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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8화 (8/258)

# 두려움 #

'싸움에 익숙하지 않다'

'현재' 지구의 사람들에 비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헌터란 직업이 대중화된 지금의 지구는 20년 전과 확실히 달라졌다.

인류는 그 옛날 원시시대의 수렵생활처럼 매서워졌다. 지금은 치안이 안정되었지만 내가 유치원 때 겪었던 고블린 학살사건처럼 호랑이의 발톱과 늑대의 울음소리에 안전했던 21세기 현대인들은 야생보다 더 위험한 세계를 맞닥뜨리게 되었고 치안병력에 기댈 수 없다는 걸 깨닫자 제 한 몸 지켜내기 위한 변화를 받아들였다.

난 싸움에 익숙하지 않다. '헌터' 들에 비하면.

다만 20년 전의 현대인과 비교하면 그들과 난 사냥꾼과 농사꾼의 차이가 있었다.

괜히 격하게 흔든 콜라처럼 톡 건드리면 터져버리는 다혈질의 남자가 격동의 시기를 탈선, 타락, 중2병의 위험에 놓인 청소년 시절에 보낸 게 아니었다.

마츄의 진흙밭에서 죽을 뻔한 이후, 난 용에게서 '알림 벨' 이란 걸 받았다.

위험천만한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데 구명줄과 같았기에 당연히 품에 고이 챙겨놨었다.

그러나 알림 벨은 진작에 눌렀지만 용은 곧바로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오기 전까진 버텨야 되는 것이다.

저 흉악한 마물들을 앞에 두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여섯 마리의 불 까마귀들.

놈들은 영리했다.

제 동료가 찢겨 죽자 날갯짓을 멈추지 않으며 하늘만 날아다녔다.

기다리고 있는 거겠지. 상처 입은 내가 내가 쓰러지기만을.

놈들은 시간이 제 편이라 생각했겠지만 이런 교착 사태는 내가 원하던 것이었다.

원장님이 오기전까지 시간을 벌어야 돼.

'윽, 쓰라려. 젠장! 덤비기만 해봐.'

그러나 만약 놈들이 날개를 접고 내려온다면 용서 없이 대가리를 모조리 비틀어 줄 마음이었다. 지독한 고통을 느끼게 만든 놈들을 향한 화는 부글부글 끓어올라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시간 줄다리기.

주위가 까마귀들의 깃털로 덮여갈 때였다.

등 가죽에 송골송골 맺힌 핏물이 흘러내린다.

깍-! 깍-!

핏물이 몸을 적실 수록 까마귀들이 날 약 올리듯 울어댔다.

벗겨진 등 가죽은 피를 뱉어내다시피했고 과다출혈로 사람을 죽이기에 충분한 상처였다.

곧 쓰러질 듯 아득해지는 정신과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까무러칠 만큼 아픈 상처, 날 이렇게 만든 까마귀들은 유유히 하늘을 날아다녔기에 녀석들을 죽일 수단이 없었다.

[먹는다.]

[먹는다.]

[먹는다.]

놈들과의 싸움이 길어지자 이제 확연하게 속마음이 들려왔다.

까마귀들이 직접 먹는다라며 외친 건 아니지만 놈들이 내 살점을 쪼아먹고 싶어 하는 탐욕은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개 같은 상황, 악바리로 버텼지만 '잡아먹힐' 위험은 내게도 역겹고 무서운 악몽과도 같았다. 날 향해 식욕을 드러내는 까마귀들이 두려웠다.

깍-!

그리고 두려움을 내색하자 간 보듯 날아다니던 까마귀들 중 한 놈이 덤벼들었다.

움직일 때마다 피부가 찢기는 소리가 귓가에 생생히 들릴 만큼 등의 상처는 심했지만 덤벼든 놈의 대가리를 잡고 비틀만큼의 독기는 남아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뛰어서 부리를 내밀던 새 대가리를 두 손으로 낚아챘다.

빨랫감을 짜듯 두 손에 힘을 줬고 덤빈 까마귀는 목이 비틀린 채 즉사했다.

놈은 내가 토끼라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오산이다.

새 부리에 쪼아먹히려고 지금까지 살아온 줄 알아?

죽은 까마귀들을 놈들에게 던졌다.

파다닥-!

까마귀들은 제 동료의 시체에도 유유히 날며 피할 뿐, 겁 내지도 않으며 여전히 날 향한 식욕을 드러냈다.

마물,

재앙을 끼치는 존재들.

까마귀들은 '마츄' 와 '샐러맨더' 와 달랐다. 식욕으로 지배당한 듯 번뜩이는 빨간 눈은

[교감] 하며 친하게 지낼 분류의 존재들이 아니었다. 난 두 주먹 불끈 쥐고 표독스럽게, 악착같이 눈을 추켜떠 하늘의 까마귀들을 지켜봤다.

깍.

깍.

그때였다.

까마귀들이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날갯짓을 바라봤으나 확실하게 놈들은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나라는 먹이를 앞두고 끈질긴 공격을 해오던 놈들이었다. 식욕밖에 없었던 불 까마귀들, 그러나 도망치는 놈들에게서 난 두려움을 읽어냈다.

교감은 마물의 마음을 이해함과 동시에 내가 느끼는 감정을 놈들이 느끼게 할 수도 있다.

놈들을 향한 내 분노를 느껴서 두려워한 것인가?

"놈들이 날 무서워한다고?"

제 동료가 죽었어도 식욕을 부리던 까마귀들이다.

"아니야. 무언가 더 '두려운 게'..."

겨우 '나 따위'에 겁을 집어먹고 도망쳤을 리 없다.

무언가 내가 캐치하지 못한 것을 놈들은 발견했었을 것이다.

먹이를 앞에 두고 도망칠 만큼, 마치 용과 다니던 내게 함부로 덤벼들지 못했던 그때처럼.

문득 발아래를 내려다봤다.

용암 바다에 손을 집어넣고, 녀석을 꺼냈다.

새끼 샐래맨더는 움직임이 없었다. 심장은 뛰고 있으니 기절한 듯했다.

이상했다. 주변 모든 게 이상한 느낌이었다.

...

발아래에 보이지 않는 용암 바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샐러맨더의 힘으로 난 용암에 화상 입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결코 얼굴을 용암 바다에 집어넣진 않았을 것이다.

마그마의 겉면과 다르게 용암 바다의 안은 그저 '빨간 바다' 같았다.

가슴이 턱 막히는 압박감,

숨을 참고 바다 아래를 내려다봤다. 깊은 심해는 어두컴컴했다.

시야 끝에 걸린 사소한 움직임마저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어둠은 무섭다.

바다도 무섭다.

어둠과 바다가 공존하는 심해는 더더욱 무섭다.

깊은 심해, 빨간 바다가 검게 물든 저 아래부터 난 무언가를 느꼈다.

그건 기척이 아니었다.

[교감] 능력으로 인하여 깊은 바다에 사는 어떤 존재를 느낀 것이다.

알 수 없었다. 마츄에게선 호의를, 샐러맨더에게선 애정을, 까마귀들에게선 식욕을 느꼈다. 하지만 저 '아래의 어떤 존재' 에게선 그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다.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으나 그게 무슨 말인 지 알 수 없었고, 내가 '그에게' 무언가 말을 전달하려고 했으나 마치 산 아래서, 산 꼭대기 위의 사람에게 소리치는 것처럼 아득히 먼 느낌이었다.

위화감이 극도로 높아질 때였다.

"크읍!"

재빨리 용암 바다에서 얼굴을 들어 올렸다.

구구구구-!

격하게 진동하며 출렁이는 용암 바다에 새끼 샐러맨더를 안고 무작정 도망치기 시작했다.

보았다.

시야 끝에 걸린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을!

너무나 거대하여 마치 어둠이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변이 꽉 찰 만큼, 믿을 수 없는 크기.

솟구치고 있다.

그 증거로 잠잠한 용암 바다가 폭풍우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어떤 자연재해에 의해서가 아닌, 단 '한 존재에' 의해서!

[....]

"하지 마."

[......]

"끄으윽! 그만!"

도망치던 난 머리에 울리는 무언가의 속삭임에 발걸음을 멈췄다.

본능은 도망치라며 재촉했지만 깨질 듯 아파지는 머리에 더 이상 움직일 기력조차 남아나지 않았다. 등 가죽의 상처보다 더 격한 고통, 살아오며 느꼈던 모든 고통 중에서 가장 아팠다.

무엇이! 대체 무엇이 내게 이토록 깊고 슬프게 '말을 걸어오는 거야?'

촤아아-!

두 눈을 꾹 감았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놈이 심해에서 올라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두려워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직접 마주치지 않아도 등 뒤의 존재감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대체 저런 게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 거지?'

본능적인 압박감, 종의 한계, 저런 건 있을 수 없어.

짭탕찌개가 된 지구에서도 저런 존재는 보지 못했다.

아니,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시야 끝에 놈이 들어오자마자 심장이 멎을 뻔했다.

두려움을 참고 내 두 눈에 놈이 온전히 담길 때까지 힘겹게 고개를 돌렸고 마침내 놈과 마주할 수 있었다.

[양해陽海의 구역에 들어온 모양이네요. 조심하세요. 이곳 차원의 주민들은 양해의 깊은 심해에 사는 불의 어룡들이거든요. 방금 전은 '작은 놈'이라서 다행이었지만 '큰 놈'이라면 저도 다정씨를 '온전한 형태'로 지켜낼지 장담할 수 없답니다.]

용의 말이 떠올랐다.

"양해의 주민은 심해에 사는 불의 어룡들이다."

우뚝 솟아오른 놈은 산불이 난 언덕 같았다.

온통 빨갛고, 검다.

생물이라 칭할 수 있는 건 소름 끼치는 눈알밖에 없다.

놈은 얌전히 날 바라봤으나 그 시선이 호의가 아님을 알았다.

어린 시절, 잠자리를 가지고 놀았었다.

아무 의미 없는 잔혹행위, 빨래집게에 꽂힌 날개, 퍼덕이는 잠자리.

난 그때의 잠자리가 된 기분이었다.

'그 잠자리가 어떻게.... 됐더라?'

잠자리의 끝을 떠올린 순간 내 힘만으론 희망이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난 잠자리가 싫증이 나 죽였다. 악의가 아닌, 단순한 변덕이었다.

이제 놈은 그때의 '나' 였고 난 '잠자리'였다.

놈의 변덕에 의해 고통받거나, 죽거나 할 테지만 결과는 한 가지였다.

결국 죽겠지.

놈 앞에선 난 벌레처럼 너무 초라한 존재였다.

살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젠장. 제발! 원장님"

난 품에 비상벨을 꺼내 수차례 눌렀다.

"인생, 하..."

'비상벨' 의 뒤면에 박힌 '마정석' 이 깨진 지 오래라는 걸 깨달은 건 놈의 아가리가 날 삼키고자 벌려진 후였다.

망할.

##

고통이란 건 겪어봐야 제대로 아는 거겠지.

드라마에서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이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뜰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라고 감동적인 대사를 해도, 사실 그다지 공감은 되지 않는다.

...

난 불치병에 걸린 환자가 아니지만 드라마의 주인공과 한 가지 닮은 점이 있다면 죽음을 앞뒀다는 것이다.

눈이 떠진다.

드라마의 주인공을 떠올리는 잡생각을 할 만큼 난 멀쩡했다.

먹히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감사의 대상은 '지저스' 가 아니었다.

"원장님! 크흡."

눈을 감고 있었던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다.

다만 주위가 엉망진창이 되었고 '어룡' 은 온데간데없으며 힘을 드러낸 드래곤의 살벌한 모습만이 보인다는 건 그녀가 날 구해줬다는 뜻이겠지.

"얼마나 크흡, 제가 힘들었냐면요. 정말 마치 위험수당으로 몇 천만 원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원장님?"

눈물이 났다.

하지만 용은 오묘한 시선으로 날 바라만 볼 뿐이었다.

내 고생을 좀 알아봐 줬으면 좋겠는데 너무 냉정하잖아?

난 침묵하는 용에 이상함을 느꼈다.

내가 뭘 잘 못했던가.

괜히 투정 부릴 게 아니라는 생각에 입을 꾹 다물었다.

"... 괜찮아요?"

용은 뒤늦게 안부를 물었다.

난 재빨리 너덜너덜한 등 가죽을 내보이며 말했다.

"살려주세요."

용의 마법이 내게 깃든다.

살아남았네.

정말 용케도 살아남았다.

##

기절한 새끼 샐러맨더가 정신을 차리고 등에 새살이 솔솔 돋아나고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 수준의 투정을 부려 '위험수당' 을 받아냈을 때엔 하루가 지나간 후였다.

샐러맨더 무리로 돌아온 난 암컷 샐러맨더의 등에 새끼 샐러맨더를 올렸다. 이제 용과 함께 지구로 돌아갈 테니 녀석은 날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새끼는 여전했다.

절망을 느끼며, 슬프게 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냉정히 돌아서는 것뿐이었다.

난 용에게 달려가 외쳤다.

"돌아가요. 원장님."

"안돼요."

"... 네?"

"새끼 샐러맨더를 보세요. 극도의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잖아요? 샐러맨더들은 스트레스에 취약해요. 지구에서 단 한 곳의 '화산섬' 을 제외하고 모두 적응하지 못해 죽어버린 이유죠. 다정 씨가 없으면 녀석도 마찬가지로 스트레스사 할 거예요."

새끼 샐러맨더와의 이별은 뜻밖의 상황으로 흘러갔다.

얼떨떨한 느낌으로 난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정 씨의 교감 능력은 새끼 샐러맨더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어쩌면 인간의 '모성애'를 새끼에게 적용시켰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샐러맨더라도 새끼는 어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으니까요. 녀석이 이미 다정 씨를 '엄마'라고 인식했다면, 결국... 다정 씨가 키울 수밖에 없겠네요."

난 내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만져봤다.

불꽃 모유를 뿜는 건 굳이 젖꼭지로 하지 않아도 됐었지.

발작에 가깝게 다리를 팔딱이며 뛰어오는 새끼 샐러맨더를 안아들었다.

녀석은 내 겨드랑이에 파고들며 발톱으로 살가죽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아팠지만 녀석의 마음이 확실히 전해져왔다. 헤어지기 싫다는 마음이.

목숨을 잃을뻔한 위기를 겪은 것치곤 결국 달라진 건 없었다.

젠장.

하지만 난 다행이라고 생각해버렸다.

지구로 돌아왔다.

내 품엔 샐러맨더가 안긴 채였다.

##

용은 생각했다.

어룡을 잠시 멈칫하게 했던 그것, 그리고 자신에게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게 해준 그것.

'흥미로운 존재야.'

하지만 그녀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가 '누구' 인지에 대해서 몰랐으며, 자신이 느꼈던 생소한 감각, 잃어버렸던 느낌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게 두려움이라는 걸 전혀 알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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