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0화 (656/930)

재정비하는 마교

마교에서의 기본적인 율법은 강자지존(强者之尊)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실력 차가 미세하여 생사대결을 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기에 그 상하관계가 매우 미묘해진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뭔가 다른 임무가 있어 수행능력이 뛰어나다든지 하면 직위가 오를 가능성이라도 있겠지만, 마교의 주력 고수들은 눈만 뜨면 하는 게 수련이다 보니 무공 외적인 능력을 드러낼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위로 올라갈수록 교주의 신임을 얼마나 받느냐, 혹은 얼마나 든든한 배경을 지니고 있느냐가 아주 중요해지게 된다.

물론 그런 배경을 만드는 능력도 강자로서 지녀야 할 덕목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마교처럼 강자를 우대하는 단체에서조차도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이중 잣대가 존재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막심한 피해를 입은 전쟁이 끝난 다음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전쟁에서 수많은 고수들이 죽었기에, 조직의 대대적인 재편성이 불가피한 상황인 것이다.

공을 세운 무사들은 진급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다. 더군다나 교의 수뇌부라 할 수 있는 장로직마저 한 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였다. 교내에서는 누가 옥관패를 대신하여 새로운 장로가 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게 새로운 진급자들의 명단인가?”

“예, 교주님.”

묵향은 설민이 건넨 두툼한 문서다발을 꼼꼼히 살펴봤다. 수많은 고수들이 죽어 나간 상황이라, 그 공백만 메우면서 위로 올라간다고 해도 모두들 수십 단계 이상 서열이 올라가게 된다. 더군다나 만약 눈에 띄는 공이라도 세웠다면, 심하면 100단계 이상의 서열이 이동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누가 어디서 공을 세웠는지, 묵향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보고서가 정확하게 작성되어 있다면, 그것에 맞춰 상을 주면 된다.

문제는 얼마나 정확하게 작성되어 있느냐, 그것만 자신이 판단하면 되는 것이다.

묵향은 자신이 읽던 두툼한 책자를 내려놓으며 설민에게 지시했다.

“교내 상위 200위까지 서열이 기록되어 있는 서책을 가져오게. 전쟁 전의 것은 물론이고, 이번 진급이 시행된 후에 변동할 것까지 말이야.”

“즉시 작성하여 가지고 오겠습니다, 교주님.”

서열표가 새롭게 작성되는 것인 만큼, 곧바로 가져온다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설민은 밑에 사람들을 채근해 금세 시간 그 일을 끝마쳤다.

“여기 있습니다, 교주님. 이것이 과거의 것이고, 이게 새로운 서열표입니다.”

책자에는 서열과 이름, 그리고 그 사람의 직책이 기입되어 있었다.

새로운 서열표를 보는 순간, 묵향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자신의 이름 바로 밑에 마화의 이름이 써져 있는 것을 보니, 뭔가 기분이 묘했던 것이다.

두 권의 책자를 비교해서 살펴보니, 누가 죽었고 누가 그 자리를 대신해서 들어왔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자신과 고락을 함께 했던 뛰어난 수하들을 많이 잃었다. 특히 초류빈이나 옥관패 장로가 죽은 것은 너무나도 아쉬웠다. 그만큼 힘겨운 전쟁이었다는 반증이겠지만, 그들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묵향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한참 서열표를 꼼꼼히 살펴보던 묵향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군사, 자네 이름은 어디에 있나? 아무리 살펴봐도 안 보이는데 말이야.”

“예? 그, 그럴 리가…….”

급히 만들어서 가져오느라 아무래도 검증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큰 오류는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자신의 이름이 없는 것이다. 순간, 설민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여기는 물론이고, 이쪽에도 자네의 이름이 없더군.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그제서야 설민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그의 아버지 설무지는 교내 서열 4위를 차지했었다. 하지만 그의 후계자로서 새롭게 군사가 된 설민의 지위를 몇 위로 줄지에 대해 논란이 심했었다.

더군다나 그때는 철영과 관지가 대권을 두고 다툼을 벌이고 있던 때라 누구도 설민에게 높은 서열을 주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가 어느 쪽에 붙느냐에 따라 쌍방 간에 희비가 엇갈릴 테니 말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묵향이 돌아왔고, 또 전쟁이 벌어지고……. 뭐 어쩌다 보니 설민의 서열이 허공에 붕 떠버렸음에도, 그걸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시간이 이렇게 흘러 버렸던 것이다.

“약간의 착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교주님.”

“뭐, 어쩌다 보면 누락될 수도 있겠지. 그래, 자네 서열은 몇 번째인가?”

과거 설무지가 죽기 전에 그가 받았던 서열은 2,352위였다. 군사부(軍師部)에서 일하는 문관에게 주어진 서열치고는 엄청나게 높은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그 서열을 그대로 묵향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한 문파의 군사 서열이 2,352위라는 건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소리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 마음대로 서열을 높여서 교주에게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

설민이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자, 묵향은 짜증스런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설민의 명단이 어쩌다 실수로 누락되었다고 생각했지, 설마 아직까지도 예전 서열 그대로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고민을 하던 설민은 결국 고개를 푹 숙이며 이실직고했다.

“그게…, 장로회를 거쳐야 제 서열이 확정될 듯…….”

“그게 무슨 말인가? 아직까지도 서열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말인가?”

“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교내의 서열조차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속하의 잘못입니다.”

간덩이가 작은 설민이 이렇게 솔직히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사안 정도로 묵향이 자신을 문책할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짐작이 맞았는지 고개를 조아리는 설민을 보며 묵향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물론 씁쓸한 여운이 감도는 미소였지만.

“그게 어떻게 자네의 잘못이겠나. 자네가 군사직에 오른 후 꽤나 많은 일이 있었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이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게지. 어쨌건 잘못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바로 잡지 않을 수는 없지. 본좌가 자네의 서열을 정해 주겠네. 자네의 서열은 예전의 설무지와 같이 대호법 다음이면 적당하겠군.”

묵향의 말에 설민은 깊이 고개를 조아렸다.

“교주님의 신뢰에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

묵향이 자신을 얼마나 생각해 주는지를 느낀 설민의 눈가에 살짝 물기가 어렸다. 묵향의 말대로라면 자신은 대호법 다음인 교내 서열 5위가 된다는 말이었다.

“뭘, 그 정도 가지고. 그쯤은 돼야 장로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을 거 아닌가?”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설민의 목소리에는 자신이 없었다. 사실, 자신의 서열이 아무리 높아진다고 해도, 저 노회하기 짝이 없는 늙은 마두들을 아버지처럼 손가락 하나로 다룰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들의 살기 띤 눈빛만 봐도 오금이 저리는데, 그들을 어찌 제어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그들도 설민이 심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말이다.

“어허, 목소리가 왜 그렇게 자신이 없나? 힘내라구. 자네는 잘하고 있어. 지금까지 해 온 대로만 해 줘도 본좌는 충분히 만족해. 알겠나?”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다시금 눈길을 돌려 책자를 살펴보던 묵향은 여기저기에 공란이 있는 것들을 발견했다.

“이건 뭔가?”

“예, 아직 인원이 내정되지 않았기에 비워둔 것입니다. 전사자들이 많은 만큼, 대대적인 재편성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특히 혈랑대와 같은 경우에는 거의 전멸한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라…….”

“동방뇌무 장로에게 혈랑대를 재건하라고 해. 인원 선정에 있어서 최우선권을 줄 테니, 가장 뛰어난 고수로 100명을 뽑으라고 말이야.”

“가장 뛰어난 고수라고 하시면…, 호법원도 포함되는 겁니까?”

잠시 궁리하던 묵향이 대답했다. 예전처럼 딸린 식구가 없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호법원의 호위가 필요했다.

“대호법에게 전해. 고수의 수가 부족한 만큼 그쪽에서 양보하라고 말이야. 좌호법원은 그대로 유지하고, 우호법원의 수는 200명으로 늘리는 대신, 한 단계 낮은 고수들로 채워 넣으라고 해. 그리고 본좌의 가족들의 호위는 좌호법원이 전담하고, 그 외의 요인들에 대한 호위는 우호법원이 책임지는 것으로 하면 되겠군.”

“대호법께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인원 차출에 대한 우선순위는 혈랑대 다음에 호법원으로 할까요?”

“그렇지. 그 외에는 예전처럼 하면 되겠군.”

“참, 자성만마대의 피해가 워낙 커서 꽤 많은 인원을 보충해야 하는데, 외부지단이나 분타에서도 인원을 차출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잠시 생각하던 묵향이 대답했다.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특별한 일이 없다면 전투단들은 전부 총단에 있을 거고, 그 녀석들에게 경비를 세우면 되는데 말이야. 외부지단이나 분타도 어느 정도의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어야지.”

“예,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수라마참대는 한중평 장로가, 천랑대는 천진악 장로가, 염왕대는 장영길 장로…….”

묵향이 여기까지 말했을 때, 설민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끼어들었다.

“서열로 본다면 염왕대는 관지 장로가 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흑풍대에 비해 염왕대가 월등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관지가 자신이 계속 흑풍대를 맡게 해 달라고 본좌에게 청해 왔네.”

하기야 흑풍대의 특성상 관지 장로 말고 다른 사람이 맡기는 어려웠다. 흑풍대는 마교의 다른 전투단과는 싸우는 방식이 완전히 달랐으니까.

“그리고 자성만마대는 초진걸에게 맡기는 게 좋겠지.”

서열만으로 따진다면 다음 장로가 될 사람은 혈화궁주 나유란이었다.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인해 초진걸의 서열은 나유란이나 진천악보다 높아지게 되었다. 전투단을 지휘하는 장로가 외부지단의 수장인 혈화궁주나 만악궁주보다 서열이 낮다는 것은 말이 안 되니까.

“초 좌호법이 교주님의 은혜에 감읍할 것입니다.”

“여문기 우호법을 좌호법으로 격상시키고, 우호법에는 설약벽 좌외총관을 임명한다. 여진 우외총관을 좌외총관으로, 그리고 이번 전쟁에서 공이 큰 왕호(王晧)를 우외총관으로 임명하도록 해.”

전공(戰功)이 뛰어난 왕호야 그렇다손 쳐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줄곧 외지로만 돈 설약벽을 우호법에 임명한 것은 설민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호법원은 교주를 근접거리에서 경호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하는 만큼, 실력이 조금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믿을 수 있는 인물을 배치하는 것이 관례였다.

과거 그녀와 함께 외총관의 휘하에서 근무했었던 좌외총관 천진악이 지금은 교내 서열 9위까지 올라가 있는 것을 보면, 그동안 그녀가 얼마나 홀대받아 왔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그녀를 우호법에 임명한다? 설민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인사였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간에 묵향이 그렇게 결정을 내린 이상, 설민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명령하신 대로 이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새롭게 바뀐 서열표를 다시 작성해서 본좌에게 한 부 가져오게.”

“예,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군사 설민이 나가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수석장로가 찾아왔다.

“어서 오게나, 수석장로.”

“바쁘신데 찾아온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교주님.”

“아닐세, 시간은 괜찮아. 차나 한잔 하겠나?”

“감사합니다.”

묵향은 차를 가져오라고 명령한 다음, 수석장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 무슨 일인가? 자네가 직접 찾아온 걸 보니 꽤나 민감한 사안인 모양이지?”

교의 행정적인 일은 군사가 알아서 처리했고, 무력에 관계된 일은 내총관(수석장로)이 처리했다. 편제상으로 따졌을 때, 호법원을 제외한 교내의 모든 전투집단이 내총관 휘하에 있었다. 당연히 수석장로의 권력은 교주 다음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한 가지 상의드릴 게 있습니다.”

“뜸들이지 말고 속 시원히 말해 보게.”

“혹, 부교주님께 연인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잠시 아연한 표정을 짓던 묵향이 대꾸했다.

“철영이 바람피우고 있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그게 아니라 초류빈 부교주님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런 말은 처음 듣는군. 수련은 안 하고 연애질이나 하고 있었다니. 죽어도 싸다니까. 그래, 어디의 누군가?”

묵향의 질문에 수석장로는 초류빈과 시녀와의 풋사랑에 대해 소상히 얘기했다.

“풉, 하고 많은 여자들을 놔두고 마영각(魔迎閣)에서 일하는 시녀라니……. 내 그 녀석의 정신상태가 조금 맛이 간 건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군. 그런데 본좌에게 그 얘기를 하는 이유는 뭔가? 정인(情人)이 죽었다고, 그 애가 목이라도 맸다는 말인가?”

“그 아이는 아직 부교주님께서 돌아가신 걸 모르고 있습니다.”

“초류빈이 죽었다는 것을 교에 있으면서 모를 리가 있나.”

“그게 아니라, 초류빈 부교주님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기에 모르고 있는 것이지요.”

“호오,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라……. 꽤나 재미있는 얘기로군. 그런데 그 얘기를 본좌에게 한 이유는? 질질 끌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주게.”

“그 아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교주님께 상의 드리고자 온 것입니다. 부교주님의 정인이었다는 걸 뻔히 알면서, 허드렛일이나 시키기도 그렇고…….”

이런 하찮은 일로 자신을 찾아온 수석장로를 묵향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석장로의 힘이라면 그냥 적당한 자리 하나 내주는 것쯤이야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기에 대답하는 묵향의 어투에는 약간의 짜증이 어려 있었다.

“편히 지낼 수 있도록 자리 하나 마련해 주면 되잖나?”

그러자 수석장로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

“그게…, 나이도 너무 어린데다…….”

“대체 몇 살인데 그러나?”

“이제 17살이랍니다.”

묵향은 황당하다는 듯 툴툴거렸다.

“허, 녀석의 취향을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가 없구만.”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묵향은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혹시 그 아이에게 뭔가 특별한 점은 없던가? 근골이 뛰어나다든지 뭐, 그런…….”

“제가 직접 만나 봤습니다만 무공에 소질도 없는데다가, 근골도 썩 좋은 편이라고는…….”

여기까지 말하던 수석장로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급히 덧붙였다.

“아니, 평균보다도 못하다고 평가하는 게 정확한 평가일 겁니다.”

“그렇다면 그놈은 왜 그런 쓸모없는 계집을 만나고 있었던 거야?”

“제가 만나 본 바에 의하면 심성이 착한 것 같았습니다.”

묵향은 수석장로의 말에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쯧쯧… 그건 아닐 거야. 마음이 착하다느니…, 그런 전혀 객관적이지 못한 부분에 끌리기에는 녀석의 나이가 너무 많잖아. 풋내기도 아니고 말이야. 혹, 그 아이의 미모가 뛰어나던가?”

“예, 마영각에서 일하는 아이인 만큼, 미모는 기본이지요. 혈화궁에서 자색이 출중한 아이들만 뽑아서 파견하니 말입니다.”

“응큼한 녀석 같으니라고.”

“허나 아마 미모가 그 기준은 아닌 듯합니다. 마영각에는 그 아이보다 뛰어난 미색을 지닌 아이들이 많이 있으니 말입니다.”

“미모도 아니라면 혹, 나이에 걸맞지 않게 밤 기술이 뛰어나다든지 하는 게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묵향은 가볍게 농담으로 받았지만 수석장로는 의외로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여색의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그분이 만난 여자는 지금까지 그 하녀 하나뿐이었으니까요. 어쨌거나 뭔가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어도 아는 게 없다 보니 높은 자리에 앉힌다는 것도 문제고, 그렇다고 자질도 없으니 누군가에게 제자로 받아들이라고 권하기도 그렇고…….

뭘 그런 걸로 고민하냐는 듯 묵향은 곧바로 말했다.

“그러면 자네가 제자로 삼으면 되겠네. 심성은 곱다니 잘됐군.”

“제, 제가요?”

자질이 없어서인지 수석장로는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던 모양이다. 깜짝 놀라며 당황하는 걸 보면.

“사실, 자네도 제자를 거두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으니, 그냥 노후에 시중이나 들어줄 딸 같은 애를 하나 들인다고 생각하게나.”

전혀 예상치 못한 묵향의 권유에 수석장로는 차마 거부는 못하고 당혹스런 표정만 짓고 있었다. 그러자 묵향은 도망치지 못하도록 아예 쐐기를 박아 버렸다.

“정 데리고 있기 귀찮으면 한 몇 년 키우다가 시집 보내 버려. 혼수는 본좌가 지원해 줄 테니까.”

묵향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도저히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그렇기에 수석장로는 마지못해 승낙을 해야 했다.

“그, 그렇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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