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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09화 (109/237)

109화

<경계 도시 아르지엔 (2)>

경계 도시 아르지엔은 라데우스 본가와 북방 전선을 연결해 주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상황이 원활했을 때는 북방 교역의 허브이자 중심지였으며, 수많은 이민족들과 이종족들이 모여 거래를 하는 활발한 도시이기도 했다.

“지금도 나름 유동 인구가 나쁘지 않게 돌아다니는 것 같긴 하군.”

“다만 분위기가 좀 많이 처져 있어요.”

“그러게.”

호텔의 최상층에서 보이는 도시의 전경.

그 전경 속에서 도시의 분위기가 어떠한지 간파하지 못할 이들이 아니었다.

“사바스 교단이라면 이름 정도는 들어본 곳이다. 저 머나먼 동방 사막지대에서 활동하는 유목민 종교 중 하나지.”

“사막에서 활동하던 놈들이 눈 내리는 북방까지 와서 포교를 한다? 굳이?”

“하지만 정보원의 보고로는 딱히 의심스러운 점은 없었습니다.”

루시아의 말에 장내가 침묵에 잠겼다.

“현재 도시의 분위기가 침체된 건 오히려 라데우스 가문이 원인이라더군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왕의 강림으로 북방의 영토를 상실함에 따라 교역이 끊겨 버리고.

설상가상으로 도시의 총인구수와 맞먹는 6만이나 되는 대군이 북방에 올라가기 전 이곳에서 물자를 징집하고 갔으니 말이다.

똑똑!

그때, 저 바깥에서 다수의 인기척이 감지되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나타난 이는 경비대장이 아닌,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의 남성이었다.

“귀빈들을 맞이하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귀하는?”

“저는 이곳 아르지엔의 시장, 넥스 데인이라고 합니다.”

머리카락과 턱수염을 짧고 깔끔하게 정돈한 신사.

켈릭스와는 180도 인상이 다른 중후한 느낌의 엘리트였다.

“네르하 도련님께서 이곳에 들르시는 건 며칠 전에 리브라로부터 통보를 받았습니다. 당연히 가장 먼저 신경 써야 할 사안이었지만 그러지 못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뭐, 됐습니다.”

네르하는 넥스 시장의 사과를 가볍게 넘겼다.

“그보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뭐든 말씀하시지요.”

“라데우스 측에서 징발한 물자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습니까? 전체적으로 시장의 분위기가 영 아닌 것 같은데요.”

이런 식의 강제 물자 징발에 대해선 시기와 특수성 등을 고려하여 평소보다 높은 시세로 매입해 주는 게 원칙이다.

당연히 대가를 받았다면 그 대가를 사용하기 위해 시장이 활성화되기 마련인데 지금 이 도시에선 그런 낌새를 느끼지 못했기에 나온 질문이었다.

넥스 시장이 살짝 쓰게 웃음을 흘렸다.

“라데우스 측에서는 분명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다만 물량이 물량인지라 어음의 형태로 지불한 것이 문제이지요.”

“……이런.”

“그 어음을 현물로 바꾸기 위해 부시장을 베리타스 시로 파견한 상황입니다만 아직 소식이 없군요.”

수만 단위의 군을 일으킨 전쟁이다.

당연히 라데우스로서도 단기간에 소화하기 힘든 거대한 자본이 투입되었을 터.

“도시가 제 기능을 찾기까진 약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거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침체기를 맞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지요.”

“외부에서 흘러 들어온 사교도들이 그 점을 파고든 겁니까?”

그 질문이 흘러나오자 장내의 인원들이 긴장한 채 두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넥스 시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들은 식량과 의복, 약초와 생필품 등을 공수해 와 도시 전역에 뿌리고 있습니다. 그 대가는 고작 자신들의 교리를 사제들의 앞에서 십여 분 동안 암송하는 것. 고작 그뿐이지요.”

“미쳤군요. 아무리 라데우스가 종교에 관대하다지만…….”

“그 때문에 현재, 시민들이 그들에게 보내는 지지는 절대적입니다. 섣불리 제재를 했다간 폭동이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요.”

시장의 고충이 확연히 느껴진다.

네르하는 생각보다 일이 심각하게 돌아가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로 수상한 점이 없습니까?”

넥스 시장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들의 교리와 움직임에는 전혀 수상한 것이 없습니다.”

“그 외에는 있다는 소리군요.”

끄덕!

그가 아주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그 수상한 것의 정체는 ‘자본’이겠죠?”

시장의 눈에 놀람이 번진다.

“대단하시군요. 이 도시에 오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텐데요?”

“척 하면 착이죠.”

굳이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아도 답이 나오는 문제다.

“극동부 사막 지역의 소규모 유목 종교. 당연히 이런 먼 곳에 와서 의미 없는 돈지랄을 할 이유도 없고, 자본도 있을 리가?”

네르하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누군가 뒤를 봐주고 있는 자들이 있는 게 아니라면야.”

“네르하 도련님께서도 저와 같은 생각이시군요.”

네르하와 넥스 시장은 서로를 마주 보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그 묘한 동질감에 그걸 지켜보던 루시아와 배커는 이유 모를 묘한 불쾌감이 들어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무슨 소린지 우리에게도 설명을 좀 해 주시죠.”

“아직도 눈치채지 못했나?”

“뭘요?”

“뭐가 됐든 이건 계략이야. 목표는 이 도시가 아닌 북방으로 향한 라데우스의 토벌대고.”

그제야 두 사람의 표정 역시 심각해졌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재물을 뿌려 얻을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이 도시의 민심뿐일 텐데. 그 정도로 도시의 지배권을 빼앗기엔 너무 허황된 계획이에요.”

그렌 타운 정도로 멀리 떨어진 곳이라면 모를까 라데우스의 직할 세력권 내에 존재하는 만큼 루시아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그러니 지금부터 확인해 봐야겠지.”

네르하가 시장을 향해 물었다.

“그들을 향해 직접적인 조사를 해 본 적이 있습니까?”

“네. 당장 오늘, 그들이 이번에 들여온 물건들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한 참입니다. 죄송하게도 그게 시간이 워낙 걸린 탓에…….”

“아아, 아까 말했듯 그건 상관하지 않아요.”

유능하고 청렴한 관리에게 네르하는 상당히 관대했다.

넥스 시장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성직자 특유의 신성 마법을 익힌 흔적도 없고, 그렇다고 전투에 능숙한 자들도 없었습니다.”

무력 역시 그냥 정식으로 용병을 뽑아 호위를 맡겼을 뿐이었다.

“더욱 수상하군요.”

“네. 그렇습니다.”

다행히 루시아는 이번엔 방금 대화의 내용을 이해했다.

“신성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성직자? 전원이 견습도 아니고 그게 말이 되나요?”

이 세계에는 신에게 힘을 받아 기적을 행사하는 신성 마법이 엄연히 존재한다.

신성 마법을 사용하지만 신의 성격이 유해하거나 인지도가 극히 낮은 신을 숭배하는 자들을 사교도라 부르고.

애초부터 신성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거나 암흑 교단처럼 마신의 축복을 받아들인 이들을 이교도라 부른다.

“그런 부류에서 이번에 흘러 들어온 사바스 교단은 사교도에 속합니다. 그런데 제국이라면 몰라도 라데우스는 사교도 정도에겐 나름 관대한 편인지라 이유 없는 제재는 힘들죠.”

“그럼 그 이유를 찾으러 가야겠군요.”

네르하는 일행들을 둘러보며 선언했다.

“북방 전선으로 가기 전에 이 일을 해결하고 간다.”

“몸풀기로 나름 나쁘진 않겠지.”

배커를 비롯해 다른 이들은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가, 감사합니다, 네르하 도련님!”

아직 젊은이들이라 해도 전원이 나름 정규 마법사 수준이니 시장의 입장에선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리라.

네르하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어디 그 사교도들의 얼굴이나 보러 가 봅시다.”

* * *

“우리의 진정한 주, 사바스께서 말씀하시되, 자신 외의 모든 신들은 삿된 자리에서 태어난 불경한 자들이니 멀리하고 경멸하라 하셨다. 검은 대지가 세상을 뒤엎은 후 주께서 이끄시는 새로운 창세기가 시작되리니…….”

조금만 들어도 머리가 어질어질한 교리가 시민들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사바스 교단의 포교 활동을 지켜보러 온 네르하 일행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꼴을 직시하자 현기증이 오는 걸 느꼈다.

“타 종교에 대한 배척이 강한 사테라 교단도 저 정도는 아닌데 말이죠.”

“사교도라 불리는 덴 이유가 있는 법이지.”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보상이 너무나 후합니다. 굳이 배고프고 가난하지 않더라도 저 유혹에 너무나 쉽게 넘어갈 것 같군요.”

디센트 맥퀸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잘 구워진 밀 빵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그 옆에는 한겨울을 내기 위한 기름과 생필품 등을 용병들이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다.

‘독 같은 건 안 들어 있는 것 같군.’

많은 이들이 교리를 읊고 배급받은 빵을 그 자리에서 먹어치우곤 했지만 딱히 탈이 나거나 독에 중독된 낌새를 보이지는 않았다.

워낙 오래 굶어 급하게 욱여넣은 탓에 호흡곤란을 일으킨 이들이 몇 존재한 것만이 유일한 사고였다.

그때, 네르하 일행에게 다가온 자가 있었다.

“형제자매님들, 이곳엔 처음 들르시는 것인가요?”

두툼한 가죽 로브를 걸친 여성 사제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네르하에게 다가왔다.

“춥고 배고픈 어린 양을 구원하기 위해 사바스 신께서 저희를 보내셨답니다. 자, 이리로 와서 함께 신을 향한 기도를 올리시죠.”

“…….”

“자, 어서.”

네르하는 여성 사제의 손에 이끌려 신도들이 기도하는 장소로 끌려갔다.

“……어?”

별다른 반항 없이 끌려가는 네르하의 모습에 오히려 주변에 있던 이들이 당황에 빠졌다.

“저, 저거 그냥 내버려 둬도 되나?”

“이대로라면 주군이 꼼짝없이 기도를 올리셔야 할 판인데?”

“마신이 아니라면 라데우스에서 종교를 가지는 것도 딱히 문제는 없지만…….”

“저래도, 되는 걸까?”

네르하가 별다른 반항도 없이 끌려간 건 자의가 분명했다.

그러니 수하들에겐 그런 주군의 행동을 제지할 명분이 없었다.

그렇게 네르하는 여성 사제의 인도에 따라 두 손을 꼬옥 맞잡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

“…….”

입을 살짝 벌린 채 그 꼬락서니를 지켜보던 수하들은 정신이 우주로 향하는 것을 느끼며 우두커니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약 10분이 지나 교리 암송을 끝내고.

네르하는 양손에 묵직한 사례품을 들고 장내로 돌아왔다.

“어어.”

“주, 주군?”

일행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네르하의 얼굴만 직시하며 안절부절못했다.

네르하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내용은 확실히 X같지만 일단은 세뇌의 술법이 걸린 건 아니더군.”

“…….”

“뭐, 예전엔 마교에 잠입해서 천마 찬송가를 부른 적도 있었으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마교? 천마?

뜻 모를 말을 내뱉는 네르하가 정말로 세뇌되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일단 빵에 독 같은 건 들어 있지 않았다. 직접 먹어 보니 알겠더군.”

“저, 그게…….”

“문제는 이거지.”

네르하는 받아 온 물품 중에서 외투를 집어 들며 누군가를 불렀다.

“클로이아.”

“네, 네!”

다른 이들과 같이 약간 정신 줄을 놓고 있던 클로이아가 화들짝 정신을 차리며 목소리 톤을 높였다.

“이걸 봐봐라.”

“응? 이게 왜요?”

약간 두툼한 가죽 외투.

이 추운 날씨에도 이것 하나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방한성이 뛰어난 명품이었다.

“이거, 가격을 책정한다면 얼마쯤 할 것 같나?”

클로이아는 질문의 요지를 알아채지 못했지만 북방 출신인 그녀는 그대로 성실하게 대답했다.

“질 좋은 가죽이네요. 무두질도 잘되어 있고 무엇보다 두툼해요. 평상시라면 은화 열 개는 넉넉하게 받아낼 수 있겠는데 북방이 점령당한 지금이라면 가격이 몇 배는 더 올라가겠죠.”

“그렇지. 북방 상황을 고려하면 그렇겠지.”

“네. 자세히 보니 이건 북방 검치호의 가죽이에요. 그것도 잡힌 지 얼마 안 된 상등품. 나름 북방에선 흔히 쓰이는 가죽이고 주요 수출품 중 하나인……데.”

무언가를 깨달은 그녀의 표정이 눈에 띄게 흐려졌다.

“분명 지금 상황에선 구할 수 없는 물품일…… 텐데.”

띄엄띄엄 말을 흐리던 클로이아가 가죽 로브를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게 왜 여기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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