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8화 (8/237)

8화

<바스톤 페레이라>

네르하가 확인한 이 세계의 마법은 총 10단계의 경지로 구분되어 있다.

소위 말하는 ‘레벨’이라는 말로, 마법의 입문자인 1레벨에서부터 마지막인 10레벨까지.

가문에서는 ‘고유 계통’이라는 것을 각성하는 5레벨부터 하나의 전력으로 취급해 주고, 그 이하는 1레벨이든 4레벨이든 유망주 취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유망주들의 세계에서도 당연히 급은 나뉜다.

1레벨과 2레벨이 다르고, 또 같은 레벨이라도 갓 입문 상태인지 다음 단계를 노리고 있는지에 따라 대접이 다르다.

일례로 네르하의 동생인 네이하의 경우, 고작 열네 살의 나이로 4레벨을 개척해 가주를 포함한 가문 상층부의 관심과 기대를 듬뿍 받고 있었다.

반대로 낙오자인 네르하의 경우, 열일곱 살임에도 고작 2레벨을 뚫지 못해 허덕거려 모두의 무관심과 무시를 독차지했다.

그럼 지금 눈앞에 있는 두 녀석의 경우?

배커와 제크론, 두 녀석 모두 2레벨 후반대에 이르러 리브라에 입소하는 예비 신입생 중에선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를 밟는다고?”

“그래. 너희같이 어설픈 놈들은 충분히 밟을 수 있지.”

배커의 표정에 대번에 어이없다는 기색이 새겨졌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지금 배커와 네르하의 마법적인 성취를 비교하면 네르하 다섯이 있어도 배커를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두 놈 아니, 세 놈 모두 덤벼도 상관없다.”

“……하!”

사실, 방금 전 발언은 약간 허세가 섞인 감이 있었다.

배커와 제크론 두 놈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는데 뒤에 바스톤이란 녀석은 절대 만만한 놈이 아니었다.

“…….”

묵묵히 두 사람의 뒤에서 조용히 대기하고 있는 단발머리의 덩치.

애송이나 다름없는 두 명과는 다르게 놈은 기세를 다듬는 기술을 익힌 녀석이었다.

‘실전을 경험한 적이 있는 놈이다.’

저런 녀석이 어째서 배커 일당을 따르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아무리 라데우스라 해도 이 나이대에선 실력보단 혈통이 더 중요하니 어쩔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제크론, 넌 물러나 있어. 내가 저놈을 밟는다.”

“살살 해라. 괜히 소란 피우다가 걸리면 난감해지니까.”

네르하의 도발에 홀라당 넘어간 배커는 손에 마력을 모으면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무슨 깡으로 그런 도발을 날렸는지는 몰라도 곱게 넘어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무슨 깡이라…….”

이전, 클로이아의 추천 기본서를 통해 마법에 입문한 네르하는 2레벨 마법사의 일반적인 캐스팅 시간이나 마법을 연속해서 시전하는 간격 등이 어느 정도인지를 학습했다.

‘마법을 모두 완성해 날릴 수 있다면 일격에 사람 하나 죽이는 것 정도는 충분하겠지만…….’

이 거리에서 실전 경험도 거의 없는 2레벨의 마법사를 상대한다는 건.

팟!

그냥 일반인을 상대한다는 것과 같았다.

“어?”

네르하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배커에게 달려들었다.

뭔가 네르하를 마주하면서도 계속해서 무언가 마법을 영창하고 있었던 것 같지만 어차피 그 마법의 정체가 뭐든 그 영창을 완성하기 전에 그냥 달려들어 방해하면 끝이다.

그런데 의외로.

“하! 내가 그런 얄팍한 수법에 당할 줄 알았냐!”

배커는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었는지 의외로 능숙하게 뒤로 물러나며 네르하에게 마력을 쏟아 내었다.

“마법도 못 써서 너같이 덤벼드는 놈을 한두 놈 본 줄 알아?!”

화악!

완성되지 않은 단순한 마력의 폭풍이 네르하에게 쏘아졌다.

분명 적중한다면 피와 살이 난무할 게 분명한 일격.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마력이 네르하의 몸에 닿는 일은 없었다.

“어, 어엇?”

“말했잖나, 어설프다고.”

어깨의 움직임, 허리의 이동, 동공의 방향. 이런 것들을 종합하면 손바닥을 펼치기도 전에 발사대가 어디로 향하는지 사전에 충분히 알 수 있다.

홱!

네르하는 가볍게 배커의 공격을 피하곤 그대로 녀석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진각을 밟으며 놈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버렸다.

퍼억!

“어억!”

별다른 무리(武理)도 없었지만 체중을 제대로 실은 주먹은 별다른 근력이 없어도 충분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배, 배커!”

순간, 호흡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타격을 입은 배커가 무릎을 꿇는 순간 네르하는 그대로 다리를 휘둘러 녀석의 목을 차버렸다.

“꺼어어억!”

“배커! 이, 이 자식!”

그대로 나가떨어지는 배커를 보자 제크론 라데우스가 그대로 분노를 터트리며 네르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네르하, 이 새끼! 적당히 해 주려고 했더니!”

“……!”

화륵!

―파이어 볼트!

배커가 앞에 나선 뒤에도 미리 캐스팅을 하고 있었는지 갑자기 제크론의 손에서 붉은 불꽃이 튀어나와 네르하를 덮쳤다.

‘괜찮군!’

순간, 타오르는 불꽃의 위력을 가늠한 네르하가 감탄을 토해 냈다.

고작 2레벨이라고 무시하기엔 빠르고 강하다. 적중당하면 단순한 화상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일격!

하지만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맞아 주진 않는다.

“말했잖나, 네놈들은 어설프다고.”

아무리 나름 기습적으로 쏘아 냈다고 해도 배커와 동일하게 제크론의 움직임은 어설프고 직선적이었다.

녀석의 마법은 탄착 지점을 너무 쉽게 예측할 수 있었고, 네르하는 신형을 살짝 튼 것만으로 날아오는 불덩이를 가볍게 피해 버렸다.

“허, 허억!”

“다음은 너지?”

“자, 잠깐!”

네르하는 당황하여 손을 내젓는 제크론을 향해 덤벼들었다.

놈들의 빈약한 육체 능력과는 별개로 마법의 위력은 상당하다.

괜히 시간을 끌다가 마법 한 방이라도 잘못 허용했다간 그대로 골로 갈 가능성이 컸다.

“기, 기다……!”

말을 끝맺기도 전에 네르하의 신형이 제크론의 눈앞에 쇄도한 게 먼저였다.

“바, 바스톤, 뭐 해! 당장 이놈을……!”

퍼억!

네르하는 놈의 입을 막기 위해 아래쪽 급소를 차버렸다.

그러니까, 국부라고 불리는 부분을 말이다.

“꺽! 꺼억!”

털썩!

그곳(…)을 가격당한 제크론은 전신을 덜덜 떨며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좀 너무했나?’

명색이 무림인이 일반인을 상대로 그곳을 노린 건 조금 부끄러운 일이긴 했다. 게다가 같은 남자로서 양심도 좀 찔리고.

어쨌든 배커와 제크론을 쓰러뜨린 네르하는 마지막 남은 바스톤이란 녀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중간에 덤빌 줄 알았는데 그래도 상당히 침착하군.”

“……정말 네르하 도련님이십니까?”

바스톤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네르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억에는 없지만 녀석은 배커와 제크론을 따라다니던 녀석이니 과거의 ‘네르하’가 어땠는지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 내가 네르하지 달리 누가 네르하인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됐고. 너도 싸울 거냐?”

“…….”

바스톤은 네르하의 도발에 고뇌하기 시작했다.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두 녀석이 당한 이상 부하 혹은 종자로서 그 복수를 하는 게 원칙이었다.

하지만 바스톤은 깔끔하게 복수를 포기했다.

“아뇨. 거절하겠습니다.”

“호오?”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군요.”

바스톤은 네르하에게 덤비는 대신 배커와 제크론에게 다가가 어깨에 얹었다.

‘흥미롭군.’

몸만 보면 마법사 가문이 아니라 기사 가문에 들어갔어야 할 녀석 같다.

전황을 판단하는 능력이나 끝까지 침착함을 유지하는 성미. 재능이나 실력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나 배커와 제크론의 밑에 있기엔 아까운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은 없나?”

움찔!

막 두 녀석을 얹고 시설 밖으로 나가려던 바스톤이 어깨를 움찔거렸다.

“그건 무슨 소리십니까?”

“말 그대로야. 두 놈의 밑에 있기엔 네 재능이 좀 아깝군.”

네르하의 칭찬에 바스톤의 귓불이 살짝 빨개졌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바스톤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

“죄송합니다. 이미 이분들께 충성을 맹세한 만큼 고작 이런 일로 주군을 배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가?”

“네. 그렇습니다.”

“아쉽군.”

네르하는 살짝 혀를 찼다. 확실히 권유 한 번에 넘어오는 것 역시 네르하가 기대했던 일은 아니었다.

“좋아. 어차피 나중에도 만날 인연인 것 같은데 천천히 인연을 이어가 보자고. 시간이 지나면 네 생각이 바뀔 날도 오겠지.”

“…….”

바스톤은 그 말엔 대답하지 않고 살짝 목례 후에 신형을 홱 돌렸다.

‘아깝다. 아까워.’

그렇게 사라지는 바스톤의 등을 바라보며 네르하는 간만에 든 인재 욕심에 살짝 혀를 찼다.

* * *

그렇게 배커와 제크론이 네르하에게 깨지고 돌아간 뒤.

뭔가 복수전을 해 오지 않을까 싶었지만 며칠이 지나도 네르하의 일상에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의외로 조용하군.’

뭐, 놈들이 조용히 있어 주면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

네르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자원은 시간이니까.

‘이 정도면 기본은 뗐다고 봐도 되려나?’

네르하는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염치 불고하고 클로이아에게 물어 대었다.

그럴 때마다 클로이아는 자세하고 성실하게 네르하의 질문에 답해 주었다.

그리고 이해가 제대로 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책 이곳저곳을 펼치며 문제를 내주기도 했다.

처음에 그렇게 귀찮아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대단하군. 남을 가르쳐 본 경험이 많나?’

네르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클로이아를 힐끗힐끗 바라보았다.

어떤 질문이든 클로이아의 대답엔 거침이 없었고, 종종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한 가르침 역시 쉽고 자세하게 풀이해 주었다.

‘사서라기보단 마치 교수를 대면하고 있는 느낌이군.’

클로이아의 도움 덕에 기초서를 떼는 진도가 훨씬 빨라졌다는 걸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네르하가 자신의 답변을 확실하게 이해했다는 것을 확인하자 기묘한 눈빛으로 네르하를 바라보았다.

“기억력이 상당히 좋으시군요. 이해하는 속도도 나쁘지 않은데 어째서 아직 2레벨에도 도달하지 못하신 거죠?”

“……그, 사정이 있다.”

네르하는 살짝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답변을 회피했다.

과거, ‘네르하’가 마법을 익히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됐던 건 바로 오성(悟性).

기억력과 직관력이 뒤떨어지는 ‘네르하’에게 마법은 적성에 그다지 맞지 않았다.

그 사실을 자각한 네르하는 그 순간부터 내공심법을 중단전 이상으로 끌어올리며 본격적으로 뇌, 즉 상단전의 개발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원래 상단전의 개발은 기경팔맥 중 가장 중요한 임맥(任脈)이 기본적으로 막혀 있는 탓에 어지간한 무인은 개발 자체를 시도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네르하에겐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이제 이곳에 머무실 필요는 없으실 거 같은데요?”

그렇게 10일째 오후가 지나 해가 뉘엿뉘엿 저물려고 할 때.

20항목에 달하는 클로이아의 질문을 완벽하게 답변한 네르하는 드디어 다섯 권의 기본서들을 100% 이해하는 데 성공했다.

클로이아는 천천히 책을 덮으며 네르하에게 말했다.

“이젠 이런 낡은 곳이 아니라 가문의 서고에 가셔서 복습하시면 될 거예요.”

“그런가?”

“어지간한 마탑의 학생들도 당신처럼 이렇게까지 기본서를 파고드는 예는 없지요. 아마 그들도 두세 개 문제 정도는 틀릴 거로 생각해요.”

“칭찬, 고맙군.”

네르하는 기지개를 켜며 허리와 어깨를 살짝 주물렀다.

책을 탐독하는 와중에도 내공심법을 꾸준히 운용하며 피로감을 없애긴 했지만 사용하지 않은 근육이 자연스레 뭉친 경우는 어쩔 수가 없었다.

단련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대부분을 이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보냈으니 말이다.

“그 다섯 권을 모두 이해하신 이상 이곳에서 더 이상 추천하는 서적은 없습니다.”

클로이아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누그러진 모습으로 네르하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그 모습을 본 네르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네?”

그 말에 클로이아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네르하는 피식 웃으며 지난 시간, 틈틈이 관찰하여 발견한 부분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저기, 교묘하게 문을 겹쳐서 막아 둔 곳. 저 너머에도 뭔가가 있는 거 같은데. 왜 저긴 말하지 않는 거지?”

“…….”

그 말이 끝난 순간, 클로이아의 표정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지금까지 보였던 태도가 마치 ‘연기’였다는 것처럼 급격한 변화였다.

“저곳이 왜 궁금하시죠?”

‘뭔가가 있군, 확실히.’

저 비밀 문을 발견한 것은 그저 우연이었다.

그리고 딱히 저 너머에 대한 관심도 없었다.

애초에 네르하는 이 기본서 학습이 끝나면 좀 더 높은 레벨의 서고로 옮기려고 했다.

그냥 가기 전에 그냥 살짝 찔러본 건데 돌아오는 반응이 꽤 극적이었다.

“왜, 나 ‘네르하 라데우스’에게도 말하기 힘든 비밀인가?”

“그건 아닙니다. 라데우스의 직계에겐 열람이 허용된 공간이긴 합니다.”

“그럼 왜 반응이 그렇지?”

“네르하 도련님의 수준으로 저 너머의 문건들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저곳에 관한 관심은 그만 거두어 주시길 바랍니다.”

“…….”

클로이아는 지금까지 ‘당신’ 혹은 ‘그쪽’ 이란 말로 네르하를 지칭해 왔지만 지금은 똑바로 도련님이란 말을 쓰며 정중하게 요청을 해 왔다.

네르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생각에 대한 답변을 얻었다.

“그렇군.”

네르하는 피식 웃으며 클로이아를 직시했다.

“너는 이 서고가 아니라 저곳을 지키기 위해 이 장소에 배치된 거로군.”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

사비연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