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65화 (65/258)

# 65화 냉수가 미지근하다 (2)

4일,

부모가 새끼를 돌보는 시간이었다. 아이스 독은 일주일의 삶조차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중 하루는 새끼들을 위해 양보해야 했으니.

5일, 새끼들이 독립할 만큼 크자, 원장님이 니플헤임이라는 세계로 돌려보냈다. 원래 새끼들은 부모의 죽음을 지켜보나, 마물원에서 키울 마물은 아니었으므로 여기서 끝을 내야 했다.

5일째엔 내게 애교를 피우던 녀석들이 점잖게 굴었다.

가끔씩 애절한 눈빛으로 날 올려다볼 뿐이다. 난 녀석들의 눈빛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그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6일째 되던 날에,

아이스 독들은 쓰러졌다.

난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마주 봤다. 녀석들의 말을 들었다. 녀석들은 내게 사랑을 말하고 있었다.

7일, 늦은 밤.

네 마리의 아이스 독들은 숨을 거뒀다. 품에 안은 녀석들을 쉽게 놓아줄 수가 없었다. 단지 일주일,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은 녀석들의 생애였고, 난 녀석들의 생애를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했다.

“다정 씨.”

사실 누군가 말려 줬으면 했다.

원장님이 말리지 않았다면 난 계속 녀석들을 안고 있었을 테니까.

이 허무함.

공황 장애가 올 것 같다.

내가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이만큼 아플 줄 알았으면 차라리 그때 놓아줬을 텐데.

아이스 독들을 묻었다.

녀석들이 좋아하던 설원에 직접 삽으로 눈을 파고 묻어 줬다.

그 뒤,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멀뚱히 서 있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서 있으니 자꾸만 생각나서 무작정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얼어붙은 호숫가에 도착했다. 미친 것처럼 달려가 얼음을 깨고 머리를 파묻었다.

얼음물이다.

호수가 얼 만큼 시리다.

하지만 나에게는 전혀 차갑지 않았다.

생각보다, 상상보다 상실감은 고통스러웠다. 머리통이 이대로 얼어붙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지끈거리는 두통이 멎을 텐데.

하지만 아무리 차가운 냉수도 내겐 미지근했다.

“망할.”

숨이 막혀 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티 없이 맑은 물에 내 얼굴이 비추어 보였다.

‘머리가 하얗게 샜어.’

머리카락의 일부가 하얗게 셌다.

노화로 인해 생겨난 흰머리가 아닌, 마치 백설처럼 하얗다.

녀석들의 머리털처럼.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흔적이다. 녀석들이 남긴 흔적이었다. 원장님이 말했던 것처럼 녀석들은 내게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상실감은 채워지게 되었다. 기이하다. 단지 죽은 녀석들을 회상할 수 있는 작은 기념만으로도 허무한 마음이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물원의 관리실에 돌아온 난 원장님에게 말하고 삼 일의 휴가를 받았다. 난 하루 동안 쉬고 싶다고 말했으나, 그녀는 이틀을 더 보태어 유급 휴가를 보내 줬다.

‘하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이드미러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이 보였다.

검은 머리의 일부가 하얗게 센 머리. 마치 90년대 가수들처럼 하얀색 브릿지를 한 모양새가 되었다.

하얀 머리는 검은 머리로 가리면 가려질 만큼 적었으나 굳이 가리지 않았다.

그 후로 가끔씩 ‘머리스타일이 독특하시네요.’ 따위의 말을 듣게 되었지만, 난 웃어넘기고 말았다.

누군가가 내게 잠시 머물다 간 흔적이라고 시시콜콜 말해 줄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

휴가 때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며 TV를 봤다. 여전히 TV 프로그램은 ‘기괴한 마물 특집!’이라든가, ‘능력자 쇼쇼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유행이었다.

“오랜만에 볼까.”

능력자 쇼쇼쇼를 틀었다.

예전에 자주 보던 프로그램이었지.

능력자 쇼쇼쇼는 몇 년 동안 인기를 누리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예전엔 TV에 노래를 잘 부르거나 춤을 잘 추는 사람들이 나와 끼를 뽐냈으나, 전이 이후 그런 것들은 한물이 갔다.

사람이 손에서 불을 뿜고 얼음을 쏘는데, 노래가 중요하랴?

‘능력자 쇼쇼쇼!’는 능력자들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처음으로 방영된 쇼였다.

선점 효과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인기가 많다.

노골적인 제목처럼 능력자들을 소개하고 그들이 지닌 능력을 쇼의 형태로 보여 주는데, 여간 재밌는 게 아니다.

초기에는 폭력적,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방송 위원회의 제제가 많이 있었다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은 뭐, 세상이 변하여 오히려 방송사에서 간판 프로그램으로 밀어주고 있다.

나도 마물원에 취직하여 바쁘게 살기 전에는 항상 챙겨 보던 프로그램이었다.

“오늘은 어떤 놈이 나와서 재롱을 피울까.”

대부분 시시한 능력자가 출연했으나, 가끔씩 대박 능력자들이 나오곤 했었다.

여기에 출연한 능력자들 중 몇몇은 국가의 교섭인이 되기도 했고, 유명 가십지가 매년 선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헌터 100랭커’에 포함되기도 했다.

나한테 가장 인상에 남았던 능력자는 이름도 요상한 강태풍인가, 뭐신가 하는 양반이다.

‘졸라 골 때리는 새끼였지.’

첫 출연에 자기가 가장 강한 주먹을 가졌다고 허풍을 치며, 그 당시 한국에서 가장 강한 힘을 지녔다고 평가받던 챔피언 복서를 찾아갔다.

전이 이후, 능력자들끼리 싸우는 스포츠가 성행했다. 그중 챔피언 출신들은 홀로 민간인 백 명을 상대할 수 있다 하여 일당백(一當百)이라 불렀다.

문제는 그 후 발생했다.

그가 쪽만 당했으면 그저 그런 해프닝으로 끝났겠지.

하지만 쇼맨십으로 여겨질 만큼 기가 막힌 도발로 챔피언과 싸우는 것에 성공한 그는, 그야말로 타이슨의 데뷔전처럼 압도적으로 헌터를 짓뭉개 버렸다.

비록 안전 장구를 다 착용하고 스포츠처럼 열린 가벼운 대결이었으나, 신예가 고수를 꺾자 적잖은 파장이 일어났다.

그 후로도 그는 주먹질 하나로 소문을 듣고 찾아온 강한 능력자들을 차례대로 꺾었고, 그때 시청률은 50%까지 치솟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몇 번의 방송 후에 그는 자취를 감췄었지.

그 양반, 지금은 어디서 뭐 하는지 몰라.

“오늘도 여러분들을 찾아온 능력자 쇼쇼쇼! 의 진행자, 허응참입니다!”

마른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옛 기억을 떠올리고 있자, 광고가 끝나고 쇼가 시작되었다.

벌써 십 년째 MC를 맡고 있는 허응참의 맛깔 나는 진행과 함께 첫 번째 능력자가 소개된다.

“당신의~ 능력은?”

두둥-!

예스러운 효과음,

저 맛에 보는 거지.

출연자는 남자였다.

마르고, 더벅머리에, 인상이 흐릿한 20대의 남자.

주춤주춤 어색한 몸짓으로 무대 위로 오른다.

짝-!

방청객들의 박수 소리가 심히 짧다. 나처럼 별 기대를 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마이크 앞에 서서 말했다.

생긴 것과 달리 목소리는 은근히 좋았다. 또렷하고 큰 게, 발성이 좋네.

“전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오호! 어떤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거죠? 설마 평범한 소리는 아닐 테죠? 저주파? 고주파? 아니면 혹시… 엄마의 잔소리?”

허응참 씨의 맛깔 나는 진행!

젠장, 시청률 저하의 원인은 분명 저 MC 탓일 거야.

시시껄렁한 소리에도 출연자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우직하게 대답했다.

“마물들의 목소리를요.”

아마 방청객들이 터트린 감탄사는 나만큼 놀라서 내뱉은 게 아닐 것이다.

난 씹던 오징어를 뱉고 소파에서 일어나 앉았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했지?

“오호호! 마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요? 자고로 마물이라 하면은!”

허응참 씨가 진행은 이상해도 어떤 출연자가 프로그램에 대박을 가져다줄지는 잘 아는 것 같았다.

곧바로 우리에 갇힌 마물들이 무대에 오른다.

호랑이의 모습을 닮았으나 눈이 네 개가 달린 네 눈박이 호랑이.

땅을 걸어 다니는 다리 달린 물고기 각지어 등.

모두 전이 당시, 인간에게 많은 피해를 줬던 유해 마물이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자세를 넘어, 난 깊은 관심을 가진 채 TV를 지켜봤다.

어수룩해 보이던 출연자는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흉포한 마물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그래, 내가 교감을 하는 모양새와 비슷했다. TV 안에 마물들의 목소리가 내게 들릴 리가 없다.

하지만 저 모습은 정말 교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하이라이트는,

보통 사람들에겐 지루하기만 한 ‘교감’이 끝난 후였다.

드르륵-!

우리가 열린다.

흉포한 마물들이 풀려나와 무대로 뛰쳐나간다.

방청객들이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다가가더니.

“오호호, 대단합니다!”

녀석들을 안았다.

“마물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 능력이라니! 이 허응참, 장담하건대! 이 프로, 십 년 MC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요상하고도 대단한 능력입니다!”

프로그램이 끝나기 전까지 그는 마물들과 사이좋게 안고 있었다. 겉보기엔, 너무 화목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소개가 끝났을 때였다.

마물들은 다시 우리에 갇혔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마물들과 부둥켜안고 친구처럼 지내던 그는 퇴장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우리를 뒤돌아보지 않았다.

나로선,

아니 나라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친구라며?’

우리에 갇힌 마물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교감을 하지 않아도 녀석들이 무서워하는 게 분명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저런 상태로 놔둘 수 있는 거지?

프로그램이 끝나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들어가 봤다.

오랜만에 등장한 핫한 능력자에 벌써부터 화제가 되고 있었다.

기사까지 났군.

┗ 저거 다 주작 같은데요? 아니, 마물하고 대화를 나눴다믄서 ㅋㅋ 왜 우리에 다시 갇히게 만듦? 마물들 무서워하는 거 안 보임?

난 소심하게 댓글을 달았다.

그러자 곧바로 댓글이 달렸다.

비추만 순식간에 6개다.

┗ 주작무새 극혐.

┗ 네가 어케 암? ㅅㅂ 네가 무슨 저 사람처럼 마물들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음? 하여튼 방구석 좇문가들 ㅉㅉ

응, 들을 수 있어.

대화도 나눌 수 있는데?

젠장.

인터넷에서 싸우는 건 낭비다.

난 화를 꾹꾹 참으며 생각했다.

마물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놈,

언젠가 실제로 꼭 한번 만나 봤으면 좋겠구먼.

*

다음 날,

휴가가 끝나, 출근을 했다.

관리실에는 원장님이 있었다.

그녀는 내가 오길 기다렸는지 인사를 하자마자 말을 이어 나갔다.

“다정 씨, 능력자 쇼쇼쇼라는 프로그램 아시나요?”

“얼레? 원장님도 그 프로그램 보세요?”

“즐겨 봐요.”

드래곤이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니 의외인데. 어제 방영된 분량을 봤냐고 묻자 봤다고 대답했다.

“어때요, 흥미롭지 않나요?”

원장님이 물어본 이유가 있었다.

마물의 소리를 듣는다는 구라쟁이 놈, 만에 하나를 가정하여 정말 그 능력이 진짜라면 마물원에 필요한 인재겠지. 그렇게 되면 내가 가진 능력이 유일무이한 게 아니라는 게 된다.

“어쩌면 다정 씨 후임이 될지도 몰라요.”

나는 노골적으로 표정을 구기며 대답했다.

“그놈, 구라 같던데요.”

마물원의 직원은 아직까지 나밖에 없었다. 원장님은 내가 입사했을 때부터 직원을 여러 명 둘 생각이었다. 단지 ‘드래곤’인 자신의 성에 차는 인재들이 없었을 뿐이라고 했지. 음, 다르게 말하면 내가 드래곤에 성에 차는 인재라는 말이 되기도 하는 건가?

내 부정적인 대답에 원장님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럼 그의 능력이 진짜인지 알아보기 위해 당장 만나러 가 볼까요?”

으잉?

어제 놈의 면상을 직접 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좋다.

다른 사람의 눈은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인다. 애초에 내 능력이 그거잖아?

“해리 후디니라도 된 것처럼 확실하게 놈을 조져 드리겠습니다.”

가짜 영매와 초능력자를 잡고 다녔다는 초대 마술사처럼 확실하게 파헤쳐 주지.

“아니, 조지지는 마시고 그냥 확인만…….”

원장님의 대답에 머쓱해졌다.

내가 너무 나댄 건가?

하지만 ‘나와 똑같은’ 능력을 지닌 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열이 받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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