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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40화 (140/237)

140화

<베드리우스 (4)>

바스톤을 도와주기 위해 접근한 루시아는, 예상보다 훨씬 선전하고 있는 바스톤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딱히 도와줄 필요는 없는 것 같네.’

거대한 건틀렛을 끼고 적들을 분쇄할 기세로 달려드는 바스톤의 모습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전사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누가 저 모습을 보고 마법사라고 생각할까?”

두 개의 뿔이 달린 거친 황소를 보는 느낌이다.

그걸 보면서, 루시아는 자신과 바스톤의 차이점을 비교해 보았다.

‘내가 검술에 마법을 접목했다면 바스톤은 마법에 체술을 접목한 유형.’

그런데 베이스가 검술인 이쪽은 마법의 스테레오라 할 수 있는 ‘발산과 조작’에 집중하고 있는 한편.

마법을 베이스로 한 바스톤은 오히려 기사들의 정석인 ‘응집과 강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으음, 내 유성검이 바스톤의 방어를 뚫을 수 있을까?’

바스톤은 자기 자신이 재능이 없다고 한탄하고 있지만, 루시아의 눈으로 볼 땐 바스톤도 상당한 괴물이었다.

‘분명, 바스톤의 고유 계통은 ’강철 조작‘이었지?’

대지 속성의 고유 계통 중에선 제법 희귀한 능력.

‘보통은 대지 중의 성분에서 강철을 뽑아 가공하는 연금술 계통의 능력이라고 들었는데…….’

바스톤은 그 강철 조작을 신체 강화로 돌리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었다.

원래라면 갓 5레벨에 각성한 바스톤은 이론을 다듬고 실전에서 써먹기까지 몇 년은 정진해야 했겠지만.

네르하 휘하 전투마법사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그 기간을 극적으로 줄일 수가 있었다.

그렇게 페레이라 가문의 비전인 신체 강화에 고유 계통인 강철 조작이 합쳐지니, 오러 블레이드마저도 맨몸으로 막아 낼 수 있는 최강의 방패가 탄생한 것이었다.

콰과과광!

‘이대로 가면 바스톤의 승리는 확실하겠네.’

본격적으로 전투에 들어간 본진 역시 무난하게 적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전장 역시 순조롭다.’

본진을 지휘하고 있는 다르미안과 세드릭은 적 고위 마법사의 자폭을 철저하게 경계하며 난입한 마족들을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확실히 엘리트란 말이 어울릴 정도의 활약이다.

물론 나중에 싸우더라도 져 줄 생각은 없지만.

‘결국, 문제는 저쪽.’

루시아는 메인 이벤트가 진행 중인 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대한 마기의 촉수들과 그에 맞서는 자그마한 금빛.

마기에 비하면 그 빛은 미약하지만, 그 힘이 쇠할 기색은 없었다.

‘당신만 이기면 됩니다, 네르하.’

루시아는 조용히 네르하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바스톤의 경우처럼 합세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 이 싸움은 네르하가 진정한 ‘위’로 올라가기 위한 최고의 시험대.

괜히 참견했다가 네르하의 이력에 오점을 남기고 싶진 않았으니까.

“보여 주세요, 네르하. 당신이 정말로, 대공자의 앞을 막을 자질을 가지고 있는지.”

* * *

마기가 촉수의 형상을 갖추며 폭발적으로 튀어나온다.

‘촉수라기보단, 나뭇가지라는 느낌이 강하군.’

보법으로 피하고자 해도 수천 줄기나 되는 것들을 모조리 피해 내는 건 불가능했다.

꽈악!

검은 나뭇가지들이 목을 휘감고, 팔과 다리의 관절을 붙들어 매었다.

“어째서 끝까지 대항하는가? 진실을 깨달았음에도 승산이 없다는 걸 느끼지 못했는가?”

“진실을 알았다는 게 포기해야 할 이유는 아니지.”

“네가 날 죽여도, 내가 널 죽여도, 우리의 목적은 달성된다.”

“그렇다면 네가 죽으면 되겠군.”

네르하는 붙잡힌 그대로 베드리우스에게 다가갔다.

놈의 육체는 어째서인지 마족의 육체가 아닌 인간의 육체.

분명 정타 한 번만 제대로 먹인다면 손쉽게 없앨 수 있을 터였다.

‘큭!’

하지만 몇 발자국 떼기도 전에 전신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저주, 인가?”

“그렇다.”

어느새 네르하의 전신 피부에 주술처럼 기괴한 언어가 새겨졌다.

“나는 암흑 교단의 교주. 오래전부터 지상에 내려와 비슈나르 님의 강림만을 위해 암약한 자.”

-미스틸테인!

그 언어가 빛을 발하며 네르하의 육체를 죽음으로 밀어 넣는다.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인간의 육체를 걸친 탓에 전투 능력은 본체에 비하면 떨어지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가능하지.”

“확실히, 몸이 많이 무겁군.”

“몸이 무겁다? 한 줌 핏물로 변해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이 저주에 직격당한 이상 어지간한 인간은 죽음을 벗어날 수 없다.

“신성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신물의 힘을 빌린 것도 아니야.”

그 신물도 세계수나 만년빙정 같은 신의 창조물 수준이 아닌 이상 효과를 보기 힘들다.

한동안 답을 찾던 베드리우스는, 살짝 골치 아프다는 듯 인상을 썼다.

“아아, 넌 마기를 다룰 줄 알았지. 그 덕분에 저주에 저항력을 가졌다는 건가?”

“그것만이 아니지.”

서걱!

네르하의 주위에 어느새 마기의 검 한 자루가 나타나 나뭇가지들을 잘라내었다.

베드리우스가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건, 다인슬라이프?”

“잘 아는군.”

“500년 전 소실된 줄 알았는데, 설마 인간들의 손에 있었을 줄이야.”

다인슬라이프.

과거 시라스 루 케프렌이 루시아를 암살하기 위해 가져왔던 마검으로, 마령수투에 의해 마기를 빼앗겨 평범한 철검으로 전락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마령수투는 흡수한 마기의 성질을 일정 부분 구현하는 기능이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촤르르륵!

잘려 나가는 것보다 재생되는 것들이 더 많다.

네르하의 신형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조금씩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베드리우스가 네르하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너만 마기를 흡수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그 힘에 기대는 건 포기하라고 권하고 싶군.”

베드리우스는 이미 마령수투가 자신의 마기를 어느 정도 흡수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조금 날로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쉽군.’

이렇게 되면 장기전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네르하는 비릿하게 웃었다.

“이번만큼은 시간이 나의 편이지.”

“…….”

“계속해 보자고. 아군 전력은 이쪽이 더 높으니까.”

네르하는 속박을 한차례 크게 베어 낸 뒤 자리를 박차 위로 뛰어올랐다.

마치 유도 기능이 달린 듯 검은 가지가 쏘아졌지만, 마령수투를 장착한 오른손으로 가지를 부여잡자 마치 물에 녹는 것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베드리우스의 표정이 구겨졌다.

“성가시군, 그 이자카르의 파편.”

꾸욱! 꾸우욱!

“그렇다면 밀도를 높여 주지.”

검은 가지들이 서로를 꽈배기처럼 감싸며 날카로운 촉수들을 만들어 낸다.

그런 게 무려 수백.

촤아악!

아까보다도 더욱 빠르게, 그리고 치명적이게.

어지간한 방어 마법은 종잇장처럼 찢어 버릴 수 있는 일격을 이 정도 물량으로 쏟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베드리우스는 마계 백작이란 칭호를 얻기에 충분한 강자였다.

“이런 식으로 길을 만들어 준다면 오히려 환영이지.”

“뭣?”

네르하는 그대로 흐름을 타며 놈에게 다가갔다.

―천신보(天神步), 무위경탄(武威輕彈).

단 일격만 허용해도 그대로 전신이 구멍 뚫린 치즈처럼 되어 버릴 과감한 돌진.

하지만 네르하는 망설임 없이 전력으로 공세를 돌파해 나갔다.

베드리우스에게 물리적으로 다가갈 때마다, 네르하는 왜인지 몰라도 놈의 본질이 어떠한지 깨달아 갔다.

“과연, 네가 인간의 육체를 입은 이유를 알겠어.”

압도적인 공격력에 비해 빈약한 육체의 내구도.

“네놈의 본체는, 아주 거대한 식물이군. 마계의 대지 깊숙한 곳에 뿌리를 박고, 대륙 규모로 영향을 주는 마물.”

저 가지로 만든 촉수들 역시 놈의 본체로 따지면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마계 백작이란 애초부터 그런 규격 외의 존재였다.

네르하의 전신이 오러와 마법이 융합한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전 용의 형상을 한 주단을 끝장냈던 최강의 일격!

그 위험성을 느낀 탓일까.

베드리우스는 화급히 공세를 물리고 촉수를 뭉쳐 수세로 전환하게 시작했다.

촉수들이 뭉치며 거대하고 울긋불긋한 방패가 나타났다.

네르하는 그 방패를 피하지 않고 그대로 정면으로 돌진했다.

―금철유성!

거대한 황금의 유성이 어둠의 장막을 찢어발긴다.

가지의 방패를 꿰뚫은 네르하의 주먹이, 베드리우스의 얼굴을 그대로 날려 버렸다.

투쾅!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베드리우스의 연약한 머리는, 금철유성의 융합기를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풍선처럼 터져 나갔다.

‘……뭐지?’

마기에 썩어 버린 골수와 뇌수가 허공에 흩날리는 찰나의 순간.

네르하는 위화감을 느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허무하게 당했다.

비록 죽음 역시 베드리우스가 의도한 결말이라고는 해도.

하다못해 동귀어진 정도는 시도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촤륵!

아니나 나를까.

“……!”

촤르르륵!

날아간 머리의 빈자리로, 목 안쪽에서 촉수가 다시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인간의 육체가 수용할 수 있는 양을 넘어, 놈의 본체 일부가 중간계에 현현하기 시작했다.

‘이런!’

마치 바다에 사는 극피동물처럼 징그러운 형태를 갖춘다.

그 형태가 네르하에게 의지가 전달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지.

―굳이 비슈나르 님께 내 힘을 바치지 않아도 충성을 다할 방법이 있을 거라고.

―그분이 우화(羽化)하시는 때까지, 방해하는 모든 적을 죽이고 또 죽이리라!

놈이 덩치가 순식간에 커지기 시작한다.

폭주를 동반한 자기희생술식.

자신의 모든 힘이 다할 때까지 주변을 파괴하는 걸 멈추지 않을 거란 각오.

“귀찮게 되었군. 애초에 이럴 셈이었나?”

힘이 다할 때까지 날뛴다 해도, 그 다하는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마나 생명체인 마법사들은 이런 놈에게 잘못 걸리면 훌륭한 외장 배터리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꽤나 화려하게 한 모양이구나.”

“마계 백작급 존재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일 수 있는 존재가 8레벨이 아니라는 게 정말 놀라워.”

등 뒤에서 익숙한 두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셨습니까?”

고개를 돌리니 아군 최고 전력인 류레이아와 엘로이아, 두 노괴(?)들의 모습이 있었다.

류레이아가 말했다.

“표정이 좋지 않네?”

“끝장을 보지 못했으니까요.”

“후후후, 방금 전에도 말했듯이, 마계 백작을 이 정도까지 몰아붙이려면 적어도 전투마법사단 하나의 화력을 모두 투입해야 해. 그게 아니라면 우리 중 한 명이 나서든가.”

그런 칭찬에도 네르하의 마음은 썩 편하지 않았다.

금철유성이 제대로 들어갔다면 저렇게 폭주할 틈도 주기 전에 완전히 소멸시켜 버렸을 테니까.

그나저나.

“쉽게 움직일 수 없는 거 아니었습니까?”

분명 마왕의 견제 때문에 쉽게 움직일 수 없다 하지 않았나?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

“그게 무슨?”

“뭐, 그건 나중에 말하기로 하고, 일단은 저것부터 처리하도록 하지.”

탁!

류레이아가 자신의 스태프를 땅에 찍어 내리자, 이전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거대한 나무줄기가 땅속을 뚫고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영역 전개.”

―엘븐 하란 이그드라실.

화악!

‘풀 내음?’

류레이아의 영역이 펼쳐지면서, 풀 내음, 꽃 내음, 흙 내음 등, 자연의 향취가 저절로 느껴지고 있다.

북방의 차디찬 환경을 역행하는 따스한 봄의 열기.

지금껏 마족들이 펼치던 영역과는 근본부터 다른 압도적인 존재감이 류레이아의 영역에서 느껴졌다.

―이놈! 고작 엘프 따위가!

“닥쳐라, 짝퉁아.”

촉수를 휘두르며 날뛰려던 베드리우스가 무언가에 짓눌려 괴롭다는 듯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괜히 부하의 공적을 약탈할 순 없지. 한번 놈의 핵을 노려보겠어?”

대번에 놈의 발악을 저지한 류레이아는 고개를 돌려 네르하를 향해 웃었다.

“힘들 것 같으면 나나 옆에 노파에게 양보해도 되고~”

“눈앞에서 공적을 강탈당할 수는 없죠.”

어딜 대놓고 눈앞에서 코를 베어 가려고 하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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