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달려라 (2)
간단한 인사를 나누며 명함을 받았다. 그는 이번 경기를 도맡아 관리하는 고려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의 프로젝트 팀장이었다.
40대 중반의 나이, 머리가 벗겨질라 말라 하는 평범한 샐러리맨인 김명준 팀장, 더운 여름철 날씨 탓에 대화를 나누면서도 연신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는다.
‘그러고 보니 이 규모의 사무실에 에어컨이 안 나오네?’
마물들과 교감한 ‘흔적’으로 웬만큼 더움과 추위는 견딜 수 있어서 몰랐다. 이곳, 응접실이긴 하지만 한 여름에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
“저희 회사가 급히 정다정 기수님을 스카우트한 이유는…….”
땀을 뻘뻘 흘리는 그가 불쌍해서 말을 끊으며 물어봤다. 콧잔등에 맺힌 땀 좀 보라지.
“여긴 에어컨이 안 나옵니까? 전 괜찮은데 팀장님이 조금 힘들어 보이시는데.”
그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어우, 저도 괜찮습니다. 이곳 냉방은 스위프트 덕들 때문에 제한되어서요. 익숙해서 참을 만합니다.”
맨들맨들한 머리에 맺힌 땀방울들이 주르륵 지성 피부를 타고 흘러내린다. 손님을 위한 샐러리맨의 눈물겨운 거짓말이다.
물론, 정말 손님을 위했다면 에어컨 정돈 빵빵하게 틀어 놓지 그랬어.
난 다시 한 번 물었다.
“에어컨이 하나도 안 나와요?”
“큰 회의실 쪽은 나오는데… 그럼 거기로 가실까요?”
난 어깨를 으쓱하며 알았다고 했다. 팀장은 내심 내 제안이 반가운지 활짝 웃었다.
‘냉방비를 아끼는 건가?’
그를 따라 회의실까지 걸으며 생각했다. 스위프트 덕들은 더위를 많이 타는 녀석들이다. 팀장의 말론 사무실의 냉방을 제한한 게 마물들 탓이랬다.
봐야 알겠지만 마구간이 시원하다면, 뭐 나름 좋은 시설 같기도 하다.
넓은 회의실, 한 대의 스탠드 에어컨 앞에 앉아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이력서와 소개장도 모두 받아 봤습니다. 외국에서 주로 활동하셨다면서요? 수상 이력이 대단하십니다.”
“뭘요. 대단할 것까지야. 하하, 물론 스페인 경주에서 우승하던 땐 제가 좀 대단하긴 했죠.”
팀장의 말에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난 유학파 엘리트 기수 흉내를 냈다. 다행히 그는 잘 속아 넘어가는 것 같았다.
“전화로도 미리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회사에서 급히 다정님을 스카우트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번 경기가 처음인 어린 스위프트 덕이 있는데 놈이 워낙 말썽인지라… 젊은 나이에 은퇴하셨지만 실력은 여전하다고 들었습니다. 녀석을 첫 경기 전까지 길들여 주십시오.”
다 알고 있으나 짐짓 모르는 척 되물어봤다.
“다른 조련사들은 없나요?”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지 팀장은 이제 더 이상 땀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습관인 듯 손수건을 들어 턱 밑을 닦아 내렸다.
“그게 베테랑 조련사와 라이더들도 놈을 감당하지 못하는지라… 물론 잘 아시겠지만 스위프트 덕들이 ‘마물답게’ 어디 웬만큼 기이하답니까? 특히 이놈은 하도 뛰어다니고 싶어 해서 기수들이 다루질 못합니다. 그래서 힘들게 다정 기수님을 모셔온 거지요.”
그의 말에 씩 웃으며 말했다.
유학파 엘리트 라이더라면 무릇 잘난 체 정도는 기본 옵션이 아니겠는가?
“잘 생각하셨습니다. 제가 온 이상 그 어떤 스위프트 덕이라도 얌전해질 겁니다.”
난 자신 있게 맡겨 달라고 말했다. 사실 진짜 자신 있기도 했다. 내 힘을 이럴 때 쓰지, 언제 쓰겠어?
팀장은 내 태도가 퍽이나 믿음직스러웠는지 잘 부탁한다고 고개를 꾸벅거렸다.
“지금 만나 보시겠습니까?”
“그러죠.”
팀장을 따라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는 관계자 전용 복도를 따라 거대한 건물로 날 안내했다. 경비들은 없었으나 보안 장치는 많았다.
그가 ID카드로 문을 여는 동안 난 CCTV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입모양으로 말했다.
[사. 실. 다. 구. 라. 야.]
입을 뻐금거리며 장난치는 사이 팀장이 문을 열었다. 난 다시 진지한 자세로 돌아왔다.
세 개의 문을 지나고 나서야 스위프트 덕들의 마구간이 나왔다. 첫인상은 ‘시원하다’ 그리고 ‘크다’였다. 과연 사무실 냉방까지 제한할 만큼 마구간 냉방 시설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었다. 꽤 쾌적하구먼.
규모도 상당했다.
“꽤 시설이 좋네요.”
팀장은 씩 웃으며 말했다.
겸손한 말투나 자부심이 있었다.
“저희 회사가 세계적으로도 규모만 본다면 3위 안엔 들어갈 겁니다. 어떤가요? 스페인의 시설에 비해도 좋은 편이지요?”
물론 스페인은 가 보지도 못했으나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훨씬 넓고 좋은 것 같습니다.”
마구간처럼 방이 나눠져 있었으나 스위프트 덕 기준 1인용이었다. 보통 마구간 넓이는 3m쯤 된다. 뛰어난 경주마쯤 되어야 10m 넓이의 방을 가진다.
하지만 이곳의 스위프트 덕들은 모두 30평쯤은 되는 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건물이 으리으리한 이유가 있었네.’
팀장에게 물었다.
“그래도 너무 넓은 것 아닌가요?”
그가 대답했다.
“스위프트 덕들은 활동량이 많지요. 경기가 자주 열리긴 하나 그 사이도 잘 버티지 못해요. 적어도 이 정도 규모는 돼야 녀석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며 생활할 수 있겠지요.”
“다른 회사도 본받았으면 하네요.”
“모두 이 정도 규모로 바뀌는 추세라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녀석들도 ‘마물이긴’ 하지만 동물과 가까워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편이 경주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이니까요.”
팀장의 말에 곰곰이 생각했다.
‘인위적인 적응.’
심지어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하는 것 또한 금전적 이득이 얽힌 이유였다. 하지만 난 오히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이권이 얽혀야 비로소 확실해지니까.
둘러보면서 귀를 활짝 열었다.
스위프트 덕들은 비교적 조용했다. 흡사 큰 경기를 앞둔 스포츠 선수와도 같다고 해야 하나?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라든가,
[달리고 싶어. 이번엔 최고가 될 거야.]
라고 말하며 전의를 불태운다.
직접 대화를 해 봐야 알겠지만 확실히 ‘갇혀 있는’ 마물과는 달랐다.
“이쪽입니다.”
쿵-!
쿵-!
내가 만나 볼 녀석이 있는 방은 멀리서부터 티가 났다. 다른 조용한 스위프트덕의 우리와는 달리 튼튼한 강철 문짝이 들썩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팀장은 녀석의 우리 앞에 서서 내게 경고했다.
“꽤 지치실 겁니다. 다른 조련사님들이 말하길, 보통 녀석들은 트랙을 서른 번쯤 돌면 만족하는데, 이 녀석은 그 두 배로도 만족하지 못한다더군요.”
“열정적인 녀석이네요.”
문을 들고 들어가자 30평 우리를 정신없이 오락가락 뛰어다니고 있는 녀석이 있었다.
“여기 ID카드랑 보안 비밀번호…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끝나고 사무실로 오시면 숙소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팀장이 떠나고 내가 자신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어도, 녀석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단지 트레이닝으로 보이는 뜀박질만 하면서 소리칠 뿐이다.
끼에엑-!
[가즈아!]
왜 다른 조련사들이 쩔쩔 멨는지 알 것 같다. 마물이 사나운 게 아니다. 그냥 조금 열정적인, 혹은…….
[가즈아! 달리즈아! 1등 먹즈아!]
‘지랄 맞은 녀석이네.’
원장님이 그랬지, 녀석들은 타고난 레이서들이라고.
확실히 그렇다. 마물을 마주하고 있다기보다 정말 데뷔를 앞둔 레이싱 선수라도 만난 것 같은 기분이다.
“안녕?”
신경 쓰지 않던 녀석이 날 본다.
그제야 뜀박질을 멈추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가왔다.
[뭐야? 너, 잘 뛰지도 못하는 불쌍한 녀석이, 우리말을 하네.]
‘불쌍하다고?’
난 어깨를 으쓱했다.
스위프트 덕들은 마나가 높은 마물인지 대화가 수월했다. 샐러맨더보다 상위 마물이라는 뜻이다.
[달리고 싶드아! 달리고 싶드아!]
하지만 생김새로 보면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금방 흥미를 잃고 다시 뜀박질을 시작한 녀석, 녀석은 한 번 발을 내디딜 때마다 5~6m쯤 이동하는 것 같다. 쌩쌩 지나가는 자동차처럼 바람도 느껴진다.
스위프트 덕들은 말 그대로 오리처럼 생겼다. 크기는 말과 비슷하다. 2m쯤 되는 몸길이로, 몸의 실루엣만 보자면 뚱뚱하고 다리 짧은 타조와도 같이 생겼다.
얼굴은 노란 주둥이와 멍청한 눈매, 오리 그 자체였다. 깃털의 색은 개체마다 달랐다. 녀석은 새하얀 밀가루 색이었다.
가장 특이한 점은 발바닥이었다.
발이 몸에 비해 엄청 넓고 컸다. 오리발과 달리 말굽이 있었으며, 거목의 밑동처럼 굵은 두 다리는 기수를 태우고도 쌩쌩 달릴 만큼 튼튼하고 안정적이었다.
전체적인 생김새는 쉽게 말해 오리가 어마어마하게 커진 것같이 생겼다. 하지만 이 좁은 곳에 워밍업으로 보여 준 뜀박질 실력은 오리를 넘어 그 어떤 동물하고도 비교할 수 없었다.
치타보다 더 빠르니 말 다했지.
스태미나도 마물답게 뛰어났다.
명마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고 하지만, 녀석들에겐 산책 수준이다.
미리 조사한 바에 의하면 평지뿐만 아니라 험난한 산지와 이계 비경도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으며, 사람하고도 친밀해서 군이나 헌터들이 스위프트 덕을 군견처럼 전략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달린다. 달린다. 달린다.]
하지만 내가 보는 녀석은 그냥 미친 오리 같았다. 원장님 말대로 달리기에 열정적인 본능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녀석은 너무 지나쳤다.
“야.”
불러도 무시한다.
“이봐. 야. 오리. 야.”
참을성 있게 계속 불렀다.
마음 같아선 알짱거리는 녀석을 쥐어 패고 싶지만 목적을 상기하며 간신히 참았다.
[으응?]
일곱 번을 부르자 그제야 대답한다.
“친구, 대화 좀 나눠 보자고.”
난 녀석을 진정시키며 대화를 요청했다.
[내가 왜 네 친구야?]
“…물론 친구는 아니지만 앞으로 친구가 될 가능성이 있잖아.”
[아닌데? 나 인간하고 친구 안 먹는데?]
진정하자.
녀석에 대해서 알아봐야 해.
“그래. 미안하다. 너 이곳에 들어온 진 얼마쯤 됐어?”
[아빠, 엄마하고 헤어진 지는 한 달.]
“외롭진 않냐? 힘든 건 없고?”
[왜 힘들어? 드디어 내 가치를 증명할 기회를 얻었는데! 달리고 싶드아!]
일단 녀석은 지금 삶에 만족하는 것 같다.
그래도 세밀하게 물어보라는 원장님의 지시가 있었다. 난 머리를 긁적이다가 다시 물어봤다.
“인간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돌아온 대답,
난 결코 예상하지 못했다.
그냥 괴롭힌다고 하면 원장님과 같이 경마를 폐쇄시켰을 테고, 잘해 준다고 하면, 정말 잘해 주는지 3주간 알아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이렇게 말했다.
[내 시종들이지.]
얼이 빠져 멍청하게 되묻고 말았다.
“뭐?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우릴 위해 모든 걸 제공해 주니, 시종들이지! 인간들은 참 귀여워. 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들이 편하게 달리도록 모든 걸 다 해 줘! 신나고 재밌는 달릴 곳을 주면서 마음껏 달리라고 해! 거긴 천적도 없어, 우리들만의 거친 경쟁만이 있을 뿐. 우리가 굶주리지 않도록 먹이도 구해 주고, 달리기 편하게 몸도 관리해 줘. 그러니 인간들은 우리들의 시종들이야. 내 등을 내어 줄 이유는 충분하다는 거지.]
“네 말은 즉, 인간들은 수발을 드는 시종에 불과하다는 거지?”
[응. 아! 아니, 엄마가 말했지. 인간들은 우리들의 열광적인 팬이라고 했나? 그래, 난 인간들이 좋아.]
뜻밖의 관점이다.
하지만 녀석들에게서 익숙함을 느꼈다. 어디선가 저런 생물을 본 적 있는 것 같았는데.
“그렇구나.”
생각났다.
녀석들은 고양이다.
조금 멍청한 것도 똑같다.
질주 본능을 고양이의 사냥 본능과 치환하면 얼추 비슷하다.
인간들을 집사라고 생각하는 것까지!
[역시 여긴 지겨워. 이봐. 시종, 날 달리게 해 줘.]
“나중에 보자.”
달리자고 보채는 녀석을 뒤로하고 방에서 나왔다.
그 뒤로 다른 스위프트 덕들 하고도 대화를 나눠 봤다. 대부분 녀석과 비슷한 생각이었다.
조금 힘들어하는 녀석도 있으나 다른 의미였다. 스스로 경기에 대한 부진을 탓할 뿐이었으니.
“마물들도 가능하구나.”
애완견, 애완묘처럼,
뜻밖의 공존이라니.
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많을 것이다. 애완견이 인간들의 반려자라고 하더라도 유기견 등 많은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가?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그쯤은 원장님이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숙소를 배정받고 다시 녀석을 찾았다. 고민해 봤는데 역시 경험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마물 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