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0/930)

일단 상대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 것이란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며 기절했던 애송이가 깨어난 곳은 탕약 냄새가 진동하는 방이었다. 아마도 그 냄새로 유추해 보건대, 이곳은 의원에 딸린 방인 모양이다. 그는 일어서려고 했지만 아무리 해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겨우 그 정도 맞았다고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다니. 나도 정말 한심한 놈이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깨어났군. 보기보다 약골이야. 움직이려고 하지 말게나. 지금 침을 놓았기에 움직이지 못하게 혈도를 조금 건드려 놨으니…….”

‘세상에 이 목소리는……?’

애송이는 갑자기 한기가 느껴지며 자신의 몸이 의지와 상관없이 부르르 떨리면서 갑자기 식은땀이 솟아나온다고 생각했다.

“이제 깼으니 뭐 잠결에 뒤척일 염려는 없을 테고 혈도를 풀어 주지.”

애송이는 자신의 몸 위로 미풍이 부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 순간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혈도가 풀린 것을 알 수 있었다. 상대는 허공을 격하고 점혈과 해혈을 할 수 있는 엄청난 내공을 쌓은 무서운 고수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자, 이제 깨어났으니 우리 다시 즐거운 대화를 시작하기로 하지. 아 그렇게 떨지 말게나. 나도 가급적이면 말로 하고 싶으니까 말일세. 자네와 얘기가 어디까지 진행되었었나 하면, 자네 사부인 독고구패의 마지막 제자가 묵향이라는 것까지였어. 거기서부터 시작하지. 그건 자네 사부의 입에서 들은 건가? 다시 말하건대 거짓말이 있어서는 안 돼.”

“그렇소. 자신에게는 많은 제자가 있지만 마지막 제자인 묵향이 가장 강하다고 했었소.”

“그럼 그 묵향이란 놈이 그렇게 강하다는 건가?”

“그분의 말로는 그렇소. 자신이 가르친 제자들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했소.”

“좋아, 그럼 자네는 독고구패를 어디서 만났지?”

“화산(華山)에서 만났소.”

“화산?”

“본인의 사문은 화산이오. 10년 쯤 전에 본문의 옆에 한 무림인이 자리를 잡았소. 그는 화산에 있는 동굴 중 하나를 집으로 정했는지 그곳에 침상을 마련하고 몇 가지 살림 도구를 장터에서 사다가 보금자리를 꾸미더니 아예 떠날 생각을 안 했소. 그래서 본문에서는 혹시나 절기를 훔쳐보러 온 첩자인 줄로 오해하고 그와 간단한 충돌을 벌였었는데, 그에게서 몇 가지 안 좋은 일 때문에 은거를 결심했고 또 은거할 장소로 경치 좋은 이곳 화산을 택했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물러설 수밖에 없었소. 그리고 그의 검술 실력도 상상 이상으로 강했기에 다른 문파의 무공을 훔쳐 배우려는 인물로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오.”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그의 무공을 배웠지?”

“사실 10년 전 나는 별로 무공이 강한 편이 아니었소. 그날 장터에서 무뢰배 몇 명이 젊은 소저를 희롱하는 것을 보고 혈기만 믿고 달려들었다가 두들겨 맞고 있는 것을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던 그가 구해 줬소. 그는 한 번씩 마을로 내려와서 식량을 구입했는데, 그날 마침 그의 눈에 띈 것이지요. 그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한 가지 제의를 했소. 검술을 배워 볼 생각이 없느냐고 말이오.”

“그래서?”

“나는 안 된다고 했소. 사실 사문에서 나를 지도하던 사형은 별로 무공이 고강하지 못했기에 그런 고수의 지도를 받을 수 있다면 영광이겠지만, 사문을 등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오. 그런데 상대는 사문을 바꿀 필요도 없고 자신을 사부로 여길 필요도 없다면서 자신이 만년에 이르러 깨달은 무공을 전수해 준 마지막 제자가 죽어 버렸기 때문에 자신이 죽으면 이 무공도 없어진다고 했소. 그러면서 그냥 자신의 무공이 후세에도 사용되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자신의 무공을 익히고 싶으면 장문인의 허락을 받고 나한테로 찾아오라고 했소. 그래서 나는 장문인을 찾아가 사정을 아뢰고 그의 검술을 배우고 싶다고 했소.”

“장문인이 허락을 해 주던가?”

“처음에는 해 주지 않았소. 상대가 누군지 몰랐기 때문이오. 장문인은 직접 그를 찾아가서 대화를 나눠 보고, 그가 근래 들어 뛰어난 무공으로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던 독고구패 선배라는 것을 알고 나에게 허락해 줬소. 그래서 나는 틈틈이 그분을 찾아가 10여 년간 무공을 익혔소.”

“좋아. 이제 어떻게 되었는지 대강은 알겠군. 그런데 마지막 제자의 이름이 묵향이란 것은 어떻게 알았지? 그분이 얘기해 줬나?”

“그분은 나한테 검술을 가르쳐 주면서 묵향이란 사람 얘기를 많이 했었소. 아마도 묵향이 살아 있어서 너를 본다면 아주 좋아할 텐데, 하면서 말이오.”

“검술을 가르쳤다고 했는데, 무슨 검술을 배웠나?”

“무형검법(無形劍法)을 배웠소. 아주 배우기 까다로웠지만…….”

“무형검법? 그런 검법도 있었나?”

“거의 초식이 없는 검법이오. 그분도 그것을 근래에 이르러 완성했다고 하셨소. 초식이 아주 특이한 만큼 익히기는 까다롭지만 일단 연성하고 나면 대단한 위력을 가지게 되오.”

“그럼 독고구패란 사람은 무형검법이란 것을 그 자신이 직접 창안해 낸 것이군. 그리고 익히기도 힘들고……. 너는 얼마나 배웠지?”

“자질이 모자라서 그렇게 깊게까지 연성하지는 못했소.”

“좋았어. 그건 나중에 검을 섞어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고……. 이제 마음 푹 놓고 몸조리나 잘하라구. 나중에 몸이 완쾌되면 비무를 한번 해 보기로 하지. 만약 도중에 도망가다 나한테 걸리면 반쯤 죽여 놓을 테니 알아서 하게나.”

내상은 없었기에 몸은 빨리 치유되었고 애송이의 몸이 완쾌되자 묵향은 그를 밖으로 불러냈다. 묵향은 그가 가지고 다니던 상자 안에서 검을 꺼내 들고 밖에 서 있었고, 애송이도 상대가 뭘 원하는 것인지 알기에 선배가 물려준 검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상대는 검집에서 검을 뽑지도 않고 느긋하게 말했다.

“자, 검을 뽑아라.”

애송이는 상대의 목적이 뭔지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었지만 일단 상대가 원하는 대로 나가기로 했다. 상대와의 거리는 2장……. 검을 뽑아 든 다음 상대의 출수에 대비했다. 하지만 상대는 그냥 서 있었다.

‘관례에 따라 양보해 주겠다는 건가?’

원래가 비무인 경우 선배는 후배에게 3초를 양보해 준다. 동년배인 경우 각자에게 3초씩 양보한 후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되는 것이다. 상대가 일단 원하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출수를 해 보기로 했다. 그는 비웃는 듯한 기분 나쁜 상대에게 신법을 펼쳐 급속도로 접근해 들어가며 검초를 펼쳤다.

“매화노방(梅花露芳)”

이것은 화산파(華山派)가 자랑하는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의 1초로, 비무이기 때문에 그 초식의 이름을 상대가 알 수 있도록 불러 줘야 할 의무가 있었다.

검초를 펼치자 묵향은 몸을 뒤로 틀어 몸통을 향해 날아오는 검초를 피하며 상대의 비어 있는 허벅지를 향해 발을 날렸다. 애송이는 놀랍다는 듯이 옆으로 신법을 써서 이동해 그것을 피하면서 바로 상대의 발을 베어 갔다. 이번에는 애송이는 초식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아니 말할 수가 없었다. 무형검법은 상대의 약점만을 골라 공격하는 동귀어진(同歸御盡)의 수법이 주류를 이룬 독특한 검법이다. 초식은 없으되 기존의 초식을 응용하든지 아니면 속도를 위해 최대한 빠른 속도로 상대의 몸을 찌르거나 베어 가는 수법만이 존재할 뿐…….

묵향은 상대의 검이 자신의 발을 향해 곧장 베어 오자 황급히 발을 후퇴시킨 다음 그제서야 검을 뽑아 발을 베어 가는 상대의 손을 향해 검을 날렸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발검술(拔劍術)……. 애송이는 밑으로 쳐 내리던 손을 뒤로 빼면서 상대의 검을 받았다.

챙!

상대는 검과 검이 부딪치는 그 반탄력을 이용해 뒤로 검을 빨리 회수해 다시 머리를 향해 날려 왔고, 애송이는 상대의 손목을 노리고 검을 날렸다. 지독하게도 물고 물리는 대결……. 놀랍게도 둘의 검술은 상당한 유사점이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묵향의 검이 더 단순 무식하게 움직인다는 점이었고 상대의 검은 조금, 아주 조금 더 화려한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물론 화려함을 가진다는 자체가 조금 더 동선(動線)이 크다는 말이니 속도가 조금 떨어짐은 당연한 결과다.

상대는 이상하게도 내공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애송이가 가진 공력으로도 충분히 상대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상대가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이유가 한 가지 있었는데 그건 검의 길이가 이쪽이 5촌 정도 길다는 점이었다. 대신 상대의 검이 짧기에 공격해 들어오는 속도는 저쪽이 더욱 빨랐다. 상대는 그 자신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서 아주 다채로운 공격을 퍼부었고, 애송이는 그것을 받아 낸다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애송이는 무림에 출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자신이 살아오면서 맹세코 이런 이상한 검법을 구사하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었다. 하나하나가 자신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일직선적인 공격, 한 초식 한 초식을 넘길 때마다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순간이 생명의 위기라 처음에는 못 느끼고 있었지만 나중에야 상대의 검법이 많이 눈에 익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의 검법을 자신이 아주 잘 알고 있으며 놀랍게도 그런 검법을 쓰는 사람이 자신이 알기에도 저 사람 외에도 두 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나는 자신이었고, 또 하나는 돌아가신 독고구패 선배……. 그것을 눈치 챈 다음에는 상대에 대한 경이로움이 솟아 나왔다. 그의 검을 다루는 실력은 맹세코 자신을 가르친 독고구패 선배의 아래가 아니었다.

둘은 거의 초식을 무시한 직선 공격을 주로 했으므로 순식간에 수백 초식이 지나갔다. 상대는 1천여 초를 주고받은 다음에 뒤로 훌쩍 3장이나 뛰어 공격권을 벗어난 다음 천천히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제법 제대로 배웠군. 하지만 고작 그 정도 실력으로 무림에 돌아다닐 생각 하지 말고 문파로 돌아가서 더욱 수련을 하거라. 환사검의 제자가 별 볼일 없는 무리에게 죽었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으니까…….”

“당신은 누구요? 어째서 무형검법을 아는 거요?”

“내가 말 안 했던가? 내 이름은 묵향, 천마신교의 부교주지. 정사는 양립할 수 없다고 떠드는 놈들이 많으니 오늘의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도록 해라. 어르신은 편안하게 돌아가셨나?”

묵향의 말을 들으면서 경이와 환희가 담겨졌던 애송이의 얼굴이 갑자기 뒤의 말을 들으면서 어두워졌다. 그걸 보고 묵향이 침중하게 말했다.

“그렇지 못하셨던 모양이군.”

“예, 돌아가실 때 대단히 괴로워하셨어요.”

“그건 사마외도(邪魔外道)를 걷는 무리들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지. 산공(散功)의 고통을 피하려면 탈마(脫魔)에는 올라서야 하는데……. 그분도 역시 탈마에는 오르지 못하셨구나. 그럼 네가 그분의 임종을 도와 드렸냐?”

“예? 무슨 말씀이신지?”

묵향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원래가 사파에서는 가는 분의 고통을 줄여 드리기 위해 가장 절친했던 인물이 산공의 고통이 시작되기 직전에 편안한 죽음을 선사하지. 네가 잘 몰라서 도와 드리지 못한 것이니 어쩔 수 없구나.”

그 말을 끝으로 쓸쓸히 문밖으로 걸어 나가는 묵향을 향해 애송이가 외쳤다.

“다시 뵐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의 물음은 허공에 외친 듯 아무런 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냥 허탈하게 그 자리에서 멀어지는 묵향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애송이는 자신이 한 번도 묵향과 통성명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따라가 볼까. 하지만 따라가서 뭐라고 하지? 할 수 없이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인연이 있다면 만날 수 있겠지. 선배의 말대로 화산에 돌아가서 수련이나 하는 게 좋겠지. 정말 무서운 검법이었어. 무형검법을 만약 저 선배처럼 막강한 내공을 가진 사람이 펼친다면 어떤 모양이 될까? 너무나 궁금하군…….’

애송이가 따라가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가 너무 호되게 묵향에게 당했기에 그의 앞에만 서면 위축되는 자신을 느꼈기 때문이다. 둘의 만남은 언제나 다시 이루어질까?

애송이와 헤어지고 난 후 묵향의 기분은 정말 정말 좋지 못했다.

“제기랄…….”

자신에게 문제가 생겨 기억만 잃지 않았다면 사부를 그대로 죽게 만들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묵향을 더욱 괴롭게 했다. 현재 그의 실력이라면 별 고통 없이 사부의 내공을 없애 버린 다음 북명신공을 이용해 산공이 생기지 않는 새로운 공력으로 채워 넣어 줄 수도 있었고, 어쩌면 사부가 극마의 경지에 올라 더욱 오래 살게 해 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일단 극마에 오르기만 한다면 탈마로 유도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그분이 고통받으며 죽지 않도록 일격에 목을 베어 드릴 수도 있었다.

자신이 옆에 없었기에, 더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만 옆에 있었기에 묵향이 가장 존경했던 사부는 아마도 내공이 깊은 만큼 죽는 그 순간 지독한 고통을 아주 장시간 받았을 것이다. 자신도 마교에서 자라나 마교에서 생활했기에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더욱 괴로웠다.

‘속만 썩인다고 벌써 지나간 일이 바뀌지는 않지. 어디 가서 술이나 퍼마셔야겠군. 사부의 명복을 빌며…….’

묵향은 곧장 허름한 한 술집에 들어가서 박혔고 그 마을의 술을 동을 내려고 작정한 듯이 퍼마시기 시작했다.

이런 묵향을 지켜보는 눈들이 몇 개 있었다. 그들은 묵향이 눈치 채지 못하게 아주 멀직이서 바라보며 쑤군거렸다.

“겨우 찾았는데…, 아무래도 별로 기분이 안 좋은 모양인데요……. 어쩌죠?”

“표정을 보니 아주 기분이 더러운 모양이야. 괜히 가서 말붙였다가 저자의 성격이 소문대로라면 우리들 목이 날아갈지도…….”

“도대체 그 젊은 애가 뭐라고 했기에 실컷 비무를 잘한 다음에 결과가 이 모양이 됐죠? 그놈을 잡아다가 주리를 틀어 보면 뭔가 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글쎄…….”

이들은 줄기차게 호북성에서부터 묵향을 뒤따라온다고 바닥을 기어 댔던 인물들이다. 그들이 묵향의 흔적을 놓친 곳은 어떤 마을이었는데, 거기서부터 묵향이 경공술을 사용하는 바람에 흔적이 없어서 망연하던 차에 묵향의 발자국과 서로 연관이 있다고 추정되는 발자국들을 곧이어 찾아낼 수 있었다.

발자국들로 봐서 아마도 네 명인 것이 확실한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거의 한 시진을 추격한 결과 그들은 별 볼일 없는 무공을 믿고 민폐를 끼치는 걸로 유명한 하남5괴의 네 명을 만날 수 있었다. 그놈들을 잡아서 족친 결과 묵향이 한 애송이를 끌고 기막힌 속도로 어딘가로 사라졌음을 알아냈다.

하지만 그걸로는 추격이 불가능했다. 할 수 없이 어떻게 할까 궁리하며 식당에서 배를 채우고 있는데 묵향이 피투성이가 된 애송이를 업고 의원으로 가는 것이 발견되었다. 아마도 묵향은 그 애송이를 족친 다음 다시 뭔가 사정이 있어 애송이를 치료하기 위해 마을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묵향이 계속 의원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애송이를 돌보고 있었기에 이제나 저제나 묵향과 면담을 할 기회를 노리던 중 드디어 오늘 아침에야 둘이서 나왔는데, 몸이 완쾌된 애송이와 눈부신 비무를 한 후 서로 뭐라고 대화를 나누더니 갑자기 기분이 엉망이 되어 술집에 처박혀 버렸으니……

“하여튼 여기서 술 마시기 시작했으니 한동안은 머무를 게 분명해. 일단 사정을 알아야 말을 붙여 볼 수 있으니 네 말대로 그 애송이를 잡아다가 주리를 틀자. 아무래도 그게 제일 안전할 것 같아…….”

“빨리 가요.”

애송이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요즘 들어 만나는 고수들마다 자신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니 이거 억울해도 이만저만 억울한 게 아니다. 무림의 경험을 쌓기 위해 사문을 나설 때만 해도 지닌 바 실력에 자신이 있었는데…….

“으아아아아악!”

“이 자식아! 빨리 불어. 아까 그 검은 옷 입은 사람하고 무슨 말을 한 거야?”

우루루 쫓아오더니 첫 대면부터 묵향이라던 선배와의 일을 물어보는데,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었다. 아마도 그들은 묵향 선배를 해치려고 하는 무리들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묵향 선배와 자신은 사형제(師兄弟)는 아니지만 그 비슷한 관계인 데다가, 그 선배가 자신은 마교인이기에 정파의 제자인 너와의 관계는 발설하지 말라고 했던 주의 때문에 그로서는 그들에게 답을 해 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정중하게 물어 오던 상대가 점점 심사가 뒤틀리는지 표정이 굳어져 가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다짜고짜 출수(出手)를 해 왔다. 애석하게도 괴한의 무공은 자신보다 한참 위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점혈당해 쓰러진 자신에게 무지막지하게 고문부터 시작하니 이거 원,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고……. 힘없는 놈은 서러워서 살겠나.

“아무래도 맛을 덜 본 모양인데요. 입이 아주 질겨요. 오라버니, 분근착골을 사용하는 게 어떨까요?”

“알겠다. 나도 그편이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사내가 애송이의 혈도를 몇 군데 치자 애송이의 온몸에서 뚜둑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 날 죽여라, 날 죽여…….”

살막의 무리들이 애송이로부터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은 것은 일곱 가지 고문을 가한 후였다. 거의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애송이로부터 대답을 듣자 살막의 인물들은 먼저 걱정부터 앞서기 시작했다. 그래서 옆의 누이에게 전음으로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이거 큰일이군. 저놈의 말대로라면 사형제하고 거의 비슷한 관계잖아. 이놈을 족친 게 묵향의 귀에 들어가면 아주 귀찮아지겠는데……. 이놈을 죽여 버릴까?>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요? 저놈은 우리들의 정체도 모르는데. 그리고 저놈의 말대로라면 그와 더 이상 만나게 될 가능성도 없는 것 같은데요? 그냥 아까 그 의원에 데려다 주면 어떨까요?>

<흐음, 괜히 쓸데없이 살인을 할 필요는 없지. 좋아, 네 말대로 하자.>

“얘들아.”

“예.”

그 사내는 만신창이가 되어 뻗어 있는 애송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이 아까 나왔던 의원에 저놈을 치료하라고 맡기고 치료비를 지불해라. 죽으면 안 되니까 잘 치료하라고 부탁하고.”

“옛!”

수하들이 애송이를 업고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사내가 투덜거렸다.

“짜식, 처음부터 좋게 말로 할 때 들었으면 서로 좋았잖아.”

애송이가 의원의 한 자그마한 방에 뻗어서 정신이 오락가락함에도 불구하고 퇴원하자마자 또다시 엉망이 되어 실려 온 탓에 엄청 열 받은 의생으로부터 갖은 핍박을 받으며 치료받고 있는 이 시간, 묵향도 정신이 거의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물론 애송이처럼 고문의 후유증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단시간에 술을 너무 마셔서 그런 것이다.

벌컥벌컥.

“큭! 좋군, 좋아. 세상천지가 빙빙 도는군…….”

벌써부터 혀 꼬부라진 소리가 나오느냐고 할 사람은 이 식당에 아무도 없었다. 묵향의 옆에는 벌써 빈 병 열 개가 쌓여 있었고, 그다음에는 감질 난다며 아예 독째로 가져다가 마셔 댄 것이다.

사실 무림인이라면 술을 이 정도 마신다고 이렇게나 취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웅후한 내력으로 술기운을 억누르거나 좀 더 무공이 고강한 경우 술기운을 체외(體外)로 방출해 버리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마시면서 술기운을 땀과 같은 형태로 방출할 바에는 왜 피 같은 돈 주고 술을 마시는지 이해하기 힘들지만……. 어쨌든 대부분 그런 식으로 술기운을 처리하기에 무림인이 술이 취해 비틀거리는 꼴은 보기 힘들다.

묵향은 그에 비해 아예 취하자고 마셔 댔기에 두 가지 방법 중 그 어떤 것도 취하지 않았다. 그대로 술기운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 형편이니 아무리 무공이 고강하다고 해도 술기운에 정신이 오락가락할 수밖에…….

다섯 대접의 고량주(高粱酒)를 더 마신 후 급기야는 탁자 위로 쓰러져 버리자 식당 주인이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쯧쯧, 내 평생 이 장사를 해 왔지만 저렇게 죽으려고 퍼마시는 놈은 처음이군.”

“헤헤, 그래도 선불 받았으니 걱정은 없잖아요.”

“떽! 잘못하다가 시체를 치우면 적자라구, 적자. 저놈을 들어다가 골방에 재워 줘라. 새파란 놈이 대낮부터 저렇게 퍼 마시다니……. 아무래도 계집 문제 때문인 모양인데, 아무리 계집이 좋다고 있는 대로 퍼마시고 목숨을 버리려고 들다니,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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