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쥐라기 공원 (3)
원시림을 앞두고 인공적으로 설치된 거대한 철문과 전광판이 나왔다.
전광판엔 ‘쥐라기 공원’의 트레이드마크인 티라노사우루스의 머리뼈를 형상화한 문양이 번쩍이고 있었다. 차량이 가까워지자 거대 문이 저절로 열리며 우릴 초대했다.
누가 봐도 따라 한 것이다.
용이라서 고소는 안 당하겠지만 너무 노골적인걸?
“이제 모두 긴장 좀 해 주세요. 소풍 온 것도 아니고. 우린 공룡을 보러 가는 거라고요.”
난 너무 태연한 사람들에게 경고하며 운전대를 꽉 잡았다.
아마 이 너머엔 드디어 공룡들이 출몰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처럼 랩터와 티라노사우루스의 습격은 사양인데.
냐앙!
이 섬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잠만 자던 야옹이가 일어나 내 무릎에 앉는다.
포근이도 덩달아 등에 딱 달라붙었다.
마치 녀석들이 날 지켜 주는 듯했다.
그래서 불길했다.
왠지 곧바로 나쁜 일이 일어날 것만 같네.
*
언제나 그랬다.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 거대한 나무들이 빼곡히 자라난 원시림, 눈길을 돌리는 곳마다 녹림이 우거져 있다. 기이함을 느낀 건 이곳에 들어오고 나서부터였다.
사각사각-!
바스락바스락-!
무언가가 움직이는 노골적인 소리에 안전 불감증에 걸린 듯 태연하던 사람들도 이젠 잔뜩 긴장하여 안전벨트를 꽉 붙잡고 있다. 난 낡은 고목에 붙은 거대한 나방을 발견하곤 침을 꿀꺽 삼켰다. 뭔 나방이 저렇게 큰가? 저 정도 크기는 팅커벨도 아니다. 피터팬도 잡아먹겠네.
숲이 깊어질수록 소리는 더욱 격렬해졌다.
포근이가 불안해한다. 야옹이가 심기가 불편한 듯 꼬리를 찰싹찰싹 내려치며 고개를 추켜든다. 무슨 일이 당장 일어날 것만 같다.
잔뜩 긴장한 우리들에게 만화가가 입을 열었다.
“공룡 학습 만화를 그리기 전에, 곤충 나라에서 살아남기라는 만화책을 그린 적이 있습니다.”
모두 조용하고 있던 터라 만화가의 말은 귀에 쏙쏙 들어왔다.
“혹시 산소 농도에 따라 곤충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설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렇소.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가정을 하는 학자들도 있었지.”
나도 들어 본 적이 있다.
‘거대 곤충’과 관련된 재난 소설이나 영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설정이었다.
“아까 교수님이 말씀하셨죠? 중생대는 산소 농도가 지금에 비해 무척이나 높다고… 그렇다면 혹시 이곳에 사는 곤충들은 무척 크지 않을까요? 아까부터 언뜻 본 거대한 ‘놈들은’ 역시 제 착각이 아닌 거겠죠?”
“있을 수 없는 얘기요. 중생대에 서식했던 벌레들은 기껏해야 20cm를 넘기지 못했소. 1m를 넘길 리가 없지.”
“근데 교수님, 크기가 얼마라고 말 안 했는데 어떻게 아세요?”
“…물론 우리가 그 시대를 겪어 보지 못했으니 정확한 건 아니겠지.”
출력을 높였다.
조심스레 몰던 차량이 빠른 속도로 질주한다.
사각사각, 사각-!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이미 난 놈들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땅에서부터, 나무에서부터, 바위에서부터, 수풀 속에서부터, 놈들이 튀어나왔다.
흙에서 기어 나온 놈들은 딱정벌레였다. 하늘에서 습격해 오는 놈들은 거대한 모기였다.
또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벌레들이 가득했다. 젠장, 곤충은 교감을 나누기 힘들다. 이렇게 많다면, 게다가 전혀 알 수 없는 벌레라면 더더욱!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놈들이 우릴 향해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씨벌, 나오라는 공룡은 안 나오고.”
진짜 위험은 따로 있었다. 이런 건 원장님으로부터 전혀 얘기를 듣지 못했다. 거대 벌레의 습격이라니! 본격적인 벌레의 습격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유리창을 올리고 공포에 질린 채 눈을 꾹 감았다. 하지만 둔탁한 소리가 들릴 때마다 고개를 추켜든다.
“꺄악! 징그러워!”
나 혼자라도 정신을 차려야 했다. 워낙 상황이 급박하여 당황했지만 사실 큰 위험은 아니다. 이 차량은 보통 차가 아니라 용이 직접 만든 골렘이고, 이 정도 충격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시야를 가득 메운 형형색색의 벌레들에게 받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상당했다.
벌레들은 계속해서 습격해 왔다.
빠른 속도로 운전하여 벗어나려고 했으나, 오히려 그게 벌레들의 시선을 끌어 버린 꼴이다.
놈들은 차량의 속도엔 따라오지 못했으나, 수가 너무 많았다.
다행히 바퀴로 가는 차가 아니라 막힐 리는 없었으나, 거대한 벌레들이 창문과 선루프에 부딪히자 바위가 부딪히듯 큰 소리가 났다. 정작 충격은 없더라도 끔찍한 상황이다.
젠장!
이러다가 숲을 벗어날 동안 벌레 궁둥이만 보겠다.
“어어! 가이드, 가이드! 저것 좀 보세요!”
신경이 곤두선 채 운전하는 내게 만화가가 소리쳤다.
표정을 잔뜩 찡그린 채 고개를 돌린 난 눈썹을 치켜세워야 했다.
재빨리 주머니에서 휴대용 매뉴얼을 꺼낸 난 레이저를 사출하여 ‘녀석들’을 가리켰다.
콰직! 콰직!
만화가가 발견한 건 갑작스레 등장한 공룡 녀석들이다.
“가루디미무스인가? 하지만 크기가 더 커!”
과연, 공룡 오타쿠다. 정답이다.
화면에 출력된 녀석들의 정보에 의하면 녀석들은 ‘가루디미무스’라고 불리는 공룡이었다.
[가루디미무스(Garudimimus)]
용반류 > 수각류
크기: 4~6m
-벌레나 다른 공룡의 알을 먹는 육식성 공룡.
이빨이 없으며 대신 부리로 먹잇감을 사냥한다. 둥글고 큰 눈이 꽤 귀여운 녀석.
녀석들은 전체적으로 타조처럼 생겼다.
파랗고 녹색의 털이 자라 있으며 부리는 둥글어 꼭 오리 같다.
어디선가 나타난 가루디미무스 무리가 거대 벌레들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우리에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주위를 메운 벌레들만을 꿀꺽꿀꺽 삼키며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밖이 잠잠해지자 우리들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고… 공룡.”
“처음 보는 녀석이지만 확실히 공룡이었어.”
“가루디미무스! 백악기 후기에 나타난 공룡, 인기는 없지만 꽤 귀엽게 생겼지요. 아 이런, 스케치, 스케치를 못했어.”
첫 조우한 공룡은 가루디미무스라는 녀석이었다.
여운이 꽤 남는다.
이곳은 공룡의 섬이다.
이제 실감이 나는구나.
*
다시 출발했으나 이젠 숲으로 향하지 않았다.
벌레의 출몰은 예상 밖이었으나 골렘의 기능에 대해선 원장님에게 교육을 받았다.
“숲은 위험하니, 나무 위로 이동하지요.”
“나무 위를요? 어떻게?”
문제없다.
골렘은 특별히 모든 지형을 통과하기 위해 업그레이드되었다.
“안전벨트 꽉 매시고.”
‘다리’ 모양의 버튼을 누르자 차량이 변형되기 시작했다.
타이어가 있던 자리에 마치 문어 빨판처럼 생긴 촉수가 돋아난다.
촉수는 나무에 찰싹 달라붙었다.
“꽤 신나지요?”
골렘이 충격과 진동을 흡수하여, 차량이 격하게 흔들려도 좌석은 완전 시모스 침대였다.
마침내 나무 끝까지 기어 올라가자, ‘프로펠러’ 버튼을 눌렀다.
촉수는 다시 변형되어 이제 헬리콥터처럼 날 수 있게 되었다.
“숲은 방해물이 많으니 우선 평야로 나가겠습니다. 호수 주변에 공룡들이 밀집되어 있으니까, 혹시라도 공룡을 보지 못할까 걱정은 하지 마세요.”
용이 상사면, 이 정도 놀라움은 당연시 여길 줄도 알아야 한다.
네 명의 사람들은 어처구니없는 듯했지만, 난 여유롭게 운전대를 몰았다.
평화롭게 평야로 날아가던 그때였다.
으악!
브레이크를 밟아 급제동을 해야 했다.
갑자기 나뭇잎 더미를 뚫고 무언가가 불쑥 올라온 것이다.
대가리였다.
아주 큰 대가리!
“설마? 브라키오사우루스?”
역시 만화가가 먼저 알아본다.
하지만 다른 세 명 모두 그 공룡을 알아봤다.
나 또한 도감이 없어도 녀석을 알았다.
브라키오사우루스.
키 20m.
목 길이 12m.
육식 공룡에 티라노사우루스가 있다면, 초식 공룡에 놈이 있다.
녀석은 우릴 발견했지만, 순하고 큰 눈을 끔뻑거리기만 했다. 녀석은 나무 위의 잎을 먹기 위해 대가리를 추켜든 것 같았다. 혀를 내밀어 나뭇잎을 휩쓸고 지나간다. 소가 여물을 씹듯 우물거리는 모습이 꽤나 귀엽다. 차를 멈추고 녀석을 구경했다.
엄청난 크기였으나 덩치에 의한 위압감만 느낄 뿐, 위험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온화한 표정으로 나뭇잎을 뜯어 먹는 녀석을 가까이서 마주하는 건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오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가 더 있어요!”
이어서 다른 브라키오사우루스 세 마리가 고개를 추켜들었다.
네 마리의 브라키오사우루스!
지금이 기회다.
격하게 궁금하다. 과연 공룡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저 평화로운 공룡은 [나뭇잎 맛있어. 좋아. 먹는다.]라고 단순한 생각만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면 의외로 고양이처럼 까탈스러울까?
마음속에 끈을 잡는다.
그리고 녀석들을 향해 던져 놓는다.
그런 느낌으로, 난 녀석들과 교감을 시도했다.
[…….]
점점,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어라?
[인간 놈이 온다. 조심해. 멍청한 척하라고! 우리의 계획을 들키면 안 돼.]
[용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라지만 언제까지 연기를 해야 되는 거야?]
[절대 들키면 안 돼. 또 그때처럼 ‘놈’이 운석을 떨어트리기라도 하면…….]
[선조들의 원한을 갚고 말 것이다. 오만한 놈……!]
[응? 저 새끼, 우리말을 알아듣는 것 같은데?]
[에이 설마. 잘 봐. 멍청한 인간이 공룡 중에서도 특별한 우리를… 어?]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자 더 이상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 후로 교감이 되지 않는다. 녀석들은 확실히 마음의 문을 닫았다.
‘뭔가 이상한 걸 들은 것 같은데.’
용에게 물어봐야지.
*
평야에 도착했다.
호수 근처엔 정말 많은 공룡들이 있었다.
파라사우롤로푸스(Parasaurolophus), 유오플로케팔루스(Euoplocephalus), 시조새, 울트라사우루스(Ultrasaurus), 트리케라톱스(Triceratops)… 등등, 모두 익숙한 공룡들이었다.
하지만 동물의 ‘종’만 따지더라도 백만 종이 넘는다.
공룡이 겨우 몇백 종밖에 없을 리가 없다.
“처음 보는 종입니다. 아주… 기괴하게 생겼군요.”
우린 기괴한 공룡을 마주쳤다.
공룡 오타쿠의 말에 따르면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공룡이었다.
도감의 레이저를 비추니, 원장님은 녀석의 이름을 ‘악동 공룡’이라 불렀다.
*
평야에서 트리케라톱스, 파라사우롤로푸스 등을 관찰하며 호수 쪽으로 이동했다.
공룡들은 원장님의 말처럼 대단히 온순했다. 심지어 케찰코아툴루스 같은 육식성 익룡이나 벨로키랍토르 같은 무자비한 사냥꾼들도 우리에게 적대적이지 않았다. 아니, 아예 무시했다.
생물로서의 방어 본능이나 육식 공룡의 사냥 본능 따윈 없었다. 트리케라톱스는 침입자인 우릴 뿔로 들이박는 대신 잎사귀만 오물거렸고, 몸길이 12m의 스피노사우루스는 근접한 먹잇감인 우릴 놔두고 귀찮고 힘든 사냥감인 스테고사우루스를 노렸다.
생각해 본 건데, 이 섬의 공룡들은 마치 정해진 생태계의 순환만을 따르는 듯했다.
육식 공룡은 초식 동물을 잡아먹고, 초식 동물은 식물을 뜯어 먹는다.
내 눈에 그런 공룡들의 모습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았다. 딱딱 정해진 대로 순환하는 생태계, 마치 누군가 임의로 가꿔 놓은 거대한 사육장 같았던 것이다.
원장님이 한 짓이 아니다. 그녀는 마물을 묶어 두긴 하나 본성을 강제하진 않는다.
마물 사막과 아라크네 둥지처럼 환경만을 조성할 뿐이다. 아마 원장님이 스치듯 말했던 ‘용들의 오만’이라는 것이 이딴 이질적인 생태계를 만들어 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