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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91화 (91/237)

91화

<교류전의 시작 (2)>

“지금, 어떤 놈이…….”

배커는 천천히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본 배커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기사?”

이곳, 리브라와는 전혀 인연이 없을 하프 플레이트 메일과 허리춤에 매여 있는 검.

게다가 상대는 한 명이 아니었다.

“검의 낙원에서 온 놈들이군.”

“훗, 최소한의 눈썰미는 있는 모양인데?”

가장 선두에 서 있던 금발의 청년이 입꼬리 한쪽을 올렸다.

눈썰미고 자시고 가슴 한쪽에 검의 낙원의 문양인 삼색의 꽃을 대놓고 새겨 두고 있는 만큼 모르는 게 바보였다.

배커는 눈살을 찌푸리며 놈들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함부로 남의 수준을 논하면서 자신들의 격을 스스로 떨어뜨리진 말아 줬으면 하는군.”

“뭐라고?”

이번엔 상대의 표정이 일그러질 차례였다.

그는 배커의 손에 들린 목창을 가리키며 비웃었다.

“고작 그따위의 수준으로 창술을 논하다니. 주술쟁이는 그냥 얌전히 손이나 꼼지락거릴 것이지!”

“뭐? 이 빌어먹을 새끼가!”

요즘, 네르하 때문에(?) 성질을 많이 죽여서 그렇지 배커는 원래 참을성이 많은 성격이 아니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배커는 그 목창을 상대에게 겨누며 살기등등하게 외쳤다.

“그렇게 수준을 논할 거면 어디 보여 봐라!”

“하! 하지 말라면 못 할 것 같나?”

상대는 허리춤에 매인 검을 검집 채로 뽑아 배커에게 겨누었다.

하지만 그때.

“참아, 제스! 여긴 검의 낙원이 아니다.”

그래도 최소한의 사리 분별은 하는 놈들이었는지 대번에 옆에 있던 놈들이 제스라는 녀석을 가로막았다.

“시라스 님이나 아네시스 님이 아시면 경을 칠 거다.”

“어쭙잖게 창을 모욕하는 저놈의 모습에 열이 받은 건 알겠지만 여긴 싸울 장소가 아니야.”

마지막 놈은 말리는 건지 등을 떠미는 건지 모를 정도였다.

“이 새끼!”

배커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상대에게 창을 휘둘렀다.

“어딜 감히!”

제스라 불린 금발의 청년은 배커의 허술한 일격을 가볍게 피하며 그대로 검집으로 배커를 후려쳤다.

퍽!

“크으윽!”

검집으로 맞은 탓에 그리 큰 충격은 아니었다.

배커는 이를 악물고 그대로 계속해서 창을 휘둘렀지만.

“허접하다고 몇 번을 얘기해야 하나?”

상대의 능수능란한 대처에 휘말려, 배커는 그대로 몇 발자국 뒷걸음질을 치다 기어코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런 배커의 모습에 대번에 상대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하!”

“기사한테 무기를 휘둘러?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그런 상대의 비웃음에 배커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뚝 끊겨나가는 것을 자각했다.

“죽여 버리겠어!”

고오오오!

“……!”

대번에 심상치 않은 마력이 배커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생각보다 훨씬 높은 배커의 수준에 제스를 비롯한 검의 낙원 기사들의 표정이 대번에 굳어졌다.

하지만.

“흥!”

쏜살같이 뛰쳐나간 제스가 그대로 배커를 기습했다.

“제스!”

“죽이진 않을 테니까 걱정 마!”

달려오는 제스를 향해 배커가 빠르게 무영창으로 에너지 볼트를 날렸다.

축구공만 한 크기의 에너지 덩어리를 마주한 제스가 피식 웃으면서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고작 그 정도 무영창으로 뭘 하겠다고!”

서걱!

‘젠장!’

너무나 가볍게 잘려 버린 에너지 볼트.

저런 놈을 제압하려면 못해도 3에서 4레벨의 마법은 사용해야 하는데 문제는 그만한 마법을 무영창으로 하기엔 아직 배커의 수준이 많이 모자랐다.

‘내 창만 있었어도!’

괜히 창술을 수련하겠다고 창을 기숙사에 놓고 온 것이 화근이었다.

“먼저 선빵을 갈겼으니 처맞아도 억울하진 않겠지?”

퍼억!

제스의 검집이 그대로 배커의 얼굴에 직격했다.

“크읍!”

“안 끝났어!”

퍽! 퍽! 퍼억!

제스는 마치 개를 때려잡듯 배커를 두들겼다.

끝까지 참았다면 모르겠지만 먼저 마법을 날린 이상 배커에겐 더 이상의 명분이 없었다.

“후, 독한 새끼. 끝까지 비명 한번 안 지르는군.”

바닥에 널브러진 배커를 향해 제스가 조소를 날렸다.

“다음부턴 상대를 보고 시비를 걸어라.”

먼저 시비를 건 쪽은 분명 제스지만 패자에겐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사절단 분위기가 좋지 않은데 거지 같은 놈이 걸려서는……. 퉤!”

“…….”

“가자. 집합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 넌 뭐야?!”

대체 어느새 튀어나왔을까?

제스는 한순간, 자신과 배커의 사이에 은갈색 머리의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을 보고 속으로 기함했다.

‘어, 언제?!’

그야말로 귀신과도 같이 나타난 은갈색 머리의 청년, 네르하가 입을 열었다.

“이건 무슨 일이지, 배커?”

“…….”

“이 새끼들은 또 뭐고?”

네르하는 서늘한 눈빛으로 기사 복장을 한 떨거지들을 훑어보았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네르하는 배커를 어떻게 놀려댈지 매우 기대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무리 배커가 몰래 교관들에게 창술을 배우려고 해도 단련실에 배정된 교관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네르하의 충복이나 다름없는 상황.

당연히 배커의 얕은 노림수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네르하의 귀에 진실이 들어가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희희낙락하며 배커를 놀리기 위해 나왔는데.

지금 이 상황은 대체 뭔가?

“넌 나서지 마라. 너까지 나서면 일이 복잡해지니까.”

비틀거리면서 일어난 배커의 말에 네르하의 표정이 구겨졌다.

“뭘 어쩔 셈이냐?”

“끝장을 봐야지.”

배커의 눈이 서슬퍼렇게 빛났다.

“나는 라데우스다. 감히 케프렌의 밥을 먹는 새끼들한테 처맞고 끝날 수는 없어.”

“라, 라데우스라고?”

대번에 그들의 표정이 일변했다.

“그, 그러고 보니 저놈 머리 색이!”

한 녀석의 손가락질에 대번에 모든 시선이 배커의 머리로 모였다.

라데우스 가문을 상징하는 은갈색 머리카락.

비록 배커의 머리 색은 은색보단 갈색에 좀 더 가까웠지만 그렇다고 이런 특징을 캐치하지 못하고 넘어간 건 명백한 실수였다.

“어째서 라데우스의 혈족이 이런 곳에서 창술 연습을?”

제스와 일당은 당황했다.

아무리 사고를 쳤다고는 하나 일개 생도를 건드린 것과 라데우스의 혈족을 건드린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장소도 장소인데다 주변에 추종자 하나 없는 걸 보면 분면 별거 없는 놈이라고 생각해서 시비를 털었는데.

‘젠장! 똥 밟았다!’

기세등등하게 다가오는 배커의 모습에 제스는 살짝 뒷걸음질을 쳤다.

승패를 떠나 여기서 계속 싸우는 건 자살행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때, 제스 일행의 뒤에서 날카로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 지금 뭐 하는 거냐?”

“……!”

“시라스 님!”

저들에게 시라스라 불린 자는 마치 여성으로 착각할 정도로 긴 금발의 남성이었다.

거기에 더해 주변에는 십여 명에 달하는 기사들을 대동하고 있었는데, 딱 봐도 검의 낙원에서도 거의 리더급으로 보이는 인사인 듯싶었다.

‘…….’

네르하는 묘한 눈으로 저 멀리서 다가오는 시라스라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닮았군. 그리고 실력도 제법?’

아주 잠깐, 네르하의 뇌리에 익숙한 누군가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

시라스가 제스를 내려다보며 싸늘한 눈으로 쏘아붙였다.

“지금, 뭐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아니, 그, 그게…….”

“난 너희에게 자유 시간을 주었지, 사고치며 방종하라 하진 않았다.”

“……죄, 죄송합니다.”

서로 간의 격차가 많이 나는지 제스는 대번에 꼬리를 말고 시라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시라스 루 케프렌이오. 일행이 무슨 무례를 저질렀는지는 몰라도 모자란 놈 대신 정중히 사과를 드리겠소.”

“케프렌이라.”

‘루’라는 미들 네임을 보면 아마 배커처럼 방계에 속한 인물인 듯했다.

네르하는 고개를 살짝 꺾으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네르하 라데우스다.”

네르하의 이름을 대번에 알아들었는지 시라스의 눈에 살짝 당혹감이 어렸다.

하지만 그 모습은 오래가지 않았다.

“라데우스의 고귀한 직계를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네르하는 그런 정중한 인사에도 손을 내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됐고, 이놈이 먼저 덤볐다가 꼴사납게 나가떨어진 건 맞는데, 아무래도 시비는 그쪽이 먼저 걸어온 것 같거든?”

그 말에 제스의 얼굴이 거북하게 변했으며, 배커의 표정은 치욕으로 일그러졌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먼저 시비를 건 것은 잘못된 일이지요. 인솔자로서 깊이 책임을 통감합니다.”

“거, 말로만 넘어갈 생각은 하지 말고.”

“…….”

이렇게까지 저자세로 나왔는데도 일을 진행한다고?

시라스의 속마음에 살짝 분노가 지펴졌다.

“제스의 사죄를 원하십니까?”

“아니! 엎드려 절 받는다고 배커 녀석의 자존심이 치유될 리가 없지.”

묻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배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네르하였다.

“그럼 어쩌길 바라십니까?”

“재대결. 정식으로.”

“재대결이라면?”

“그쪽, 이번 교류전에서 검의 낙원 대표로 온 이들이지?”

“그렇습니다만.”

“여기 있는 배커와 저 제스란 재수 덩이를 다시 한번 붙여 보자고.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거기서 깔끔하게 끝내는 거야.”

“…….”

시라스가 잠깐 침묵하고 있던 사이, 뒤에 있던 배커가 네르하의 멱살을 쥐며 분노를 터트렸다.

“네르하, 이 새끼! 왜 네 멋대로 이야기를 진행해!”

“좋습니다.”

“……!”

“깔끔해서 좋군요. 리브라나 검의 낙원이나 그 설립 의의를 고려하면 대결만큼 은원을 말끔하게 해결할 방법은 없지 않겠습니까?”

“혀가 참 매끄럽게 돌아가는군. 승낙한 것이겠지?”

“물론이죠. 다만.”

시라스의 눈이 배커를 훑었다.

그리고 무감정한 눈으로 이런 말을 날렸다.

“아무리 봐도 뒤쪽의 분은 교류전에 나올 실력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이런 개……!”

퍼억!

배커가 또 발작하려던 찰나, 네르하가 놈의 옆구리에 주먹을 꽂아 넣으며 말을 가로챘다.

“그건 내가 어떻게든 하지. 너희는 그저 준비만 하고 있으면 돼.”

“좋습니다.”

시라스는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교류전에서 뵙도록 하죠.”

그 말을 끝으로 시라스는 무리를 수습해 돌아갔다.

그리고 그들이 사라지자 지금까지 참고 있던 배커의 표정이 아수라처럼 변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네르하.”

“뭐긴? 네가 더 쪽팔림을 당하기 전에 막아준 거지.”

흠칫!

“쪽팔림이라고?”

“거기서 네가 본격적으로 덤벼들었다간 바로 그 시라스라는 놈이 끼어들었을 거다.”

마치 아무것도 모른 채로 상황에 끼어들었다고 볼 수 있었지만 네르하의 눈썰미는 피할 수 없었다.

네르하는 가소롭다는 듯 시라스의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놈은 처음부터 네가 라데우스 혈족이라는 걸 알고 있었거든.”

주변에서 몸을 숨긴 채 서성거리고 있던 걸 놓칠 네르하가 아니었다.

“놈이 제스란 놈을 사주했거나, 아니면 그냥 방관하고 있었거나 뭐가 됐든 놈이 처음부터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건 확실하지.”

“……!”

“그런 상황에서 덤벼드는 건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니지.”

애초에 검의 낙원에서 온 사절단 놈들이 이런 외곽 지역까지 와 있는 것도 이상했다.

휴식을 취하거나 놀고 싶다면 번화가로 가면 된다.

문제는 그 번화가는 정작 이곳과는 정반대 쪽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었다.

‘생각보다 선선히 대결을 받아들인 것도 좀 수상하긴 해.’

배커에게 실력 운운한 건 그냥 문자 그대로 도발한 것에 가깝다.

‘라데우스 혈족인 배커가 만만해 보여서……라기에는 뭔가 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지.’

뭐, 상대의 의도가 뭐든 정면으로 부수는 것이 네르하의 취향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뭘 말이냐?”

일을 벌인 놈이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배커의 표정이 구겨졌다.

“뭐긴? 복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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