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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71화 (71/258)

# 71화 달려라 (1)

거울을 보던 난 고개를 추켜올렸다. 턱이 시꺼멓다. 수염이 턱 라인을 따라 촘촘히도 나 있다.

가만히 바라보다 까끌까끌한 턱수염을 벅벅 긁었다.

수염이 많이 자랐다. 난 일부러 손바닥으로 볼펜 심보다 좀 더 긴 털들을 문질렀다. 따가움과 간지러움 사이의 묘한 감각이다.

좀 변태 같긴 해도 이 감촉이 너무 좋다. 하지만 단지 이 느낌을 위해 수염을 기르는 건 아니었다. 그냥 귀찮아서 안 깎았다.

‘마물원에선 혼자 일하는 것과 다름없으니.’

마물원의 직원은 나밖에 없다.

몇 달 동안은 아침마다 면도도 하고 멋도 부렸지만, 세우던 리젠트 머리는 이젠 더벅머리 수준으로 놔두었다. 면도도 이 주일에 한 번, 도무지 봐줄 수 없을 때가 되고 나서야 깎았다. 애초에 나라는 사람이 그렇다. 자기 관리를 즐기는 남자가 아니었다. 많은 돈을 벌어도 결국 본성의 품격은 똑같구나.

이 일은 사회적 교류가 거의 없는 직업이다. 원장님은 ‘사회적 교류’라고 칭하기엔 너무 높은 지위였고, 요즘 들어 마물원에 출근도 잘 안 하신다. 일주일에 한 번 얼굴을 볼까 말까 하다.

게다가 가끔씩 겪는 사회적 교류도 너무 극명하게 나뉜다. 특별한 임무를 받으면 이종족의 공주나 여왕을 만나질 않나, 악행을 일삼는 악인들과 서로 머리를 깨부수질 않나.

그렇다고 내가 좀 더 평범한 교류를 원하는 건 아니다. 사실 고아원 시절에서부터 내 삶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전이’ 탓으로 돌리진 않겠다. 가족도 없고 친한 친구도 없다는 건 분명 전이 전의 지구였더라도 이상한 ‘놈’이니까.

어쨌든 난 또다시 시작된 단조롭고 지루한 날들 속에서, 특별한 사회적 교류를 기다리고 있었다.

헌터를 만나서 지지고 볶든, 이계인을 만나 믿지 못할 경험을 하거나, 엄청난 마물들을 만나든, 턱수염을 깎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예전에 내가 꿈꾸던 삶은 지금처럼 단조로움으로 가득한 삶이었다. 돈도 많이 벌고,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고, 안전하고, 럭셔리 슈퍼카에다가, 완벽한 삶이 아니던가?

하지만 최근 들어 점점 바뀌고 있다. 적응이라고 해야 할지, 새로운 경험에 의해 개안되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스포츠로 예를 들자면 처음부터 스카이다이빙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자는 없을 것이다.

처음엔 자전거같이 가벼운 스포츠로 시작했다가 재미를 붙여 가며, 좀 더 자극적이고 대단한 걸 찾다 보니 10,000m 상공에서 활짝 웃으며 다이빙을 할 수 있는 거겠지.

그렇다.

나도 비유하자면 지금 10,000m 상공에서 활짝 웃으며 떨어질 만큼 자극적인 일에 적응했다는 것이다.

평범하고 지루한 행복들로 만족하지 못하는 몸이 되어 버린 걸까?

“일단 깎자.”

아침,

출근 전에 거울을 보던 난 턱수염 하나만으로 별의별 망상을 했다. 이 수염을 깎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는데 자아 가치의 영역까지 갔다 온 것이다.

결국 귀찮더라도 깎고자 생각했다.

수염을 제대로 깎고 마물원에 출근했을 때였다.

이런저런 일로 바빴던 원장님이 관리실에 있었다. 그것도 손에 서류 뭉치를 들고 날 기다리며 말이다.

“오랜만입니다, 원장님.”

“늘 고생하시네요, 다정 씨. 자, 부탁드릴 게 있어요.”

‘깎길 잘했어.’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수염을 깎자마자 고대하던 ‘사건’이 일어났다. 난 원장님이 건네는 서류 뭉치를 받아서 확인했다.

‘스위프트 덕에 대한 보고서?’

“이게 어떤 일이죠?”

“마물 경마에 대해 조사해 주세요.”

“경마요?”

원장님의 말에 버릇처럼 되묻고 말았다. 경마라니? 끄덕이는 그녀의 고개를 보며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의외인데?’

마물 경마, 마물들의 경주 대회. 경마와 비슷하다. 물론 ‘경마’라고 해도 말(馬)은 아니지만 편의상 그냥 경마라고 부른다.

마물 경마, 경주는 말 대신 마물을 이용한 경기이다. 말보다 훨씬 빠른 마물들이라 보는 맛도 경마보다 뛰어나고 판돈도 훨씬 크다.

게다가 마물은 동물들에 비하여 ‘보호’ 개념이 없기 때문에 보다 자극적인 경기가 가능하다.

“장소와 시간, 위조 자격증과 이력서까지 모두 서류로 정리해 놨어요. 다정 씨는 라이더로서 몇 주 동안 경마장에서 일하면서 조사해 주세요. 특히 경마로 참가하는 ‘스위프트 덕’들이랑 세밀한 대화를 나누면서요.”

원장님은 내 교감의 힘으로 스위프트 덕, 경마에서 말을 대신하는 마물에 대해서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나 난 눈썹을 찌푸렸다. 이상하다. 파괴나 습격도 아니고 조사만 해 달라니?

“진짜요? 원장님이라면 경마 업자와 시설 같은 것들 다 때려 부술 줄 알았는데요.”

그래, 불법 경매나 공장 등을 생각해 보면 경마도 그녀가 용납 못하는 시설 중에 하나일 것이다.

조사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무너트릴 생각이신가?

원장님은 내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주머니에서 마물 매뉴얼을 꺼내 내게 보여 줬는데 [스위프트 덕]은 아직 정보 미입력 마물이었다.

“온갖 차원에서 모인 마물들은 때론 생물의 보편적인 상식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죠. 스위프트 덕도 그런 점에서 기이하기 짝이 없는 녀석들이에요.”

원장님은 경마 마물, 스위프트 덕에 대해 설명을 했다. 아주 이상한 본능을 가진 녀석이었다.

“오로지 스피드를 위해 살아간다고요? 폭주족이랍니까? 도미닉 토레토(*분노의 질주 주인공)가 좋아하겠네.”

원장님은 피식 웃었다.

그녀는 드래곤이지만 대중문화에 익숙했다. 내 농담이 자주 통해서 좋았다. 그녀는 내 농담을 받으며 이어서 말했다.

“빈 디젤보다 더한 놈들이죠. 녀석들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서로 ‘달리기’ 실력으로 경쟁해요. 가장 빠른 스위프트 덕은 번식과 먹이를 독차지하죠.”

마물은 마물이야,

전부가 올림픽 육상 선수라니.

“사실 녀석들이 처음 지구에 등장했을 땐 골칫덩어리에 지나지 않았어요.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인간들의 터전을 엉망으로 만들고, 번식력도 강하고, 생태 범위도 넓어서 포획하기도 난해하여, 유해 마물로 지정되기도 했죠, 하지만…….”

원장님이 내게 조사를 부탁한 목적을 말했다.

“인간들은 이러한 스위프트 덕의 습성을 돈벌이로 이용하기 시작했고, 몇 년 동안 넓은 사업을 구축했어요. 대부분의 스위프트 덕들이 경주에 이용되며, 유해 마물이란 인식에서 벗어나게 되었죠. 전 그동안 방관하며 지켜봤답니다. 어쩌면 이 또한, 마물이 지구에 적응하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하고요. 그러니 다정 씨가 확실하게 알려 주세요. 과연 스위프트 덕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뜻밖의 소리를 들었다.

그동안 마물원은 마물에게 완벽한 환경을 제공했다. 하지만 원장님은 인간의 돈벌이로 인해 파생된 새로운 환경, 즉 인간에 의한 적응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인위적인 적응,

사실 전이 전에도 이러한, 인간에 의한 동물의 진화는 더러 있었다. 상아가 없도록 진화한 아프리카 코끼리, 쉬운 예로는 인간과 공존하는 ‘개’들.

‘마물에게도 적용이 되려나.’

하지만 동물과 마물은 큰 차이가 있다. 마물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이 문제다. 마물은 동물과 달리, ‘생명’ 취급을 받고 있지 않으니까.

“그게 가능할까요?”

원장님에게 물었다.

난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드래곤’인 그녀는 재밌는 의견을 들려줬다.

“지구의 인간들에겐 특이한 관념이 있더군요. 타종에게 행하는 전관예우, 은퇴한 군견이나 경주마들처럼요. 이권이 얽혔다면 스위프트 덕들은 오히려 야생에서보다 지금이 더 나을지도 몰라요. 유해 마물로 지정되면 결국 멸종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난 부정적이었다.

원장님도 ‘신에 가까운’ 드래곤이긴 하지만 신은 아니다.

아무리 본성이 그렇다고 한들, 인간들의 욕망이 뒤엉킨 곳에서 경주마로 사는 게 과연 자연 적응보다 나은 게 있을까?

젠장, 생각할수록 복잡한 문제다.

포켓몬스터의 몬스터 볼 안에 사는 포켓몬들이 행복할지 누가 알겠어?

‘아니, 잠깐. 나라면 알잖아?’

깨달음에 찌푸린 눈썹이 펴지자 원장님이 슬며시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제 알겠죠? 난 다정 씨가 정말 자랑스러워요. 드래곤인 내가 몇 년 동안 방관하던 문제를 당장 해결해 줄 수 있는 그 놀라운 힘!”

그러더니 내 어깨를 조물조물 만지기 시작했다.

“알아내 주세요. 이대로 놔둬도 좋을지, 이상한 점은 없는지, 만약 스위프트 덕들이 괴로워한다면 경마는 폐지돼야겠죠.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거라면 오만스럽게…….”

활짝 핀 장미처럼 화사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주무르던 그녀는 순간 말을 멈추었다.

그녀의 스킨십에 멍하니 있던 난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원장님?”

“…그럴 땐 나서지 않을 거예요. 다른 드래곤들처럼 오만은 부리지 않을 거니까.”

그녀는 내게 3주간의 출장을 명령하며 원장실로 돌아갔다. 난 머리를 긁적이며 뒷모습만 바라봤다.

그녀가 했던 말,

다른 드래곤들처럼 오만스럽지 않게.

생각해 보면, 그녀는 다른 드래곤과 참 다르다.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기에 때론 그 힘에 자부심도 보이지만, 적어도 오만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으니까.

마음에 안 든다고 자유의 여신상에 메이드복을 입혀 버린 어느 드래곤과는 확실히 다르지.

‘뭔가 사정이 있나 보군.’

그렇다고 내 알 바는 아니지.

난 어깨를 으쓱하고 서류를 가방에 챙겼다. 세계적으로 열리는 마물 경주 대회, 때마침 다음 마물 경마가 서울에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난 위조 신분증을 확인했다. 가짜 신분에서의 난 꽤 저명한 스위프트 덕 조련사이자 은퇴한 기수(騎手)였다.

아무런 힘이 없다면 난감한 신분이나 별문제는 없겠지. 어느 점에서 난 배우지 않아도 뭐, 최강 최고의 기수가 아닌가?

이틀 뒤부터 경기도 경주 사무소에 기수로 출근하기로 되어 있다.

그전까지 난 마물 경주에 대해 찾아보며 지식을 쌓고 준비를 했다.

*

이틀 뒤, 람보르를 타고 경기도 마물 경주 사무소로 향했다.

경마장은 예전에 한번 눌러앉다시피 진득하게 다닌 적이 있었다.

내 힘을 이용한 첫 번째 돈벌이였었지. 비록 어깨 형님들하고 엮이는 바람에 끝이 안 좋았지만, 혼자 저배당이든 고배당이든 다 휩쓸어 먹었다.

하지만 두 번 다신 경험하고 싶진 않다. 어깨 형님들의 주먹보다도 짜증 나는 게 말들의 속삭임이었으니까.

원장님의 부탁을 들었을 때 부정적으로 생각한 것도 경마장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말들은 달리길 좋아하지만, 경마는 싫어했어.

“저긴가?”

옛 생각을 하며 외곽 도로를 따라 달리던 난 멀리 보이는 거대한 건물에 시선을 빼앗겼다.

“워우, 사업이 크다곤 들었지만 장난 아닌데?”

경주 사무소는 서울 외곽, 드넓은 개활지에 세워진 건물이었다.

단순히 경마장을 생각했지만 규모부터가 달랐다. 축구장 정돈 가볍게 씹어 먹겠네.

더 놀라운 건 이곳은 단지 사무소일 뿐이며, 이 넓은 시설이 모두 스위프트 덕들의 마구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본격적인 경주는 이곳에서 열리지 않는다. 경기장은 따로 있다. 스위프트 덕들의 경주는 단지 달리기 위한 경기가 아니다. 경마에 비해 잔혹하기까지 하다. 험난한 지형지물과 장애물이 도사리는 ‘이계 비경’에서 경기가 열리니까 말이다.

한국에서 열리는 이번 경기도 인천 앞바다에 생겨난 이계의 섬을 무대로 한다고 들었다.

주차장엔 차가 꽤 보였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사업 관계자, 혹은 라이더들의 것인가 보다.

차를 정차하고 서류를 꺼냈다.

“이름과 나이는 같고, 원장님도 참, 바르셀로나 유학파 출신이라니. 에스파냐어를 할 일은 없겠지?”

위조 신분을 숙지하고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원장님이 준비한 ‘스위프트 덕 전용 라이더 옷’도 챙겼다.

사무실로 가는데 많은 외국인들이 보였다. 스위프트 덕 경주는 전이 이후, 꽤 핫한 스포츠라고 한다. 특히 유럽 쪽이 강세라고 하더니, 금발 벽안들이 많이 보이는구먼.

특이하게도 이종족도 몇 명 보였다. 스위프트 덕 경주는 이종족 참여 제한이 없는 것 같았다.

인간들은 이종족들의 스포츠 참여를 제한했다. 마치 옛날 한국의 프로 농구팀이 외국인 용병을 제한한 것처럼 말이다. 애초에 구기 스포츠든 격투 스포츠든 간에 능력자가 아니고서야 상대가 되질 않으니.

“엄청 크네.”

마물 경주 사무소가 마구간이긴 하지만 말들을 기르는 곳처럼 개방된 농장은 아니었다.

마치 야구장처럼 거대한 돔 형태의 건물 아래에 입구들은 철저한 보안으로 지켜지고 있었고, 사무실은 바깥 외벽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마 건물 안이 스위프트 덕들이 지내는 곳이겠지. 말과 비교할 수 없는 몸값들인지라 이처럼 보호되고 있는 것 같다.

보안 요원들이 지키고 있는 건물 안쪽과 달리 외벽에 딸린 사무실은 개방되어 있었다.

사무실로 들어가서 접수를 하고 응접실에서 기다리자 얼마 후, 미리 연락해 둔 관계자가 문을 열고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정다정 기수님 맞으시죠? 고려 ENT의 김명준 팀장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어제 보낸 출전서는 받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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