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 왜 했어? #
사막 탐험!
작열하는 태양과 뜨거운 모래, '미라' 의 한 장면처럼 쇄도하는 모래폭풍, 그리고 작은 도마뱀부터 최장 32M의 마물까지.
마물이 득실거리는 1600km 길이의 사막을 탐험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이동 수단이었다. 사자 사파리를 구경하는 데도 철장이 덧 씌워진 SUV를 탄다.
원장님은 이런 험준한(지구인의 기준으론 지옥) 관광지에서 원활한 관광을 위해 특별한 이동 수단을 만들었다. 용은 골렘 제조의 달인이다. 역시 그녀도 하룻밤만에 자유의 여신상을 골렘으로 개조한 용처럼 뛰어난 골렘 제조의 대가였다. 난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원장님이 특별히 날 위해 자동차처럼 개조한 이 마법 골렘은 사막의 모래 늪도 헤쳐나갈 만큼 마력이 뛰어났고 그녀가 말하길, 다양한 마법이 걸려있어서 웬만한 마물의 공격에도 끄떡없다고 했다.
"자, 출발합니다."
사타리언 부인과 아이들은 신나했고 남편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느새 직업이 되어버린 마물원 일에 난 책임감을 느꼈다.
사막을 벗어날 때까지 그들을 안전하게 지키며 또한 사타리언 부인이 이곳에서 찾고자 했던,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던 고향의 추억도 찾아주고 싶었다. 이 관광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옆 좌석에 남편이 앉고 뒷좌석에 열네 명의 아이들과 사타리언 부인이 앉았다.
부아앙-!
하루 만에 사막을 횡단하는 여행이 우렁찬 마법 자동차의 엔진 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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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창밖을 주목해주세요. 곧 있으면 '사막의 별' 지대에 도착합니다. 사막의 별은 마물의 사막에서만 서식하는 선인장으로, 내리쬐는 강렬한 사막의 햇빛에도 굴하지 않고 별처럼 반짝여 사타리언들이 사막의 별이라 부르며, 특히 사막의 별을 주식으로 하는 '잔어 潺魚'라는 물고기가... 아니, 잠깐 물고기?"
관광안내원이 되어 용이 건넨 메뉴얼를 읽었다.
당연하게도 이곳은 내게도 처음이기에 그들만큼 놀라워했다.
마물의 사막은 지구의 평범한 사막과 달랐다. 얼마 가지 않아 '사막의 별'이라는 선인장이 자라는 곳이 나왔는데 모래만이 가득한 이곳에 물고기가 산단다.
사타리언 부인이 말했다.
"잔어는 잔빛을 먹는 생선이에요. 구워 먹으면 짠맛이 심해 맛은 없지만... 그립네요."
그녀는 고향인 사막에서 향수를 느끼고 있는 듯했다.
"사막의 별이 자라나는 곳은 마나가 부족해 마물들이 다가오지 않아요. 아이들에게 제가 먹고 자란 맛없는 생선을 경험시켜주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알겠습니다. 저곳에 정차해서 점심을 해결할까요?"
굳이 사막 물고기를 안 잡아도 가져온 음식은 있으나 그녀가 잡겠다는 데 뭐, 어쩔 수 없지. 이 관광의 목적은 그녀 위주다.
사막의 별 지대 근처에 차를 정차시켰다.
사람 키만 한 선인장들이 빼곡히 자라난 이곳은 역시나 지구에서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빛나는 선인장은 태양과 맞서듯 제 몸을 밝혔지만 이상하게 눈이 시리진 않았다.
마치 어둠 속 별처럼, 자기 전 켜놓는 수면 등처럼 은은한 빛이라 따뜻한 불빛이다.
용의 매뉴얼엔 사막의 별 근처에 '잔어'라는 물고기가 서식하며 빛을 양분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주위 깊게 둘러보니 선인장 아래의 모래가 들썩이는 걸 알 수 있었다.
잔어라는 물고기는 멸치처럼 작은 물고기였는데 모래처럼 마르고 퍼석한 곳에서 잘도 헤엄치고 있었다.
"여보, 같이 가요!"
"난 이분이랑 있을게. 사막은... 좀 덥네."
사타리언 부인과 아이들이 선인장에서 잔어를 잡을 동안 남편과 난 차를 지켰다.
사타리언 부인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들려줬다. 조금은 그리워하는 듯한 말투, 아이들이 엄마의 뿌리를 기억해줬으면 하는 듯했다.
아이들은 마냥 신나 모래를 뛰어다녔고 남편은 내 곁에서 지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스박스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잘 뛰어노네요. 부인도 즐거워하시고요."
치익-!
탄산음료를 쉬지 않고 꿀꺽 꿀꺽 삼킨 남편은 마른 땀을 닦아내며 대답했다.
"그녀의 새로운 모습을 본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니 마물원을 관람하기로 한건 좋은 선택이었네요. 비록 전 타죽을 것 같지만요. 하하."
남편은 부인과 아이들을 사랑스러워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가족을 아끼는 가장의 모습이었다.
난 뺨을 긁적였다.
아이들은 귀여운데, 사실 '사타리언' 인 그녀는...
인간의 눈으론 '사랑스럽다'라는 감정이 이해되지 않는 외모였다.
"결혼한 이유가 뭐예요?"
말을 뱉어놓고, 주워 담듯이 재빨리 변명했다.
"아니, 오해하지 마세요. 그녀가 사타리언이라서 묻는 게 아니라, 그 왜 여자로서 끌렸던 순간, 남녀 간의 자연스러운 사랑이 피어나는 감정, '이 여자 내 여자다'라고 생각했던 이유, 그런 것들 있잖아요."
남편이 외로워 보이길래 말동무가 돼주려고 했으나 실례되는 질문을 해버린 듯한 꼴이다. 하지만 남편은 엷게 웃으며 대답해줬다.
"전 의사입니다. 실력 없는 주제에 사명감만 있었던 터라 몇 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자원봉사하러 온 간호사였습니다. 하하, 솔직히 첫인상은 무서웠습니다.
아프리카의 참극이 대부분 이종족에 의해 발생한데다가 잔인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치료하며 이종족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이 극도로 높아졌을 때거든요. 하지만 그녀는... 따듯하고, 강하고, 듬직하고, 무엇보다 현명했습니다. 어느 날, 그녀에게 이종족이면서 왜 사람들을 치료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무례한 질문이지만, 그건... 어쩌면 제 감정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녀의 대답을 듣고, 그 자리에서 청혼을 해버렸습니다. 같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이익에 따라 살인을 서슴지 않으며 전쟁을 대의라 포장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짐승들이 있는데 그녀는... 미안해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같은 종족도 아닌, 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그녀가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던 거지요."
음,
내 머릿속에서 '한국판 신데렐라' 스토리는 지웠다.
'돈 보고 결혼한 속물' 이 주인공인 드라마 따위가 아니었다.
"그 후, 사랑하고 보니 제가 쓰던 마취약이 모두 그녀의 집안 것이었고, 그녀는 제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부자라 결혼하기까지 제 생각보다 훨씬 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사랑으로 버텼지요."
어느새 탄산음료를 다 마신 남편에게 차가운 맥주를 건넸다. 그는 곧바로 캔을 따고 마셨다.
"부끄러운 이야기를 막 해버렸습니다. 하하... 그나저나 그녀의 고향은 진짜 덥군요. 그녀와 제 아이들은 이 더운 날씨에도 아무렇지 않게 뛰어놀지만, 인간인 전 도저히 움직이지도 못하겠어요. 다정 씨도 이런 곳에서 일하려면 힘드시겠어요."
"극한 직업이죠."
사실 더운 날씨야, 내 품에 고이 잠든 샐러맨더 덕분에 전혀 문제없이 오히려 화창한 날씨 같았지만 이 일이 극한 직업인 건 맞다.
사타리언 부인은 잔어를 한가득 두 손에 잡고서 입에 털어 넣었다.
난 반사적으로 인상을 찌푸렸지만, 빙어를 통째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그런 개념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같이 살면 어쩔 수 없이 힘드신 점도 있으시겠네요."
문화, 나라만 달라도 의견 충돌이 심한 부부 사이다.
그런데 '이' 종족이라니.
남편 또한 고충이 많은 듯했다.
"그렇죠. 그거 아세요? 사타리언들의 근력은 인간의 6~8배라는 것. 하하, 며칠 전엔 아이들과 놀아주다가 뼈가 부러져 입원까지 했지요. 그래도 전 가족을 '평범하게' 지켜주고 싶어요. 그녀와 아이들이 저따위보다 훨씬 잘났지만 그래도 남편으로서, 남자로서 '체면' 이란 게 있잖아요."
"응원할게요."
잠시 후,
사타리언 부인과 아이들이 손마다 잔어를 한가득 쥐고 왔다.
아이스박스에 챙겨놓은 레토르트 식품을 꺼내어 조촐한 점심 식사를 했다.
그녀와 아이들이 내게 '잔어'를 권했지만, 난 완곡히 거절했다. 옛말에 모르는 건 주워 먹지 말랬다.
하지만 '남편' 은 피할 수 없이, 잔어를 통째로 꿀꺽 삼켰다.
그 모습을 보며 이종족 결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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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평화로운 일정이었다.
위험은 갑작스레 찾아왔다.
어쩌면 예상한 위험, 가장 신경 쓰였던 '열네 명의 아이들'
녀석들은 대부분 얌전했지만 유독 한 명이 지랄 맞은 성격의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