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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210화 (210/237)

210화

<드러나는 정체 (2)>

“오랜만이라.”

네르하는 속으로 깊게 심호흡을 했다.

주도권이 넘어간 상황에선 절대로 당황했다는 보이면 안 되었다.

“북방으로 왔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직접 만난 적은 없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먼 곳에서 날 본 적이 있었나?”

네르하의 모른 체에 아렌의 눈가가 살짝 가늘어졌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주 잠시였을 뿐, 아렌은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하하하, 그렇습니다. 마왕 살해자의 한번 얼굴을 뵙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당시 라데우스 쪽 총사령관님께서 중재를 거절하셨죠.”

“그리고 날 만나기 위해 직접 초대장까지 보냈지. 그래, 감상은 어떻지?”

“감상이라.”

아렌은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나쁘진 않습니다.”

“나쁘지 않다고?”

“편견을 가지지 않고 다른 쪽을 받아들이는 포용력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특히나 하나의 길로 끝자락을 거의 본 사람이라면 더더욱.”

아렌의 시선이 네르하의 가슴께를 향했다.

“게다가 심장 인근에 재미있는 장난질까지 치셨군요. 확실히 그런 짓은 보통 각오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아렌은 시저 루드벡이 새겨 준 마나 익스텐더의 존재까지 알아차렸다.

“생각보다 살짝 더딘 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합격점 정도는 드리도록 하죠.”

“그걸 고맙다고 해야 하나?”

네르하는 천천히 전의를 끌어올렸다. 그러면서도 착실하게 아렌을 관찰했다.

‘이놈은 정말 천마인가?’

지금까진 거의 90% 정도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렌을 직접 본 순간, 네르하는 자신의 판단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놈은 절대 검을 쓰지 않았다.’

전생의 천마는 기공으로 정점에 이른 자였으며, 육체의 형태는 전신이 두드러지게 발달한, 굳이 따지자면 전생의 자신인 무적권신과 비슷한 유형이었다.

하나 눈앞에 있는 아렌은 되려 ‘검사’로서의 특징이 너무 뚜렷했다.

‘성격도 뭔가 이상해.’

전생에서 신무조가 천마와 마주한 적은 다섯 번이나 되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천마는 묵직한 대종사의 품격을 보여줬지, 이런 식으로 장난스럽거나 뭔가 허술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설사 저게 연기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다고 저게 저 나이에 보일 성취는 절대 아니지.’

육체의 발전 방향과는 별개로, 놀랍게도 아렌은 완벽하게 자신의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

기량이 절정에 이른 네르하의 안목으로도 파악하기 힘들다는 건, 재능의 영역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괴물이란 뜻.

‘그래, 나처럼 ‘속’이 다르지 않은 이상에야 절대로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네르하의 눈이 싸늘하게 가라앉던 찰나.

“생각이 많아 보이시는군요.”

마치 속내를 읽었다는 듯 아렌이 찌르듯 들어왔다.

“그렇게 보이나?”

“판단이 안 된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죠.”

아렌이 천천히 오른손을 반대쪽 허리춤으로 옮겼다.

그야말로 노골적인 도발.

“어떻게, 싸워보시겠습니까?”

“…….”

칼자루에 손을 댄 검사 특유의 발검 준비 자세.

확실히 저 자세 하나하나가 천마와는 다르다.

“쯧!”

네르하는 살짝 혀를 찼다.

“내가 받아주지 않을 걸 알면서도 뻔히 도발하는군.”

“하하하, 그럴 줄 알았습니다.”

아렌은 유쾌한 웃음과 함께 자세를 풀었다.

설사 저놈의 정체가 천마가 확실하더라도 지금 싸움을 걸 순 없다.

아렌의 정체를 파악하는 건 이번 케프렌 행에 대한 이유 중 하나였지만, 그렇다고 생사결을 겨룰 생각까진 없었다.

아니, 설사 모든 제반 환경이 갖추어져 승부를 겨룰 수 있다 하더라도, 사실 네르하로선 현시점에서 ‘천마’에게 사생결단을 내야 할 동기가 좀 부족했다.

‘전생의 악연은 전생에 끝났다. 나는 지금 네르하 라데우스라는 존재의 ‘업’을 짊어진, 새로 태어난 존재일 뿐이야.’

지금까지 네르하가 마음속으로도 신무조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천마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한 건 어디까지나 현시대에서도 자신의 행보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존재했기 때문.

만약 천마가 자신과 관계가 없는 길을 걷는다면, 네르하는 굳이 천마와 충돌할 생각이 없었다.

현재 네르하의 목표는 라데우스의 정점에 오르는 것. 그 한 가지가 가장 우선이었으니까.

‘무엇보다도…….’

“선약이 있는 상대와 먼저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지.”

“누님을 말함이군요.”

아렌은 의외로 루시아에게 따박 따박 존칭을 썼다.

네르하는 의외라는 듯 물었다.

“너는, 그녀를 누이라 생각하는가?”

“당연하지 않나요? 누님과 제가 남매라는 건 엄연한 사실인데.”

루시아를 향한 그의 눈빛엔 애정마저 깃들어 있다.

전생의 천마를 생각하면 소름 끼칠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물론, 남보다 못한 형제자매가 많다는 것도 사실이지만요. 하하하.”

헤프게 웃던 아렌이 다시금 네르하를 향했다.

“괜찮겠습니까? 누님에겐 승산이 없을 텐데도 굳이 말리지 않는 것은?”

“나는 그 녀석의 재능을 믿는다. 노력하는 천재는 가끔 상식을 뒤집는 결과를 보여주곤 하지.”

“아, 그건 저도 인정합니다.”

아렌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누님은 확실히 이 케프렌이란 거대 가문을 이끌어 나갈 재목입니다. 검술에 대한 재능만이 아니라, 우두머리로서의 그릇 역시 출중하죠.”

흠칫!

찰나의 순간, 네르하조차도 어깨를 움츠릴만한 살기가 튀어나왔다.

“쓰레기였던 큰형님과는 다르게요.”

“큰형님?”

“네, 누님의 유일한 단점은, 큰형님의 진실을 몰랐다는 점이었죠. 지나친 동경이 눈을 가렸다고 할까요?”

과거 사신이라고 불렸던 한 무인이 이렇게 말했다.

동경은 이해로부터 가장 먼 감정이라고.

뭐, 완전히 동의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말이었다.

상대의 장점만을 보려고 한다면 단점은 어지간해선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

“어쨌든, 저와 싸우지 않을 생각이라면 슬슬 제 볼일을 봐도 될까요?”

“볼일이라면, 저놈 말인가?”

네르하와 아렌의 시선이 동시에 한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흠칫거리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 마왕 예루리의 화신이 존재했다.

―이, 이놈들!

아렌이 예루리에게 다가가 닭목을 움켜쥐듯 놈의 목을 쥐어들었다.

“마왕 예루리. 전대 가주님을 홀려 사도로 삼은 뒤, 라일론 형님과 나이우스 형님을 차례대로 세뇌했죠. 아, 라일론 형님은 제 발로 복종한 거지만요.”

“……!”

지금껏 라데우스 정보국조차 파악하지 못했던 케프렌의 비사가, 아렌의 입에서 차곡차곡 튀어나오고 있다.

네르하가 물었다.

“네가 전대 가주를 제압했다고 했지.”

“예, 그렇죠.”

“너라면 상황이 이 꼴이 되기 전에 수습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러지 않았지?”

재능과 실력과는 별개로, 일말에 불과하지만 아렌은 혈족에게 정(情)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사전에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었을 터.

하지만 아렌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네르하의 기대를 벗어났다.

“굳이 말입니까?”

아렌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맺혔다.

지금까지 보였던 어벙한 미소와는 완전히 다른 인상이었다.

“가만히 내버려 둬도 제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될 텐데요?”

네르하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네가 원하는 것이 뭐지?”

아렌은 별다른 고민 없이 대답했다.

“복수.”

응?

절대적인 힘, 세계정복, 혹은 세상의 파괴…….

뭐 이런 게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목적 자체는 꽤나 단순했다.

다만 이해할 수 없는 건.

“누구를 향한 복수인 거지? 설마, 케프렌이란 가문 자체에 대한 복수인 건가?”

이렇게까지 판을 크게 벌였다면 추측할 수 있는 선택지는 상당히 줄어든다.

이런저런 뒷사정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오는 것으로 보아, 가문 자체에 원한을 가진다는 가정도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아렌은 그 물음엔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지금부터 자연스레 알게 될 겁니다.”

아렌은 그러고선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따라오란 소린가?”

“당신과도 나름 인연이 있는 문제니까요. 궁금증을 풀고 싶으시다면 저와 함께하시죠.”

“…….”

네르하는 고민했다.

아렌과 쓸데없는 충돌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니, 바로 지상으로 올라가 루시아를 지원해야 했다.

나이우스 엘 케프렌이 아녜스를 포함한 직계들을 납치해간 이상 곧 일을 벌일 건 확실하다.

가장 큰 지지자가 되어줄 것 같았던 크라수스가 어처구니없이 탈락한 이상, 루시아가 이 상황에서 뭐라도 하려면 빠르게 자신만의 세력을 모아야만 한다.

이제 곧 케프렌의 지상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의 정국으로 향하게 될 거다.

그런데.

“가지 않으실 겁니까?”

아렌은 은근히 네르하가 자신을 따라오길 바라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따지면 당연히 거절하고 올라가야 하는데, 네르하의 직감은 아렌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때, 그런 네르하의 걱정을 읽었는지 아렌이 이런 말을 해왔다.

“누님을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누님은 위에서 가문의 영웅이 되어 정점에 오르실 테니까요.”

“……뭐?”

지금 저놈이 뭐라고 말하는 거지?

워낙 황당해 잠깐 우두커니 서서 아렌을 바라보았다.

뒤를 돌아본 녀석은 의도를 알 수 없는 미묘한 웃음으로 이쪽을 마주보았다.

“너, 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거냐?”

“말하지 않았습니까? 복수라고요.”

“그러니까 그게 대체 누구를 향한 거냐!”

말하는 걸 보면 복수의 대상은 케프렌 가문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놈은 그 복수를 위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들을 버리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 거대한 가문마저도 수단으로 여길 정도라면, 놈이 원하는 복수의 대상은 대체 얼마나 거대한 존재라는 건가?

“따라오면 알 거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 말을 끝으로 아렌은 더 이상의 설득은 없다는 듯 휘적휘적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젠장.”

네르하는 거칠게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남이 깔아놓은 판에 제대로 걸린 느낌이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제대로 알 것 같다.

이제 곧, 자신의 인생에 큰 변곡점이 올 것이라는 걸.

* * *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유모를 의료 시설에 맡기고 나온 루시아는 갑자기 변해버린 상황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크르르륵!”

당장 눈앞에만 해도 북방에서 숱하게 보아왔던 것들이 침을 흘리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마물?”

루시아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어째서 기사의 성지라는 케프렌의 수도, 로엘 소드에 마물이 나타날 수 있는가?

“캬아아악… 캭!”

아가리를 벌린 채 달려드는 공룡형 마물을 가볍게 썰어버린 루시아는 재빨리 주변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마물이다!”

“시민들을 지켜라!”

“기사단! 제 자리를 고수하라!”

주변에 나타난 마물의 수는 제법 많았다. 다만 숫자만 많았을 뿐 그 수준은 북방 때와는 감히 비교될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도시 내의 병력을 묶어둘 생각인가?’

루시아는 대번에 마물들이 출현한 ‘용도’를 깨달았다.

아무리 수준이 낮아도 이런 식으로 대량으로 출현하면, 도시 내에 산재해 있는 기사단은 전력을 응집시킬 수가 없게 된다.

‘그렇다는 건, 목표는 케프렌의 중추를 빠르게 장악하는 거겠지.’

위험하다.

충동적인 면이 있는 테바라와는 달리, 나이우스는 상당히 침착하고 계획적인 자.

분명 승산이 있어 일을 벌인 것일 터다.

“아가씨.”

그때, 루시아의 귓가에 익숙한 중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의 끝에는, 과거 그녀를 암살하기 위해 리브라에 찾아왔던 원탁의 기사, 검왕 베하나스가 있었다.

‘날 잡으러 온 건가?’

베하나스가 자신에게 나름 호의적이라는 건 알고 있다.

유모를 통해 가문 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준 장본인이 바로 그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베하나스의 뒤에 있는 수백에 달하는 기사들의 존재는, 그녀가 지금 베하나스를 믿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들고 있었다.

‘복장은 통일했다지만, 검왕의 직속 기사단만 있는 게 아니야. 저들은…….’

루시아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철컥! 철컥!

베하나스를 필두로, 주변에 모인 기사단원 전원이 루시아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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