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9화 (495/930)

장로회의 소집을 명받은 옥진호 장로는 여섯 명의 수하들을 거느리고 그곳으로 향했다. 회의장으로 향하는 옥진호 장로의 두 눈은 언제나 그러하듯 주의 깊게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경비 무사들의 수와 질에서 평상시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주위에 낯선 인물들이 눈에 띄지도 않았다. 안면이 있는 문사복 차림의 사내 몇이 두툼한 문서 뭉치를 들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옥진호 장로는 허리에 찬 검을 끌러 호위 무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회의장 안에까지 호위 무사를 거느리고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자네들은 여기서 기다리게.”

“옛.”

옥진호 장로는 여러 장로들에게 인사하며 자신의 자리에 가 앉았다. 모든 장로들이 다 모인 후, 맹주는 근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여러 장로님들을 이곳에 부른 이유는 남양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 때문이외다.”

이렇게 서두를 꺼낸 맹주는 옥진호 장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옥진호 장로도 그 사건에 대한 보고서는 받아 봤을 줄로 알고 있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자네의 손자가 연루되어 있는 만큼 자네의 의견을 들어 보고 싶군.”

이미 맹주가 그 말을 할 줄 예상이라도 한 듯 옥진호 장로는 열기 띈 어조로 옥대진을 변호했다.

“남양에서의 사건에 대한 보고는 저도 받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아이들이 맹의 일을 망쳐 놓기는 했지만, 그들이 그 일을 추진한 것이 결코 나쁜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님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다 황실과 무림을 위해 한 일이니 이번 한 번만 관용을 베푸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맹주는 고개를 끄덕인 후 대답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 아이들은 중대한 범죄를 행했네.”

옥진호 장로는 아연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예? 범죄라니요? 무슨 범죄 말씀이십니까?”

“자네의 이름을 이용하여 개방에 압력을 가해 정보를 빼냈네. 새파란 젊은 것들이 무림맹의 이름을 이용하여 못된 짓을 했다는 말일세.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말에 옥진호 장로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물론 그것이 큰 죄임을 알기는 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 줄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부분을 끄집어낸 것을 보면 맹주는 이 일을 결코 대충 넘어가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손자 교육을 잘못시킨 점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그것을 아니 다행이로구먼.”

빈정거리는 맹주의 말에 옥진호 장로의 안색이 노기로 붉게 물들기 시작했지만 감히 발작하지는 못했다. 이곳은 회의장인 데다가, 맹주는 여기 모인 그 누구보다도 막강한 권력과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대들어 봐야 자신만 손해인 것이다.

“감찰부에서는 이것이 각 문파의 후배 밀어 주기가 아닌가 하고 조심스런 의견을 내놓았다네. 각 문파의 고수 여럿이 그 아이들을 호위해 준 것이 그 증거라고 말일세.”

“제가 알기로는 그 아이들끼리.”

옥진호 장로는 재빨리 맹주의 말을 반박했다. 하지만 맹주는 냉정한 어조로 옥진호 장로의 말을 끊었다.

“노부의 말을 다 들어 보고 자네의 의견을 말해 주게.”

맹주의 말에 옥진호 장로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지 않을 수 없었다.

“예.”

“그러니까 감찰부에서는 자네의 손자가 자네의 이름과 맹의 권위를 사칭하여 이 일을 추진한 것이 아니라, 자네가 직접 주도하여 손자를 움직여 이 일을 추진한 것은 아닌가 보고 있네.”

그 말에 옥진호 장로는 경악해서 외쳤다. 그것은 손자는 물론이고 자신까지 파멸시키고자 하는 소리가 아닌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옥진호 장로야 경악하건 말건 맹주는 냉정한 어조로 대꾸했다.

“노부로서는 그걸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치부하기 어려웠다네. 그 아이들이 움직인 것은 맹에서 남양을 잿더미로 만드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뒷조사를 한창 하던 시점이었네. 그 아이들이 맹에서 비밀리에 추진하던 그 일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사실 손자 녀석이 일을 어떻게 꾸민 것인지 옥진호 장로는 알지 못했다. 그 사건에 대해 손자 녀석으로부터 그 어떤 언질도 받은 적이 없었고, 또 그 사건 이후로도 손자를 만난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

“양양성으로 파견한 취조관이 보내온 보고서에 따르면 그들은 그 정보를 마교 교주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말했다고 하네. 매우 그럴듯하지. 하지만 남양을 치는 비밀 작전을 전개함에 있어서 새파란 젊은 것에게 왜 그런 말을 교주가 했겠는가? 또 그 말을 들었다는 팽대성이 마교 교주와 어떤 관계가 있지? 아무런 관계도 없는 팽대성에게 그런 비밀 정보를 말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않는가?”

맹주의 질책에 옥진호 장로는 마지못해 대꾸했다. 스스로도 자신의 대꾸가 가능성이 희박함을 알면서도.

“교주가 일부러 흘렸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무림맹주는 언성을 높이며 질책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가! 수라도제 쪽에 사람을 보내어 알아 봤네. 마교 교주는 개방으로부터 남양에 대한 정보를 받자마자 무공이 뛰어난 수하들을 골라 은밀하게 남양으로 보냈네. 만약 자네 말대로 그게 일부러 흘린 것이라면, 그는 처음부터 남양을 칠 생각이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 그 시점에서 조사한 개방의 정보로는 남양을 잿더미로 만드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었다고 하네. 마교로서는 성공만 한다면 엄청난 명성을 드높일 수 있었을 게야. 그런데 그런 식으로 일처리를 해서 교주가 얻는 게 뭔가?”

설마 교주의 목표가 처음부터 옥대진이었을 거라고는 예상도 할 수 없었기에 옥진호 장로는 꿀 먹은 벙어리마냥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

“그런 만큼 그 정보를 마교 교주로부터 들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봐야 할 것일세. 그렇다면 그 아이들에게 마교가 남양을 치려한다는 정보를 누가 전해 줬겠는가? 맹에서도 1급 기밀로 처리되고 있었던 그 정보를 말일세. 그 작전을 진두지휘할 수라도제조차도 그 명령을 받기 직전까지 그 사실을 몰랐다네. 안 그런가?”

“맹주께서는 저를 모함하고 계시는 겁니다. 저는 결단코 그런 짓은 한 적이 없습니다.”

“그건 조사해 보면 알게 될 일.”

퉁명스런 어조로 옥진호 장로에게 대답한 맹주는 여러 장로들을 향해서 말했다.

“장로들의 생각은 어떻소? 그대들도 옥진호 장로처럼 노부의 의심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노부도 처음 감찰부에서 보고를 받았을 때, 보고서를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힘들었다네. 그만큼 그 보고서가 노부에게 안겨 준 충격은 컸으니 말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고 우길 수도 없는 노릇. 그렇기에 노부는 감찰부의 청을 받아들여 옥진호 장로에 대한 치밀한 조사를 명령하고자 하네. 물론 그의 신분이 현직 장로인 만큼, 노부 독단으로 그를 구속하라고 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렇기에 그대들을 소집한 것이니 선택은 그대들이 하게.”

맹주의 말을 가만히 들어 보니 매우 그럴듯해서 옥진호를 지지하던 장로들로서도 뭐라고 나서기가 곤란했다. 더군다나 맹주는 옥진호 장로가 결백하기를 원하는 듯했다. 그렇기에 모두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서로 쑤군거리며 머뭇거리고 있을 때, 공수개 장로가 선뜻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공수개 장로는 옥진호 장로가 잡혀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맹주님의 설명을 듣고 보니 과연 감찰부에서 옥진호 장로를 의심하실 만하군요. 저는 맹주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공수개 장로가 앞장서서 바람을 잡자 다른 장로들도 그 의견에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조사한 후 잘못이 밝혀지면 치죄하자는데 뭐라고 반론을 제기할 것인가.

“저희들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옥진호 장로는 맹주의 눈치를 살피며 암암리에 공력을 돋우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탈출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탈출할 결심이었던 것이다. 사실 맹주의 말처럼 일이 공정하게 이뤄질 것이라면 그가 구태여 탈출을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무림맹의 높은 직위에 오래 있으면서 모든 일이 그렇게 공평하게만 처리되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상대를 정해 일을 시작했으면 그 후환이 두려워서라도 철저히 짓밟는 것이 정석이었다. 옥진호 장로도 지금껏 몇 번인가 해 왔듯,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은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옥진호 장로를 맹주는 가소롭다는 듯 슬며시 노려보고 있었다. 화경급에 이른 그가 옥진호 장로가 일격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는 것이다. 서로의 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옥진호 장로는 공력을 풀면서 중얼거렸다. 이미 탈출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물론 저에게 죄가 있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맹세코 저는 손자에게 그런 일을 지시한 적이 없습니다.”

맹주는 냉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것은 감찰부에서 공정하게 조사해 본 후 결론을 내릴 것이니 그대에게 죄가 없다면 염려하지 말게.”

이렇게 해서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던 옥진호 장로는 투옥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날 연금 중인 옥대진 등을 무림맹으로 이송하라는 지시가 양양성으로 날아갔다.

옥대진이 무림맹에 도착했을 때, 그에 대한 대접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옥대진 앞에서 쩔쩔매던 취조관은 서릿발을 휘날리며 옥대진을 추궁하고 있었다. 사람이 달라져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야, 이 새끼야. 빨리 안 불어? 네놈은 옥진호 장로의 지시를 받고 남양에 침투했지?”

모진 고문을 당한 옥대진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의 눈빛은 살아 있었다. 왜냐하면 믿는 사람이 있었기에.

“크흐윽, 네, 네놈이 나에게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수 있을 줄 아느냐? 두고 보거라. 할아버지께서 이 일을 아신다면.”

하지만 취조관은 더 이상 옥대진의 협박을 들을 마음이 없었는지 콧방귀를 뀌더니 싸늘한 어조로 빈정거렸다.

“흥! 아직까지도 자신의 처지를 모르는군. 내가 너를 이렇게 족칠 수 있다는 것은 네놈의 할아비가 끝장났기 때문이야. 무슨 뜻인지 알겠냐?”

하지만 옥대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완강하게 외쳤다.

“헛소리 지껄이지 마라. 할아버지를 뵙게 해 다오. 그렇게만 해 준다면 지금까지 있었던 일은 모두 잊어 주마.”

“이제 그만 버티고 순순히 시인하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지 않겠나? 자, 말해 봐. 네놈은 옥영진 장로의 명을 받고 남양에 침투했지?”

“결단코 그런 일은 없었다. 내가 한 일이다.”

취조관은 이를 갈며 외쳤다.

“독한 새끼! 하지만 네놈이 개겨 봤자야. 이봐.”

취조관의 부름에 옆에 서 있던 사내가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옛.”

“좀 더 조져. 내일까지 불지 않으면 네놈도 저 꼴이 될 줄 알아. 알겠어?”

“명심하겠습니다.”

잠시 후, 그 사내는 몇 가지 새로운 고문 기구들을 더 꺼내더니 옥대진을 고문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길고 긴 옥대진의 비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취조관은 점점 더 처참한 몰골로 변해 가는 옥대진을 냉소 띈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옥대진에 대한 대접이 이렇게 바뀐 것은 위쪽으로부터 새로운 지시가 하달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상관은 옥대진의 행동이 옥진호 장로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증거를 내놓으라고 지시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취조관이 너무나도 원하고 있었던 명령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권력을 등에 업고 자신에게 큰소리를 치던 놈이 역으로 자신의 손아귀에 떨어졌으니 이 어찌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고문하는 재미가 쏠쏠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렇기에 취조관은 이 새파란 애송이에게 당했었던 갖은 수모를 떠올리며 더욱 그를 닦달하는 중이었다.

며칠 후, 전 무림맹주 옥청학의 아들이자, 무림맹 장로였던 옥진호 장로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공정성을 기한다는 명목 하에 진행된 공개 재판이었기에 많은 무림의 고수들이 재판을 참관할 수 있었다. 물론 죄인의 신분이 무림맹의 현직 장로인 만큼 명망 있는 고수들에게만 참관할 자격이 주어졌다.

피고석에 앉아 있는 옥진호 장로는 현직 장로인 점을 고려하여 산공분이 든 차만을 마셨을 뿐, 그 어떤 제제도 받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재판석에 앉아 있는 그의 신색은 수감되기 며칠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재판이 진행되자 옥진호 장로의 죄상에 대한 가지각색의 증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이 어느 정도 심증은 줄 수 있는 것이었지만, 정확히 그가 범인이라는 증거는 될 수 없었다. 만약 이런 식으로 재판이 계속 진행된다면 그는 무혐의로 풀려날 가능성이 매우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감찰부에서 꺼낸 증거품은 장내의 분위기를 완전히 뒤바꾸어 버렸다.

“바로 이것이 옥대진의 친필 자술서입니다. 여기에는 그가 옥진호 장로에게서 언제, 어떤 식으로 지시를 받았는지 모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 자술서는 옥대진이 고문에 못 이겨 기록한 것이었다. 자술서의 뼈대는 감찰부에서 직접 만들었고, 그것을 불러 주는 대로 옥대진이 직접 쓴 것이었기에 모든 내용은 한 치의 빈틈도 없었다.

자술서가 튀어나오자 지금까지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던 옥진호 장로는 노성을 터뜨렸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짓거리! 네놈들이 손자를 고문해서 그것을 쓰게 한 모양인데…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이런 못된 놈들!”

“그런 망발로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 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가문의 영광도 중요하지만, 구태여 이런 추태까지 부릴 필요가 있었습니까?”

“추태를 부리기는 누가 부렸다는 것이냐? 그따위로 증거를 날조하다니…….”

이때 지금까지 조용히 재판을 참관하고 있던 하북팽가의 가주가 드디어 분노를 터뜨렸다. 지금까지 살펴본 결과 옥진호 장로가 범인임에 틀림없었다. 모든 증거가 명명백백한데도 아직까지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뻔뻔스럽게 오리발을 내밀다니……. 그것을 보면서 그는 도저히 이성을 유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망할 녀석! 네놈 때문에 노부의 아들이 죽었거늘, 아직까지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는 말이냐?”

그와 동시에 하북팽가주의 손에서는 매서운 권풍이 쏘아져 나갔다. 누가 봐도 일격에 옥진호 장로를 없애 버리겠다는 뜻임을 알았지만, 너무나도 강맹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주위에 있는 고수들은 감히 그것을 막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때 무표정하게 장로석에 앉아 있던 맹호검군(猛虎劍君) 백량(白諒)이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지금 그는 재판에 참석한다고 무기도 지니지 않은 상태였기에 감히 하북팽가주와 접전을 벌일 수는 없었지만, 그의 한 수 정도는 막을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펑!

백량 장로는 강맹한 권풍의 반동을 줄이기 위해 재빨리 뒤로 서너 걸음이나 물러서야만 했다. 자신의 일격을 백량 장로가 막아 버리자 하북팽가주는 더욱 분기탱천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지금까지 백량 장로는 옥진호 장로파로 분류되던 인물이었다. 계속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방해한다면 백량 장로를 해치우는 한이 있더라도 아들의 복수를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때, 백량 장로는 몸을 빙 돌려 피고석에 앉아 있는 옥진호 장로를 바라보며 싸늘한 어조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매화문검 장로, 감찰부에서 제시한 증거가 참이오?”

믿고 있던 백량 장로마저 이런 식으로 묻자 옥진호 장로는 벌컥 화를 내며 외쳤다.

“자네까지 그런 걸 묻다니……. 저것들 모두가 다 새빨간 거짓임을 자네는 모르겠는가? 정말 답답하구먼. 증거 따위야 얼마든지 조작해서 만들 수 있음을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옥진호 장로의 대답에 백량 장로는 공허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허허헛, 아직까지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다니……. 노부가 저런 소인배를 믿고 함께 일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허탈하구나.”

백량 장로는 그대로 자신의 숙소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백량 장로라는 걸림돌을 공격하려던 하북팽가주만 우스운 꼴로 그 자리에 서 있게 되어 버렸다.

이때, 하북팽가주 옆에 앉아 있던 황보세가주가 그의 손을 슬쩍 잡아끌어 자리에 앉히며 말했다.

“지금 저놈을 죽인다는 것은 안락한 죽음을 선물하는 것과 같소이다. 저런 놈에게 그런 호사를 안겨 줄 필요가 있소이까?”

황보세가주는 아들의 목숨은 건졌는지 몰라도 가문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고수들 중의 한 명이었던 절파검 황보청을 잃었다. 그것이 대의를 위한 희생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가만히 되어 가는 꼴을 보니 완전히 개죽음을 당한 것이 아닌가? 황보세가주가 이빨을 갈 수밖에 없었다.

“젠장, 그, 그렇구려. 저런 놈에게는 안락한 죽음도 사치지.”

이번 일로 가장 큰 피해를 당한 황보세가주와 하북팽가주가 옥진호 장로의 유죄를 인정한 것만으로도 장내의 분위기는 그쪽으로 흘러가 버렸다. 그만큼 그 두 가문의 위세는 엄청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되었는가?”

무림맹주의 물음에 감찰부주는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예상대로 재판은 순조롭게 끝났습니다.”

그 말에 맹주는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크흠, 그런 거목을 이런 식으로 보내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나도 씁쓸하구먼.”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의 능력이 출중하다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는 너무 자숙할 줄 몰랐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참, 사질은 그를 언제 처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요. 참, 황보세가주나 하북팽가주가 가장 지독한 고통을 수반하는 죽음을 내리라는 요청을 해 왔습니다. 그렇기에 가능한 한 지독한 통증을 유발시키면서 차츰차츰 죽여 나가는…….”

하지만 맹주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감찰부주의 말을 끊었다.

“잠깐! 그건 너무 잔혹한 듯하구먼. 그보다는…, 결론적으로 그는 이적 행위를 한 셈이니 오마분시(五馬分屍)를 하기로 하세.”

오마분시는 살아 있는 사람의 목과 양손, 양발을 각기 말 한 필씩에 연결한 후, 일시에 말들을 출발시켜 토막 내어 죽이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황실에서 반역도를 처형하는 데 애용되고 있는 무시무시한 처형 방법이었다.

하지만 감찰부주는 난감하다는 듯 대꾸했다.

“보기에는 끔찍할지 모르지만 순간적인 죽음입니다. 황보세가나 하북팽가에서 이의를 제기해 오지 않겠습니까?”

“그건 노부가 무마시키지. 오마분시로 하게.”

맹주의 명령에 감찰부주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옛, 맹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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