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모르모트 (2)
그를 따라갔다.
다니엘 연구소장은 최고 보안 등급을 가진 자신을 비롯하여 연구소에 단 ‘세 명’만이 마물과 접촉할 권한을 가진다고 했다.
새삼 내게 거는 기대치가 느껴졌다. 외부인인 날 신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윙바레사에서 파견된 헌터들이 줄지어 경계하고 있는 삼엄한 복도를 지나, 지하로 향하는 삼중으로 된 강철 문을 다섯 번이나 지나치고 나서야 또다시 지하로 향하는 벙커 형태의 입구가 나왔다.
“이곳은 엘리베이터도 없답니까?”
다니엘 소장은 농담에 주름진 이마를 들썩이며 웃었다.
“이곳의 VVIP 고객은 조금 특별해서요.”
마물 연구소의 VVIP 고객이라,
확실히 지독한 전염병을 퍼트린 흉악한 마물이니 이정도 대우는 받아야지.
벙커를 열자 지하로 향하는 철제 사다리가 나왔다. 엘리베이터는커녕 계단도 기대할 수 없었다.
소장의 말에 따르면 철제 사다리도 외부에서 조작하면 곧바로 끊어지게 만들었단다. 만에 하나를 가정하여 마물이 풀려날 시, 벙커에 가두기 위해서겠지.
다니엘 소장은 사다리로 먼저 내려가며 내게 경고했다.
“아시겠지만, 각오하셔야 될 겁니다.”
당연히 마물을 가둘 때 옆에 사람이 있으면 같이 갇힐 것이다. 난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난 발암 유발자는 아니니까.”
번역기의 해석이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몰라도 소장은 피식 웃어 줬다. 난 혹시나 마물이 풀려나더라도 혼자 살기 위해 벙커 문을 열어젖히진 않을 것이다.
사실 그다지 큰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게 이번 일은 항상 해 오던 일이었다. 알지도 못하는 마물과 대면하는 작업, 비록 원장님이라는 확실한 방책이 없지만 이쪽 분야에서 난 확실히 베테랑이라 자부할 수 있었다.
벙커 아래엔 방호복 따위가 수납된 보관함이 있었다. 다니엘 소장에게 이 옷으로 놈을 막을 수 있냐고 물어보니, 망설임 없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이쯤 되면 조금 긴장되긴 하는군.’
원장님의 ‘방호복’과 달리, 이건 그냥 거추장스러울 뿐이잖아.
그래서 입지 않았다
다니엘 소장이 물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난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너무 늦게 물어보시는 거 아닙니까?”
“어차피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전 미스터 정을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마물과 대화로 풀어 나간다.
그게 내 방법, 하지만 누구에게 설명하여 납득시킬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난 대답 대신 소용없다던 방호복을 단단히 챙겨 입은 다니엘 소장을 보며 고개만 끄덕여 줬다.
벙커 안, 전기는 들어와 밝은 편이나 묘하게 지하 감옥을 연상시키는 복도를 걷는다.
놈은 복도의 끝, 의문의 조력자(원장님)에게서 제공받은 우리에 갇혀 있다고 했다.
“언제 발견된 마물입니까?”
환자들의 병은 일 년 전에 발병했으나, 마물이 저지른 일이라고 밝혀진 건 얼마 되지 않았다.
“환자들은 대부분 이계 유적 탐험단들입니다. 남수단 외곽에 나타난 피라미드 형태의 이계 유적, 그곳의 깊숙한 곳에서 그들은 ‘그것’을 발견했지요.”
이계 유적은 마물들, 이계인과 같이 지구에 전이된 이계의 환경이다. 대륙 거북이가 산란하던 장소도 이계 비경이었지.
사건의 발단은 마치 투탕카멘의 저주를 연상시켰다. 이계 유적지를 조사하던 탐험단은 어떤 것을 발굴하는 데 성공하였는데, 그게 전염병을 퍼트리던 마물이었다고 한다.
그것의 유해성이 입증되기 전까지 많은 재력가들이 이계 피라미드에서 발견된 미라 형태의 마물을 소유했고, 질병이 본격적으로 발병되었을 땐 이미 수십 명이 전염병에 걸린 상태였다.
마물을 회수했으나 환자들의 병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심각해졌다. 우습게도 대부분의 환자가 재력가이기에, 그에 따른 반대급부로 릭스틴 연구소가 세워졌다. 하지만 일 년 동안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놈에 대해 듣다 보니 어느덧 복도의 끝까지 도착했다.
‘원장님의 마물 우리.’
익숙한 모양새의 우리다.
우리의 벽은 유리로 되어, 안에 있는 마물의 생김새를 모두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벽이 유리로 이루어져 있으나, 그 너머는 다른 공간이다.
교감이 되지 않았다.
놈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선 내가 직접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프로 의식, 혹은 자만이라고 해도 좋다. 난 녀석과 대면하는 걸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망설이지도 않았다. 이 역시 마물원에서 일하며 달라진 점 중 하나겠지.
“내가 들어가면 문을 틀어막으십시오. 나오고 싶으면 세 번 문을 두드릴 테니, 그때 열어 주세요.”
다니엘 연구소장은 내 말에 깜짝 놀라며 안 그래도 주름진 얼굴을 잔뜩 구겼다.
“설마 직접 마물과 접촉할 생각이십니까?”
“해결책을 찾기 위해선 그럴 수밖에 없어요.”
“…무어라 구태여 말씀드리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아시는 거겠지요? 놈의 위험성을.”
고개를 끄덕였다.
“알기에 들어가는 겁니다.”
난 팔목에 두른 팔찌를 두들겼다. 지금 상황에서 우습게도, 턱시도가 튀어 나와 내 몸에 입혀진다.
또한 오리하르콘 브로치가 빛나고, 포근이가 내게 힘을 보탰다.
“혹시 모르니 넌 바깥에 있어.”
뀨앙-!
불안해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우리의 앞에 섰다.
다니엘 연구소장의 마스터키에 의해 문이 열리고, 난 후다닥 뛰어 들어가 문을 잠갔다.
‘좋아. 본격적이구먼.’
놈은 그곳에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숨이 턱 막힌다.
우리의 구석진 곳에 놈이 뒤돌아 앉아 있다. 첫 인상은 ‘저게 왜 살아 있어.’였다.
미라다. 비쩍 말라비틀어진 미라였다. 미라 이전의 모습을 쉽게 유추할 수 없었다. 마치 원래부터 미라로 태어난 듯, 놈은 북어포보다 비쩍 말라비틀어진 마물이었다.
“야, 야야.”
아무것도 들리지도,
아무것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교감이 잘되지 않는 흉포한 마물이라고 하더라도, 날 경계하는 기색은 비춘다. 하지만 녀석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야옹이와 비슷했으나 조금은 다르다.
놈은 나 따윈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천천히 다가갔다.
다섯 걸음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였다.
“윽.”
역겨워서 그만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내가 다가가자 처음으로 놈이 반응을 보였는데, 그 반응이 너무 역겹고 추악해서 토 나올 뻔했다.
흉포하다?
아니다.
사악하다.
그래, 저건 사악한 새끼다.
맹수처럼 흉포한 게 아니다. 먹이를 뜯어 먹으며, 백수의 왕의 권좌에서 하이에나와 가젤 따위를 가지고 노는 사자처럼 단순한 게 아니다.
짐승의 흉포함이 아니라 놈은 끝없는 사악함과 악의로 가득 차 있었다.
‘예상이 맞았어.;
저런 마물은 처음 느껴 본다.
지독한 사이코패스 마물 새끼, 생물로서 느껴지는 건 단 한 개도 없다. 굶주림은 있으나 배고픔이 아닌 죽음에 대한 굶주림이었고, 욕망은 있으나 많은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식탐같이 원초적인 본능이 아니라 그저 무엇을 죽이고 싶어 하는 살의였다.
마치 미세먼지로 가득한 텅 빈 황야를 보는 것 같았다. 그것도 눈에 보일 만큼 뿌옇고, 한입 숨을 머금으면 입안까지 모래로 텁텁해질 것 같은 불쾌한.
‘마물, 마물. 젠장.’
그동안 겪은 마물들이 편견을 벗겨 줬다면, 놈은 마물의 또 다른 면모를 내게 보여 줬다.
뒤로 물러나던 난 다시 한 발자국 앞을 향해 걸었다. 아무리 대화를 시도해도 받아 주지 않는다. 놈의 목적도 모르겠다. 병을 퍼트린 이유와 병을 치료할 방법도 모르겠다.
‘대화나, 그 이상의 수단으로.’
원장님의 말이 떠오른다.
그녀는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그 이상의 수단을 사용하라고 했다.
아무렴, 원장님인데 날 죽이려고 했을까?
사실 이 일을 맡았을 때부터 날 과감하게 행동하게 만든 건 성공 수당 20억도, 환자들에 대한 연민도 아니었다.
모든 건 날 인정해 주고, 내게 일을 맡긴 원장님을 믿기에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강제로 깊은 곳까지 들어간다.’
마나가 5등급으로 늘어나며 깊어진 교감의 힘으로, 마물이 원하지 않아도 강제로 마음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나나 마물에게도 몹시 위험하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다른 방도가 없다.
난 건드리기 싫은 녀석의 메말라 비틀어진 살가죽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교감의 끈은 뻗어 나가 연결되었고, 난 서서히 눈을 감았다.
깊은 잠.
바다에 가라앉는.
무의식으로 빠져드는.
난 점점 가라앉았다.
…….
그리고 눈을 뜨자 사막이 보였다.
*
검은 하늘과 검은 모래, 바람조차 불어오지 않는 황량한 사막이다.
모든 게 다 현실처럼 느껴지나 이곳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다. 놈의 의식 속의 세계, 자아에 도사리고 있는 만들어진 세계다.
마물들과 깊은 교감을 나눌 때 언뜻 비슷한 체험은 했으나 이토록 생생한 건 처음이었다. 아니, 이 비슷한 느낌을 어디선가 느껴본 적이 있어.
‘케르베로스.’
어찌 잊을까, 주변의 모든 게 날 죽이려 들었던 순간, 죽을 각오를 하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던 그 순간을! 내 뜻은 아니었으나 그때도 케르베로스와 강제로 교감하며 이런 생생한 환상을 체험했었지.
사막을 걷자 곧 이곳의 주인과 대면하게 되었다. 놈은 검은 모래로 이루어진 사구의 위에 있었다.
마치 시체 더미가 쌓인 무덤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그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더디어진다. 본능적으로 꺼리고, 거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검은 모래의 언덕을 올라간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숨이 막혀 와 힘겹게 정상으로 향했다.
[…….]
“뭐?”
놈이 내게 무어라고, 말을 건다.
하지만 들을 수 없었다.
[…어.]
가까워질수록 놈이 읊조리는 말이 들려왔다.
마침내 사구의 정상에 서서 뒤돌아 앉아 있는 놈에게 손을 뻗었을 때, 난 확실히 들을 수 있었다.
[죽어.]
놈은 순식간에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며 말했다.
[죽어.]
번뜩이는 빨간 눈이 다가온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손가락이 비틀리고, 팔이 무너지며, 발가락이 뽑히고, 혀가 목구멍으로 말려들어 갔다.
크아악-!
비명을 내지르며 놈의 의식의 세계에서 도망쳤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왔음에도 내 몸의 붕괴는 멈추지 않았다.
뒤돌아 앉아 있던 놈은 현실에서도 붉은 눈을 번득이며, 내게 다가왔다.
쾅쾅쾅-!
세 번 문을 두들기자 천천히 문이 개폐되었다. 난 다급히 도망쳤다.
“비상 프로토콜을 발동시키겠네!”
문이 닫히자마자 다니엘 소장이 급한 움직임으로 무언가를 조작했고, 이내 우리 안이 뿌옇게 물들며 마물의 접근을 차단시켰다.
“아윽, 젠장!”
‘고통’은 없었다.
하지만 내 몸을 내려다보자 고통보다 더한 공포를 느꼈다. 몸이 환자들처럼 붕괴되고 있었다. 사지가 점점 쪼그라든다.
“포근아!”
뀨앙-!
부르기 전에도, 포근이는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녀석은 달려와 내게 안겼다. 난 포근이를 꾹 안으며 사악한 마물과의 교감을 끊어 내고, 녀석의 따뜻한 불씨 같은 기운을 받아들였다.
화르르!
샐러맨더의 기운이 몸을 감싼다.
그러자 진물이 나던 피부는 깨끗하게 타들어 가더니, 이내 새살이 돋아났다. 비틀리던 사지도 돌아오고, 떨어져 나가려던 손가락과 발가락도 멀쩡해졌다.
‘역시 샐러맨더의 힘은 놈의 끔찍한 힘과 정반대 상성이야.’
원장님이 포근이의 힘이 필요할 거라는 이유가 있었다. 난 포근이 덕에 참혹한 육체의 붕괴를 막을 수 있었다.
“괜찮습니다. 중지해 주세요.”
당황하는 다니엘 소장을 진정시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전까지 무너지던 몸은 멀쩡해져, 이제 아무런 느낌도 나지 않았다.
다니엘 소장이 우리를 조작하자 뿌옇게 분사되던 액체가 작동을 중지됐다.
하얀 안개가 거둬지고, 난 유리창 너머의 녀석을 바라봤다.
놈은 처음 본 순간처럼 우리의 구석진 곳에 몸을 돌린 채 처박혀 있었다.
“괴물 녀석.”
녀석의 살의는 대화가 통할 수준이 아니다. 말하자면 사우론 같은 녀석이다. 절대악이라는 것이다.
“일단은 돌아갑시다, 미스터 정.”
얻은 소득도 없이 벙커를 나왔다.
다니엘 소장의 안내로 배정 받은 방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누웠다.
어질어질하다.
*
“젠장. 머저리 같았잖아.”
내 능력을 너무 자만했던 걸까?
아니면 마물을 너무 ‘착하게만’ 봤던 걸까? 속이 쓰리다.
“이럴 게 아니야.”
알아낸 정보를 알려 주기 위해 원장님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통신 두절,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