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34화 (34/258)

# 34화 마물 콘테스트 (1)

“미국이나 독일, 두바이… 뭐 아무튼 이미 다른 나라에선 유명하고, 이미 열리고 있는 거야. 마물 콘테스트,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에 열린다는구나. 불법이라 몰래 개최되긴 해도 규모가 장난 아니야. 난 이번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콘테스트장을 관리하는 직무만 맡았지만, 그들에게 잘 보이면 마물 관리 권한을 딸 수도 있겠지. 넌 모르겠지만 불법 마물 유통 시장, 무시할 게 아니다.

웬만한 놈들의 단가가 혈통 있는 개의 수십, 수백 배다. 도와주라.

나랑 같이 커 보자. 진짜 월 1억 벌게 해 주마.”

하기 싫다. 맛있는 식사와 월급을 제때제때 줬던 은혜는 그의 부탁을 들어줄 만큼 크지 않다.

설명만 들어도 불길하다. 불법 마물이라면 정부에서 소유를 금지한 위험한 마물들이다.

우리 원장님처럼 ‘드래곤’이 아니고서야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 아저씨는 마약 거래같이 불법적이며 위험 부담이 상당한 일을 하고자 한다.

이건 선을 넘은 것이다. 마물과 관련되어 있으니 헌터들도 분명 엮여 있을 테고, 정부의 시선을 피해서 개최할 정도면 작은 세력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굳건한 눈빛에서 나 따위가 말해 봤자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다. 다만.

“…언제 열리는데요?”

“미안하다. 일정이 조급하게 잡혔어. 이틀 뒤야.”

안 좋은 예감.

혹은 호기심.

하지만 이전의 나라면 무시했었을, 그런 상황.

그러나 난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마물원에서 겪었던 경험과 약간은 달라진 가치관. 그 때문일까?

귀찮은 일에 연루되기 싫었던 ‘그때’와는 다르다. 본질적인 이유를 찾자면 나 자신이 너무 보잘것없었기 때문이다. 고아, 태만함, 다혈질의 남자.

하지만 지금은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 보려고 한다.

약속 시간을 잡고 아저씨와 헤어졌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원장님의 연락처로 문자를 보냈다.

그래,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하고자 하지만 멍청한 짓은 하고 싶지 않아.

-좋은 자세예요. 다정 씨, 역시 내 직원, 아니 가디언이야.

그래서 ‘지구 최강’ 생물을 불렀다.

*

애견 콘테스트, 미견 전람회, 도그 쇼 등등.

출전한 강아지들의 관리 상태와 생김새, 기품, 행동 등을 심사한다.

미견 전람회는 개의 종에 따라 털의 윤기와 반들거리는 코와 뚜렷한 눈매 등을 평가하며, 도그 쇼는 각종 장애물을 통과하며 주인과 애견 사이의 교감을 심사한다.

그럼 마물 콘테스트는 마물의 ‘어떤 부분’을 심사할까?

마물이 가진 힘을 뽐내는 콘테스트다.

오로지 ‘잘 팔리게 하기’ 위한 콘테스트였다. 콘테스트가 끝나면 경매의 시간도 가진다.

콘테스트는 작은 야산의 공터에서 진행되었다. 경비가 삼엄했다. 딱 봐도 불법적이며 위험하다. 주변을 경계하는 빡빡머리 경호원이 많이 보였다. 안주머니에 숨겨 둔 총 대신에, 등에 멘 검과 창 등을 보아하니 확실히 능력자이다.

인간을 벗어난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공터에 마련된 콘테스트장은 규모가 상당했다. 관람석도 플라스틱 의자 따위가 아닌 목제 의자와 소파들로 제대로 마련되었다. 경기 홀은 철장, 쇠사슬, 또한 듣도 보도 못한 구속 도구들로 가득했다. 주변의 시선을 피해 이 정도 시설이라니, 범죄 조직의 규모가 짐작이 갔다. 그러나 뭔 상관이겠어.

난 아저씨가 준 명찰을 목에 메고 입장했다.

아저씨는 공터 구석에 마련된 간이 관리실에서 CCTV를 관찰하다가, 내가 들어오자 웃으며 맞이해 줬다. 미안해요, 아저씨.

“오! 빼입고 오라고 하긴 했는데 장난 아닌데? 사람이 달라 보이네.”

“멋있죠? 장난 아니죠? 쩔죠?

뀨!

“응? 웬 귀여운 척이냐?”

“아하하. 뀨뀨!”

등에 착 달라붙어 있는 포근이, 턱시도 안에서 꿈틀거리는 녀석은 답답한 듯 불평했다.

덕분에 난 아저씨에게 뜻밖의 애교를 부리며 대화를 나눴다.

“생각보다 규모가 장난 아닌데요? 험악한 사람들도 많이 보이고. 뀨! 대체 누가 이런 걸 만들었대요? 뀨!”

“그만해. 역겹다. 요즘 유행하는 부자 놈들의 잔치야. 듣기론 처음엔 작은 규모였다가, 잇속을 챙기려는 놈들이 달라붙다 보니 이 지경이 되었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어떠냐? 개 따위보다 훨씬 위험해도 엮이는 돈이 장난이 아니다. 혹시라도 마물들이 폭주해도 고용된 능력자들이 해결해 주니까 우린 그저 시설 관리만 하면 돼. 콘테스트가 시작되기 전, 그리고 끝나고 경매가 시작되기 전, 경매가 끝나면 뒤처리까지.”

“돈은 얼마 받는데요?”

“이번엔 허용 마물만 관리해서 떨어지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아. 직원들 거 다 빼면 천 정도 받을 것 같구나. 그래도 이건 말단 직원이 하는 일에 지나지 않아. 위험 등급 마물 관리권만 얻으면 수수료는 배로 늘어날 거야. 굉장하지 않냐?”

“흠, 그들이 아저씨한테 그런 걸 준대요? 터무니없는데. 너무 욕심 부리신다.”

“이놈아, 이쪽 일 짬밥만 20년이 넘는다. 게다가 한국 쪽에서 이런 일하는 사람 거의 없다. 소문이 퍼지기 전에 꽉 잡아야 돼.”

“그동안 개하고 고양이 털만 잔뜩 묻혀 놓곤… 마물은 다르잖아요.”

“어째 삐딱하다? 어제 네가 밥만 먹고 그냥 가는 바람에 말 안 했는데, 사실 이쪽 일을 예전부터 조금씩 손대고 있었어. 마츄 따위나 파는 마물 펫 숍도 운영하고 있다.”

“알았어, 알았어요. 전이 이후로 대박 노리는 블랙 말랑 카우가 한둘인가?

하는 일은 아저씨의 말처럼 쉬웠다.

그저 콘테스트가 시작되기 전, 마츄처럼 애완으로 용납되는 마물들에게 먹이를 주고, 털을 빗거나, 똥을 치우는 일을 했다.

‘도살장의 소처럼…….’

꼬리가 잘리지 않은 마츄.

녀석들이 얼마나 겁이 많은지, 스트레스에 민감한지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녀석이 내 손길에 움찔거린다. 난 사시나무 떨듯 파르르 떠는 마츄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약속할게.’

확실하게.

‘친구들 곁으로 가자.’

*

얼마 후, 콘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삼엄했던 경계는 더욱 강화되고, 힘깨나 쓸 법한 사람들이 무대를 둘러싼다.

나와 아저씨, 회사 직원은 우선 마츄 우리와 비교적 덜 해로운(세간의 인식으로 보자면) 마물들을 가둔 우리를 특수 제작한 지게차로 옮겼다.

옮기는 와중에도 녀석들의 간절한 외침이 들려왔다. 하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조금만 참아. 곧 구해 줄게.’라는 말밖에 없다.

그러나 허언은 아니다.

이곳을 지키는 헌터들, 수십억의 이권이 얽혀 있으니 분명 내가 감히 쳐다볼 수도 없을 만큼 강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상관없다. 그들이 날 어린애 다루듯이 쉽게 죽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겨우 ‘인간’일 뿐이다.

확고하게 약속하건데 마츄들은 분명 잔인한 결말을 맞이하지 않을 것이다.

아저씨는 위험하지 않은 마물들만 관리했다. 헌터임이 분명한 사람들이 이윽고 보다 비밀스럽고 튼튼한 우리에 갇힌 마물들을 가지고 왔다.

녀석들에게서 강한 마나가 느껴졌지만, 마츄들과 마찬가지로 겁에 질린 비명만을 내지르고 있었다.

마물 콘테스트는 마물들의 ‘효용’을 검증하는 자리였다.

“어서 오십시오! 다국적 길드 카르마가 주관하는 마물 경매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빤질거리게 생긴 사회자의 인사와 함께 콘테스트가 개최되었다.

“다정아, 카르마에 소속된 단체들이 얼마나 버는 줄 아냐? 내가 저기에만 들어가면 어? 개새끼들 똥이나 닦던 시절은 좆 까라 그래!”

‘개들 때문에 먹고 살았으면서.’

아저씨가 넌지시 내게 말을 걸었다.

‘카르마’에 대해 말하며 마치 벌써부터 그곳 소속인 듯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렇게 들뜬 이유가 있었구먼.

그는 예전하고 많이 달라졌다. 개새끼, 개새끼라고 욕해도 나름 개들을 아껴 주고 잘 보살펴 주던 사람인데 헛바람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

‘카르마’ 때문이었다.

전이 이후, 길드라는 게 생겨났다.

회사와 비슷하나 보다 초월적인 곳이다.

무엇에 대해서 초월적이냐 하면, 모든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거대 길드는 세계를 넘나들며 세계 각국의 정부와 협력하며, 척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테러 단체라고도 부른다. 누군가는 아저씨처럼 길드에 들어가는 걸 선망한다.

길드가 그런 지위를 가지게 된 건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능력자들이 가진 힘’을 정부가 무시했기 때문이다.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가 깨닫지 못했다. 개인의 가진 무력, 이계와 마물이 지구로 전이해 오며 길드의 세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군벌 시대가 따로 없다.

“드러븐 일들도 다 해 쳐 먹는 곳이니, 돈은 많이 벌겠죠.”

그중 카르마는 악명이 높다. 불법적인 일도 버젓이 자행한다. 옛 시대의 마피아, 딱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카르마다. 길드의 전신은 중국에 거점을 둔 조폭 세력이니 당연한 거겠지.

“아저씨는 내 능력이 뭔지 알면서도 이런 곳에 날 부른 거예요?”

“뭐? 개랑 대화하는 거? 다 마물뿐인데 뭔 상관이냐?”

“아, 됐어요. 콘테스트는 어떻게 진행되는데요?”

“경매하고 비슷해. 사회자가 ‘물건’을 소개하며 ‘콘테스트’처럼 진행하는 거지. 그 뒤 경매가 진행되고 낙찰 받으면 물건은 경매가 끝나고 즉시 팔려 나간다.”

‘경매라…….’

사회자는 ‘초대받은 분들의 지위를 생각하여 절대 비밀을 보장하며, 기록은 전혀 남지 않으니’ 경매를 즐겨 달라며 박수를 유도했다.

짝!

나도 박수를 쳤다.

짝-!

다른 의미의 박수였긴 했지만.

세이 굿 바이 박수다.

잘 가라, 멍청이들아.

휴대폰을 켜 시간을 확인했다.

30분 남았다.

*

사회자는 첫 번째 마물을 소개했다.

비교적 안전한 마물이었는데 ‘어떤 이유’로 대단히 희귀한 마물이었다.

“첫 번째 ‘물품’은 두 방울 쥐, 속된 말로 부랄 쥐라고도 하죠!”

하하하-!

사회자의 농담에 관람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미 부랄 쥐, 아니 두 방울 쥐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대부분 중년층으로 보였다. 옆에서 구경하고 있자니 가관이다.

“오, 아무리 구하려고 해도 구하지 못했는데, 저놈 한 마리 고아 먹으면 벌떡벌떡 한다던데!”

“오호호, 여사님도 필요하실 것 같은데요.”

“원, 밤에 죽을 못 쓰니. 진짜 먹여야 할까 봐! 호호.”

그렇다.

부랄 쥐는 생김새가 독특하다.

설치류가 대부분 부랄이 덩치에 비하여 어마어마하게 크긴 하지만 녀석은 격을 달리한다. 생식기가 기이하게 솟아나 있어 몸보다 두 개의 고환이 더 크다.

그래도 마나를 가진 마물이라고 몸을 둥글게 말아 털을 강철보다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재주를 가진 녀석이었다. 사막에서 살며, 사타리언 부부가 함께 여행했던 마물원의 사막 둥지에서도 많이 서식하는 녀석이다.

난 녀석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안다.

단언컨대 부랄이 크다고 해서 정력에 좋은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저속한 낭설에 녀석들은 비싼 몸값에 팔려 나갔고, 지금은 지구에서 거의 볼 수 없는 마물이다.

녀석은 이동장에 갇힌 채 불안한 듯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었다.

하지만 ‘털’이 없었다. 녀석들에게서 유일한 방어 수단인 털이 없는 건, 마치 다리를 다친 가젤, 등껍질을 잃어버린 거북이와 같았다.

극도로 불안해하는 부랄 쥐가 볼품없는 살가죽으로 몸을 보호하나, 모습이 우스꽝스러울 뿐이었다.

카르마 길드의 헌터들은 고의로 녀석의 털을 깎았다.

단지 팔기 위해서.

‘물품이라고 표현하는군.’

사회자는, 아저씨는, 그리고 관람객과 헌터들 모두 부랄 쥐를 물품이라고 불렀다.

마물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살아 숨 쉬는 물품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은 날 보며 말했다.

[살려 줘.]

뚜렷하게 들려온다.

철장 너머로 내게 기대는 녀석.

경매를 곧바로 시작되었고, 녀석은 인기리에 팔렸다.

난 주먹을 꽉 쥐며 다음 차례를 기다렸다.

25분, 금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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