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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9화 (9/237)

9화

<계약 (1)>

사아아아!

그 말이 끝난 순간, 클로이아의 전신에서 극렬한 한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살기(殺氣) 같은 무형의 기운이 아니라 실제로 주변 공간을 얼리는 싸늘한 한기였다.

‘역시!’

네르하는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중원의 수준으로 따지면 최소 절정지경 이상, 아니, 어쩌면 초절정의 경지일 수도 있다.

뭐가 되었든 상대는 한빙기공의 대가라 할 수 있는 엄청난 실력자였다.

“역시 엄청난 고수(高手)였군.”

클로이아의 녹색 머리카락이 어느새 푸른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녀가 네르하를 향해 나지막하게 경고를 날렸다.

“아무리 라데우스의 직계라도 지나친 호기심은 명을 단축하는 법입니다.”

“그 말엔 어폐가 있군. 네 말대로라면 나는 저 너머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

“대체 뭐가 있길래 그렇게 날이 선 반응이지? 비리를 저지른 게 아니라면 말해 줄 수도 있잖아?”

네르하의 유들유들한 말에 클로이아는 살짝 독기가 빠진 모습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저 너머엔 가문과 마탑에서 결과물을 내는 데 실패한 연구 및 논문들이 모여 있습니다.”

“실패한 연구인데도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나?”

“그 연구와 논문엔 레벨과 위험도에 대한 제한이 없으니까요.”

“……!”

네르하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어째서 저 너머의 장소가 이런 저층에 숨겨져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말뜻은…….”

“네. 이해하셨군요.”

클로이아는 한숨을 내쉬며 저 비밀 문 너머에 존재하는 진정한 가치를 입에 올렸다.

“비록 실패했다고는 하지만 저 너머엔 9레벨, 즉 ‘대마법사’에 도달한 명사들의 연구 기록 또한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제가 이곳의 사서를 맡고 있지요.”

“그렇군.”

네르하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9레벨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마법의 끝에 도달한 절대자의 경지를 일컫는 말.

그 뒤로 10레벨이 존재했지만 그건 역사상 단 두 명만이 도달했다고 알려져 있으니 논외로 하고.

네르하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 또한 이해가 되었다.

“저 너머에 연구 결과를 남길 수 있는 자들이라면 적어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에 이르렀어야 할 테지. 그러니 내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단정 지었고.”

“이해하셨군요.”

클로이아는 대화가 통했다고 생각했는지 살짝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르하는 문득 이런 의문이 생겼다.

“젊어 보이는데 이런 중책을 맡고 있다니. 넌 나이가 몇 살…….”

“그 이상 말하면 라데우스고 나발이고 죽여 버리겠습니다.”

“…….”

진심이 절절히 담긴 그녀의 말에 네르하는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잠시 자신의 추태를 자각한 그녀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어쨌든 저 안쪽엔 초급 마법사에겐 오히려 보면 볼수록 독으로 돌아오는 것들이 잔뜩 있습니다. 당연히 윤리적인 문제로 인해 금기(禁忌)로 지정된 것들도 다수 존재하죠.”

“흠…….”

실패한 논문을 굳이 레벨과 계열을 나누어 보관할 리는 없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한곳에 모아 등잔 밑이 어두운 곳에 숨긴 것이다.

하지만 아직 궁금한 것은 있었다.

“그렇다면 가문 서고 중에 ‘마나 연공법’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려면 어느 서고로 가야 하지?”

“마나 연공법…… 말입니까?”

분명 첫날에 클로이아는 ‘초급 마나 연공법’이라는 기본서를 네르하에게 건네주었었다.

하지만 그 서적은 그야말로 기본적인 호흡법만을 다루고 있었을 뿐 오히려 본질은 인체 해부도에 더 가까운 서적이었다.

클로이아는 네가 왜 그걸 모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나 연공법은 비전 술식 중에서도 최고의 기밀이죠. 다른 건 몰라도 마나 연공법만큼은 아마 특수 서고에 가도 일정 수준 이상을 찾으실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런가?”

“애초에 당신은 라데우스의 비전 연공법을 익히고 있을 텐데 굳이?”

‘그걸 모르니까 그렇지…….’

네르하는 속으로 궁시렁거렸다.

본격적으로 마법을 익히기로 결심한 이상 이 세계의 마나 연공법이란 게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는 알아봐야만 했다.

그리고 네르하는 거기서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 마법과 무공을 병행할 수 있는 마나 연공법을 새로이 창안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네르하’가 지금까지 익혀 온 그 라데우스의 비전 연공법을 모른다는 점이다.

‘녀석의 기억을 이어받으면서 어느 정도 원리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모든 진체(眞體)를 모르면 함부로 운용할 수 없는 게 내공심법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사실, 네르하는 라데우스의 연공법을 알아도 그걸 그대로 익힐 생각이 없었다.

라데우스의 연공법은 아마 이 대륙 최고의 비전이겠지만 네르하는 어디까지나 무공과 마법을 병행할 생각이었으니까.

“저 안에도 마나 연공법이 있겠지?”

“…….”

“다른 건 필요 없어. 관심도 없고. 내가 원하는 건 마나 연공법 단 하나뿐이야.”

클로이아의 표정이 일그러지다 못해 구겨졌다.

대놓고 싫어하는 모양새였지만 네르하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상 이젠 더 이상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하아, 알겠습니다.”

그 비밀 문은 예상대로 단순히 자물쇠만 걸려 있는 게 아니었다. 자물쇠를 기준으로 상당히 복잡한 마법적 봉인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곳은 일반적으로 가문의 감시를 받지 않는 장소입니다만 이곳이 열린 경우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작은 원 안에 새겨진 수천수만 줄기의 회로. 이전, 자신이 풀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난이도의 봉인이었지만 클로이아는 손짓 몇 번으로 가볍게 해제하고는 ‘딱!’ 소리를 내며 자물쇠를 따버렸다.

“그리고 지금, 이 자물쇠를 따고 제가 10분 단위로 갱신하지 않는다면 가문의 무력 부대가 이유 불문하고 이곳을 잿더미로 만들 겁니다.”

즉, 네 목숨은 자기에게 달려 있으니 알아서 조심해라라는 경고였다.

“……명심하지.”

비밀 서고 안으로 들어온 네르하는 순간, 감탄을 터트렸다.

내부 공간은 밖에서 예상한 것보다 수십 배는 더 광활했다!

‘이게 그 아공간이라는 건가?!’

공간을 다룬다는 것은 신의 영역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세계의 인간들은 아주 간단하게 일상의 영역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마법이란 정말 유용하군.’

네르하가 감탄에 젖어 있을 때, 저 안쪽에서 클로이아의 새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공간,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그만 어물쩍거리고 빨리 들어와요.”

클로이아는 냉정하고 날카롭던 이전의 모습과는 달리 조금 신경질적으로 네르하를 대했다.

“자꾸 꾸물거리면 바깥에서 문 닫아버릴 거니까요.”

“한 성깔 하는군. 그게 네 본성인가.”

“당신이 자꾸 제 신경을 건드니 그렇죠.”

네르하는 천천히 서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저 너머까지 어둠이 뻗어 있을 정도이니 그 깊이가 다른 서고를 몇 개나 합친 크기는 되어 보였다.

단순한 문서 더미에서부터 이중 삼중으로 봉인이 된 기물(奇物), 표면에서부터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는 주물(呪物)까지.

단순히 실패작들로 채워 놓았다고 치부하기엔 위험한 것들이 많아 보인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아무거나 함부로 건들면 큰일 나니 주의하시길.”

“그 정도 눈치는 있다.”

만지는 것만으로도 영향을 받을 법한 것들이 잔뜩 있으니 클로이아의 날 선 반응도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마나 연공법 부분은 이쪽이에요.”

클로이아는 수많은 서류와 인체 모형들이 전시된 부분으로 네르하를 안내했다.

“이곳에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마나 연공법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물론 수준이 높다고 완성도가 높다는 말과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요.”

“흠…….”

네르하는 그중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걸 집어 들었다.

물론 네르하의 마법 지식으로 이곳의 논문들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마나 연공법만큼은 입장이 달랐다.

‘이건?’

네르하가 집어 든 논문의 내용은 심장에 마나를 쌓는 것이 아닌, 마법 술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두뇌에 직접 마나를 쌓아 마나 운용의 최적화를 꾀한 논문이었다.

그 방법을 실현하기 위해 연구자는 전신의 기혈 작용을 상당히 파고들었다는 노력이 보였고, 이것을 그대로 따라 마나를 운용한다면…….

‘소주천 세 번이면 뇌가 터지겠군.’

“…….”

네르하는 조용히 그 논문을 내려놓았다.

논문의 작성자는 7레벨에 달하는 제법 명성이 높은 마법사였는데, 7레벨이라고 하지만 인체 혈도에는 그렇게까지 통달한 이가 아니었다.

그 이후로도 네르하는 마나 연공법에 관한 논문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 마법사로서의 성실한 모습을 본 클로이아는 약간의 호의를 담아 충고하듯 말했다.

“아무리 네르하 님, 당신에게 이곳의 출입 권한이 존재한다고 해도 이 이상 계속 머무르면 가문 내에서 문제가 될겁니다.”

“…….”

“지금 막 갱신을 했으니 이걸 마지막으로 마무리하시죠.”

그 말에 네르하는 읽는 것을 중단하고 고개를 들었다.

“아무래도.”

“……?”

“내가 원하는 걸 찾으려면 너도 도와줘야 할 것 같군.”

“…….”

클로이아의 표정에 대놓고 ‘내가 왜?’라는 기색이 박혔다.

이곳에 존재하는 마나 연공법에 관한 논문만 무려 2천여 개에 달했으니 그런 표정이 나올 법도 했다.

네르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도와라, 사서.”

“으으!”

“내가 또 와서 귀찮게 구는 걸 원하진 않겠지?”

“망할 자식.”

짜증이 선을 넘었는지 클로이아의 입에선 욕설까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욕설이 항복 선언임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아, 빨리 끝내죠. 어떤 내용을 원하죠?”

“……흠.”

대답을 하기 전에 네르하는 살짝 고민에 잠겼다.

자신의 생각을 클로이아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아도 괜찮은가, 아닌가.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그걸 신경 쓰는 것도 웃긴단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예상이 맞는다면 클로이아가 라데우스의 직계 혈족 누군가에게 붙어 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으니까.

“기사의 마나 연공법.”

“……?”

“마법사의 마나 연공법과 기사의 마나 연공법을 접목하려던 사례가 있다면 찾아다 줬으면 좋겠군.”

기사의 하단전, 그리고 마법사의 중단전.

이렇게 많은 논문들이 쌓여 있는데 역사상 서로 간의 장, 단점을 중화시키고 장점만을 취하려던 연구가 없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무슨 생각으로 그걸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네르하의 말에 클로이아는 상당히 부정적으로 답했다.

“제 이름을 걸고 장담하건대 그 연구를 성공시킨 연구자는 역사상 단 한 명도 없었어요. 그게 성공했다면 이런 구석진 창고가 아니라 라데우스의 가주만이 볼 수 있다는 ‘임페리얼 아카이브’에 엄중히 보관되어 있겠죠.”

그게 아니면 연구자 가문의 비전이 되어 기록조차 남지 않았거나.

클로이아는 마지막 말은 조용히 삼켰다.

“상관없어. 몇 개가 되든 가져와 줘.”

“하아, 시간 낭비가 분명할 텐데…….”

클로이아는 이미 그 주제의 논문을 읽어 본 적이 있었는지 휘적휘적 걸어가 한 거대 책장의 윗부분을 모조리 털어서 가져왔다.

“여기 있어요. 총 열다섯 논문. 모두 8레벨 이상의 대마법사들이 시도한 것이지만 전부 실패해 폐기 처분 지정을 받은 것들이죠.”

“빨라서 좋군.”

네르하는 재빨리 그 논문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실패했다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원한 것은 개선 작업에 도움이 될 만한 이론과 실패 사례들. 그걸 기반으로 시작하면 시간을 압도적으로 줄일 수 있지.’

내공심법을 새로 창안한다는 건 시간이 보통 걸리는 일이 아니었다.

‘사문의 심법만으로도 마법을 펼치는 데 부족함은 없겠지만 그래도 더 효율적인 길이 있다면 그것을 파고드는 게 맞겠지.’

네르하는 남은 시간을 모두 소모하며 논문들을 읽어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장점만을 취하려던 그 시도는 어느 한 곳에 큰 부작용이 생기거나, 이도 저도 아닌 결과가 되는 것들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일정 부분에서 어떤 부작용이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언급들은 앞으로의 심법 창안에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5분 남았어요. 슬슬 마무리하세요.”

한 시간은 열다섯 개의 논문을 모두 읽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네르하는 인상을 쓰며 논문을 읽는 속도를 빠르게 더해갔다.

그러던 와중.

네르하의 눈에 띈 논문이 하나 나타났다.

‘어, 이건?’

[뇌와 심장과 하복부에 세 가지 마나 저장소를 만들어 순환하는 방법에 대한 소고 – 19대 마탑주, 카르안 라데우스.]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

사비연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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