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64화 (64/258)

# 64화 냉수가 미지근하다 (1)

다행히 젖소의 경지는 영원한 건 아니었다. 먹이 시간이 지나자 원래대로 돌아왔다.

가슴과 배의 경계가 온전하게 돌아오자 정신머리도 같이 돌아왔다. 더 이상 카르페 디엠 따위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선은 넘으라고 있는 게 아니다.

지키라고 있는 거다.

단지 먹이 시간을 제외하고,

난 인간이며 남자라는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녀석들을 보살핀 지도 하루가 지났다.

다행히 녀석들은 다른 동물의 새끼들처럼 하루 종일 잠만 잤고, 편안한 환경만 조성해 주면 따로 힘든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퇴근은 하지 못했다. 일주일 동안 녀석들과 같이 지내야겠지.

냐앙-!

왈왈! 왈왈!

힘든 일과는 별개로 문제가 있다면 아이스 독들이다. 녀석들은 싫다는 야옹이를 졸졸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있었다.

새끼 까마귀들은 문제가 없다.

둥지 안에서 잠자다가 배고프면 삐액삐액 거릴 뿐, 일주일이 지나도 똑같은 상태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스 독들은 달랐다.

야옹이와 같이 놀고 있는 녀석들, 벌써 크기가 엇비슷하다.

첫 만남에는 갓 태어난 강아지였고, 반나절이 지나자 치와와 크기였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지금은 고양이만큼 컸다. 경이로운 성장 속도다.

냐앙-!

야옹이를 ㅤㅉㅗㅈ던 아이스 독 한 마리가 야옹이의 엉덩이를 콱 깨물자, 지금까지 설렁설렁 봐주던 야옹이는 곧바로 실력 행사에 나섰다.

깨갱-!

마치 파이터처럼 현란한 솜씨로 해머링과 어퍼컷을 때린다.

냥냥 펀치를 연달아 수십 대는 맞은 아이스 독은 서러운지 발라당 누워 깨갱깨갱 울었다.

“어휴, 까불긴 왜 까부냐.”

난 엄살을 피우는 녀석을 안아 들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얼음 조각상을 안아 든 것 같다. 하지만 차가움이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여름날 뜨거운 햇빛에도 난 녀석 덕분에 덥지 않았다.

끼잉-

품에 안긴 녀석은 세차게 꼬리를 흔들며 날 바라봤다. 녀석의 피부는 몹시 시렸으나 눈망울은 따뜻했다.

낑…….

내 손길에 점점 눈을 감는다. 맹렬하게 흔들던 꼬리는 천천히 움직임을 멎었고, 결국 녀석은 내 품에 안겨 잠에 빠져들었다.

야옹이와 한참 뛰어놀던 세 마리의 아이스 독들도 내 발치에 다가와 머리를 뉘였다. 점점 눈이 감기고 이내 잠에 드는 녀석들.

젠장.

정을 주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녀석들은 날 어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찌 예뻐하지 않을까?

녀석들과 놀아 주느라 지쳤는지 야옹이도 내 곁에 다가와 배를 발라당 까고, 요상한 자세로 잠을 청했다.

“고생했어.”

녀석의 배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멀뚱히 섰다.

“머리는 덥고, 몸은 차다.”

내 곁에서 잠든 네 마리의 아이스 독과 야옹이 때문에 꼼짝할 수 없었다.

하지만 머리에 김이 날만큼 더러운 여름날에 한참 동안 서 있어도 짜증은 나지 않았다.

품에 안긴 아이스 독과 발치에서 꾸물거리는 녀석들의 선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녀석들이 깨어날 때까지 한참 동안 서 있어야 했지만 참을 만하다고 느껴졌다.

*

파르바티는 불법 마물 공장의 소탕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마물원으로 향했다.

소탕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 새끼 마물들을 원래의 세계로 돌려보낼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어머.”

관리실의 불을 켠 그녀는 짧은 감탄사를 뱉었다. 소파에 아이스 독들과 엉킨 채 잠든 다정을 발견했다.

‘벌써 가족처럼 지내는군요.’

평범한 마물이었다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의 능력은 드래곤인 자신이 보더라도 놀라웠으니까.

하지만 니플헤임의 생물들은 특별했다. 극한의 빙설의 세계에서 생활하기에 경계심이 심하다.

‘역시 내 감은 틀리지 않았어.’

파르바티는 다정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그를 가디언으로 삼은 선택이 요 근래(적어도 천 년) 자신이 한 일 중 가장 뛰어난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파르바티는 곧바로 마물들을 데리고 갈 생각이었으나, 깨우기 미안할 만큼 곤히 잠든 다정과 아이스 독들을 위해 약간의 시간을 주기로 했다.

‘가디언, 내 첫 번째 가디언.’

파르바티가 사랑스럽게 다정을 바라볼 때, 그는 악몽이라도 꾸는 듯 뒤척였다.

*

인기척에 눈을 떴다.

머리맡에 바로 원장님이 서 있었다. 그녀를 올려다보던 난 비명을 지를까 하다가 가까스로 참았다.

‘뭐야? 왜 사람 자는데 뻔히 보고 있어?’

그것도 붉은 눈동자가 산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게, 날 잡아먹을 듯 강렬했다. 순간 나쁜 생각이 들 만큼 말이다. 원장님은 드래곤이다. 설마 날 키워서 잡아먹을 요량은 아니겠지?

“원장님.”

“일어났어요? 미안해요. 깨울 생각은 없었는데.”

그녀의 하얀 블라우스에 묻은 빨간 자국이 김칫국이 아니라면, 내가 생각하는 그거겠지.

아마 일을 마치고 곧바로 마물원으로 온 모양이었다.

난 담담하게 기지개를 펴며 일어났다. 에이, 잡아먹을 거면 진작 잡아먹었겠지.

“하암~ 일찍 오셨네요? 이틀밖에 안 지났는데.”

“일이 빨리 끝났거든요. 다정 씨도 이틀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친해졌나 봐요.”

원장님은 나와 같이 소파에서 자고 있던 네 마리의 아이스 독을 가리키며 말했다.

새삼스레 묻는 그녀에게 뻗대며 대답했다.

“뭐, 다 제 능력이죠. 다른 건 몰라도 원장님 말대로 제가 이 분야에선 온리 원, 유일하잖아요?”

실없는 말을 하면 그녀가 보이는 자세는 두 가지였다. 무시, 혹은 무언의 협박. 둘 다 비슷했으나 후자 쪽이 더 위험하다.

하지만 이번엔 원장님은 ‘맞장구’라는 신선한 선택지를 골랐다.

“교감, 교감의 능력. 볼수록 대단해요. 니플헤임 마물의 경계심은 우주에서도 손꼽힐 정도인데, 불과 이틀 만에 마음을 열게 하다니요. 어쩌면 다정 씨는 다정 씨 본인과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대단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녀의 표정은 진실했다.

보태지도 않고 숨기지도 않는 순수한 칭찬이라고 느껴졌다.

그녀의 칭찬에 무안해진 건 나였다. 괜히 콧등을 긁적이던 난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래요? 음, 모유를 준 보람이 있나 보네요.”

“모유? 아 , 설마!”

“뭐, 그렇게 됐어요. 원장님이 준 먹이, 그대로 창고에 있어요.”

드래곤도 웃음 코드는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나 보다. 그녀는 내 말에 깔깔 웃더니 한 번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안 돼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제가 무덤까지 가져갈 비밀입니다.”

끼앵-!

“어머, 녀석들이 배고픈가 본데요?”

“니들, 사실 나 놀리는 거지?”

굳이 보여 줄 생각은 없었는데, 때마침 배고프다며 칭얼거리며 일어난 아이스 독들 때문에 난 젖소의 경지를 그녀 앞에서 보여 주게 되었다.

깔깔깔-!

원장님이 저리 경박하게 웃는 꼴은 처음이다. 난 대단한 수치심을 느끼며 수유를 끝마쳤다.

녀석들은 배가 부르자 다시 잠에 들었다. 편히 잘 수 있게 안아 들고 포육실로 향했다.

“다정 씨.”

원장님의 부름에 잠시 멈추고 뒤돌아봤다. 그녀는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말했다.

“첫날 내가 한 말 기억해요?”

“네.”

그래서 내가 아이스 독들에게 정을 주지 않으리라 생각했었지.

“포육실로 갈 필요 없어요. 지금 곧바로 녀석들을 니플헤임으로 돌려보낼 거니까.”

정.

정이란 건.

젠장.

정이란 건 그런 거다.

내가 정을 주지 않았다면, 원장님에게 이 녀석들을 맡겼을 테지, 내가 정을 주는 바람에 녀석들을 더 키우고자 말하는 거겠지.

“끝까지 책임지겠습니다.”

원장님은 눈썹을 구겼다.

화난 게 아니라 안타까운 듯 보였다.

“마음의 짐이 될 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다정 씨.”

그녀가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조심히 네 마리의 아이스 독들을 안아 들며 내게 나머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아이들은 삶이 극도로 짧은 대신, 확실한 궤적을 남겨요. 일주일밖에 살지 못하는 대신 영원한 흔적을 남기는 거죠.”

아이스 독,

빙설의 세계라는 니플헤임에 서식하는 개 형태의 마물.

태어나 2주일 만에 죽는 초파리보다 생애 주기가 짧다.

단 일주일이다.

얼마나 덧없는 인생일까.

하지만 녀석들도 덧없는 인생에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 했다.

원장님이 말했다.

“아이스 독들은 생에 단 두 번, 부모에 대한 사랑, 그리고 연인에 대한 사랑. 일주일 만에 이루어지는 짧은 두 번의 사랑을 해요. 내일이면 녀석들은 서로 짝이 되겠죠. 하지만 첫 번째 사랑은 이미 이루어졌어요. 다정 씨.”

누군가에게 평생의 사랑으로 남는다는 것은, 그 대상에게 어떤 비참한 기분을 들게 하는 걸까.

지금 당장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난 원장님의 이어진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한다면 녀석들의 기억을 지울 수 있어요. 하지만 이대로 아이스 독들의 첫 번째 사랑으로 남는다면, 절대 지워지지 않을 각인으로 남을 거예요. 인간이 ‘잘하는’ 망각도 하지 못하고, 볼 때마다 생각나게 되겠죠. 녀석들이 느꼈던 그 사랑을 고스란히 느끼게 되는 거예요.”

“그래도 마지막까지 곁에 있겠습니다.”

새끼 까마귀들은 원장님에 의해 돌려보내졌다.

하지만 아이스 독들은 마물원에 남게 되었다. 난 잠든 녀석들의 곁에 같이 누웠다.

끼잉!

녀석들 중 유난히 잠투정을 부리는 아이스 독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줬다. 내 손길에 몸부림이 멈춘다.

“편히 잠들렴. 혹시라도 절대 악몽 따윈 꾸지 말고.”

내겐 단 하루가 녀석들에겐 몇십 년과도 같겠지. 난 일주일 동안 녀석들이 항상 행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아침에 일어나자 내 뺨을 핥는 차갑고 축축한 것이 있었다.

찬물에 세수라도 한 듯 정신이 번쩍 들어 일어나 보니, 골든 레트리버만큼 큰 아이스 독들이 내 몸을 핥아 주고 있었다. 침이 냉수보다 차가워 졸지에 냉수마찰이라도 해 버린 꼬락서니다.

‘벌써 다 자랐어.’

원장님에게 듣기로, 아이스 독의 성체는 대형견만 했다. 녀석들은 불과 삼 일 만에 다 자라 버린 것이다.

어제만 해도 내게서 나오는 기운을 먹던 아이들인데, 정말 아리송한 기분이 들어.

“알았어. 일어날게.”

녀석들이 일어나라고 보채는 통에 떠밀리듯 일어났다.

녀석들은 배가 고프다.

하지만 더 이상 내 가슴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따라와.”

먹이를 보관하는 냉동 창고까지 갔다. 가는 도중에도 아이스 독들은 활발하게 장난을 걸었다.

“이놈들아, 좀 비켜 봐.”

녀석들이 몸을 치댄다. 궁둥짝을 살짝 두들겨 쫓아냈다. 살짝 치댔을 뿐인데 면바지가 빳빳하게 얼어붙어, 살짝 터니 살얼음이 우수수 가루처럼 쏟아졌다.

‘이것도 교감의 힘인가.’

냉동 창고의 안,

당연히 추워야 정상.

하지만 아이스 독과 지낸 덕인지 추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포근이와 교감하면 뜨거움을 못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성체가 된 녀석들의 먹이는 독특했다. 얼어붙은 ‘피’다. 난 아이스박스에서 원장님이 준비한 피 얼음을 꺼냈다. 물보다 어는점이 훨씬 낮은 피가 꽁꽁 얼어 있었다.

당연히 얼음처럼 편하게 씹어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녀석들은 피 얼음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군침을 흘리더니, 이내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기 시작했다.

어휴, 보기만 해도 이가 시리네.

먹이를 주고 난 뒤 아이스랜드로 향했다. 아이스랜드란 내가 붙인 별칭이다. 마물 사막, 숲, 공중 섬처럼 마물원의 환경 중 하나이며, 빙설과 냉한의 환경에서 서식하는 마물들의 보금자리다.

아이스 독들은 성체가 되어 품은 냉기가 강해지자, 더운 여름 날씨를 못 버텨 했다. 녀석들의 삶 중 단 일 초라도 나쁜 기억은 심어 주기 싫었다. 아이스랜드라면 괜찮겠지.

이곳에 처음 왔을 땐 원장님이 준비한 특수 방한복을 입어야 했지만, 이젠 굳이 필요가 없었다.

“자, 이제 편해?”

사방에 쌓인 하얀 눈, 빛깔 고운 우유 얼음을 뿌려 놓은 듯한 설원에 도착했다.

왈왈!

원래 살던 세계와 비슷한 이곳의 환경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파란 털에 눈을 잔뜩 묻혀 가며 뛰어다닌다.

흐뭇하게 바라볼 때였다.

“어머.”

남사스러워라.

원장님이 말하길,

내일이면 짝을 찾는다더니.

설원이 녀석들의 무언가를 자극시켰나 보다.

학학학학-!

암컷 두 마리,

수컷 두 마리.

다행히 짝은 맞았다.

설원 위를 수놓는 아름다운 광경에 난 머쓱하게 고개를 돌렸다.

녀석들과 지내는 일분일초가 묘한 기분이다. 너무 초고속으로 진행되는, 마치 재생 속도를 몇백 배나 빠르게 한 비디오를 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거사를 끝마친 아이스 독들은 서로 짝을 이루어, 행복하게 설원을 뛰어놀았다.

‘두 번째 사랑.’

교감으로 알 수 있었다.

내게도 전해진다.

녀석들은 지금,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를 맞이했다.

그날, 하루 종일 난 옆에 서서 녀석들의 사랑을 관찰했다.

밤이 되자 아이스랜드의 하늘에 오로라가 피어올랐다.

그 순간, 녀석들의 사랑은 절정을 맞이했다.

끼잉-! 끼잉-!

난 암컷 아이스 독이 품은 새끼들을 바라봤다. 세차게 울어 대는 새끼들을 아이스 독의 어미들은 조심스레, 그리고 사랑스럽게 핥았다.

‘불과 삼 일 전의 너희.’

삼 일 전의 새끼들이,

이젠 새끼를 낳았다.

‘저 새끼들도 일주일밖에 살지 못해.’

점점 기묘하고 아리송한 기분은 커져 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기분이 무엇인지 깨닫고 말았다.

동정(同情).

녀석들의 삶이 얼마만큼 값지고 찬란한지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일주일의 시간은 너무 짧다고 생각했다. 너무하잖아. 겨우 일주일의 시간 동안 태어남, 사랑, 그리고 새끼로 하여금 이어짐과 마침내 죽음까지 경험한다.

만약 사람이 일주일 동안만 살 수 있다면 덧없게 사치스러운 시간을 보내지도, 뒤늦은 후회를 하지도 못하겠지.

더할 나위 없이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녀석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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