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77화 (77/258)

# 77화 달려라 (7)

고민했다.

당장 원장님에게 보고해서 경기장을 폐쇄할 수도 있다. 카르마 길드를 소탕하고 경기를 중단하는 게, 가장 좋은 판단이겠지.

하지만 지금 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열혈적인 기운이 몸을 휘감았기 때문이다.

저 녀석, 얼마나 준비했는데.

얼마나 기대했는데.

다른 스위프트덕도 간절히 원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난 마물원 직원이자 드래곤의 가디언이 아니다. 완전히 스위프트덕이자 녀석의 친구가 되어, 녀석에게 확고하게 말해 줬다.

“알았어. 어른들의 사정은 우승 후에 생각하자.”

왜냐면 나도 달리는 걸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결승까지 하루 전날, 카르마 길드의 검은 양복 빡빡이들이 숙소의 주변에서 자주, 많이 출몰했다.

아마 전날 있었던 사건 때문에 예민해진 것 같았다. 난 놈들이 지나갈 때마다 무표정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속은 화로 이글거렸다.

두고 보자.

결승만 끝나면 너네 다 뒤지는 거야.

절치부심하며 녀석을 다독이고 연습 트랙을 돌았다. 경기가 하루 전인데 트랙에 선수들은 없었다. 죄다 약발로 돌 모양이네.

비겁한 새끼들.

녀석과 난 홀로 트랙을 돌았다.

녀석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컨디션이었으나, 나는 미세한 차이를 알 수 있었다.

녀석. 말은 그렇게 하더니 잔뜩 긴장했어.

“걱정하지 마. 내가 우승시켜 줄 테니까.”

내 말에 녀석은 노란 주둥이를 푸르르 털며 대답했다.

[네가 우승시켜 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우승하는 거겠지!]

“그래. 우승하자.”

어떤 일이든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 그래서 노력을 하면 보상이 주어진다는 말.

솔직히 지금까진 헛된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리 생각한다.

50바퀴를 돌 동안 150바퀴를 돌았던 녀석이라면 충분히 보상 받을 만하다고.

*

결승전.

전과 다를 바 없는 경기 트랙과 한 번씩 경기를 치렀던 선수들.

하지만 풍기는 분위기와 압박감은 격이 달랐다. 도핑을 한 스위프트덕들은 약물을 과다 복용 한 보디빌더처럼 근육이 흉측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스멀스멀 풍기는 광기에 가까운 기백이 약물에 의한 고통마저 집어삼키는 듯했다.

‘스위프트덕만이 아니야.’

선수들의 상태도 심상치 않았다.

스위프트덕의 등 위에서 버티기 위해서 같이 도핑이라도 한 건가?

정상적인 스위프트덕과 선수는 우리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교감의 힘으로 내가 우위에 서 다른 이들이 불합리한 경기를 했다면, 지금은 내가 압도적으로 밀리는 경기를 해야 한다.

“젠장. 그만 좀 해.”

교감은 내 스스로 닫을 수 있는 문이 아니다. 귀를 막아도 들려온다. 약에 취한 스위프트덕들의 광기 어린 욕망들이 불쾌한 뙤약볕이 되어 날 쿡쿡 찔러 댄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냈다.

더위는 타지 않으나 절로 식은땀이 흘러나온다.

[괜찮아?]

그때 노란 부리가 내 팔을 살짝 깨물었다. 녀석이 내 불안감을 느끼고 위로해 준다. 지독한 뙤약볕 사이에서 녀석의 마음은 그것을 가려 주는 그늘이 되었다.

난 픽 웃어 버리고 굳은 눈빛으로 나를 걱정하는 녀석과 눈을 마주했다.

“1등, 가자.”

내가 굳건해질수록 녀석도 강해진다. 날 걱정하는 불안한 눈빛이 이내 나처럼 또렷해졌다.

[그래, 가즈아!]

빨간 깃발이 추켜올려진다.

신호탄을 쏘기 위해 총을 하늘에 겨눈다. 헬리 캠들이 하늘을 날아다닌다. 관중석에선 돈에 미친 자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탕-!

마침내 출발을 알리는 총성.

그와 동시에 거침없이 발을 뻗는 스위프트덕들.

그렇게 경기가 시작되었다.

*

지금까지 스타트에선 항상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그만큼 이 녀석은 다른 녀석보다 확실히 빠르다.

하지만 이번엔 초반 직선 트랙에서 놈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압도적으로 치고 나가는 놈들을 힘겹게 뒤따라갈 뿐이다. 간신히 따라잡았다 싶으면 믿지 못할 도약력으로 뛰어나갔다.

도핑의 차이는 예상보다 더 대단했다. 도약력, 스태미나, 속도까지. 약을 하지 않은 우리는 모든 게 밀렸다.

[열아홉 마리의 스위프트덕들이 경합하는 와중에, 아아! 저건 뭐죠? 강력한 우승 후보이자 이번 대회의 다크호스로 부상한 한국 대표가 압도적인 격차로 ‘꼴등’을 차지하고 있네요!]

[뭐, 예상한 바입니다. 다른 선수들이 지금까지 힘을 아껴 놓은 반면, 그는 매 경기 최선을 다했죠. 전략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망할 새끼들.”

대체 무슨 속셈인진 몰라도 트랙마다 설치된 카메라와 오디오에서 해설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말하는 짓거리를 보니 사실 다 한통속이었던 건가?

놈들의 꽁무니만 쫓아다니며 힘겹게 따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장애물, 칼날 선인장 지대가 나왔다.

이곳은 스위프트덕의 점프력을 시험하는 곳이다. 보통 크게 뛰어 두 개의 선인장을 뛰어넘지만, 도핑한 스위프트덕들은 달랐다.

“미친 새끼들. 떨어지면 뒤지는데도!”

선두의 스위프트덕들이 점프 한 번에 선인장 다섯 개를 뛰어넘는다. 그에 동조하며 다른 스위프트덕들도 모두 다섯 개씩을 뛰어넘었다.

분명 한계치에 가까운 아슬아슬한 높이.

혹시나 칼날 선인장 지대에서 라이더가 떨어진다면, 운이 좋아도 팔다리가 잘릴 것이다. 나쁘면 목이 댕강 잘리겠지.

[아아, 저런!]

[아일랜드 선수, 떨어지고 맙니다.]

아니나 다를까,

따라 하던 아일랜드 선수가 버티지 못하고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산 모양이지만 큰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친구! 나도 뛰어넘어야 돼! 아니면 못 따라갈 거야!]

“안 돼. 너무 위험해.”

칼날 선인장 지대를 앞두고 고민했다. 무리를 하다간 저 꼴이 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녀석의 말대로 이번 장애물에서 머뭇거리다간 따라가지 못한다.

평범한 방법으론 안 돼.

내가 왜 이 경기를 뛰고 있었지? 우승을 위해? 맞아.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 낸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그건 아니다.

반칙패든 뭐든 다 좆 까라지.

“친구, 내가 밟으라는 곳만 밟아.”

[엉?]

선인장 지대를 앞두고 녀석의 등을 밟고 올라섰다. 그리고 마나를 끌어모아 강력한 ‘마물의 힘’을 펼쳤다.

아라크네.

거미줄을 뿜어 대는 거미 마물.

녀석의 출산을 도와주다 내게 각인된 마물의 힘인 아라크네의 거미줄!

늘어난 마나로 인해 능숙하게 많은 양의 거미줄을 입으로 뿜어냈다.

[아니, 저 선수! 카메라, 뒤를 비추어 봐요!]

[저게 뭐죠? 아아, 마도구는 반입 불가일 텐데요? 어떻게 했죠?]

그리고 스파이더맨 뺨치는 솜씨로 칼날 선인장 사이를 거미줄로 엮여 연결시켰다.

진득한 거미줄이나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난 녀석에게 말해 그 부분을 밟게 했다.

ㅤㅌㅞㅅ-! ㅤㅌㅞㅅ-!

다른 스위프트덕들이 다섯 개를 넘는다고 하더라도 칼날 선인장 사이에선 도약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우리는 필요 없었다.

이미 모두 빠져나간 칼날 선인장 지대를 내가 만들어 낸 거미줄 다리를 타고 우아하게 지나갔다.

이제 뭐라 뭐라 지랄하는 해설진들의 목소리와 비난은 더 이상 내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다 엿이나 처먹어. 도핑이라는 반칙을 사용하는 놈들에게 맞서 난 내 힘을 사용할 거야.

선인장 지대를 일사천리로 통과하며 거리를 어느 정도 좁혔으나, 따라잡지는 못했다.

마찬가지로 간신히 꽁무니를 따라가다가, 두 번째 장애물 지대를 만나게 되었다.

용암지대.

이곳은 도핑 스위프트덕들도 어쩔 수 없었다.

떨어지면 완전한 죽음. 그렇기에 그 어느 장애물보다 만전을 기해야 하는 곳이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솟구치는 용암들을 피해 놈들은 조심스레 이동했다.

이 장애물만은 ‘속도’가 중요하지 않았다.

“왠지.”

달리던 난 무언가를 깨달았다.

하지만 너무 위험했다. 본능적인 감각으로 행하기엔 너무나 위험한 행동. 하지만.

“날 믿어 줘.”

[그래. 널 등에 태운 후로 난 언제나 널 믿었어.]

용암으로 달려 나갔다.

속도는 줄이지 않는다.

대신 난 몸을 숙여 녀석을 꽉 감싸 안았다.

[가즈아!]

녀석은 용맹하게도 용암지대로 몸을 던졌다.

쿠웅-!

그 순간 용암이 솟구치며 우리를 덮쳤다. 아무리 스위프트덕이 마물이라고 하더라도 용암은 못 버텨.

하지만 나라면.

내 힘이라면.

수많은 마물들과 교감하면서 어렴풋이 느꼈던 생각을 위험천만한 지금 상황에서 실행시켰다.

[아니, 저건 또 뭐죠?]

[저게 대체 무슨 마도구랍니까? 한국 경기 위원회에 따져 봐야 합니다!]

용암을 덮어썼다.

하지만 난 멀쩡했다.

그리고 녀석도 멀쩡했다.

샐러맨더인 포근이와의 교감으로 용암을 따스한 온천물로 느끼던 내 힘을 녀석에게 발휘하고 있었다.

나와 포근이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버틸 만큼!

[좋아, 달린다!]

깃털 끝이 살짝 탔으나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 나갔다. 수차례 용암이 솟구쳤으나 내가 몸을 던져 모두 막아 줬다. 용암에 반쯤 잠긴 바위를 밟아 대며 용암지대를 통과했다.

끼이익!

[야호!]

“와하!”

마침내 용암지대에서 헤매는 선두 스위프트덕들을 제치고, 1등을 차지했다.

[반칙으로 차지한 1등, 또다시 이탈리아 선수에게 내주고 맙니다.]

[저 선수, 다음번엔 뭘 보여 줄 생각일까요?]

아쉽게도 그다음 장애물 코스에서 또다시 꼴등이 되고 말았다. 소닉 한 바퀴 구간은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어 온전히 스위프트덕의 힘으로 돌파해야 했기에, 놈들을 떨쳐 낼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녀석은 지금까지 달려왔던 모든 순간보다 지금이 가장 빠르다.

꼴등이 되었으나 처음보다 나았다. 여차하면 선두를 차지할 만큼 애매한 거리에서 따라가고 있었다.

“친구, 나만 믿고 달려. 끝까지.”

마지막 장애물 구간이 왔다.

결승선까지 연결된 돌다리.

그 아래엔 천 길 낭떠러지.

다리를 지나가야 하지만 길의 양옆에 설치된 바람 마법을 쏘아 대는 마도구 때문에 난감한 트랙이었다.

이곳은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며, 그 때문에 기수의 능력이 가장 발휘되는 구간이었다.

타이밍에 맞추어 달릴지 멈출지를 결정하는 건 기수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풀 파워로, 전력으로 달리라고만 말했다.

그래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따라잡지 못해.

날 굳건하게 믿어 주는 녀석은 내 말에 전력을 다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선두의 선수들이 타이밍을 재며 멈춘 사이, 저 선수 뭡니까? 뭐예요?]

[아아, 자살행위인가요?]

바람이 멈추길 기다리던 선수들을 제쳤다. 난 뒤를 돌아보며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탈리아의 렐리아 기수에게 말했다.

“말했지? 우승은 ‘우리’라고.”

앞을 봤다.

바람이 불어온다.

맹렬한 바람. 자연적인 바람도 아니고 과학으로 만들어 낸 것도 아닌 ‘마법’으로 만들어진 바람이다.

바람이긴 하나 마법,

바람에 담긴 마나가 느껴진다.

그러니 통할 거야.

난 주머니에서 브로치를 꺼냈다.

드래곤 모양의 브로치,

원장님의 선물이자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금속인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진 브로치다.

어떤 종족이 멸종마저 감내하며 차지하고자 했던 오리하르콘.

이 금속의 단 하나의 특별한 힘은 ‘마법’이라 불리는 종류의 힘을 차단할 수 있는 것이다.

난 브로치를 꾹 쥐곤 힘차게 달리는 스위프트덕에 달라붙었다.

떨어지면 천 길 낭떠러지.

하지만 믿기에 무섭지 않았다.

휘이이잉-!

태풍처럼 맹렬한 바람을 앞두고.

나와 녀석은 두려움 없이 뛰어들었다.

[으악!]

[진짜 뛰어들었어요!]

휘이이…….

바람이 멎는다.

[어? 뭐죠?]

[으잉?]

해설자들, 뭐가 ‘으잉?’이야.

해설 자격 미달이구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