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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59화 (59/237)

59화

<암시장 (3)>

“…….”

페텔의 제안에 네르하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지금 상황에서 길게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1초가 억겁같이 느껴지는 상황에서 드디어 네르하의 입이 열렸다.

“확률은 반반입니다.”

“반반이라고?”

“물론 지금만큼 이 암시장 내부로 진입할 기회는 없겠죠.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네르하의 눈이 살짝 가라앉았다.

“놈들이 과연 그 ‘증거’가 있는 곳에 전력을 놔두지 않았을까요? 그곳의 보안이 어느 정도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니 확률은 반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암시장에서 실력자라고 해 봐야 얼마나 강하겠냐마는.

아무리 고수라고는 해도 의식의 사각지대에서 찔러 오는 함정은 위험한 법이다.

“으으윽!”

결국 네르하의 조언은 반반이라는 이름의 보류에 가깝다.

마하타는 고민했다.

사실, 마하타는 아크 내에서 가장 공훈에 목말라 있는 마법사였다.

정신계 마법사. 이름은 그럴듯하지만, 정신계 마법사가 활약할 수 있는 분야는 정말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방금처럼 대장인 엘림이 마하타를 추적에서 제외하고 애송이들을 맡긴 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특수한 몇몇 상황을 제외하면 마하타는 대부분 임무에 묻어가는 편이 잦은 편이었다.

그건 라데우스에 속한 마법사로서 지극히 굴욕적인 일이었다.

“가 보자.”

“……!”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자 페텔의 표정이 환해졌다.

반대로 신중한 의견을 낸 네르하는 입을 다물었다.

“페텔기우스의 말대로 이번 상황은 큰 기회가 될 수 있어. 만약 안 된다 싶으면 빠르게 빠져나오자고.”

“네!”

“……알겠습니다.”

네르하 역시 현재 지휘권자의 말을 거부할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어차피 흑마법사들의 존재가 확인된 이상, 여기서 계속 몸을 숨기며 이동할 필요는 없어.”

마하타의 이후 지침은 속전속결로 돌파하는 것이었다.

“……! 침입자가 여기……!”

털썩!

막 침입자를 발견한 경비가 빠르게 목청을 돋우었으나 그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갑자기 기절해 버렸다.

마하타 역시 정신계 고유 계통을 각성했다고는 하나 6레벨의 마법사.

그녀는 정신계 마법을 충분히 공격형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역량이 있었다.

―마인드 쇼크!

털썩! 털썩!

마하타의 손에서 기묘한 기파가 터져 나오면서 주변에 있던 경비들이 하나같이 저항도 하지 못하고 쓰러지기 시작한다.

저 마나도 아니고 소리도 아닌 이상한 힘을 퍼트려 상대를 제압하는 건 그야말로 생전 처음 겪어 보는 종류의 전투 방식이었다.

‘배울 게 많군.’

마하타 역시 자존감이 조금 낮을 뿐, 충분히 라데우스의 전투부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실력자였다.

그렇게 가로막는 이들을 모두 따돌리고 일행들은 암시장의 중심부. 즉, 가장 귀하고 값진 것들만 모아 놓은 창고에 도달하고 말았다.

의외로 보안이 그리 철저하지 않은지 해제 마법 몇 번에 경비 마법이 해제되었다.

“괴, 굉장해!”

그리고 그 안에 있던 온갖 보물급 아티팩트와 화려한 장신구들은 귀족가 출신인 페텔과 헤젤조차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값어치가 높은 것들이었다.

‘엄청나군.’

네르하 역시 그들과는 다른 의미로 놀랐다.

주변에서 피어오르는 황홀한 영기.

대부분 봉인이 되어 있지만, 그 틈을 비집고 흘러나올 정도로 강렬한 영약급들이 주변에 널려 있던 것이다.

“너희들! 정신 팔지 말고 빨리 장부 같은 걸 찾아!”

그나마 오랜 임무 속에서 이런 것에 익숙해진 마하타가 세 명을 독촉하며 어질어질한 정신을 깨웠다.

마하타의 일갈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페텔과 헤젤은 창고를 뒤적거리며 무언가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쩝, 아쉽군. 하나 꿍쳐 갈 수 있다면 좋겠는데.’

하나같이 전부 마법적인 봉인이 걸려 있어서 풀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들뿐이었다.

시간만 넉넉하면 클로이아는 물론 자신도 먹을 만한 것들을 찾을 수 있겠는데 말이다.

그렇게 거의 3분가량이 흘렀다.

‘뭔가 이상해.’

모두가 여전히 증거를 찾지 못해 창고를 뒤적거리던 때.

네르하는 자신의 감각을 간지럽히는 강렬한 위화감을 느꼈다.

‘나름 소란을 피우며 들어왔는데 아무도 이곳을 찾아오질 않고 있다.’

바깥의 소요가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네르하는 그게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찾았다!”

그때, 마하타가 기쁜 탄성을 내지르며 한 뭉치의 장부를 찾아내었다.

“확실해! 이것만 가지고 가면 이번 임무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우는 건 내가 될 거야!”

마하타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공명심이 깃들어 있었다.

네르하는 그런 마하타를 향해 다급히 외쳤다.

“빨리 탈출해야 합니다.”

“그, 그렇지! 빨리 나가야지!”

“뭔가 이상합니다. 이런 중요한 장소에 경비 하나 놔두지 않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치직!

그 순간.

네르하의 본능이 경종을 올렸다.

“엎드려!!”

네르하가 큰 목소리를 내지르며 다급하게 몸을 날렸다.

“……?!”

마하타는 물론 페텔과 헤젤 역시 네르하의 말뜻을 뒤늦게 알아듣고 몸을 숙이려 했지만.

파지지지직!

고요하고 새하얀 번개가 장내를 휩쓸어 버리는 것이 더욱 빨랐다.

“크아아악!”

“꺄아아아악!”

6레벨 마법사인 마하타가 제대로 대처조차 하지 못한 은밀한 기습!

그것도 요란하기 짝이 없는 라이트닝 계열 마법을 이렇게까지 조용하게 시전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헐헐헐! 눈치가 아주 빠른 아해로구나.”

“…….”

이들 중 유일하게 공격을 피한 네르하가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어느샌가 새하얀 수염을 기른 한 근육질의 노인이 자리에 서 있었다.

네르하는 그 노인의 모습을 보는 순간, 깊은 낭패를 느꼈다.

‘……고수다!’

그것도 엄청난. 이런 곳에 있어선 절대 안 될 고수!

노인은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오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어두웠던 창고 내부에 환한 빛이 발하기 시작했다.

“사일런트 스톰은 나름 자신 있는 역작이거늘. 시전 직전에 나오는 그 작은 전압 소리를 알아차리고 피했다? 허허, 믿기질 않는구나.”

네르하는 긴장감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며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장은 누구십니까?”

“누구긴? 여길 잠깐 관리하는 늙은이지.”

노인은 천천히 네르하에게 다가와 십여 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자리를 잡았다.

‘덩치가 상당하군.’

네르하는 아주 조용히 눈알을 굴려 아군의 상태를 파악했다.

생각했던 위력에 비해 천만다행으로 사망자는 없었다.

“……봐주신 겁니까?”

“흠, 글쎄?”

노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씨익 웃었다.

“라데우스의 아이들이 이런 위험한 곳까진 어인 일일꼬? 참으로 궁금하구만.”

“…….”

네르하는 그 순간, 앞뒤 상황을 깨달았다.

마법사면서 라데우스라는 걸 알고 있고, 상당한 실력자.

“당신이군요. 우리의 정체를 알아채고 세이라를 통해 시장에게 알린 장본인이.”

“허허허.”

“그리고 시장의 조언자라는 은둔한 마법사라는 것 역시 당신이겠고요.”

“정답일세.”

단순히 조언자라면 이런 중요한 곳의 관리자로 있을 리가 없다.

‘생각보다 시장과 훨씬 긴밀한 관계였어.’

그때, 네르하의 생각을 읽었는지 노인이 손을 휙휙 내저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 아,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딱 보이는군. 나는 켈릭스 녀석에게 조금 신세를 져서 이곳을 관리하고 있을 뿐, 딱히 암시장의 일에 관여하고 있진 않네.”

‘어차피 이런 곳까지 도둑질하러 오는 간 큰 놈도 거의 없으니’라는 노인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네르하는 그 말에 부정적인 모습을 피력했다.

“글쎄요.”

“믿든 말든 그건 자네의 자유일세.”

“당신은 딱히 흑마법사가 아닌 듯한데 그들의 짓거리를 용납하고 있단 말입니까?”

네르하의 말에 노인의 콧구멍이 한순간 벌렁거렸다.

“흠? 뭘, 라데우스의 직계, 그것도 계승 후보인 자네가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제법 웃기구만.”

“……!”

우둑!

네르하는 그 순간, 자신의 전의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며 살심을 품었다.

상대는 자신들이 라데우스라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까지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거참, 성질 급하기는. 걱정 말게. 자네의 정체까진 켈릭스 녀석에게 일러바치진 않았으니까.”

“…….”

“즉,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라데우스도 그리 깨끗하진 않다는 걸 잘 알 텐데 그런 위선자 같은 말을 하는 자네의 말이 웃기다는 것일세. 이해하였는가?”

시장에겐 알리지 않았다라?

상당히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노인의 모습에 네르하가 물었다.

“목적이 뭡니까?”

“그건 침입자인 자네에게 내가 할 말이지.”

“말장난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정말로 진지하게 시장의 의뢰를 받아들였다면 이렇게 말장난이나 하고 있진 않을 테니까요.”

“헐헐헐, 그래. 그렇긴 해.”

노인은 껄껄 웃으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참으로 웃음이 많은 노인네였다.

“그래. 방금 전 네 말에 대한 대답부터 해 주도록 할까? 내가 왜 흑마법사 놈들을 내버려 두냐는 말에 대한 대답은, 난 딱히 흑마법사들을 싫어하진 않으니까라고 말해 두지.”

“…….”

“그렇다고 가까이하지는 않지만 라데우스처럼 아예 경기를 일으키진 않는다는 거다. 내가 그런 성향이라면 이런 뒷골목에서 소일거리나 하고 있을 리가?”

“그건 맞는 말이군요.”

네르하는 필사적으로 노인의 목적이 무엇인지 헤아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정보가 부족했다.

“머리 잘 굴리고 있구만.”

그런 네르하의 모습을 본 노인이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

“내 목적이 뭔지 궁금하겠지? 응? 궁금하겠지?”

“네. 미칠 정도로 궁금하군요.”

미쳐서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얄밉다.

“뭐, 그걸 알려 주는 건 딱히 어렵지 않지. 하지만 그 전에…….”

고오오오!

막대한 마력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노인의 입가에 호전적인 반달 미소가 맺혔다.

“실력 좀 보자꾸나.”

* * *

노인과 네르하가 대치했다.

“마법사로선 한없이 미숙한 놈이로고. 기껏해야 3레벨. 아주 잘 봐줘야 4레벨인 수준인가?”

“…….”

“하지만 기대가 되는구나. 보이는 그대로가 다라면 그 미치광이 광신도를 죽였을 리가 없으니까.”

“은둔하셨다고 했으면서 바깥 사정에 밝으시군요.”

라데우스 내부에서도 극비로 부쳐졌을 리브라의 일의 내막을 아는 걸 보면 말이다.

“뭘, 다 내 능력이 출중한 탓이지.”

진짜 주먹 한 방 강하게 먹이고 싶다.

네르하는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때, 노인이 네르하에게 아주 솔깃한 제안을 해 왔다.

“만약 내게 유효타를 한 방이라도 먹일 수 있다면, 이곳에 존재하는 것들 중 아무거나 하나를 가져갈 수 있게 해 주마.”

“정말입니까?”

“뭐, 켈릭스 녀석은 노발대발하겠지만 그 정도 무마할 능력은 있다.”

“거기에 더해 순순히 우리를 놔주겠다고 약속하십시오.”

“크하하하! 물론이지!”

스윽!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네르하의 신형이 노인의 앞에 도달했다.

“……!”

노인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진 순간.

“약속 지키십쇼.”

블레이즈 피스트!

나선의 형태로 휘감긴 네르하의 주먹이 그대로 노인의 얼굴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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