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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49화 (49/258)

# 49화 없어

공주의 침대에서 작은 다과회가 열렸다. 녹진녹진한 초콜릿 케이크와 팝핑 캔디가 잔뜩 올려져 있는 딸기 케이크, 생크림이 듬뿍 들어 있는 오믈렛 빵과 설탕 범벅 과자들까지! 모두 이가 시리도록 단 과자이다.

제시는 맹렬하다고 느낄 만큼 과자를 먹어 댔다. 아니, 저건 과자를 잡아먹는 것이다.

“천천히 먹어. 그걸 한입에 다 먹을 셈… 다 먹었네.”

왼손엔 케이크를 올린 설탕 쿠키를, 오른손엔 생크림을 묻힌 딸기를 들고 한입에 넣어 우걱우걱 먹는 모습이 마치 당 중독에 걸린 다람쥐 같았다.

작은 볼은 신축성이 아주 뛰어나 심지어 나로서도 벅찬 크기의 생크림 빵을 한입으로 끝내 버린다. 단 음식을 싫어하긴 해도 한입 먹어 볼까 하던 난 차마 과자에 손을 뻗을 수 없었다. 제시의 시선이 틈틈이 날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먹으면 화낼 기세네.

“과자를 무척, 매우, 엄청 좋아하는구나.”

쩝쩝!

입가에 묻은 생크림과 이빨에 붙은 부스러기까지 먹어 치운 제시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네. 달콤한 걸 좋아해서… 혹시 더 없나요?”

약 5분 만에 먹어 치운 과자들은 어림잡아 계산해도 6,000칼로리는 넘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시는 과자를 더 원했고, 난 믿을 수 없지만 녀석이 아직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안해.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헨젤과 그레텔의 마녀라도 잡아 오는 건데.”

“어머, 동화가 아니었나요? 진짜 과자 집이 있어요?”

난 농담에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제시를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약속할게. 마물원으로 돌아가기 전에 널 위한 근사한 러브 하우스를 만들어 주지. 설탕 수도꼭지를 틀면 초콜릿 물이 줄줄 흘러나오는 걸로다가.”

동화 속의 마녀는 없어도 마녀보다 더한 존재인 드래곤이 있다. 과자 집뿐이겠느냐, 성이라도 만들어 줄 텐데.

“평소에도 이렇게 먹니?”

“아뇨. 이렇게 많이 먹은 건 처음, 평소엔 아빠가 못 먹게 하거든요.”

“왜?”

대략 이유는 짐작이 갔다.

저렇게 먹어 대면 미관상 문제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엄청 치명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어진 제시의 말에, 내 예상을 훨씬 초월한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단순히 살이 찌는 수준이 아니잖아?

“드워프는 맛있는 걸 많이 먹을수록 못생겨진대요. 우리 할머니처럼요. 하지만 난 할머니가 예쁜데.”

“할머니?”

제시는 손가락으로 벽에 장식된 액자를 가리켰다. 액자 속 사진엔 무척이나 흉포하게 생긴 생물이 있었다. 난 드워프들이 힘겹게 잡은 위험한 괴물을 기념하기 위해 찍은 사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제시는 괴생명체를 자신의 할머니라고 소개했다. 맛있는 걸 많이 먹으면 저렇게 된다고? 이 토끼처럼 사랑스러운 아이가 저 옛날 만화에 나오는 ‘질퍽이’처럼 변한다는 거야?

“얘야, 과자를 그만 먹는 게 좋겠다.”

진심으로 충고했다.

역변도 나름이다.

종 자체가 바뀌어 버린다.

난 차라리 맛있는 음식을 못 먹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쉬운 듯 케이크 시트지에 묻은 생크림까지 핥아 먹는 제시의 모습에, 결국 소녀는 변해 버릴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사진 속 제시의 할머니 모습과 제시를 번갈아 본 난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안타깝고 그러네.

*

과자 공세로 제시의 환심을 사는 건 그럭저럭 성공한 것 같았다.

난 잔뜩 겁먹어 침대 아래로 숨어 버린 마츄들을 불러냈다.

녀석들은 내 품에 옹기종기 모여 털을 비비적댔다. 하지만 제시가 뻗은 손길에 깜짝 놀라며 다시 침대로 숨어 버렸다.

“도망가 버리네요.”

제시는 시무룩해하며 뒤로 물러났다. 강아지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는데 도망간다면, 싫어하는 게 아니라 무서워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자기 덩치의 몇 배나 되는 존재가 다가오는데, 나처럼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모를까, 무서워하는 게 당연하다.

“그냥 겁이 많을 뿐이야. 자, 보렴.”

다시 마츄들을 부르자 침대 아래서 꼬리만 삐죽 내밀고 있던 마츄들은 이내 슬금슬금 기어 나와 다시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난 녀석들 중 한 마리에게 말을 걸었다. 역시 겁 많은 마츄답게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법이 있지.’

난 마츄들의 경계심을 사르르 녹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품에서 꺼낸 건 두 개의 사탕수수, 꺼내자마자 침대 아래에 숨어 있던 마츄들도 우르르 나와 꼬리를 쫑긋 세웠다.

사탕수수, 고양이에겐 캣닢이 있다면 녀석들에겐 사탕수수가 있다. 마츄들이 사탕수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건 내가 교감 능력으로 가장 먼저 해낸 일이기도 했다.

제시는 사탕수수에 달라붙는 마츄들을 신기하게 쳐다보다가 다시 무작정 손을 뻗었다.

사탕수수를 먹을 땐 경계심이 풀어지는 마츄들이라고 하더라도, 급작스러운 스킨십에 화들짝 놀라며 내 뒤로 숨어 버렸다.

“제가 싫은 걸까요?”

“네가 긴장하고 있어서 그래. 자, 편안하게 대해 보렴.”

제시는 내가 건넨 사탕수수를 들고 천천히 마츄들에게 다가갔다. 몸을 낮추고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천천히 사탕수수를 내밀자, 마츄들도 꼬리를 살랑거리며 천천히 다가온다.

속마음을 읽을 수는 없더라도, 분명 저 아이와 마츄들이 하고 있는 건 ‘교감’이었다.

“와악!”

이내 마츄들은 제시 손에 들린 사탕수수를 앙 깨물었고, 제시는 떨리는 손으로 사탕수수를 들고 가만히 있었다.

츄츄!

이제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아도 마츄들이 다가와, 하얀 털을 제시의 팔등에 비비적거리기 시작했다.

저 기분, 잘 안다.

물론 난 특이 케이스긴 하지만, 말이 안 통하는 생물과 마음으로 이어진 특별한 순간이 얼마만큼 행복한지 누구보다 잘 안다.

마츄들과 친해진 뒤, 제시는 마츄들에게 저마다 이름을 붙여 줬다.

“츄나! 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

“사탕수수 먹고 싶다.”

“츄로, 이 아이는요?”

“사탕수수 먹고 싶다.”

“푸흡-! 그게 뭐예요? 다 똑같잖아?”

난 한참 동안 제시와 마츄들과 같이 한가롭게 놀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난 확신할 수 있었다.

제시는 나처럼 마물들과 대화하는 능력은 없었으나 마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소녀다. 그러니 분명, 오리하르콘을 찾는 돼지가 있는 곳을 알고 있을 거야.

*

“아저씨는 루링을 찾으러 오셨죠?”

한참 마츄들과 놀던 제시가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찾으시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어떻게 하긴, 찾는 게 내 임무야. 그 뒤의 일은 내가 생각할 게 아니지.”

“…아저씨.”

날 보는 제시의 눈빛은 흔들렸다. 분명 무언가를 갈등하고 있는 거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믿음을 주는 것이다. 난 흔들림 없는 눈으로 제시를 마주 봤다.

“아저씨는 믿을 만한 사람이죠?”

“그럼. 신용도는 1금융권 수준이란다.”

“무슨 뜻인진 몰라도 용의 가디언님이라면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겠죠?”

“당연하지.”

거짓말이다.

내 인생은 앞으로 필요하다면, 거짓말로 가득할 것이다. 그러나 맹세하건대 제시에겐 거짓말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드워프와 레프러콘, 그들에겐 절대 말하지 말아 주세요. 약속해 주세요.”

“약속할게. 할아버지의 이름, 아니다. 내 람보르 522D를 걸고.”

제시는 표정을 찡그리며 말을 할까, 말까를 계속해서 고민했다. 뜸을 들이는 녀석의 마음을 난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일족들의 존망이 걸린 중요한 일을 숨겨 버린 꼴일 테니.

“사실 루링, 그 아이가 있는 곳을 전 알고 있어요.”

힘겹게 내뱉은 말.

잠자코 어개를 토닥여 줬다.

난 드워프나 레프러콘이 아니다.

소녀의 잘못을 추궁하거나 꾸짖기보다 그저 내게 비밀을 말한 용기를 격려해 주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아저씨는 루링의 목소리가 들리겠죠?”

“그래. 녀석이 마나가 뛰어난 마물이면 농담도 주고받을 수 있을걸?”

“그럼 알아봐 주세요. 루링은 오리하르콘 광산이 나타났을 때부터 고통스러워하고 있어요. 난 루링이 왜 그러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어요. 그래서 루링이 원하는 대로 숨겨 줬어요. 나만이 알고 있는 장소에.”

드워프 성에는 숨겨진 장소가 많았다. 제시는 할머니 사진 아래에 놓인 탁상을 밞고 올라가 액자를 치우더니 벽면을 꾹 눌렀다. 그러자 침대 뒤에 비밀 벽이 열리며 작은 통로가 나타났다.

“제길! 또야?”

제시의 작은 키엔 문제없는 통로였으나, 난 포복 자세로 기어갈 수밖에 없어 보였다.

이번 일은 무엇보다 내 관절이 고생하는구나.

제시를 따라 통로를 지나가던 난 무릎이 시큰해져 왔다. 원장님에게 말해서 산재 처리 해 달라고 해야지.

*

습기가 가득한 통로를 지나자 벽면과 바닥이 흠뻑 젖어 있는 동굴이 나왔다. 근처에서 물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해안가와 연결된 동굴인 것 같았다.

‘저 녀석.’

동굴의 공동에 마물이 있었다.

공동은 넓었으나 녀석은 구석진 곳에서 머리를 땅에 파묻고 토실토실한 엉덩이만 내놓은 상태다.

꼬리가 세차게 움직이는 게, 나와 제시의 존재를 눈치챈 것 같은데 반응이 없다.

“루링!”

제시가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다. 표정이 금방이라도 울 듯한 제시가 내게 말했다.

“원래 착하고 활발한 아이였는데 오리하르콘 광산의 발견 이후로 저 상태예요. 용의 가디언님, 부디 저 아이가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를 알아내 주세요.”

난 천천히 녀석에게 다가갔다.

가까워질수록 돼지 꼬리와 흡사하게 생긴 꼬리가 맹렬하게 흔들리며 내 접근을 탐탁지 않아 한다.

제시의 말이 맞았다.

녀석은 무척이나 괴로워하고 있었다. 괴로움에 먹혀 몸에 병까지 생겼을 만큼.

마치 츄파카브라 때와 같았으나, 육체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극심한 스트레스로 탈모에 걸린 대기업 부장님처럼, 마음의 문제 같다.

오리하르콘을 찾는 돼지, 녀석은 드워프와 레프러콘 사이에서 이렇게 불렸다.

“카르나[Carna].”

내가 내뱉는 말은 사람의 말, 한국어다. 하지만 동물들, 혹은 마물들에겐 다르게 들리나 보다.

원장님이 말하길 본질의 문제라고 했다. 즉, 내가 ‘못생긴 돼지야’라고 한국어로 말해도, 교감의 힘으로 마물들은 ‘못생긴 돼지야’에 담긴 본질적인 뜻을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카르나, 돼지 마물은 내 부름에 축축하게 젖은 진흙에서 머리를 천천히 추켜올렸다.

‘저게 무슨 숲의 요정이야?’

카르나의 뜻은 드워프들 사이에선 숲의 요정이란다. 하지만 카르나라고 불리는 돼지 마물은 요정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먼 녀석이었다.

그냥 돼지다.

이마에 뿔이 촘촘하게 여섯 개가 나 있고, 줄무늬가 있으며, 눈이 노란색이지만 어쨌든 돼지다.

꿀-!

[날 부른 거야?]

울음소리도 돼지다.

하지만 교감으로 인해, 내겐 다르게 들려왔다. 그래도 녀석은 마츄와 샐러맨더보다 제법 격이 높은 마물인지 대화를 하듯 교감이 가능했다.

“그래. 너, 왜 그렇게 괴로워하는 거니?”

“혹시 대화 중…….”

“쉿. 집중해야 돼.”

놀라워하는 제시를 뒤로하고 녀석에게 다가갔다. 카르나는 피하지 않고 내게 다가온다.

꿀-!

[내 말이 들리는 거야?]

“그래. 잘 들려. 그리고 네가 엄청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도 잘 느껴져.”

[흐윽, 난…….]

카르나는 울기 시작했다.

엉엉 울더니(듣기론 꿀꿀) 갑작스레 내게 달려와 진득거리는 진흙을 묻히며 안긴다.

순간 내팽개치고 싶었으나, 녀석이 느끼는 상실감, 혹은 고통들이 생생하게 느껴지며 동정과 연민의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래. 울지 말고 말해 봐. 왜 그렇게 괴로워하는 거니?”

[흑흑. 난 말이야. 너무 슬퍼. 나 때문에 모두가 싸우고 있어. 하지만 내 말을 듣지 않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돼지가 내게 진실을 말해 준다.

[모두에게 나 대신 말해 줘. 사실 광산엔 오리하르콘이 없다고!]

“뭐?”

평화롭게 지내던 드워프와 레프러콘이 전쟁을 준비한 것도, 아마 원장님이 내게 카르나를 찾아 달라고 부탁한 이유도, 모두 오리하르콘이라는 신의 금속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오리하르콘을 찾을 수 있는 카르나는 광산에 오리하르콘이 없다고 한다.

카르나가 조금 더럽긴 해도, 내가 느끼기에 녀석의 마음은 티 없이 맑았다.

녀석의 말이 맞을 것이다.

사실 오리하르콘은 없는 거야.

[그런데 모두 내 말을 듣지 않아. 오리하르콘이 없다고 말해도 욕심에 눈이 멀어서 날 괴롭히려고 해! 그러니까 모두 실망하고 말 거야. 나 대신 말해 줘. 오리하르콘이 없다고. 그러면 난 쓸모없게 될 거야. 그러니 이곳에서 쓸쓸하게 죽고 말겠지.]

“…알겠다. 네가 괴로워하는 이유를.”

녀석이 내게 말을 터놓을수록 교감은 깊어져 갔다. 그러므로 더 자세하게 이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난 전에 이 기분을 느껴 본 적이 있었다.

‘유기견한테서 느꼈지. 버림받는다는 두려움, 고통이야.’

카르나는 오리하르콘을 찾는다.

그리고 스스로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오리하르콘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오리하르콘이 없으니, 자신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버린 것이다.

“뭐야? 겨우 그딴 이유로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는 거야?”

내 말에 엉엉(꿀꿀) 울던 카르나는 발끈하며 진흙투성이 발바닥을 놀렸다.

[그딴이라니! 난 평생 동안 오리하르콘을 찾으면서 지냈어. 푸른 세계, 이곳으로 넘어오기 전에도 말이야. 선대 드워프 왕은 날 총애했지. 못생기고 냄새나는 날 사랑해 줬어. 모두 오리하르콘을 찾아 줬기 때문이야! 내 가족과 친구들은 모두 전이에 휩쓸려 죽었지만, 난 살아남았어. 하지만 가치가 없다는 걸 들킨다면 난… 죽고 말거야. 버림받고 말거야.]

슬슬 짜증이 난다.

존재 가치가 없다고 징징대는 마물이라니. 거참.

지구에 홀로 남은 외로움은 이해하지만, 사실 녀석은 혼자가 아니다. 그런데 녀석은 건방지게도 그 사실을 바로 ‘앞에 두고도’ 모르고 있다.

난 주먹을 들어 있는 힘껏 녀석의 대가리를 후려 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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