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55화 (55/258)

# 55화 모르모트 (1)

“저번에 다정 씨가 마물 사막을 투어할 동안에 전 사타리언들과 할 일이 있다고 말했었죠?”

“네.”

“협약 때문이었어요.”

원장님은 꽤 두꺼운 보고서를 건넸다. 첫 장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장까지 종이에 빼곡히 기록된 건, ‘윙바레’를 포함한 제약 회사들과 ‘미하엘 종합병원’ 같은 병원들의 상호였다.

“사타리언들의 마취약은 아시다시피 회사 윙바레를 통해 판매되고 있죠. 그래서 윙바레는 독자적으로 상당히 광범위하게 연결된 의료 네트워크를 소유하고 있어요.”

“아… 네.”

그러니까 제약 회사와 병원 간의 연결점 같은 거겠지.

“다정 씨는 만약 코쿠라차 여우원숭이들의 산성액을 뒤집어쓰면 어떻게 행동할 거죠?”

“그야 녀석들의 산성액은 물로 씻으면 안 되고, 기름으로 닦아 내…….”

“맞아요.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죠. 정보가 없으니까.”

원장님이 말하고자 하는 건 현대 의학의 허점이었다.

“마물에 의한 상처나 질병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으나 의사들은 ‘정보’가 없죠. 지구의 역사에 비유하자면 마치 흑사병 시대와 같아요. 현대 의학으로 마물 때문에 발생한 병들을 치료하는 건, 거머리 따위로 전염병을 치료하는 꼴이죠.”

괜히 의료 보험이 비싸지고, 사망률이 급격하게 올라간 게 아니다. 20년이 지났어도 아직 현대 의학은 새로운 시대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제가 도와줬죠.”

그런가, 의료 분야라…….

옛날에 병원에서 치료하는 분야는 감기 따위의 질병, 산업 재해에 의한 질병, 화상, 자상 등 평범했다. 그러나 지금은 저명한 의사라도 마물 때문에 발생한 병은 알 수 없겠지.

원장님만큼 마물에 대해 잘 아는 존재는 없다. 그래서 그녀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의료 분야까지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사타리언들을 통하여 세계 각지의 의료인들을 교육시킨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에 큰 문제가 발생했다.

마물에 대한 지식이 문제였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마물들의 세세한 정보는 의료 분야를 넘어서 다른 곳에 악용될 여지가 다분하다. 아니나 다를까, 교육 기관과 교육을 받은 전문 인력을 강제로 탈취하는 어떤 세력이 생겨났다고 한다.

“으아, 이번 임무는 헌터들과 다투는 건가요?”

느낌이 쌔하다.

하지만 원장님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다정 씨가 해 줄 일은 따로 있어요.”

그녀는 몇 장의 사진을 건넸다.

확인하던 난 절로 눈썹을 구기고 말았다. 사진은 환자들을 찍은 것이었다.

“마물들이 한 짓이군요.”

환자들의 상태는 심각, 아니 처참했다. 그 어떤 지독한 전염병에 걸려도 이렇게 심하진 않을 것이다.

피부는 괴사하여 퍼렇다 못해 보라색으로 변했고, 두 눈은 부풀어 올라 튀어나와 있다. 기이하게도 이빨들은 흉측하게 비대해져 입술에서 튀어나올 정도로 자랐지만, 사지는 쪼그라들어 몸통에 비해 어린애같이 작았다.

“미확인 마물에게 당했어요. 저로서도 알 수 없는 마물, 오랫동안 지켜봤으나 어디서 왔는지, 어떤 목적을 가졌는지, 무엇을 먹는지조차도 알아내지 못했죠.”

육체가 붕괴되고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내가 가장 놀란 건 환자들이 모두 일 년 이상이나 살아 있다는 원장님의 말이었다. 오히려 시체가 건강해 보일 지경인데, 저 상태로 어떻게 목숨을 영위하는 것일까?

“그러니 다정 씨가 알아봐 줬으면 해요. 병의 증상과 치료 방법까지.”

“제가 어떻게 하면 되죠?”

“대화나, 그 이상의 수단으로.”

젠장.

내키진 않는다.

마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해도, 마물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고 해도, 모든 마물을 다 좋아하게 된 건 아니다. 당연히 마물 중에서도 흉포하고, 사납고, 잔인한 녀석들이 있다. 황소 괴물에게서 느꼈던 목마른 살의처럼 말이다.

그리고 짐작하건대 저런 질병을 퍼트리고 다니는 마물이 정상적인 생물일 리가 없다. 말이 통한다고 해서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설득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힘이 닿는 데까지 노력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최대한 노력을 해 볼 생각이다. 하기 싫은 일과 해야 할 일은 다르다. 고통 받는 환자들의 유일한 희망이 나라면, 응당 노력해 볼 가치는 충분하잖아?

마물을 가둔 곳은 호주의 릭스틴 연구소라는 곳이었다. 다른 병원이나 연구소로부터 가까운 곳에 있으며, 주로 마물에 의해 발생한 질병을 연구하는 질병 연구소라고 한다.

원장님은 그곳으로 향하는 공간의 통로를 열며 당부했다.

“이번 일은 다정 씨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겁니다. 앞서 말했듯이, 난 감히 제 일을 방해하는 놈들을 혼내 줘야 하니까요.”

“원장님의 기대에 전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물론 제가 그에 따른 충분한 보상을 기대하는 건, 죄가 아니겠죠.”

“다정 씨는 참 말이 많단 말이야.”

난 상사가 드래곤이라고 하더라도 제 몫을 챙기려는 노력은 빠트리지 않았다.

원장님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다가, 놀랍게도 거액의 특별 수당금을 제시했다. 평소보다 열 배는 많은 액수였다.

도리어 놀라 되묻자, 원장님은 자신이 지급하는 게 아니라 윙바레사에서 지급할 인센티브를 추정한 거라고 했다. 과연 굴지의 제약 회사구나.

“그리고 이번 일에 포근이는 꼭 데리고 가세요.”

“포근이요?”

“샐러맨더의 기운은 소유자의 재생을 촉진해요. 다정 씨도 겪어 보셨을 텐데요.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러고 보면 포근이와 교감하고 있을 땐 자잘한 상처들은 금방 나았지. 심지어 마물 사막에선 전갈 마물에게 등을 꿰뚫린 상처도 재생됐다.

“고생하세요.”

몇 가지 장비들을 챙기고 포근이를 데리고 왔다. 원장님의 격려를 받으며 공간 이동의 통로를 지난다. 이젠 익숙한 박탈감과 멀미가 느껴지고, 눈 깜빡할 사이에 황량한 도로가 보였다.

‘이곳인가?’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사막이다. 이곳은 호주 외곽 울룰루 사막, 호주 국토의 40%를 차지하는 사막 중에 한곳이다.

사하라 사막 같은 곳과 달리 붉은 모래들과 산만큼 거대한 바위들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도로는 있으나, 모래만 잔뜩 쌓여 있고, 지나가는 차는 없었다.

원장님이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릭스틴 연구소가 나온다고 했지.

마물을 연구하는 곳이니만큼 상당히 외진 곳에 자리 잡은 듯했다.

“오랜만에 같이 지내는구나.”

끄앙!

항상 뀨뀨-! 거리며 울던 샐러맨더는 이제 제법 우렁차게 울었다.

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사막의 도로를 걸었다. 녀석은 이제 대형견만큼 컸으나, 여전히 내게 애교를 부리듯 정강이에 머리를 비비적거리며 걸음을 방해했다.

예전처럼 업고 다닐 수가 없기에 녀석을 피해 다니며 게걸음으로 걸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많이 컸어.’

벌써 반년이 훌쩍 넘었구나.

포근이, 녀석이 내 몸에서 분출되던 불의 기운을 뗀 후 덩치가 커지면서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요즘엔 합사 시도를 위해 일부러 먹이를 줄 때를 제외하곤 같이 놀아 주지도 않았다.

녀석이 나와 가깝게 지낼수록, 샐러맨더 무리와는 더 멀어질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녀석은 내가 마냥 좋은지 기분 좋은 콧방귀를 뀌며 내게 찰싹 달라붙어 걸었다.

1km쯤 걷자, 멀리 큰 건물이 보였다. 저곳이 릭스틴 연구소, 당연히 간판 따위는 없었다.

아치형 구조의 지붕과 세련되지 못한 콘크리트 벽으로 이루어진 건물엔, 창문 따윈 보이지 않아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누가 봐도 수상한 건물이야.”

거대 바위와 붉은 모래만이 존재하는 사막 위에 지어진 삭막한 건물은 객관적으로 봐도 너무 ‘비밀 연구소’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연구소 앞에 도착한 난 머리를 긁적이며 입구를 찾았다. 역시나 친절한 곳은 아니었다. 유리로 된 자동문 따윈 없었던 것이다.

한참을 둘러보던 난 벽에 설치된 CCTV를 발견하고 품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였다. 원장님에게 지급받은 윙바레사의 신분증이었다.

얼마 후, 둔탁한 기계음이 들리더니 벽으로 보이던 곳이 갈라지며 문이 열렸다. 배트맨 동굴의 입구라도 되는 건가? 보안이 철저하구만.

끼익-!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문 너머로 또 거대한 철문이 있다.

찰칵-!

철커덩!

문이 개폐될 동안 난 멍청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산이다. 배트맨 기지의 입구가 아니었다. 이 건물은 마치 철옹성 같은 감옥이다.

‘어떤 마물이기에 이리도 경계하는지.’

외부의 보안뿐만 아니라 내부에서의 유출도 극도로 꺼리는 거겠지.

문제는 내가 그 마물, 직접 만나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마침내 모든 보안 장치가 열리고 하얀 백의를 입은 남자가 날 마중했다. 정리를 하지 않아 하얗게 센 지저분한 머리와 마찬가지로 하얗게 센 지저분한 수염, 60대로 보이는 서양인이었다.

그는 날 보다가 샐러맨더를 발견하고 살짝 놀란 듯했다. 그러고는 이내 차분하게 손을 내밀었다.

‘샐러맨더를 보고도 큰 반응이 없다니, 역시 마물 연구소.’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릭스틴 연구소장, 다니엘 베이커 교수입니다. 다정 정, 만나서 반갑습니다.”

정다정.

거꾸로 해도 정다정.

외국인에겐 어려운 발음인 것 같다. 유난히 내 이름을 부를 때 버벅거리는 다니엘 연구소장이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냥 정이라고 불러 주세요, 다니엘 소장님.”

그는 릭스틴 연구소를 담당하는 저명한 박사이자, 원장님과 직접적으로 마물의 정보를 공유하는 인재기도 했다.

하지만 원장님은 드래곤임을 숨긴 비밀스러운 조력자이기에, 표면적으로 난 윙바레사에서 파견 나온 전문 인력이었다.

아무래도 용과 용의 가디언이라는 직책은 인간들에게 거북하게 느껴질 테니.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쉬실 곳을 안내해 드리죠.”

먼 길은 맞으나, 30분 전만 해도 난 한국에 있었다. 어깨를 으쓱하며 괜찮다고 말했다.

“괜찮습니다. 우선 환자분들을 보고 싶은데요.”

다니엘은 ‘환자’라는 말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내 짙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사실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습니다. 미스터 정, 이쪽입니다.”

연구소 로비를 지나 깊숙이 들어간 곳에 병실이 있었다. 보통의 환자들이 아니었기에 위생복을 단단히 갖추어 입어야 했다.

포근이는 복도에서 기다렸다.

난 다니엘 소장과 같이 병실에 들어갔다. 첨단 의료기기들로 가득한 병실엔 위생복 너머로도 전해질 만큼 지독한 악취가 풍겼다.

‘실제로 보니 더 끔찍한… 젠장.’

병실에 누워 있는 환자들,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더욱 끔찍했다. 환자를 두고 ‘끔찍’하다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비난 받을 일이나 달리 생각나는 단어가 없었다.

비틀리고, 녹아내리고, 오염된 채다. 하지만 여전히 살아 있었다. 왜 ‘저것’이 살아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지경인데도 불구하고.

어떤 마물일까,

어떤 끔찍한 마물.

어떤 사이코패스 마물이 저렇게 만들었을까? 단순히 먹기 위해 저렇게 만든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겠다. 변형된 환자들의 몰골에서 지독한 악의가 느껴졌다.

“보고 받은 것과 다르군요. 환자들의 수가…….”

“소냐. 소냐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어제부로 사망했습니다.”

“사망이라니? 사망 사례는 처음이 아닙니까?”

“그러니 한시가 급합니다. 그녀의 죽음은 시작이겠지요. 남은 수십 명의 환자 모두 언제 목숨이 끊어질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태는 더 심각했다.

젠장.

병실에서 나오자 다니엘이 말했다.

“윙바레사에서 연락 받길, 미스터 정은 대단한 능력을 지니셨다고 들었습니다.”

머리를 감을 시간조차 없는지, 기름지고 엉킨 머리를 한 다니엘 소장.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악마의 병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하여 모든 수단을 동원해 봤습니다.”

괴로운 표정을 짓는 다니엘 소장이 내게 진심을 건넨다.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제 남은 희망은 하나밖에 없지요. 부탁드립니다. 미스터 정, 우린 메시아(messiah)가 필요합니다.”

얼마나 간절했던 걸까?

내 능력을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누군지 방금 전에 만났으면서, 날 마지막 희망이라 부르는 다니엘 소장이다.

나는 확신에 찬 약속을 하는 걸 싫어한다. 고아원에서 지내며 그딴 약속을 내뱉는 자들은 대부분 멍청한 거짓말쟁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난,

멍청한 거짓말쟁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놈은 어디 있습니까?”

“…예?”

“병을 퍼트린 마물, 어디에 있는지 안내해 주십시오. 두들겨 패서라도 치료 방법을 알아내 드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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