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76화 (872/930)

자네 혹시 사막에 가 봤나?

월터가 사라진 후, 파벨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주변을 감시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이대로 앉아서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다는 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밤을 새우는 거라면 몰라도 아늑한 방안에서, 줄기차게 수면을 유혹하는 침대를 옆에 두고 잠을 참는 건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더군다나 언제 공격을 받을지 모르는 상황은 그녀의 정신을 극도로 빨리 소모시키고 있었다.

다음날이면 온다고 했던 월터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따뜻한 오후……. 파벨은 햇볕이 들어오는 따뜻한 창가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너무 피곤했던 것이다.

이때,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파벨은 화들짝 일어서긴 했지만, 작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문 쪽을 바라봤다. 누가 문을 두드리고 있는 거지?

이때, 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봐, 안에 없어? 젠장, 밖에 나갔나?”

바짝 긴장하고 있던 파벨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들려온 목소리는 자신의 기억에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급히 달려가 상대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기 전에 문을 벌컥 열었다. 뒤돌아 걸어가고 있던 월터가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뒤로 돌리는 게 보였다. 틀림없는 월터였다. 파벨은 반가움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돌아오셨군요.”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며 배신감과 두려움에 홀로 떨고 있던 파벨이었으니, 월터의 등장이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격한 반응은 월터로서는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뜻밖의 것이었다. 겨우 사흘 보지 않았을 뿐인데, 뭘 저렇게 감격하고 난리지? 어이가 없었던 월터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간 줄 알았는데, 자고 있었나?”

“아뇨. 괜찮아요.”

피곤에 찌든 얼굴을 보고, 월터는 그녀가 최선을 다해 임무 수행을 하고 있었던 거라고 해석했다. 꽤 사명감이 있는 녀석을 소개해 줬군. 물론 여자라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내려가서 같이 식사나 하지. 내가 없는 동안 혼자 감시하느라 피곤했던 모양인데, 좀 먹고 푹 쉬도록 해.”

“가…, 감사합니다.”

월터가 도착한 다음 날, 알카사스 지부에서 나온 안내원이 접선하러 왔다. 물론, 월터에게 온 게 아니라 미끼와 접촉했다는 말이다. 그것을 보며 월터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에는 안내원이 오기 전에 습격을 받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대로 접선이 이뤄졌다.

‘정보부 말대로 그때는 우연이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월터는 애써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있나. 그 많은 마법사와 기사들. 더군다나 놈들은 다짜고짜 기습공격부터 시작했어. 우연일 수가 없지.’

미끼는 그 안내원의 안내를 받아 알카사스 서부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뒤를 월터는 파벨과 함께 은밀하게 쫓았다. 어떤 때는 어쩔 수 없이 미끼와 함께 이동하게 되기도 했었는데, 그런 때는 전혀 안면이 없는 척하며 서로를 외면했었다.

이동마법진을 통해 알카사스 서쪽 끝단의 성읍도시 링카에 도착하자 주변 경치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알카사스의 동쪽 끝단에서 서쪽 끝단으로 이동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색적인 모양의 나무들과 동물들. 링카 성에서 서쪽으로 나흘 정도만 이동하면 알카사스 국경선에 도달하게 된다. 아마 습격이 있다면 그 안에 이뤄질 거라고 월터는 생각했다.

링카 성은 사막을 건너오는 산물들이 통과하는 교역의 중심지이자, 서쪽 방어선의 중심이기도 했다. 그만큼 성의 규모는 상상을 불허하는 규모였다. 수많은 인파와 마차, 수레들이 길을 꽉 채우며 이동하는 것을 본 파벨은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솟아올라 있는 거대한 탑. 저 마법탑이야 말로 마도왕국 알카사스의 상징물이었다. 월터는 잠시 마법탑을 바라본 후, 시선을 중천에 떠 있는 태양 쪽으로 옮겼다. 이곳은 사막에 지어진 성읍이라고 들었는데 전혀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법의 힘 덕분일 것이다.

“기후조작 마법의 수준이 정말 놀랍네요.”

“서로 간에 추구하는 바가 다르지. 이들은 생성된 에너지를 기후조작에 돌리고 있고, 우리 쪽은 방어에 돌리고 있으니까.”

“…….”

맞는 말이었다. 사실, 온화한 기후와 풍요로운 대지를 가지고 있는 코린트 제국은 굳이 기후조작에 방대한 에너지를 투입할 필요성을 느끼지를 못한다. 그 외에도 에너지를 쓸 곳이 얼마나 많은데…….

“저쪽으로 가자.”

그들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미끼의 뒤를 따라가는 중이다. 누군가 엿보고 있는 자가 있을지 모르기에, 서로 모르는 척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안내역으로 합류한 인물은 월터와 파벨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었고.

“방금 전에 나간 손님들이 구입한 물품들, 우리들에게도 주시오.”

“사막을 건너려고 하십니까?”

“그렇소.”

상인은 월터와 파벨을 힐끗 바라보더니 씁쓸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이곳에서 오랜 세월 장사를 해온 만큼, 눈앞의 손님이 사막을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것을 한눈에 꿰뚫었기 때문이다.

조작된 온화한 기후만 생각하고 사막에 도전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없다. 더군다나 사막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강인한 몬스터들은 저딴 얄팍한 롱 소드 따위로는 대적조차 불가능했다.

“상단과 동행하실 겁니까?”

파벨의 옷차림은 약간 고급스런 것이었지만 자신의 행색이 남루하기 짝이 없다는 걸 월터는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주변 사람들은 월터를 파벨을 모시고 이동하는 호위나 용병쯤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파벨이 후드를 벗고 있었다면 한눈에 마법사라는 걸 알아봤을 테니 이런 친절을 베풀지도 않았겠지만 말이다.

평소 같았으면 정보 수집을 위해 상인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을 것이다. 하지만 월터는 지금 그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미끼와 너무 멀어지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상인의 말문을 막기 위해 일부러 퉁명스런 어조로 대꾸했다.

“이미 계약해 놓은 상단이 있소. 그러니 물건이나 빨리 챙겨 주시오.”

“아…, 예. 그러셨군요. 잠시만 기다리십쇼.”

상인은 황급히 물건을 챙겨 월터에게 건넸다.

링카 성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그들은 사막을 건널 수 있는 완벽한 준비를 갖출 수 있었다. 식량과 밤에 덮을 두터운 담요 등 각종 물품들은 물론이고, 낙타라는 해괴하게 생긴 승용 짐승까지 두 마리 구입했다.

“자네 말…, 아니 낙타는 탈 줄은 알겠지?”

물론 탈 줄 안다고 파벨은 대답했었다. 하지만 낙타를 타고 얼마 가지도 않아 월터는 눈치챘다. 그게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월터는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내달릴 것도 아니었고, 천천히 걸어가는 녀석 위에 앉아 있기만 해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필요성은 며칠 후에는 사라진다. 복수전이 끝나고 나면, 서부지부장과 함께 돌려보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링카 성문을 벗어나자마자 방금 전까지 온화하게만 느껴졌던 태양이 본성을 드러내며 주변 온도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무시무시한 열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평선 아래로 모습을 감출 텐데도 이 정도니, 본격적으로 중천에 떠 있을 때는 그 열기가 어느 정도나 될지 상상도 되지 않을 정도다. 이렇기 때문에 모두들 사막에서는 주로 밤에 이동하는 것이리라.

사막이라고 해서 완전히 모래밭인 것만을 상상했었는데, 의외로 군데군데 풀이 많이 자라 있었다. 그 때문에 전체적인 정경은 드넓은 황무지하고 비슷했다. 나무가 거의 없는 것만 뺀다면…….

월터는 묘한 감흥에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게 사막인가…….”

열사의 사막을 뚫고 들어가 임무를 수행할 걸 생각하면 욕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단장인 크로데인 공작이 자신에게 했던 제안이 떠올라 헛웃음이 먼저 나왔기 때문이다.

「월터, 자네 혹시 사막에 가 봤나?」

가보지 않았다는 자신의 대답에 크로데인 공작은 잘됐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말했었다.

「그럼 잘됐군. 이번 기회에 사막이란 게 어떤 곳인지 구경이나 좀 하고 오게. 이곳과는 풍광이 전혀 다를 거야. 그러니 가서 두루두루 살펴보고 견문 좀 넓히고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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