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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90화 (90/237)

90화

<교류전의 시작 (1)>

리브라의 학장 루트비히 라데우스는 거대한 거울을 통해 누군가와 초장거리 화상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최근, 대륙 전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던 이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쳐들고 있더군요.

“맞소. 판데모니움(악마전)은 물론이고 ‘디아스포라’ 같은 광신도들이나 ‘동부 연맹’까지 그 꼬리가 포착되었소.”

―이런 때야말로 두 가문이 화합하여 건재함을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옳은 말이오.”

거울 너머에 앉아 있는 존재는 루트비히와 비슷한 연배의 노인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보면 일반적인 노인이나 다름없는 루트비히에 비해 상대는 시저와 호형호제할 정도로 우람하고 단단한 근육을 자랑하고 있었다.

루트비히가 상대의 이름을 읊었다.

“아센시오 총장.”

검의 낙원 총장, 아센시오 엘 케프렌.

검제(劍帝)의 경지에 올라 있는 대륙 최고위 기사 중 한 명이자 과거엔 케프렌의 무력을 상징하는 창천 기사단의 단장을 역임한 자이기도 했다.

라데우스와 케프렌은 대대로 서로 잡아먹지 못한 앙숙이었지만 그렇다고 두 가문이 존망을 걸고 싸울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적대적 공생 관계.

둘 모두 워낙 거대한 세력이 되어 버린 탓에 결국 두 가문은 서로가 이득이 되는 한에선 협력하기도 하는 그런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센시오는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교류전엔 화합의 의미로 케프렌의 직계를 한 명 포함시킬 생각입니다.

그 말에 평온하던 루트비히의 눈가가 살짝 씰룩였다.

“직계라고 한다면?”

―아시다시피 작년, 검의 낙원에 들어온 아네시스 케프렌이란 아이입니다. 공식적으로는 계승 서열 7위에 있는 아이지요.

아네시스 케프렌.

본래 바깥에 공표된 존재는 아니었지만 라데우스의 정보력이라면 어떻게 알고 있지 않느냐?라는 어조가 담긴 말이었다.

“허허, 계승 서열 7위라니.”

가주 직을 노릴 만한 서열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 있는 숫자도 아니었다.

그 순간, 루트비히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쪽에서 큰마음 먹고 직계를 보낸다면 이쪽 역시 그에 걸맞은 성의를 보일 수밖에 없겠군요.”

―호오, 그 말씀은?

이전 시저가 말했던 이야기가 현실이 되자, 루트비히는 준비해 두었던 말을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리브라 역시 이번 교류전에 라데우스의 직계인 네르하를 내보내도록 하지요.”

―네르하 라데우스라, 하하하! 라데우스의 차세대를 책임질 훌륭한 동량이라 들었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루트비히는 보았다.

너털웃음을 짓는 아센시오의 입가가 아주 잠깐 뒤틀렸다는 것을.

그 뒤틀림이 ‘비웃음’이라는 걸 루트비히가 모를 리가 없었다.

―비록 친선전이라고는 하나 직계 간의 대결은 거의 30년 만에 있는 일 아닙니까? 이거, 괜히 심장이 소년처럼 두근거리는군요. 허허허허!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오. 하하하!”

아무리 케프렌이라고는 하나 리브라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하는 건 불가능한 일.

과거, 유명한 낙오자였던 네르하의 평가가 지금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것을 아직 케프렌 측에선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루트비히는 그 사실을 확인하고는 아주 편안하게 소파에 몸을 묻었다.

“그럼, 서로에게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도하겠소.”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류전의 특성상 양쪽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그걸 알면서도 두 사람은 화기애애하게 덕담을 나누다가 대화를 종료했다.

“흐음.”

아센시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웃음기를 만들던 루트비히의 표정이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공주’를 이쪽으로 보낸 건 다른 쪽이었나?”

검의 낙원에서 ‘아네시스 케프렌’이란 직계를 보낸다는 건 놀라운 일이긴 해도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무려 계승 서열 ‘2위’에 있는 ‘공주’의 존재를 총장인 아센시오가 대화 내내 단 한 번도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케프렌 내부도 꽤나 혼란스러운 모양이군.”

거의 막내에 가까웠던 후계 하나가 반년 전 갑자기 계승 서열 1위를 차지한 이후 케프렌 내부에서 간간히 흘러나오던 정보는 뚝 끊기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대공자가 된 이의 성인식이 이제 곧이라고 했었나?”

루트비히는 올 초에 가주에게 왔던 케프렌의 편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대공자 겸 원탁의 기사로 발탁된 ‘아렌 엘 케프렌’의 성인식에 라데우스의 사절이 축하를 건네줬으면 한다는 취지의 편지였다.

‘흐음, 아무래도 가주는 네르하를 보낼 생각인 것 같은데, 어쩌면 케프렌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군.’

뭐, 그건 일단 이번 교류전이 끝난 뒤의 일이 될 것이고.

지금은 무엇보다 교류전에 집중해야 할 시기였다.

“비장의 카드를 내보내는 건 썩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어차피 네르하를 케프렌으로 보내는 것이 확정되었다면야.”

아이작 페르시치.

레메디오 로브렌.

페텔기우스 소튼.

헤젤 아그라혼.

이번 교류전에 내보낼 명단을 확인한 루트비히는 가장 마지막 줄에 ‘네르하 라데우스’라는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 * *

쩌저저적!

창끝에 맺힌 날카로운 뇌기가 적을 향해 날카롭게 쇄도했다.

창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초보자를 갓 넘어선 수준이었지만 주의해야 할 점은 창이 아닌 창에 서린 뇌기.

단순히 파괴력만 따지자면 절대 무시할 수가 없었다.

네르하는 찌릿찌릿하는 피부의 감촉을 느끼며 웃었다.

“그 무기를 다루는 데 꽤나 익숙해진 것 같구나, 배커.”

“이이익!”

배커는 이를 악물며 네르하에게 전격의 창을 날렸지만 이미 사전에 그 궤도가 모조리 읽혀 버렸다.

아무리 뇌전이 빨라도 발사 지점이 유추된 이상 배커의 공격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파지지직!

네르하는 저 멀리 박혀 있는 뇌전의 힘을 감지하며 혀를 찼다.

“맨몸에 직격당했다면 뼈도 못 추렸겠군.”

“빌어먹을 새끼! 어떻게 한 발을 맞히지 못하는 거지?!”

배커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네르하의 실력에 통탄하며 창대를 꽉 쥐었다.

나름 한 방 먹이겠다고 지금까지 뼈를 깎는 수련을 거쳐 마창 바이던트를 길들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라진 건 없었다.

저 괴물 새끼는 그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 듯 보였다.

네르하는 배커의 공격으로 엉망이 된 주변 대련실의 광경을 보며 냉정하게 말했다.

“당연히 안 맞지, 그런 초짜의 공격엔.”

“초짜라고?”

네르하는 움찔거리는 배커를 향해 엄중하게 충고했다.

“무기를 길들여 마법의 파괴력을 한껏 높인 건 좋았는데 그렇게 궤도와 의도가 모두 읽혀서야 쓰나?”

“…….”

“하나 묻자. 배커, 너. 창술을 수련한 적은 있나?”

“창술이라고?”

배커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사실,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창을 얻은 김에 교본을 보며 기초만 단련했던 수준이고, 그걸로 어디 가서 창술사라고 자랑했다간 욕 한 사발 푸짐하게 들어 먹기에 딱 좋았다.

“일단 그 창을 다룰 수준이 된 건 칭찬해 주지.”

네르하는 배커가 바이던트를 다루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했다는 걸 대번에 알아챘다.

수여식에서 얻게 되는 아티팩트 정도 되면 어설프게 다뤘다간 소유자 본인이 큰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마도구로 ‘아티팩트’를 길들이는 것과 무기로서 ‘창’을 활용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야.”

“…….”

“그런 면에서 넌 본격적으로 창술을 좀 더 파고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배커.”

지금의 배커라면 이류 무인 수준의 창술만 익혀도 지금보다 배는 강해질 거다.

저 바이던트란 창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근접전과 원거리전을 오가면서 훨씬 다양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전략을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배커는 네르하의 말에 한참을 침묵했다.

녀석 역시 느끼는 게 있었는지 자신의 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모양새였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조언, 고맙게 받아들이지.”

“그러냐?”

“다음번에 도전할 땐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 거다.”

네르하는 피식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다른 데서 힘 빼지 말고 우리, 단련실에서 같이 하는 건 어떠냐?”

“지랄 마라.”

이 부분에선 타협점이 없었는지 배커는 신형을 홱 돌리며 대련장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거참.’

네르하는 그런 배커의 뒷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짐승 같은 승부욕과 끝없는 향상심.

막 리브라에 들어왔을 때의 배커는 그냥 가문의 이름값에 기대기만 하는 철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바스톤과 진검 승부로 겨뤄도 꽤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 같은데?’

성격은 좀 모나긴 했어도 재능만큼은 라데우스란 이름값을 짊어질 수준은 되었다.

‘저놈을 어떻게 해야 구워삶을 수 있을까?’

네르하가 한숨을 내쉬며 배커가 사라진 장소를 바라보고 있을 때.

“수고하셨습니다, 주군.”

주변에서 참관하던 바스톤이 네르하에게 수건을 건네며 다가왔다.

“갑작스런 대련이라 당황하셨을 텐데 잘하셨습니다.”

“당황은 무슨. 햇병아리 하나 상대하는 건데, 뭘.”

네르하와 배커가 대결을 한 이유는 정말 별거 없었다.

그냥 평소 단련실에 박혀 있던 네르하에게 갑자기 배커가 찾아와 한판 붙자고 호기롭게 도전장을 날린 것이었다.

아마도 네르하가 루트비히에게서 대련장의 사용 권한을 얻게 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한 모양이었다.

“배커 도련님의 실력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군요.”

“그렇지. 아마 또래에선 거의 적수가 거의 없을 거다.”

사실 라데우스의 방계인 만큼 입학 때부터 최상위권인 수준이었지만, 지금에 이르러선 어지간한 윗기수들도 충분히 잡아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주군께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덕이겠죠. 예전의 배커 도련님이었다면 상상도 하지 못할 모습입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

네르하가 라데우스의 낙오자라면 배커는 라데우스의 망나니다.

망나니와 낙오자라. 제법 괜찮은 조합이지 않은가?

네르하는 살짝 턱을 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저 새끼를 어떻게 꼬드기지? 이렇게 계속 홀라당 빼먹고 가기만 하고 성과는 없어서 큰일인데.”

입술을 비죽거리는 네르하의 모습에 바스톤은 쓴웃음을 지었다.

“언젠간 배커 도련님도 주군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겠죠.”

“헤아리기만 하고 행동은 없을 것 같아서 하는 문제지. 배커, 그 새끼. 은근히 양심이 없으니까.”

아무래도 특별한 사건이 없다면 배커와의 관계는 이대로 수평선을 달릴 확률이 높다.

“흐음, 뭔가 사건 하나 터지지 않으려나?”

* * *

네르하의 바람과는 달리, 그 후로 아주 잔잔하게 2주가 지났다.

배커를 함정의 나락(…)으로 빠뜨리기 위한 네르하의 기도가 무색하게도 별다른 사건 없이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갔다.

“훅! 훅! 후욱!”

리브라의 외곽 지역에 위치한 사설 훈련장.

인기척이 드문 그 외곽 지역에서 배커는 목창 하나를 손에 쥐고 열심히 창술을 수련하고 있었다.

‘찌르고 베고 때리고 밀어낸다.’

그야말로 창술의 기본 중의 기본.

이 짓을 계속한 지도 벌써 2주째다.

사실, 리브라에서 창술을 배우려면 네르하 일당이 차지하고 있는 단련실에서 교관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가장 빨랐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배커는 차마 네르하가 있는 단련실에 기웃거릴 수 없었고, 그나마 몰래 손을 써서 창술 교관을 외곽 지역으로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교관의 조언과 가르침을 따라, 배커는 정식으로 창술에 입문했다.

‘반드시, 다음번에는 제대로 한 방 먹인다!’

그렇게 배커가 독하게 마음을 먹고 창을 휘두르고 있을 때.

저 멀리 누군가의 입에서 거슬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런 걸 창술이라고 휘두르고 있다니 정말 허접하기 그지없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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