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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73화 (173/237)

173화

<헤르메스로 가는 길 (2)>

‘덕분에 편해졌군.’

루트비히가 편의를 봐준다면 앞으로의 일을 나름 수월하게 짤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헤르메스와 케프렌에 대한 일만 끝내면 졸업 때까지 무난하게 수련에 시간을 쏟을 수 있겠어.’

네르하는 남은 시간 동안 마법에 좀 더 시간을 쏟을 생각이었다.

수여식 당시 가주와 네르하가 맺었던 약속은 여전히 유효했다.

앞으로 약 3년.

네르하가 리브라를 졸업하기까지 남은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라데우스에선 공식적으로 후계자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전쟁은 누가 더 많이 준비했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지.’

비록 유력 세력으로 떠올랐다고는 하나, 아직 마하와 정면충돌하기엔 무리가 많았다.

앞으로 3년간, 개인으로도 세력으로도 확실하게 토양을 다져야 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 목적은 하나다.’

개인의 성취를 높이고 라데우스의 가주 자리를 차지하는 것.

북방으로 가서 개고생한 이유도 이것 때문이 아니던가?

물론 비슈나르가 보여 준 기억 속에, 곧 이 대륙에 미증유의 위기가 곧 닥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네르하는 그런 위기를 굳이 자신이 나서야만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리고 가능하다 해도 굳이 할 생각은 없었다.

비록 전생에서 정파를 표방했다 해도, 네르하의 본질은 정사의 경계에 걸쳐 있었으니까.

‘천천히, 때를 기다린다.’

그런 생각으로 학장실을 막 나온 찰나.

네르하는 수많은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는 걸 느꼈다.

그 시선은 생도, 조교, 교수를 가리지 않았다.

과거와는 완전히 딴판으로 변한 위상.

그 시선의 의미가 ‘눈치’라는 걸 알고 있는 네르하는, 나름 즐기는 기분으로 복도를 걸었다.

그런 그때.

“안녕하십니까, 네르하 공자!”

“……?”

누군가가 갑자기 네르하의 앞에 튀어나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앗!”

“저놈이 선수를!”

누군가의 등장과 함께, 기함이 터져 나왔다.

네르하는 고개를 조아린 청년을 향해 물었다.

“누구지?”

“전 이번에 졸업반이 된 타블이라 합니다!”

“선배로군. 그래서 내게 무슨 볼일이라도?”

“공자를 주군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제 인생 전부를 걸고 공자님을 따르겠습니다. 부디 절 받아 주십시오!”

‘허허.’

좀 뜬금없긴 하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물론 받아들이는 건 다른 문제였지만.

“일단…….”

네르하가 뭐라고 대답하려는 찰나.

“네르하 공자님! 저는 3년 차인 바질 프리트입니다!”

“베이거 라이텔입니다!”

“아리스 슈렌입니다! 공자님을 줄곧 사모해 왔어요!”

대번에 네르하의 주변에 수십에 가까운 인파가 몰려 자기 자신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그 어필의 방향성이 뭔가 좀 이상한 쪽도 있었지만 어쨌든.

‘이거, 예상 이상인데?’

추가적인 수하들의 모집은 어느 정도 생각해 둔 바였다.

리브라 전체를 잡아먹을 생각이긴 했어도, 아직 생도 중에는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줄을 댄 이가 적지 않았으니까.

네르하에겐 원래 실마연의 수하들이 충분하게 있었지만, 이들 중 절반 이상은 이제 곧 졸업해서 라데우스 본가로 발령 나게 된다.

오히려 이미 졸업해서 리브라를 퇴소했어야 했지만, 북방의 일 때문에 졸업이 조금 미뤄진 셈이었다.

‘이 부분은 다른 녀석에게 일임해야겠군.’

수하는 다다익선이라지만, 앞으로 평생을 함께할 ‘핵심’들은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애초에 저들 중에 간자가 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고 말이다.

‘그래도 생각보다 훨씬 반응이 격렬한데? 정보 획득이 제한된 이들에겐 아직 내 위상이 크게 와닿진 않을 텐데.’

리브라는 집중 육성을 위해 바깥과의 정보를 최대한 차단한다.

아무리 귀족이라 해도, 배커 정도의 방계나 알페온 정도의 공작가는 되어야 나름 최신 정보를 얻어 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정보를 날로 먹은 네르하가 비정상적인 것이었다.

“네르하 공자!”

“도련님! 제 말을 좀!”

* * *

“아, 그 이유는 저희에게 있습니다.”

“뭐?”

간만에 실마연에 들러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해 주자, 수하들이 싱글벙글하며 이렇게 말해 왔다.

“이번에 저희가 귀족 작위를 수여받지 않았습니까? 애들 몇몇이 지금까지 우릴 무시하던 귀족 놈들에게 가서 한바탕 뻗대고 돌아온 거죠.”

“그래서 소문이 리브라 전체에 퍼져 버린 건가?”

“헤헤, 어느 정도 주군에 대한 홍보용 목적도 있었습니다. 안 그런가, 베젤 ‘경’?”

“그렇습니다, 맥퀸 ‘남작’님!”

“하하하하! 여기 우리 가즐란 남작도 있었군!”

“…….”

이런 걸 전문용어로 뭐라고 하더라? 그루밍?

‘……지랄들을 한다, 아주.’

네르하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수하들의 추태에 눈을 살짝 감았다.

차마 눈 뜨고 봐 줄 수 없을 정도로 표정이 헤프게 풀려 있었다.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는 못한 네르하는 깊은 한숨으로 자신의 심경을 대체했다.

“어쨌든, 디센트를 포함해 이번에 졸업하는 이들은 졸업 후 네슬렉 장로의 밑으로 들어가게 될 거다.”

“오오! 자, 장로 직속!”

아무리 리브라의 졸업생이라 해도, 시작부터 장로 직속으로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절대다수가 3군 정도로 분류된 일반 전투부대에 속해서 몇 년 정도 구르다가, 가능성을 인정받고 나서야 승진할 수 있으니까.

“다만 고생은 많이 할 거다. 네슬렉 장로가 지금까지 비밀리에 키워 온 세력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신참 장로인 만큼 세력 면에선 가장 뒤떨어지지.”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네르하는 일부러 눈을 부라리며 졸업생들을 향해 일갈했다.

“내가 졸업하고 리브라를 나왔을 때, 내 예상보다 뒤떨어져 있다면 정말 지옥을 각오해야 할 거다.”

“며, 명심하겠습니다.”

지금 잠깐 기쁨에 잠겨 있는 건 괜찮지만, 밖으로 나가서도 이런 모습이면 곤란했다.

졸업생들에게 볼일이 끝난 네르하는 구석에서 창을 손질 중인 배커에게 시선을 돌렸다.

“배커.”

“왜?”

“네가 해 줬으면 하는 일이 있다.”

그 말에 배커가 인상을 쓰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뭔데?”

“이번 일로 내 밑에 들어오겠다는 놈들이 많은데, 네가 옥석을 좀 골라 줘야겠어.”

배커의 인상이 대번에 찌부러졌다.

“……내가 왜?”

네르하는 씨익 웃었다.

“네가 그런 거 잘하잖아?”

요즘 배커의 이미지가 천상 무인처럼 변해서 그렇지, 과거 뺀질거리던 시절에는 나름 정치질도 꽤 열심히 하던 녀석이었다.

알페온을 푸대접하던 실수가 있긴 했어도, 배커 정도면 충분히 이번 일을 믿고 맡길 만했다.

하지만 배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왜? 난 네 부하가 아니다만.”

지금까지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부하가 아니라고 항변해도, 이 자리에선 믿어 줄 사람이 없었다.

네르하는 그 말에 뭔가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 반년 후면…… 네이하가 입학하지.”

움찔!

“그,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냐?”

“내가 없는 사이 꽤나 화려하게 복수한 것 같은데 말이야. 네이하 고것은 재능도 재능이지만 집착이 아주 심하거든.”

무엇에 대한 집착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거다.

“아마 지금도 칼을 갈고 있을 텐데, 녀석의 재능을 고려하면 따라잡히는 건 순식간이겠지.”

그리고 역전이라도 당하는 순간, 네이하가 배커에게 어떤 보복을 가할지는 눈에 봐도 뻔하다.

“명색이 친동생인데 나도 네이하를 봐줄 테고, 그러면 따라잡히는 건 순식간이겠지?”

“혀, 협박하는 거냐? 네르하 이 새끼!”

“북방에서 얻은 것들을 갈무리하면 슬슬 다음 단계로 들어가야겠지. 네가 마나 스피어를 사용할 정도가 되면 융합기에 대한 것도 알아야 하고?”

그야말로 악마의 달콤한 속삭임이었다.

배커는 주먹을 부들거리며 외쳤다.

“제, 젠장! 하면 되잖아! 쓸 만한 놈들로만 모아서 네놈 앞에 갖다 바쳐 주지!”

“아주 좋다.”

이런 때를 위한 수하들이 아니던가?

배커 놈이야 이 말을 들으면 전력으로 부정하겠지만, 이제 녀석은 더 이상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네르하는 주변에 모인 수하들에게 선언했다.

“앞으로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이번 북방 원정과 같이 장기간 바깥으로 나도는 일은 없을 거다.”

사실 리브라 역사를 통틀어서도 이런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다만 난 얼마 후에 헤르메스는 물론 케프렌 가문과 엮인 일정을 소화해야 하니 한동안 만나진 못할 거야.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없다고 수련을 게을리하지 말도록.”

“예!”

수하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주군.”

그때, 바스톤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네르하를 찾았다.

“무슨 일이지?”

바스톤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마하타 세스타스 님이 주군을 찾아오셨습니다.”

“아, 벌써?”

네르하는 베리타스에 귀환하기 직전, 마하타에게 부탁했던 일이 있었다.

꽤나 긴 시간을 잡고 느긋하게 기다리려고 했는데, 의외로 마하타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네르하의 의뢰를 완수한 모양이었다.

“바로 가지.”

* * *

“아, 안녕하십니까, 네르하 사령관…… 아니, 도련…… 아, 아니! 주, 주군!”

마하타는 여전히 쭈뼛거리는 걸 고치지 못했는지, 심각하게 말을 더듬으며 네르하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 부탁했던 일은 끝났나?”

“네, 끝나긴, 했습니다만…….”

말끝을 흐린 마하타는, 네르하의 앞에 직사각형의 상자 하나를 내놓았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대체 이게 무엇이길래…….”

“스승이 알려 주지 않았나?”

그 말에 마하타는 조금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스승님께선 제게 이 상자를 넘기시고는, 곧바로 스스로의 기억을 지우셨습니다.”

“호오?”

“어지간한 일이 아닌 이상 기억을 지우는 일은 없는데, 말이죠.”

마하타의 스승은 7레벨에 이른 정신계 술사.

그것도 시체에게서 온전한 정보를 뽑아낼 수 있는 특급의 기량을 가지고 있는 자였다.

그런 만큼 라데우스에서도 나름 높은 대우를 받고 있어, 아무리 마하타를 통했다 해도 부탁을 들어줄지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잘 풀린 것 같아 다행이군.’

마하타의 스승은 이번 아르바의 반역 사건을 증명하기 위해 본가에 소환되었다.

그리고 네르하는, 그런 그를 통해 아르바의 사체에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뽑아내기 위해 의뢰를 넣었다.

자칫 잘못하면 반역의 죄를 뒤집어쓰고 수많은 이가 처형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다행히, 마하타의 스승은 네르하의 의뢰를 성공적으로 마친 모양이었다.

딸깍!

상자를 열자마자, 자그마한 종이 조각이 눈에 띄었다.

거기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이번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 제가 들인 공이 적지 않습니다. 부디, 마하타를 잘 부탁드립니다. 니군 드림.

“…….”

저 마하타를 잘 부탁한다는 말은, 그만큼 마하타의 스승이 그녀를 크게 아낀다는 뜻. 사실상 이번 의뢰에 대한 보수 요청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종이 조각을 거둬 내자마자.

거의 책 반 권은 될 법한 서류 뭉텅이가 네르하의 손에 딸려 나왔다.

그 서류의 가장 첫 장에 적힌 한마디.

―라데우스 마나 연공법

‘드디어!’

오로지 라데우스에서 직계들만이 익힐 수 있는, ‘스타 플래티넘’을 발현할 수 있는 마나 연공법.

그렇게 기대하고 기대했던 라데우스의 마나 연공법이, 이제야 네르하의 손에 들어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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