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 거미줄을 똥구멍으로 싸는 건 꽤 역겹고 불쾌하다. #
사실 내가 하는 일은 동물원의 평범한 사육사와 비슷했다.
우리를 청소하고 사료를 먹이고 마츄와 같이 관리가 용이한 마물은 직접 매일매일 건강을 체크한다. 마물원이라고 해도 동물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대 사회의 동물원은 서커스처럼 동물을 단순한 눈 요깃거리로 이용하는 게 아니다.
하나의 생명으로서 멸종 위기의 야생동물들을 보호하고 종을 보존하는 보호 관리가 중심이 되어갔다. 마물원도 마찬가지다. 원장님은 굳어진 편견 속에서 관람객들에게 어떻게 마물의 생태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해야 할까 늘 고민했다.
게다가 단순히 마물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넓은 의미에선 '인간' 이란 종도 보호하는 것이다.(격리 시설의 멸망을 초래할 마물들을 생각해보면.)사람들은 수천 년간 고착화된 생태계에서 전이로 인해 짧은 시간에 몰라보게 급변한 생태계를 대부분 오염이라고 생각하며 깨끗하게 돌려놓고자 했다.
이전 지구로의 복구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드래곤도 하지 못하는 일이다. 원장님의 말에 따르면 전이는 더욱 커질 거란다.
능력자가 생겨나거나 동물이 생태계에 적응을 하는 등 지구가 '자정' 작용을 해도 한계는 뚜렷했다. 그러니 '전이'를 완전히 '방지' 할 수 없다면 무작정 배척하는 인식을 바꾸고 그러기 위해 마물을 알리는 것이 마물원이 가진 많은 목적 중에 하나였다.
마물원에서 일할수록 단순한 노동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장님은 '조화롭게 살아갈' 마물들을 선별하고 알리는 것외에도 '결코 섞일 수 없는' 마물들을 전이 이전의 세계로 돌려보내던가, 그러지 못하면 격리 보호를 하며 마물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전이로 인해 생겨난 이종족과 인간의 갈등은 너무나 확실히 드러난 문제였고, 그러기에 해결 방안과 절충안도 많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 외의 변화는 아직 무신경하고, 무관심하다.
어쩌면 지구, 그러니까 공룡이 빙하기를 견디지 못하고 죽었듯 '사는 곳의 변화'는 가장 중요한 것일 수도 있었는데.
새삼 원장님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원장님은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고귀한 존재인 용이다.
그 어떤 종족이 지구의 생태계를 홀로 조율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전이 이후의 생태계를 조화롭게 보존하고 지구 생태계에서 마물이란 변칙적인 수를 최대한 조율하고자 했다. 그 외의 목적도 있는 모양이지만, 관심도 없고 알려달라 해도 가르쳐 주지 않겠지.
어쨌든 전이로 인해 근 천 년간 이뤄졌던 모든 동물의 멸종보다 100배는 빠른 속도로(다큐멘터리에서 봤다.) 지구 토착 동물이 사라지고 있으며, 마물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경우도 많았으니 마물의 똥을 치우는 내 일이 보기보다 숭고한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든다.
그러나 헌터들의 문화가 얼마만큼 빠르게 퍼져나갔는지 생각해본다면...
원래 사람은 대가리 수가 많을수록 오히려 간결함을 원한다. 의견이 통일되지 않으니 가장 쉽고 빠르고 편리한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괜히 역사의 시작에서부터 목적을 이룰 수단으로 수많은 전쟁이 발생한 게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원장님의 방식은 귀찮고 난해한 방법이니... 글쎄, 인식이란 게 쉽게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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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하는 일은 사육사와 다름이 없다.
가끔씩 '예외적인' 일을 할 뿐이다.
"젠장, 내가 마물 전용 출산 도우미야?"
문제가 있다면 그 예외라는 게 상상을 초월하여 평상시의 일과 엄청난 괴리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가축이나 애견 사육을 담당하던 사육사가 갑작스레 맹수 사육을 담당한다고 치자, 전문적인 지식과 체력이 없는 사육사가 과연 호랑이 같은 맹수들을 사육할 수 있을까? 얼마 가지 않아 곧 인재(人災)로 이어질 것이다.
난 전문적인 지식 따윈 없고 그걸 배울 수 있는 곳도 없었지만 '교감' 이란 능력은 용도 인정한, 미지의 생명체인 마물들을 상대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난 능력이었다. 비록 내가 1급 헌터와 교섭인처럼 개인이 국가의 무력을 담당하는 괴물 같은 능력은 없었으나 아마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물 사육사를 할 수 있는 인간일 것이다.
그렇기에 일반인들은 물론, 베테랑 헌터조차 겪어보지 못한 '예외적인' 일을 자주 겪어야 했다.
"윽, 토 나올 것 같아."
습기가 가득한 축축한 동굴, 진득한 거미줄이 사방팔방 가득 처져있고 동물 사체의 썩은 내가 진동한다. 포근이와 야옹이도 데려올 수 없었다. 원장님이 몸을 강하게 만드는 마법을 걸어줬으나 제한 시간이 있었다. 게다가 내가 강해져봤자, 분명 동굴의 주인에겐 소용이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원장님도 지독해. 할 말한 일만 시킨다더니 헌터 일과 다를 게 뭐야?'
어기적 어기적 궁둥이를 최대한 숙이고 거미줄을 건드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걸으며 생각했다. 점점 갈수록 일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 건 착각이 아니다. 그만큼 수고비를 챙겨주나 '예외적인' 일의 업무 강도로만 보면 헌터급이다.
불만이 가득한 이유가 있다.
이곳은 아라크네의 둥지다.
마물과 동물에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일생 동안 가장 예민할 시기가 출산 전과 후라는 것이다. 아침 브리핑 시간에, 아라크네라는 마물이 곧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원장님의 말을 들었다.
그녀는 내게 거미줄 사이를 수월히 지나갈 수 있는 기름 범벅 슈트(마물 우리 전용 슈트만 벌써 3개째다)를 건네며 신신당부했다.
"아라크네가 새끼를 낳으면 반드시 그녀가 눈을 돌리기 전에 구해내야 합니다."
아라크네,
매뉴얼에 의하면 거대한 거미의 형상에 '여성의 상체' 가 달린 반인반수 모습의 마물이었다. 굉장히 흉포하다고 알려졌으며 원장님이 말하길 전이가 끝난 아라크네를 자신이 먼저 발견하지 못했다면 한 '마을' 규모의 사냥이 일어났을 거라고 했다.
당연히 지구와 어울리지 못하는 마물이다. 그렇다고 그녀를 원래 살던 세계로 돌려보내지도 못했다.(원장님은 자세한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그곳' 은 자신이 가지 못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할 수 없이 격리 보호 조치를 취한 녀석이다.
그녀가 인간의 형상을 했다고 하여 대화를 바라면 안 된다.
녀석은 이종 '족' 이 아니다. 거대한 거미의 등에 달린 아름다운 여성의 형상을 한 '기관' 은 아라크네의 사냥 도구였다.
흔히 미끼라고 부른다. 가짜 미끼, 아귀나 흉내쟁이 문어처럼 동물에게도 흔히 나타는 위장 사냥법이다.
아라크네는 모두 암컷이었는데 미끼를 이용하여 인간 남자를 유혹하여 잡아먹고, 발정기가 되면 씨를 받기도 했다.(뱀파이어를 만나러 갔을 때 원장님이 그랬지, 인간의 생식기는 우주 제일이라고.)매뉴얼에 적힌 내용대로라면 참... 기괴하고 꺼림칙한 마물이다.
인간의 씨를 받아 낳은 새끼라니. 마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나라도 윤리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녀석은 기본적으로 벌레였으나 인간의 씨를 받는 자궁이 있으며 마찬가지로 알을 낳지 않고 포유류처럼 새끼를 낳았다. 여기서 큰 문제가 있었다.
임신한 아라크네는 마물을 포함, 많은 생물 중에서도 가장 극심하게 출산 스트레스를 받는 산모라는 것이다. 녀석들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출산을 한 후 자신의 새끼를 몰라보고 낳자마자 '잡아먹을 위험' 이 있다고 한다.
모성애를 역류하는 끔찍한 행동이다. 습성이라기에도 잔인하다.
매뉴얼만 봤을 땐 이처럼 끔찍한 마물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원장님은 용이고, 이러한 아라크네의 결점들은 자신의 신념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듯했다. 원장님은 새끼를 구해야 된다며 두둑한 수고비와 함께 날 아라크네 출산 도우미로 임명했다. 아라크네가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진정시키고 혹시 위급하다면 '특제 마취봉' 을 사용해서 새끼를 구하라고 하였다.
젠장.
문제는 나 혼자서 아라크네의 출산을 도와야 했다.
원장님은 '용' 의 존재가 근처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라크네에겐 엄청난 스트레스라며, 나 혼자 둥지로 보낸 것이다. 용의 마법을 통해 감시하고 있으며 혹시 위급할 일이 생기면 곧바로 구해주겠다고 했지만 그녀가 아무리 빨라도 아라크네의 독니가 내 목을 뜯어내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아라크네는 출산 후 14일 동안 밤낮으로 먹잇감을 폭식한다라... 거참, 허허.'
그러니, 내가 출산을 앞둔 녀석의 눈앞에 짠-! 하고 등장하면, 녀석이 보기에 난 잘 차려진 밥상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마물원의 예외적인 일은 잡아먹힐 걱정을 할 만큼 대단히 예외적이었다. 그래도 이번 일이 끝나면 내 애마였던, 지금은 폐차된 람보르 보험금을 다 갚을 만큼 돈을 버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잡생각을 하며 둥지를 헤매던 난 유난히 지독한 썩은 내가 나는 공동을 발견했다.
단번에 그곳에 녀석이 있음을 깨달았다. 긴장하며 '마음의 문' 을 활짝 열어두고 조심스레 공동에 발을 디뎠다.
'거기 있구나.'
교감으로 인해 녀석의 위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공동의 천장에 하얀색으로 짙게 처진 거미줄 둥지, 그곳에 아라크네가 있었다.
녀석은 내 존재를 알아차렸으나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아니, 취할 수 없었다. 본격적으로 교감하지 않더라도 아라크네가 엄청나게 고통스러워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곧 출산이야.'
약해진 녀석에게 '끈' 을 던진다.
끈은 쉽게 녀석의 마음을 건드리고 묶는다.
그러며 교감에 성공했고, 그 순간 난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악-!"
고통스럽다.
대단히도, 엄청나게, 극심하고 어질어질할 만큼!
이런 고통이 존재하리라고 생각되지 못할 만큼 고통스러웠다.
단순한 고통이 아니다. 살점이 뜯어지고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듯했다.
아래 배가 날카로운 압정을 수백 개 박은 듯 욱신거린다.
안 돼. 약해진 만큼 교감이 강하게 연결된 거야.
곧바로 끈을 놓았다.
고통이 멎는다. 내 몸에 어떤 상처도 가해지지 않았으나 단순히 고통을 공유한 것만으로도 머리털이 빠지고 손톱과 발톱이 흔들렸다. 고통에 의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찰나의 교감으로 인해 아라크네가 느끼는 고통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망할, 마물이란 생명은 이리도 불합리한 몸을 가질 수도 있구나.
아라크네의 자궁은 너무나 작았다. 어림잡아 인간과 비교한다면 몇 배나 작게 느껴졌다.
대신, 품은 새끼는 인간의 아이보다 훨씬 컸다. 그래서 난 불합리하다고 느껴진 것이다. 마치 저주라도 받은 듯, 생명을 낳는 숭고한 행위가 이리도 모순적이라니!
마물, 기묘한 생명.
알았다. 난 더 이상 아라크네의 잔혹성을 오해하지 않는다.
고통을 이해하기에, 그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라크네는 선택해야 했다.
모성애와 고통,
둘 중의 하나를.
아라크네는 모성애가 없는 게 아니었다.
아직 본격적인 출산이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아라크네가 느끼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럼에도 녀석은 버티고 있는 것이다. 단 하나를 위해서, 오로지 새끼를 품기 위해서.
도와주고 싶다.
'포기하지 마.'
하지만 살짝 교감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잘려나갈 것 같다.
어떻게 내 말을 전할 수 있지? 어떻게 그녀에게 작은 격려나마 할 수 있는 거지?
"후우..."
냉정해야 했다.
머릿속을 차갑게 식힌다.
난 마취봉을 꺼내, '캣 맘' 드래곤에게서 얻은 마취약을 주입했다.
만약 내가 교감을 통해 그녀와 같은 고통을 느낀다면,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아라크네가 새끼를 낳을 수 있는 힘만을 남겨두고 국소적인 마취를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로 하여금 마취를 조절하고자 생각한 것이다.
끼아아!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마취봉을 사용할 만큼 아라크네가 진정해야 했다.
출산이 가까워질수록 극심한 고통을 참지 못하여 발광하는 아라크네는 날카로운 거미 다리로 주변을 헤집어놓았다. 휩쓸리면 난 난도질당해 죽을 것이다.
"가만히 있어줘."
말을 전달하나 고통에 삼켜져 듣지 못한다.
결국 난 부들부들 떠는 두 손을 꽉 쥐고 깊은 교감을 시도했다.
지금은 어떤 다른 선택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녀석에게 느끼는 동정심으로, 맨정신이면 결코 못할 결단을 했다.
아아악!
하나가 되어, 고통을 공유한다.
그러니 내가 침착한다면.
'라마즈 호흡법. 라마즈 호흡법.'
팔이 잘려나간다.
아니, 이건 고통이다.
심호흡을 해.
압정이 박힌다. 바늘을 삼킨다.
참아야 돼.
심호흡을 해.
고통은 달라지지 않는다. 덜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반복된 심호흡으로 잠시나마 헐떡이는 숨소리가 들려오며, 고통을 버틸 수는 있었다.
"크악, 따... 따라 해 봐. 후, 아. 후, 아. 자. 빨리..."
고통의 바다에서 내가 던진 구명줄을 녀석은 착실하게 잡아줬다.
아라크네가 날 따라 하기 시작한다. 라마즈 호흡법, 마물이자 거미인 녀석에게 그 자체만으론 도움은 되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잠시나마 편안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면.
근육이 이완되자 아라크네도 내 기분을 공유했다.
가시밭길을 걷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녀석에게 다가갔다.
용의 약재와 윙바레의 기술이 접목된,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마취제가 주입된 마취봉을 녀석에게 문지른다. 점점 고통이 사라진다. 하지만 아직까진 지독한 고통이다. 그러나 고통을 사라지게 만들고자, 마취약을 빠르게 많이 주입할 순 없다.
조율을 해야 한다. 마취가 심하면 새끼를 낳을 힘이 없을 테니 유산될 것이다.
당연하게도 산모도 죽겠지.
고통을 공유하며 나로 하여금 고통을 조절해간다.
격통을 느끼기에 무척이나 길었던 시간, 그러나 한 생명이 탄생하기에 짧았던 시간이 끝나고 마침내 새끼가 세상으로 나왔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기에 난 곧바로 교감을 끊었다.
그리고 아라크네의 새끼를 구하고자 했다. 고통을 덜어줬으나 혹시 몰랐기 때문이다.
기분을 공유했다고 하여 아라크네의 모든 걸 안다고 착각하진 않았다.
"... 눈 따가워라."
젠장, 슈트는 이게 불편해.
눈에서 물이 나오는데 닦을 수가 없네.
멈추었다.
새끼를 품은 아라크네의 모습이 너무 따뜻해서, 교감을 하지 않아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아서, 새끼를 가로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진맥진이다. 대신 새끼를 낳아준 것 같아. 뭐, 틀린 말도 아니지.
비상벨을 눌러 용을 부르자 원장님은 아라크네를 위해 특식(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알면 큰일이 날 것 같아서.) 을 가지고 왔다.
아라크네가 마취가 풀리기 전에 원장님은 날 데리고 둥지 바깥을 향해 날아갔다.
방금 전까지 느꼈던 고통은 평생 동안 겪은 그 어떤 고통보다 극심했으나, 나쁜 기억이라기 보다 오히려 뭉클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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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에취!
"... 다정 씨."
"네?"
흐에취!
아라크네의 둥지를 다녀온 후로 콧물이 자꾸 나온다.
열도 심해 정신이 없다. 연신 재채기를 한다.
"괜찮으세요?"
"그냥 감기에요. 흐에취!"
"요즘 인간들은 콧물 대신 그런 걸... 만들어내나요?"
"네?"
"앞에 보세요."
원장님은 황당한 얼굴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두통과 열로 어질어질한 난 정신이 없어 미처 보지 못했다.
모니터에 날아간 가래,
내 목에서 나온 게 분명하다면...
"오잉?"
진짜 가래라면 머쓱하게 닦아내면 그만.
하지만 재채기로 뱉어낸 건, 모니터에 끈끈하게 달라붙은 건 비슷하게 생겼으나 가래가 아닌 무언가였다. 역겨움을 참아내며 휴지로 닦아내고자 했으나 쉽사리 '뜯겨지지 않는다'. 점착성이 상당하고 끈끈하며 진득거린다. 마치... 거미줄을 뭉쳐놓은 것 같다.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다가온 원장님은 매뉴얼(마물들의 '생태'를 적어놓는) 을 꺼내 무언가를 적었다. 예상컨대 나에 대한 거겠지.
"아라크네와의 깊은 교감으로 유전적 형질마저 변화되었다. 표본이 부족하나 영구적일 가능성이 높다. 역시 이 인간은 대단히 흥미로운..."
"원장님?"
"흐음, 츄파카브라 때의 일은 우연이 아닌가 보군요. 아무래도 다정 씨, '깊은 교감' 은 삼가는 게 좋겠네요. 스스로를 '인간'이라 부르고 싶다면요."
마물원에서 일한 지 3개월,
확실한 부작용을 깨닫다.
##후일담
1. 거미줄을 신체의 모든 '구멍'으로부터 뱉어낼 수 있게 됨. 훈련으로 양도 조절할 수 있게 됨. 하지만 스파이더맨처럼 자유자재로 다룰 순 없음. 잔여물이 남기에 '입' 과 '똥구멍'으로 거미줄을 내뱉는 건 절대 금물. 애초에 쓸 데가 있나?
2. 깊은 교감을 나눈 마물의 유전적 형질이 영구적으로 내 몸에 발현된다는 부작용을 알게 됨. 하지만 교감한다고 하여 모든 마물의 특징이 새겨지는 건 아님. 츄파카브라와 아라크네 때를 생각해보면 확신할 순 없으나 대강 짐작은 가능. 마물과 교감하더라도 내가 '인간' 임을 항시 자각하자.
3. 포근이와 야옹이처럼 직접적인 접촉에 의한 교감은 보다 강한 특성을 띄게 됨. 마나가 적은 마물일수록 교감은 쉬우나, 그렇다고 감정적인 연결고리 없이 녀석들의 특징을 빌려오는 건 불가능.
4. 새삼 궁금해짐. 전이 이후 발생한 기이한 힘을 가진 능력자들, 그들과 날 비교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