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3화 (409/930)

무영신마 장영길

무림맹은 긴급히 장로회를 소집했다. 남궁세가에서 긴급한 결정을 요구하는 정보가 날아왔기 때문이다.

“무량수불, 남궁세가에서 보내온 정보에 따르면 마교의 장로급 한 명이 동료 둘과 함께 무림에 나왔다고 하오.”

맹주의 말에 장로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맹주는 손을 들어 좌중을 조용하게 만든 후, 말을 이었다.

“무량수불, 그는 남궁세가가 자랑하는 창궁18수를 순식간에 제압했다고 하오. 천풍검의 증언으로 유추해 봤을 때, 아무래도 그 마교도의 무기가 천마구뢰인 듯하다는 개방(쾬幇)의 보고서가 올라와 있소이다.”

“천마구뢰라구요? 천마구뢰라면 무영신마(無影身魔) 장영길(張影吉)이 교주에게 하사받은 마도10병이 아닙니까?”

이때, 허름한 옷을 입고 있는 장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허리에는 일곱 개의 매듭이 지어져 있는 허리끈이 매어져 있었다. 개방도의 경우 바로 이 매듭의 수로 자신의 직위를 표시한다. 일곱 개의 매듭이니 장로급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라면 매듭진 허리끈을 차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정보로 먹고 사는 개방인 만큼, 허리끈을 차서 자신들의 정체를 노출시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본방에 보관된 자료에 따르면 그렇소이다. 물론 마교 내에서 또 다른 지각 변동이 있었다면, 그 주인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자 또 다른 장로가 입을 열었다.

“무영신마라면 마교 서열 12위로서 자성만마대를 책임지는 고수외다. 그런 엄청난 직위를 가진 장로가 겨우 동행 둘만 거느리고 무림을 활보할 리가 없소.”

개방출신 장로는 그에게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

“무영신마로 추정되는 인물이 안휘성에 나타난 것은 틀림없소이다. 하지만 본방의 지도부에서는 그게 어쩌면 함정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소이다. 어쩌면, 마교는 우리가 무영신마를 잡자고 주력 고수들을 움직이기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여기까지 말한 개방 출신의 장로는 맹주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맹주님, 이것이 마교가 파놓은 함정일 가능성도 고려해 주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무림맹주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입을 열었다.

“무량수불, 공수개(空手쾬) 장로님의 의견 외에 또 다른 의견을 지니신 분은 없소이까?”

“이것이 함정이든 아니든, 무영신마는 반드시 척살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마교에서 멀리 떨어진 안휘성에서 활보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마교가 아무리 잔꾀를 부렸다손 치더라도 파고들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량수불, 또 다른 의견은 없으시오?”

또 다른 장로가 자신의 의견을 발표했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일단 본맹의 주력 고수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대기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렇다고 무영신마를 그냥 놔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 처리는 안휘성 주변의 문파들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 말이 끝나자마자 공수개 장로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무영신마와 소수의 호위만을 척살하는 데 맹의 상승고수들을 파견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안휘성 근방에 포진한 모든 분타의 고수들을 동원하고, 주위 문파들에 도움을 청한다면 충분히 그를 척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지금 소주에는 패력검제(覇力劍帝) 대협이 내려와 있습니다. 그분을 이 일에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맹에서 고수를 파견할 필요조차 없을 겁니다.”

그 말에 맹주는 아주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패력검제라면 화경에 이른 고수다. 극마에도 미치지 못하는 마교의 장로 정도는 그 혼자서도 충분히 처치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무량수불, 그 의견이 가장 옳은 듯싶소이다.”

맹주는 장로들을 둘러보며 힘 있는 어조로 말했다.

“각 파에 도움을 청하는 전서구를 띄우시오. 무영신마의 척살을 명하는 바이오.”

총관은 옥화무제의 집무실로 들어서며 말했다. 문주가 자리를 비운 지금, 모든 중요한 문제는 태상문주인 옥화무제가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림맹에서 재미있는 정보가 날아왔습니다.”

옥화무제는 궁금하다는 듯 총관에게 질문했다.

“무슨 정보인데 그러나요?”

“옛, 이것을…….”

옥화무제는 총관이 건네는 서류를 훑어본 후 놀랍다는 듯 말했다.

“사실인가요?”

“어느 정도 사실인 모양입니다. 본문에 보관 중이던 천마구뢰에 대한 자료와 천풍검의 증언이 거의 일치하고 있습니다. 무서운 정확도. 그리고 그 악마적인 살상력. 속하의 소견으로는 천마구뢰가 등장한 것이 틀림없다고 사료됩니다. 본문의 자료가 틀림없다면 천마구뢰의 주인은 무영신마가 아니겠습니까? 무영신마라면 마교 서열 12위의 절대고수입니다. 그를 없애려고 한다면 이쪽도 엄청난 피해를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옥화무제는 감탄사를 터뜨리며 말했다.

“호오, 놀랍군요. 무영신마가 소수의 수행원만 거느리고 무림에 나오다니 말이에요.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서야…….”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옥화무제가 총관에게 예리한 시선을 던지며 질문을 던졌다.

“무림맹의 반응은 어떤가요?”

“물론,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그를 척살하기로 의견을 모은 모양입니다. 이런 기회는 흔히 오는 게 아니니까 말입니다.”

잠시 궁리를 하던 옥화무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총관에게 지시했다.

“좋아요. 본문의 고수들을 파견하세요. 단, 그와의 정면충돌은 안 됩니다. 멀리서 그의 동태를 파악하여 무림맹에 알려 주는 정도로만 하세요. 괜히 본문이 피를 흘릴 이유가 없으니까요.”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태상문주님”

“단, 본문이 무림맹에 전폭적인 협조를 아끼지 않는다는 인상을 줘야 해요. 알겠어요? 이번 일이 잘 마무리된다면, 본문은 더욱 맹주의 신임을 얻을 수 있게 될 거예요. 게다가 이번 작전에 참가했던 모든 문파를 통해 소문까지 퍼진다면…….”

옥화무제는 슬그머니 뒷말을 흐렸지만, 그것도 못 알아들을 총관이 아니었다. 그는 음흉스런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수하들에게 철저히 주지시켜 놓겠습니다.”

총관은 예를 갖춘 후 서둘러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옥화무제가 그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

“예? 또 하명하실 것이 있으십니까?”

옥화무제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게 있군요.”

무엇을 놓치고 있다는 것인가? 총관은 어리둥절해서 반문했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갑자기 무영신마가 자성만마대(紫星萬魔隊)도 거느리지 않고 마교를 벗어났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나요?”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그가 왜 움직였는지, 그리고 혹시 자성만마대가 비밀리에 마교를 벗어난 것은 아닌지 철저하게 조사해 보세요. 어쩌면 무림맹의 이목을 그쪽에 집중하게 해 놓고, 뭔가 딴 노림수가 있을지도 몰라요.”

“옛. 명심하겠습니다.”

옥화무제의 지시를 받고 밖으로 나서며 총관은 자신을 질책했다. 어떻게 그런 간단한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단 말인가? 눈앞에 드러난 대어를 잡을 궁리만 했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그 정도 대어를 미끼로 던져 줄 정도라면, 정작 마교가 노리는 것은 더욱 큰 것일 게 뻔한 이치가 아닌가?

도대체 어떤 놈이야

중원 천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를 꼽으라면 단연 소주(蘇州)가 그 수위를 차지한다. 태호변에 자리 잡은 소주는 도시 전체가 운하로 이루어져 있어, 아주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소주에서도 유명한 주루인 태진루.

지금 이곳에선 강호에서 가장 뛰어난 후기지수들의 모임이라는 7룡4봉에 들어가는 젊은이 몇이 경치를 감상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7룡4봉도 처음에는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가장 뛰어난 소수의 후기지수들을 칭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공식적인 단체도 아니었기에, 그 어떤 구속력도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7룡4봉도 조금씩 변모했다. 자의건 타의건 간에 하나의 단체에 소속되면 아무래도 서로 간에 조금씩이라도 유대 관계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도대체 저놈은 어떤 이유로 7룡4봉에 이름이 올랐지?’하는 마음에 서로 만나 보고 싶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다가 친분이 깊어지면, 그 우정이 먼 훗날까지도 연결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게다가 과거 7룡4봉에 들어갔었던 선배들의 후광도 맛볼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7룡4봉은 세월이 흐르면서 무림 최고의 사교 단체(私交團體)로 자리 잡고 있었다.

대화를 주도하는 것은 7룡 중의 하나인 매화검(梅花劍) 옥대진(玉大振)이었다. 그의 증조부는 전임 무림맹주인 옥청학, 할아버지는 무림맹의 장로 옥진호였다. 그렇다보니, 강호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흥미 있는 비사들을 남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은 두 명의 미녀였다. 4봉에 속해 있는 그녀들은 옥대진의 인솔로 이곳 소주에 유람차 온 것이었다. 물론, 이들 중의 한 명을 꼬셔 보려는 옥대진의 음흉스런 마음도 함께 작용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한참 얘기를 진행하던 옥대진은 황급히 주루에 들어서는 청년을 바라보고는 중얼거렸다.

“허참,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고 하더니…, 저 친구가 바로 폭풍검(暴風劍) 서량(徐梁) 소협입니다.”

그와 동석하고 있던 미녀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훤칠한 키에, 당당한 체구, 그리고 명문의 자제답게 교양이 배어 있는 절도 있는 몸놀림. 서량은 약간 쑥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포권하며 사과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역시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이 제일 늦게 나타나는군. 그래, 패력검제 대협께서는 평안하신가? 자네도 먼 소주까지 내려와서 고생이 많구만.”

제령문(諸令門)은 산서성에 둥지를 틀고 있었지만, 요가 침입해 오는 통에 터전을 잃고 남하했다. 그리하여 지금은 임시로 소주에 자리를 잡고 있는 상태였다. 아무래도 낯선 곳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옥대진이 그런 인사를 건넨 것이다.

서량은 이미 옥대진과는 어느 정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에게 정중히 포권하며 화답했다.

“예, 감사합니다, 형님. 물론 아버님께서는 잘 계십니다.”

“이쪽은 초씨세가의 초미(礎美) 소저, 그리고 이쪽은 화산파의 능비화(凌?花) 소저일세.”

옥대진의 소개에 따라 서로 간에 인사를 교환했다. 하지만 서량은 자리에 앉지 않고 정중히 사죄했다.

“이런 귀중한 자리에 소생을 불러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소생은 지금 급한 일이 생겨서 가 봐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려고 이렇게 달려온 것입니다.”

옥대진은 혀를 차며 투덜거렸다.

“허∼참, 멀리서 오신 귀한 손님들을 앞에 두고 할 말이 아니구만. 천하의 제령문에 무슨 그런 급한 일이 있다는 말인가? 무슨 일인지 말이나 좀 해 보게. 우리 모두 7룡4봉에 꼽힌 형제들이 아닌가? 급한 일이 있다면 도와야지.”

제령문은 문도 수는 적지만 대단히 힘 있는 문파였다. 강호상의 그 누구도 제령문을 깔볼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화경의 고수를 셋이나 배출한 최고의 명문이었던 것이다.

서량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상대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그의 말투는 아주 정중했다.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하지만 도우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버님께서 직접 나서실 테니까요.”

“문주님께서 직접?”

그 말에 모두들 경악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령문의 문주는 패력검제 서진(徐眞)이었다. 패력검제라는 명호가 말을 해 주듯 그는 화경의 고수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화경의 고수가 직접 움직인다는 말인가?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나?”

“오늘 아침에 무림맹에서 첩지가 날아왔습니다. 마교의 장로가 남궁세가 인근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것 때문에 지금 그를 척살하기 위해 군웅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도 거기에 동참하시겠다고 하셔서…….”

무림맹은 무영신마를 추살하기 위해 맹의 주력 고수들을 동원하지는 않았다. 왠지 그가 혼자 나와 있다는 것이 음모가 아닌가하는 가정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안휘성 인근에 포진하고 있는 분타의 고수들에게만 동원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절정고수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된다. 무림맹은 그 문제를 주위 문파들에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물론 패력검제에게도 무림맹에서 보낸 첩지가 날아왔다. 그는 사파라면 자다가도 이빨을 갈 정도로 증오심이 대단했다. 그런 만큼 마교 장로의 목을 벨 수 있는 이런 절호의 기회를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서량의 얘기를 들으며 가만히 생각을 굴리던 옥대진이 서량에게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는가? 그렇다면 우리도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야 할 게 아니겠는가?”

패력검제의 그 패도적인 무공을 견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또, 그와 함께 동행한다면 자신들이 검을 들 일도 없을 게 뻔했다.

옥대진과 동행하고 있는 4봉의 경우, 무림명가의 여식들이기는 했지만, 무공이 매우 고강한 편은 아니었다. 원래가 7룡4봉의 가입 조건이 무공 수위와는 무관하다는 점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엄청난 고수와 함께 동행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혜택이 되는 것이다.

옥대진의 제안에 그녀들도 이구동성으로 찬성했다. 4봉은 말이 4봉이지 행동에 많은 제약이 따랐다. 모두들 명문가의 여식들인 만큼 수행원도 없이 외출할 생각은 감히 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런 가운데, 이런 엄청난 사건을 직접 견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어찌 찬성하지 않겠는가?

모두들 부탁을 하는데, 그것을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서량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사양할 도리가 없군요.”

그 말에 옥대진과 두 미녀는 환호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천풍검 곡추가 요양하고 있는 장소에 남궁세가의 총관이 다급히 달려 들어왔다.

“총관 어르신, 어쩐 일이십니까?”

곡추의 물음에 총관은 다급히 말했다.

“아, 자네한테 물어볼 것이 있어서 들렀네.”

“예, 무슨 일이십니까?”

“자네와 싸웠다는 마인이 이자가 맞는가?”

총관이 건넨 종이에는 웬 인물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곡추는 초상화를 대충 훑어본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던지 곧장 대답했다.

“이자가 아닙니다.”

그 말에 총관은 기가 막힌다는 듯 대꾸했다.

“뭐라고? 좀 더 자세히 보라구. 그자가 바로 무영신마네. 마도10병 중의 하나인 천마구뢰의 주인이지. 자네는 그자가 사용한 암기가 천마구뢰일지도 모른다고 말하지 않았나?”

하지만 곡추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 마인의 얼굴은 그의 뇌리에 생생하게 박혀 있었다. 그리고 초상화의 인물은 결코 그가 아니었다.

“물론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그자는 저와 싸웠던 마인이 아닙니다.”

“이런 제기랄. 그럼 어떻게 한다? 그렇지. 내가 화공을 보내 주겠네. 자네 수하들도 모두 불러들여서 초상화를 그려 보게. 그걸 무영문에 보내면 누군지 바로 알 수 있겠지.”

“예, 알겠습니다.”

당부를 끝낸 총관은 화공을 부르러 달려가며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모두들 무영신마를 잡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 판국인데, 그가 아니라니……. 그럼 도대체 어떤 놈이야?”

“그런데, 너 혹시 약 먹었냐?”

아르티어스의 물음에 묵향은 짐짓 딴청을 부려 댔다.

“갑자기 그건 무슨 말씀이에요?”

“아니, 그렇지 않고서야 도저히 네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잖아. 미쳤다고 보기에는 눈빛이 너무 생생하고…….”

“뭐가 이상하다는 거예요?”

“저 쓰레기들을 따라다닌 게 지금 며칠째냐?”

말로 만족하지 못하고, 아르티어스는 손짓으로 저 아래쪽 계곡을 가리켰다.

마사코는 아르티어스가 손짓한 방향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하지만 저 먼 지평선까지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도대체 뭘 가지고 저러는 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묵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에이, 그거 때문이었어요? 그놈들이 좀 앞서 가고 있는 거지, 결코 따라가는 거 아니에요.”

“헷! 며칠째 계속 이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게 우연이라고 우기는 거냐? 감히 나를 속이려고 들다니.”

아무리 해도 아르티어스를 속일 수 없다고 느낀 묵향은 오히려 될 대로 되라는 듯 배짱 있게 나갔다.

“좋아요, 따라가고 있어요. 됐어요?”

아르티어스는 묵향이 실토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야 실토하기 시작하는군. 그래, 왜 따라가는 거냐?”

“천지문은 본교와 아주 인연이 깊은 문파죠. 그들이 위험을 당하고 있는데, 그냥 놔둘 수는 없잖아요. 안전한 곳에 다다를 때까지 만이라도 뒤를 봐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 말에 아르티어스는 손가락질까지 하며 말했다. 그의 의문은 바로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거야.”

“뭐가요?”

“바로 그거라니까. 여태까지 네가 해 온 행동들을 생각해 봐라. 이게 비정상이라는 거야. 그딴 놈들 죽든지 살든지 그냥 내버려 두면 끝날 일인데, 왜 이렇게 신경을 써 주는 거야?”

물론 그렇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팔이 놈은 딸의 사제였다. 그놈이 죽으면 딸아이가 아마도 슬퍼할 게 뻔했다. 묵향은 그것이 싫었던 것이다.

“에잇, 그만 두자구요. 며칠 있으면 끝날 건데, 쓸데없이 아버지하고 싸우고 싶지 않아요. 그 얘기는 그만 두고, 식사나 하는 게 어때요?”

그 말에 단순하기 그지없는 아르티어스 어르신의 안색이 환해졌다. 이곳에서 먹은 음식이 꽤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저쪽에 있는 객잔이 괜찮을 듯하구나. 풍겨 나오는 냄새가 그럴듯하거든.”

아르티어스의 말에 마사코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객점은 일행들로부터 꽤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거기서 풍겨 나오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단 말인가? 하긴, 가만히 생각해 보니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저건 사람이 아니라 황금빛 나는 괴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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