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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60화 (160/237)

160화

비슈나르는 확실히 마왕이란 이름값이 부족하지 않은 강자였다.

만약 저 상태로 중원에 나타났다면, 천마 이상의 재앙이 되어 무림을 멸망시키고 중원을 불바다로 만들었을 것이다.

“사라져라.”

콰과과과!

또다시 놈의 촉수에서 무지막지한 시커먼 에너지가 튀어나온다.

그 검은 불길이 네르하의 전신에 직격하려던 찰나.

스스스슥!

네르하의 펼쳐진 손이, 부드럽게 곡선을 그렸다.

“……!”

비슈나르가 날린 일격은 네르하의 손길을 따라 약간의 각도를 그리며 뒤쪽에 있던 설산을 작살 내었다.

그 모습을 본 비슈나르가 헛웃음을 흘렸다.

“어처구니가 없구나. 흘릴 수 있는 위력이 아닐 터인데.”

“원래라면 힘들지만, 지금은 할 수 있거든.”

그 파괴의 여파로 인해, 또다시 시야를 뒤덮는 거대한 먼지의 구름 덩어리가 생겨났다.

그 덩어리에 집어삼켜진 네르하는 시야가 차단된 상황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 갈수록 놈의 화력이 강해지고 있다.’

대지를 가르고 설산을 무너뜨리는 화력.

마법으로 따지면 분명 8레벨 이상일 텐데, 그걸 별다른 주문도 사전 영창도 없이 노 딜레이로 난사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막고만 있을 수는 없어. 공세로 전환해야 한다.’

일단은 붙는다.

마음을 먹은 네르하가 달려들었다.

“오히려 달라붙는 그 기세는 칭찬해 주마.”

말은 이렇게 해도, 비슈나르는 철저하게 네르하의 접근을 경계하고 있었다.

아르바와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이유야 뭐가 됐든 이만한 화력 차에도 근접전은 불리하다는 것 자체는 깨닫고 있는 듯했다.

비슈나르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걸렸다.

“하나 패턴이 너무 단순하지 않느냐?”

쩌어억!

또다시 맺히는 검은 광선.

하지만 이번엔 네르하를 목표로 한 게 아니다.

광선은 달려드는 네르하를 무시하고 빙정과 동화 작업 중인 클로이아를 향했다.

‘젠장!’

아무리 이자카르가 있다지만, 놈의 화력은 상식을 벗어난 수준.

네르하는 달려드는 걸 포기하고 그대로 클로이아에게로 향하는 놈의 공격을 흘려내려 했다.

그때였다.

“응?”

“으음?”

한순간, 네르하와 비슈나르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특히 비슈나르의 표정엔 큰 당황이 깃들어 있었다.

“이 몸의 영역이, 축소되고 있다?”

“저건, 나무인가?”

마왕령 한가운데에서 뜬금없이 튀어나온 거대한 나무.

그 나무에서 흘러나온 푸른 빛이 어둠을 몰아내며 영역을 확대하고 있었다.

저것의 정체를 알아챈 비슈나르가 크게 분노했다.

“세계수! 감히 수호자 따위가 같잖은 장난을!”

그 말에 네르하도 저것이 누구의 짓인지를 알아차렸다.

류레이아 엘마이넨.

세계수의 수호자인 그녀가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몰라도, 그녀가 불러낸 저 나무가 비슈나르의 마계영역을 해제하고 있다!

이유는 다르더라도 네르하의 표정 역시 비슈나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네르하가 이를 악물었다.

‘목숨을, 걸은 건가?’

저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막대한 생명력을 고려하면, 분명 쉽게 둘 수 있는 수는 아닐 거다. 할 수 있었다면 진즉에 그리했을 테니까.

‘몸이 가벼워진다.’

아무리 무인이 마법사에 비해 외부 마나에 대한 의존도가 덜하다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었다.

초절정 이상의 고수들은 전투 중에도 대기 중의 마나를 흡수해 가면서 싸우곤 하니까.

‘그 각오, 반드시 보답하지.’

류레이아가 이 정도까지 해 주는데, 네르하로서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이, 이놈이! 감히!”

이 한 수는 확실히 위협적이었는지, 비슈나르가 세계수를 없애기 위해 촉수의 아가리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그러나.

“이미 늦었지. 아무리 그래도 라데우스가 병신은 아니거든.”

상황을 먼저 파악한 라데우스의 마법사들이, 득달같이 세계수를 향해 달려들며 보호막을 펼치고 있었다.

“나무를 보호해라!”

“총사령관님을 지켜!”

마왕령에서 자유를 되찾아 제 역량을 회복한 라데우스의 북방원정군은, 이제 비슈나르라 해도 쉽사리 볼 수 없었던 막강한 힘을 되찾았다.

“이, 이런!”

비슈나르가 당황해하는 사이.

“정신이 완전히 다른 곳에 팔렸군.”

“아차!”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놈의 품으로 들어간 네르하는.

퍼억!

비슈나르의 심장 부근을 향해 호쾌한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 * *

나선경의 묘리까지 가미된 일격이었다.

네르하가 기습적으로 펼친 일격은, 문자 그대로 비슈나르의 상반신을 갈아 버리며 허공에 수많은 육편을 비산시켰다.

“이, 이! 이 비천한 인간 따위가!”

지금껏 큰 감정의 변화가 없었던 비슈나르의 평정심이, 드디어 깨졌다.

“절대 곱게 죽이지 않겠다!”

하지만 그런 감정의 변화에도, 정작 비슈나르는 증오만을 토해 낼 뿐 별다른 고통을 보이지 않는다.

거기서 확신했다.

“그 인간의 몸은, 본체가 아니었구나.”

움찔!

마계에 있는 놈의 본체는 몰라도, 마신강림으로 인해 만들어진 육체는 생명체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법칙을 따른다.

영양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고, 기본적인 통각 역시 가지고 있다.

물론 상위 존재의 경우 통각을 차단하는 기술도 기본으로 가지고 있을 테지만, 네르하는 본능적으로 그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저 꽃봉오리 자체가 본체인가? 그게 아니라도 저 안에 본체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있을 거다.’

이자카르에게 듣기론 마계에 있는 비슈나르의 본체는 드라이어드라는 정령과 매우 흡사한 모습이라 했다.

그렇기에 그 우화의 형태 역시 저런 꽃봉오리의 형상을 빌린 것일 터.

“네르하!”

그때, 클로이아가 큰 목소리로 네르하를 불렀다.

“저 안쪽에 놈의 본체로 추정되는 게 있어요!”

“정말이냐?”

“아스타로스의 소환체예요! 놈은 그걸 새로운 숙주로 삼아 자신의 육체로 만들 생각이었던 거예요!”

어쩐지 아스타로스와의 계약은 끊기질 않았는데 정작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싶었다.

‘자길 배신도 했겠다, 거리낄 것도 없었던 거겠지.’

본체의 정보를 그대로 끌어오는 소환체의 단점은, 이런 식으로 봉인을 당하게 되면 마계의 본체 역시 활동을 제약당한다는 점이다.

비슈나르는 그걸 노리고 아스타로스를 죽이지 않고 포박해 둔 것이다.

어느새 자신의 육체를 재구성한 비슈나르가 노성을 내질렀다.

“그걸 알았다고 해서 바뀌는 게 있을 것 같으냐?”

“있다고 보는데.”

“뭣?!”

쩌적!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어디선가 무언가가 얼어붙는 소리가 났다.

쩌저적! 쩌저저적!

그 소리의 근원은 전투가 벌어지는 장소 바로 밑.

즉, 비슈나르의 힘의 근원인 거대한 검은 꽃봉오리가 얼어붙고 있는 소리였다.

씨익!

비슈나르의 눈에는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의 사명을 완수한 클로이아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의 상태를 확인한 비슈나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서, 설마, 빙정의 힘을 모조리 쏟아부은 건가?”

“정답.”

“이런 어리석은 것들이!”

만년빙정은 단순히 오랜 세월 한기가 모여 생성된 게 아니다.

신성(神性). 태고적 신들이 아직 지상에 현현해 있을 당시, 그들의 권능이 모여 만들어진 기물.

그런 기물을, 자신의 본체도 아니고 소환체를 처리하는 데 영구히 소모한다고?

이제 이곳 북방은 서서히 차가운 날씨를 잃어 갈 것이다.

그 영향을 대륙 전체가 받아 기상이변이 발생할 것이고, 수많은 환경 변화와 생태계의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설사 초가삼간을 다 태운다고 해도, 전염병을 옮기는 벌레는 잡아야지.”

저놈에 의해 이 세계가 멸망하는 것보다는 낫다.

“이놈! 감히, 이 몸을 벌레로 취급해?!”

꽈악!

비슈나르의 촉수가 순식간에 네르하의 전신을 옥죄였다.

필중의 능력을 응용한 게 분명했다.

‘큭!’

“이대로 핏물로 만들어 주마!”

그 어떤 생명체라 해도 뼛가루만 남았을 거대한 압력.

퍼퍼퍼펑!

하지만, 네르하를 압박하던 촉수가 외부의 힘에 의해 그대로 터져나갔다.

“……!”

순식간에 자유를 되찾은 네르하가 말했다.

“마왕령의 권능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걸 잊고 있었나 보군.”

외부의 마나를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사출하는 형태인 강환의 사용 역시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는 뜻.

―융합기, 속성강기(屬性强氣)!

원래라면 무채색의 힘이어야 할 강기에 네르하가 깨달은 고유 계통이 합쳐지자 상당히 이색적인 결과물이 튀어나왔다.

강환에 바람의 힘을 지닌 절삭력이 깃들고, 닿는 것들을 모조리 태워 버리는 화기의 힘도 깃든다.

중원의 무인들이 봤다면 전설상의 자연경의 경지라며 호들갑을 떨었을 거다.

물론 정말 그 정도 수준은 아니었지만, 네르하는 그래도 얼추 비슷하게 구현했다고 자부했다.

“이, 이런!”

당황한 비슈나르는 다시금 네르하를 붙잡기 위해 권능을 사용하려고 했으나.

‘아, 안 돼! 육체의 붕괴가 시작된다!’

저 안쪽에서부터 시작된 빙정의 폭주가, 육체의 밸런스를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네르하는 그 사실을 알아채곤 그대로 꽃봉오리를 향해 날아갔다.

“미안하지만, 발악할 틈은 주지 않겠다.”

그 말과 동시에 뒤를 따라오는 비슈나르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했다.

“예전에 잠깐 방심했다가 좀 황당한 일을 겪었거든.”

“이노오오오옴!”

네르하는 노성을 터트리는 비슈나르를 무시하곤, 그대로 봉오리의 정수리 부근을 향해 돌진했다.

“피해, 클로이아!”

“난 걱정하지 말고 확실하게 끝내요!”

지금껏 빙정을 조작하던 클로이아가 다급히 봉오리에서 뛰어내리며 외쳤다.

“나 진짜 개고생했으니까, 실수하면 정말로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맡겨만 둬!”

네르하의 전신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금철유성을 사용했을 때마다 나타났던 황금빛이 아니었다.

원래 나타났을 황금빛에 더해, 원초의 혼돈이라는 칙칙한 회색빛이 섞인다.

그 결과, 제3의 기묘한 색이 나타났다.

그 색깔은, 마치 별들이 빛날 때 나타나는 백금의 빛.

신성조차도 파괴할 수 있는, 절대적인 파괴의 상징이었다.

“그, 그 힘은! 네놈은 역시 그 인간과 연관이 있구나! 네놈은 그 빌어먹을 인간의 후예인가?”

무시할 수 없는 떡밥이었지만, 네르하는 시큰둥하게 답했다.

“그 인간이 누군진 몰라도, 나와는 관계가 없을 거다.”

그 초마인이라는 자는 무려 500년 전의 인간. 그 정체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지금 상황에서 손을 거둘 이유는 되지 못한다.

다급해진 비슈나르가 손을 뻗으며 애원해 왔다.

“자, 잠깐! 거래를 하자!”

“거래라고?”

“그래!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내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이루어줄 수 있다! 이, 이 세상의 제왕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다!”

다급하게 이것저것을 제시하며 네르하를 회유하려고 했지만.

네르하는 망설임 없이 그대로 몸을 날렸다.

“내가 원하는 건, 네놈이 이 세계에서 꺼지는 것뿐이야.”

“안 돼에에에에에에!”

그 결말을 직감한 비슈나르가 비명을 내질렀다.

네르하의 전신이 그대로 유성처럼 변해 봉오리를 갈랐다.

* * *

외부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라데우스의 마법사들은, 과거 자신들의 주인 카이젤이 펼쳤던 광경을 상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스타 플래티넘이다.”

라데우스 가문의 상징, 스태 플래티넘.

이윽고 그 찬란한 백금의 빛이, 지금껏 북방에 재앙을 가져다주었던 흉측한 검은 꽃봉오리를 직격했다.

비록 네르하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법사들의 뇌리에선 이곳 북방에서 벌어진 후계자 쟁탈전의 승자가 누구인지 결정 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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