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35화 (35/258)

# 35화 마물 콘테스트 (2)

두 번째 마물은 마츄 무리였다.

우리 안에서 우글거리는 마츄들은 서로 털이 엉켜 엉망이었다.

다만 그럼에도, 마츄들의 털은 오물이 묻지 않아 깨끗하게 보였다.

사회자가 말한다.

“그거 아십니까? 마츄의 ‘꼬리’는 다이어트에 아주 뛰어납니다. 식이 요법? 운동? 요즘에도 그딴 걸로 살을 빼시나요? 이건 ‘과학’이 아니라 ‘마법’입니다.

마츄의 꼬리를 삼 일 동안 먹으면 지방이 마나에 의해 분해되어 최대 20kg까지 쑥쑥! 구매하시면 저희가 직접 꼬리를 ‘잘라서’ 드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난 꼬리만 잘라서 준다는 말에 참지 못하고 조금은 새어 나온 화로 인하여,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아저씨! 씨발, 그럼 꼬리 잘린 마츄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인마! 깜짝 놀랐네. 갑자기 고함을 지르고 지랄이야. 남은 마츄들은 보통 펫 숍에다가 팔지. 근데 요즘은 수요가 없어서 대부분 살처분해. 불쌍하지만 어쩔 수 있냐? 마물들인데.”

전염병에 걸린 것도 아니다.

멀쩡한 생명을 살처분, 살처분, 살처분. 약간의 동정심도 없어졌다.

엿 먹으라 해. 마츄들은 놈들의 말로 표현하자면, ‘완판’되었다.

뚱뚱한 귀부인이 모두 사 갔다.

마츄들은 무대에서 내려올 때, 날 뚜렷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살려 줘.]

[살려 줘.]

[살려 줘.]

[…….]

20분 남았다.

그 뒤의 마물도 내게 말한다.

[살려 줘.]

15분 남았다.

그 뒤의, 뒤의 마물도 내게 말했다.

[살려 줘.]

어떤 세계에서 살았든, 어떤 마물이든, 어떤 재주를 지니고, 어떤 목적으로 팔려 나갔든, 마물들은 모두 하나같이 살아 있고 싶어 했다. 생명으로서 당연하게도 죽음을 무서워했다.

폐사당하는 양계장을 지나쳤을 때와 같은 울렁거림이 느껴졌다.

마물원에서 일한 뒤 내 능력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 전엔 엄청나게 싫었다.

생명의 속마음이 들려온다는 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토 나올 것 같다.

마치 지옥도.

점차 경매가 진행될수록 위험한 마물들이 나왔다.

그리고 헌터들은 녀석들이 가진 힘을 뽐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괴롭혔다.

보다 강한 힘을 이끌어 내기 위해 지독한 짓을 자행했다.

동물 보호법이 인류가 사회를 갖춘 후 몇천 년 뒤에 생겼더라?

“인마, 왜 그렇게 무서워하냐? 하긴 처음 보면 좀 그렇긴 하지. 그래도 ‘저게 다 돈뭉치다.’ 생각하면…….”

불쾌함이 극에 다다를 때였다.

난 아저씨의 머리를 찰싹 때렸다.

그와 동시에 휴대폰이 울렸다.

메시지가 도착했다.

-다정 씨, 준비는 끝났으니까 부탁한 대로 행동해 주세요.

“전 가 봅니다.”

꽤 세게 때렸기에 아저씨는 머리를 부여잡고,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난 지체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이 개새끼가! 갑자기 뭔 짓을……!”

그가 내 어깨를 붙잡는다.

하지만 곧 놓고 만다.

“누… 눈알이.”

그에게 난 인간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근처에 숨어 있던 야옹이와 교감하며 난 인간을 뛰어넘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덤으로 눈알이 고양이처럼 변했겠지.

떠나던 난 문득 생각이 나 돌아왔다.

얼떨떨해 있는 그에게 말하고 싶은 게 남아서였다.

“아저씨, 말해 두는데 부디 도망갈 생각하지 말고 만나자마자 넙죽 엎드려서 ‘난 똥파리다.’라고 생각하고 싹싹 비세요. 그리고 오늘 일을 교훈 삼아 평생 머릿속에 각인해 둬요. 솔직히 말해서 아저씨는 이런 일할 깜이 안 돼. 그냥 개털이나 깎지 왜 나대고 지랄이야?”

“…뭐? 야!”

불렀으나 무시하고 갔다.

더 신랄하게 말해 주고 싶었으나 뭐, 헛된 꿈으로 무모한 짓에 휩쓸린 대가는 내가 아니라 그녀가 톡톡하게 치르게 해 줄 테니까.

*

경매장의 분위기는 무르익어, 포획 난이도가 높은 마물들이 나왔을 때 마침내 절정에 다다랐다.

이전의 마물들은 평범한 졸부들의 경매였다. 카르마가 주관하는 불법적인 시설이나 이곳에 참가한 자들 중엔 다른 길드 소속의 헌터들도 있었고, 정부 세력도 있었다.

원하던 마물이 나오자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10억, 15억…….

순식간에 마물의 가치는 열 배 이상이 되었다.

그때였다.

경매장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갑작스레 나타난 무언가에 모두 열띤 경매를 멈추고 하늘을 바라본다.

그곳엔 거대한 존재가 있었다.

그리고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우선 경매가 시작되면 마법과 이계의 장치들로 보호받으며 경계가 삼엄한 콘테스트장은 인공위성, 조기 경보기, 탐색 능력을 지닌 헌터로부터의 모든 간섭을 차단한다.

공간이 단절되는 거나 다름없다. 따라서 카르마 길드는 적대 세력과 정부 소속 헌터들이 제 놀이터에 침범하더라도 가만히 놔두었다.

일단 경매가 시작되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며, 경매가 끝나면 마법으로 인해 카르마 길드의 능력자들은 미리 경매장에서 빠져나가게 된다.

석동팔 따위에게 일을 맡긴 것도 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서, 마물과 마물을 관리하는 헌터 등 그 외의 것들은 현지에서 조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부로부터 무언가가 침범해 왔다.

카르마 길드에서 한국으로 파견된 헌터들은 결코 약하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 모든 전의를 잃어버렸다.

관람석의 순진한, 혹은 멍청한 사람들이 외친다.

“오오! 저게 뭐지?”

“응? 저거 생김새가… 에이 설마, 진짜 용이겠어?”

“와, 여긴 용도 팔아?

잠시 후, 그들도 깨닫는다.

카르마 길드에서 준비한 장난스러운 이벤트가 아님을.

하늘을 뒤덮는 거대한 날개를 펄럭거리며 내려오는 존재가 실존하는 존재임을.

“진짜 용이네. 와, 여기 개쩐다. 용도 팔고.”

여전히 멍청한 소리를 하는 사람은 한 남자밖에 없었고,

“머저리 새끼야! 도망쳐!”

그마저도 뒤늦게 ‘용’이 무슨 존재인지 떠올리곤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쳤다.

레드 드래곤, 파르바티에게 날개 아래서 도망치는 사람들은 소나기를 피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개미 떼에 지나지 않았다.

다정이 마주했던 드래곤의 모습은 ‘작아진’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본래 드래곤은 원하는 만큼 크기를 줄일 수 있다. 생활하기 불편하여 작아진 모습으로 다닐 뿐, 본신의 크기는 생명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거대했다.

즉, 산을 뒤덮으며 거대한 위용을 뽐내는 저 모습이야말로 그녀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난리법석.

카르마 길드의 헌터들은 나름 대처를 해 보지만, 그 어떤 능력, 마법과 주술, 아이템과 이계의 지식도 소용이 없었다. 단지 그녀가 내려앉아 세 번의 움직임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범죄 조직은 궤멸당했다. 무모하게 저항하는 자들은 죽음을 맞이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기억 소거와 마나의 멸살을 당했다. 능력자들은 평생 마나를 가질 수 없게 되었고, 평범한 사람들은 ‘강력한 트라우마’가 작용하여 결코 용이 새긴 명령을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카르마 길드와 더불어 많은 길드 소속의 헌터들, 정부 소속의 교섭인들이 힘과 기억을 소거당했으나, 흔적은 전혀 남지 않았다. 드래곤이 ‘30분’의 시간을 소모한 이유였다.

레드 드래곤 파르바티는 자신이 그러기 원했기 때문에, 그들을 세상에서 잊히게 만들었다.

또한 마물들은 마물원으로 안전하게 전송되었다.

수가 제법 많았지만 마물원 전체의 1%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빠르게 일을 끝냈지만 곧바로 ‘가디언’에게 가지 않았다.

파르바티는 대수롭지 않게 다정을 가디언으로 임명했으나, 사실 그녀에게도 엄청 중대한 사건이었다. 드래곤에게 있어서 가디언이란 신뢰하는 자에게 내리는 결속의 증표다. 그리고 드래곤은 가디언을 임명함으로서 하나의 의무를 가진다.

가디언을 ‘용의 격’에 걸맞은 존재로 성장시키는 것.

그러기 위해 차근차근히 시련을 선사하고자 했다.

*

난 야옹이와 교감하여 들고양이처럼 기척을 숨겼다.

그리고 원장님이 ‘고의적으로’ 도망치게 만든 콘테스트 참가자들을 미행했다.

카르마 길드나 업체가 아니라 개인으로 마물을 팔기 위해 참석한 자들이다.

‘관리는 혼자서 못했을 거야.’

마물들이다.

꼬리가 달린 마츄나 부랄 쥐는 작고 위험하지 않아 관리가 용이하다고 해도, 일반 가정집에서 키우기엔 무리가 따른다.

예상대로 그들은 한통속이었다. 마물 이동장을 들고 허겁지겁 도망치더니, 큰 트럭에 같이 싣기 시작한 것이다. 개인 판매자 다섯 명은 트럭을 타고 어딘가로 향했다.

난 대기해 둔 차를 타고 트럭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내가 제임스 본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세계적인 악당인 것도 아니다. 서투른 솜씨였으나 들키지 않고 미행할 수 있었다.

*

끽-!

서울 외곽의 공업 지대.

깊은 곳에 자리한 어느 폐 공장.

그들은 차를 세우고 급히 마물들을 내렸다.

역시, 그들은 공동으로 어떤 장소를 마물을 숨기는 곳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벌써부터 냄새가 진동을 했다. 불쾌하고 꺼림칙하다.

마물들을 옮기는 틈을 타 몰래 공장의 뒤편으로 돌아갔다. 정문을 제외하고 뒷문은 두 개, 근처에 있던 공장 폐기물들을 끌고 와 입구를 막았다.

창고형 공장이라서 창문은 위에 달려 있다. 제법 높은 곳이지만 내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야옹이와 교감하면 빌딩도 놀이터가 된다. 족히 8m는 되는 것 같으나 성큼성큼 기어 올라갔다.

‘지독한 냄새!’

창문을 열자 코를 찌르는 악취가 풍겼다. 굳이 야옹이와 교감하지 않고, 인간의 코여도 악취는 끔찍했을 것이다.

창문에 매달린 채로 조심스레 아래를 내려다봤다. 사람들이 마물을 옮기고 있다. 하지만 이미 공장엔 다른 마물들도 많았다.

상태가 좋지 않다. 시설이라고 할 것도 없이, 마물의 특성과 생태를 무시한 채 가둬 두기만 하였다.

울부짖는 마물들의 목소리가 창문 너머로 들려왔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거칠게 마물들을 다뤘다. 마치 내가 우리에 갇힌 듯 고통이 전해져 온다. 난 똑똑히 들리는데, 저 새끼들은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듯했다. 돈에 눈이 먼 추악한 새끼들. 적당히 해야지, 젠장.

창문에서 내려와 정문으로 향했다. 따로 지키는 능력자들이 없음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일은 쉽다.

“어이, 최 사장! 저 사람은 누구요?”

“일꾼 불렀소?”

너무나 당당하여, 그들은 차마 내가 해코지하러 온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가까워질수록 마물들의 감정은 내게 이식되어, 원한이 되었다.

보타이를 두 번 누르자 가면이 되어 저절로 머리에 씌워졌다.

챙-!

검, 원시 시대부터 사람의 무기가 된 도구. 전이 이후로 이계인들에 의해 다시 한 번 주목받게 된 살상 무기.

포근이와 교감하면 불의 기운을 응축하여 탄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야옹이처럼 민첩하고 강한 힘을 뿜어내진 못한다.

90cm의 검.

검날과 손잡이는 야옹이의 털색처럼 검었다.

내가 검을 쥐자 그들도 상황을 파악했다. 총을 꺼내든다. 여전히 총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강력한 무기였다. 하지만 난 이제 평범하지 않아.

총을 꺼내는 시간,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검을 따로 배운 건 아니다.

다만 고양이가 발톱을 날카롭게 세워 앞발을 휘두르는 건, 배우는 게 아닌 본능이다.

크악-!

윽!

다섯 명,

그들이 꺼낸 총기를 자르고 검의 손잡이로 뒤통수를 가격하여 기절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죽이지 않게 이성을 조절하는 게 어려웠을 뿐이다.

“후우…….”

찜찜한 기분은 여전했다.

난 턱시도의 안주머니에서 작은 구슬을 꺼냈다. 마치 장난감 수정 구슬처럼 안에 전기가 휘몰아치는 구슬이었다.

원장님이 내게 이 일을 맡기며 지급한 물건이다.

난 마물들을 묶는데 사용했던 튼튼한 밧줄로 사람들을 한데 묶은 후 구슬을 땅에 세게 던졌다.

그러자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원장님의 마법이다.

진짜 사라진 건 아니다. 다만 세상으로부터 잠시 ‘단절’되었을 뿐이다. 원장님의 설명에 의하면 그랬다. 사막같이 거대한 우리도 만드는 드래곤인데 이런 일도 가능하겠지.

원장님이 마물 콘테스트를 정리하는 동안, 난 개인 사업자들이 운영하는 불법 마물 숍을 정리하는 임무를 받았다.

그녀가 오면 마물들은 마물원이라는 보금자리를 찾고, 사람들은… 벌을 받게 되겠지.

공장을 둘러보던 난 사무실로 사용되던 작은 방을 발견했다.

잠겨 있다.

이유가 있어서 잠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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