도 빼셨습니까!"
당장 어지러이 뒤섞여가는 함성이 나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지막은 자네가 직접 답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시꺼.
내 치정극이 오늘 시연식을 빛낼 맛 좋은 조미료가 될 수 있다면 그것도 한 번쯤 생각해봤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다들 퀴뇨 씨를 무시하거나 잊어버린 마당에 내 치정극으로 관심사가 옮겨가기 시작했다간 그대로 끝이다.
그래서 마담이나 마리 테레즈도 일부러 이 자리에는 초대하지 않았고, 가능하다면 나도 직접 참여하는 대신 이름만 올리려고 했다.
그래야 모든 관심이 오롯이 퀴뇨 씨에게 집중 될 테니까.
그런데 또 그랬다간 지금도 반반인 마당에 기대나 응원보단 야유가 앞설 게 뻔했거니와-.
"·········."
지금도 새파랗게 질려있는 퀴뇨 씨가 도중에 도망치거나 아니면 쓰러지실 것 같았다.
뭐, 물론 내가 같이 있어 준다고 안 그러라는 법은 없겠지만.
최소한 옆에서 받아줄 수는 있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나지막이 속삭였다.
"대중의 마음이란 건 으레 갈대 같은 법이니까요. 이번에야말로 퀴뇨 씨가 보란 듯이 성공하시면 다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응원해줄 겁니다."
"···알고 있네."
퀴뇨 씨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나도 그 정도는 알아."
그렇다는데 내가 무슨 말을 더 해줄까.
분노인지, 아니면 부끄러움인지 창백한 낯에 조금이나마 붉은색이 돌아왔다.
끼익.
"자, 도착했습니다."
그럼 모든 무대는 완성되었다.
수백, 수천, 어쩌면 수만 명의 군중이 보는 앞에서 마차를 멈추고 연결부를 해체했다.
덜컹.
그리고 내가 탄 마차를 멀리 레일에서 치우자, 이번에야말로 군중의 시선 끝에는 오롯이 니콜라 퀴뇨와 퀴뇨 3호기만이 남았다.
야유도, 응원도 사라지고 오로지 숨 막히는 침묵만이 가득한 레일 위.
푸쉬이-.
퀴뇨 씨는 묵묵하게 3호기에 시동을 걸었다.
부드럽고, 노련한 손놀림이었다.
"뭐야, 진짜 작동하네?"
"아냐. 저번에도 작동은 했어. 멈추질 못해서 폭주했지."
"그것도 그렇네. 그럼 지금부터가 진짜인가?"
"우우! 얼렁 들이박아라! 파리의 민중은 살육과 파괴를 원한다!"
"기죽지 마세요, 위원장 동지! 우린 어느 때건 당신 편입니다!"
사방에서 수군거리는 소리.
개 중에 퀴뇨 씨를 응원하는 목소리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근심하는 이들도 퀴뇨 씨의 실패가 내 명성에 흠이 가지는 않을까 슬퍼하는 열성 지지자들의 것.
오롯이 퀴뇨 씨를 봐주는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흐."
퀴뇨 씨와 눈이 마주쳤다.
언제나 위태롭고 애처롭던 그의 흐릿한 동공엔 이번에야말로 장인의 자신감과 확신으로 가득했기에.
나는 아무런 걱정 없이 멀리에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탈탈탈-.
그러자 마침내 퀴뇨 3호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숙하고 부드럽게,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기대보다도 훨씬 빠르게.
퀴뇨의 괴물수레는 마치 달리는 마차처럼 직선구간을 질주했다.
수십수백명의 구경꾼들이 모여있는 좌석을 향하여.
"어어, 부딪힌다!"
"이거 진짜 사람 죽는 거 아냐?!"
"다들 피해요!!!"
비명이 터져 나오고, 혼란이 빚어졌다.
아직 퀴뇨 씨의 괴물수레가 도착하려면 족히 백미터는 더 남았음에도 지난날을 기억하던 시민들은 허둥지둥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속도는 조금도 줄지 않고, 미처 다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오도 가지도 못한 채 눈을 질끈 감거나 심지어는 객석에서 뛰어내리던 찰나.
끼익.
퀴뇨 씨의 괴물수레가 우회전했다.
흉물처럼 전면에 자리한 물탱크가 사라진 삼륜차는 넘어갈 듯 잠시 휘청거렸을 뿐 부드럽게 레일을 따라 계속하여 달려 나갔다.
"어···."
누군가의 얼이 빠진 목소리.
그제야 어디선가 들뜬 탄성이 터져 나왔다.
비록 직선구간에서처럼 빠르게 달리지는 못하였지만, 퀴뇨 3호기는 계속하여 정해진 레일을 달려 나갔고, 마침내는 출발지로 돌아와 멈추어 섰다.
빠각.
동시에 효용을 다한 나무 브레이크가 산산이 부서졌다.
아직도 본격적인 양산에 앞서서 개량해야 할 요소요소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산 증거였다.
오늘만 해도 사전에 평지 구간만 골라놨으니 저렇게 쌩쌩하게 달릴 수 있었던 거지, 도중에 비탈길 하나라도 있었으면 기관이 뒤틀려서 사고가 나거나 힘이 모자라서 빌빌거리거나 했겠지.
하지만 당장은 그걸로 족했다.
"우, 우와아!!!"
"말 없는 마차다! 증기 마차야!"
"좀 전에 봤어? 난 눈으로 따라잡지도 못하겠던데?!"
"에이, 그건 좀 허풍이다!"
"당신 진짜 최고야!"
"전 처음부터 퀴뇨 씨가 해내실 거라 믿고 있었어요!"
사방에서 폭발적인 함성이 터져 나왔다.
누구나 니콜라 퀴뇨의 이름을 연호했고, 다시 그 후원자인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의 이름을 연호했다.
이는 역사를 뒤바꿀 세기의 발명이라며.
퀴뇨 씨의 괴물수레 1호기, 2호기는 마치 존재하지도 않았었던 양 그를 프랑스의 자랑이자 세기적인 천재라고 칭송했다.
"해내셨군요."
주행이 끝나고 난 뒤에도 조종석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는 퀴뇨 씨에게 다가가 손수건을 건넸다.
이미 늙을 대로 늙은 몸을 혹사해서일까.
혹은-이번에야말로 젊은 시절의 꿈을 연료 삼아 새하얗게 불태워서일까.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퀴뇨 씨는 다만 숨을 헐떡거릴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퀴뇨 씨를 정성스레 닦아준 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했네."
마침내 가래 끓는 목소리로 퀴뇨 씨가 입을 열었다.
"이 친구의 이름 말이야. 내가 정해도 괜찮겠나?"
"그거야 얼마든지요."
"고맙네."
헌신적인 후원자에 경외를 표하듯 눈을 질끈 감더니.
"페닉스(phénix)."
불사조.
혹은 독보적인 존재, 제1인자.
"그리 정해도 괜찮겠나?"
"···짓궂으시군요."
이럼 다들 독재관호라고 생각할 거 아냐.
물론 불사조처럼 화려하게 부활한 퀴뇨 씨를 연상할 사람들도 없지는 않겠지만, 후원자가 하필이면 전임 독재관인 이상 최고존엄호라고 해석해도 문맥상 이상할 게 없다.
"그보다도 공주님께 선물하실 거라면서 이런 이름으로 정해도 되는 겁니까?"
"공주마마라면 오히려 좋아하시지 않겠나."
퀴뇨 씨가 이죽거렸다.
"그리고 공화국 최고 존엄께서 후원하신 발명품이니 당연히 최고존엄호라고 이름 붙여줘야지."
진짜로 그런 의미였냐!
[뭐 어떤가. 원래 모든 작품은 후원자를 연상시키는 이름이나 상징이 붙는 게 일반적이라고.]
그런 이유가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또 이러네?
너 이 자식 진짜 누구 편이야?
[박민혁 놀려먹을 수 있는 편.]
이런 배은망덕한 놈이!
"받아주리라고 믿겠네."
퀴뇨 씨가 나와 억지로 눈을 마주쳤다.
"이 늙은이의 마지막 소원일세."
···하, 또 치사하게 구시네.
"좋습니다."
저번에도 안된다면서 잡아뗐는데 또 똑같이 굴어서야 예의가 아니지.
애당초 마음 약해져서 꿈을 포기하겠다는 소리랑 꿈을 이루고 후련해진 다음 꺼낸 이야기를 같은 선에 놓을 수야 없는 거고.
"그럼 기왕 이렇게 된 거 아예 새빨갛게 칠해드리지요. 양산품들을 멀리서 보기만 해도 눈이 아플 정도로 시뻘겋게 색칠할 테니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어이쿠, 그것참 무서워라."
껄껄껄.
퀴뇨 씨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껏 들어온 그의 웃음소리 중 가장 가볍고, 심지어는 경박하기까지 한 웃음소리였다.
그리고 이것이 아마도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원래대로'이리라.
이튿날, 프랑스군은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취소 되었던 니콜라 퀴뇨의 대포 운반차와 독점납품계약을 체결했다.
***
휴가에서 복귀한 나폴레옹이 조제핀과의 불륜관계 형성 다음으로 공을 들인 과업은 크게 코르시카를 비롯한 프랑스 내 비주류민족의 입장 대변, 그리고 참모개혁 두 가지였다.
이중 후자의 경우 겉으로는 혁명 이후 텅텅 빈 프랑스군의 참모진을 재건하고 나아가 전쟁 이전보다도 더욱 개선하기 위함이라고 했으나-.
이 세상일이라는 게 어디 호의와 이타성만으로 굴러가던가.
결국 이는 라파예트-뒤무리예라는 두 카이사르 꿈나무들 틈바구니에서 벼락출세한 나폴레옹이 군내에 제 입지를 다지기 위한 정치공작의 일환이었다.
아무렴 민간이나 정계에서 그를 두려워하거나 존경하는 여론이 대다수인 것과는 달리 오늘날 프랑스 국민군은 로베스피에르의 후광으로 승승장구하는 이 애송이 장군을 존경하거나 두려워하기는커녕 질투를 아끼지 않고 있었다.
애당초 혁명을 전후하여 임관한 친 혁명파 군인들에겐 이미 라파예트라는 우상이 있고, 반대로 보수적이거나 반동적인 이들에게는 오를레앙 쿠데타에 연루되어 혁명재판소까지 끌려 나간 뒤에도 떳떳하게(?) 제 결백을 주장한 뒤무리예라는 우두머리가 있었다.
한데 막상 주요 전투에 참여한 건 마지막 결전 단 한 번뿐이오, 그전까지는 텅텅 빈 라인란트에서 비정규군과 오합지졸 용병들을 상대로 빈집 털이나 하던 나폴레옹이 세간의 관심과 아가씨들의 선망을 모조리 쓸어가고야 말았으니.
안 그래도 공개적으로 비주류 코르시카계 정체성을 내세우면서 점차 고립되어가고 있음을 느끼던 나폴레옹은 휴가에서 복귀하는 즉시 서둘러 군내에서 그의 입지를 보호하기 위한 기반과 방패막이를 만들어내야만 했다.
그래야 언제건 급진당이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나 당당히 홀로 자립할 수 있을 테니까.
이미 라인란트 전선 시절부터 죽이 척척 맞았던 베르티에를 가장 먼저 참모장으로 영입한 나폴레옹은 이참에 참모본부 신설과 전문 참모학교 개교를 부르짖으며 그를 우상시하는 젊은 청년들을 있는 대로 휘하에 빨아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또다시 뜬구름을 잡는 주군에게 베르티에가 눈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아무리 저라도 다짜고짜 어떻게 생각하냐고 말씀하시면 짐작할 도리가 없습니다만."
"어, 자네 초능력자 아니었나?"
"그러니까 저번에도 그런 오컬트는 없다고 분명히 말씀 드렸잖습니까."
베르티에가 투덜거렸다.
"아마 저 페닉스호나 스페인 식민지 반란, 혹은 요즈음 부글부글 끓고 있는 이탈리아 세 가지 중 하나인 것 같기는 합니다만."
"뭐야, 역시 다 알고 있구만. 베르티에 그대는 모로 봐도 초능력자가 맞아."
"그러게 이 세상에 오컬트 따윈 없다니깐요."
시시한 잡담.
허울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군신 관계에 흡족히 미소 짓던 또 다른 참모 루이니콜라 다부가 입을 열었다.
"우선 저 식민지 반란은 장군께서 구태여 고민하실 필요 없을 겁니다."
따지고 보면 누벨 프랑스 총독부에서 어련히 대응해야 할 문제니까.
물론 그들이 대응에 실패한다면 이제 본국에서도 슬슬 진지하게 대처해야겠지만 당장은 대서양 건너 식민지 군이나 물라토 해방 노예 군단을 믿고 기다리는 게 여러모로 효율적이었다.
"다만 이탈리아부터는 슬슬 작계를 짜봐야겠습니다. 암살이니, 폭탄테러니, 지하조직의 선전지니, 심지어는 우리 프랑스군의 침략을 요청하는 탄원서들까지. 요즈음 들려오는 소식들만 봐도 저긴 지금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니까요."
"그래서 밀린 숙제는 다 해놨나?"
"그야 물론이지요."
자신만만한 대답.
이제부터 작계를 짜야 할 것처럼 분위기를 잡을 때는 언제고 뻔뻔스럽기까지 한 능청에 나폴레옹이 나지막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닌 게 아니라 간만에 위원장 동지께 선물을 드리려고 이야기를 꺼내 봤네."
척.
나폴레옹이 작전지도 위에 라인란트를 지목했다.
"혹시 저 페닉스호인지 뭔지 하는 장난감들을 우선적으로 라인란트에 배치할 수 있겠나?"
"그거야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최전선이고, 다들 위원장 동지의 자신작이라고 하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볼 테니까요."
반대로 말하자면 색안경을 끼지 않는 이들은 친 로베스피에르파, 다시 말해 나폴레옹의 사람들이라는 것.
"좋아, 그럼 이 나폴레옹의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보급하라고 전하게."
나폴레옹 또한 이를 구태여 부정하지 않고 설명을 이어 나갔다.
"저 지역은 원체 석탄이 풍부하니까 저런 장난감도 아예 쓸데가 없지는 않을 거야."
"그거야 알겠습니다만···."
베르티에가 눈살을 찌푸렸다.
"소관으로선 도저히 장군의 저의를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그저 로베스피에르 위원장을 도우시려는 것뿐입니까?"
"저 멍청이들이 주공을 헷갈리게 만들려는 거야."
"그게 무슨-아."
그제야 참모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쯤 비단 빈이나 베를린만이 아니라 전 유럽이 나폴레옹이 있는 곳이 주력이라고 확신하고 있을 터.
물론 지난 전쟁 이래로 심통이 단단히 난 군부에서 그리 쉽게 나폴레옹이 또다시 활약할 여지를 내주지야 않겠지만, 결국 그건 프랑스 국민군 내의 미묘한 알력 다툼을 모조리 꿰고 있는 내부자나 간신히 짐작할만한 정보다.
한데 그 나폴레옹 군단에 신병기랍시고 생전 처음 보는 장난감들까지 속속 배치되기 시작한다?
"우리도 밥값은 해야지 않겠나."
나폴레옹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야 저 샘쟁이들이 지금보다 더 심보가 비비 꼬여서 야단법석을 쳐줄 텐데."
"그건 샘이 나서가 아니라 장군께서 유부녀만 좋아하셔서 그런 거 아닐까요?"
"···커흠."
다부의 익살스러운 농담에 사방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나폴레옹은 거듭 헛기침하며 딴청을 피울 뿐 끝내 홍당무처럼 물든 낯빛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안 그래도 요즈음 하라는 결혼은 안 하고 유부녀와 사귀고 있는 나폴레옹을 두고 숫처녀에겐 흥미가 없어서 그런 거라는 풍문이 돌고 있었으니까.
'이 소릴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결혼을 하긴 해야 할 텐데···.'
상대가 조제핀이 아니라면 도통 내키지를 않았다.
나폴레오네 부오나파르테는 코르시카 사나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