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86화 (86/258)

# 86화 인어와 사이렌 (2)

인어들도 행동을 멈췄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마물과 이종족과 엮이면 해괴한 일투성이다. 나는 그나마 마물원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뭔지 모를 때는 일단 가만히 있는 게 최선임을 경험으로 깨달은 것이다.

소리는 점점 커졌고, 뚜렷해졌다.

이내 울음소리는 소프라노들의 합창처럼, 노랫소리같이 아름답게 변했다.

나는 노래의 시작점이 되는 곳을 응시했다. 바위틈에서부터 무언가가 모습을 비추었다. 그들은 새부리를 벌린 채 날 향해 울음소리 같은 노래를 부르며 나타났다.

바닷물 속에서 믿기지 않을, 노래를 부르는 존재들의 생김새는 이러했다. 인간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입 대신 새의 부리가 달렸으며, 몸은 까마귀와 닮은 새였다.

어디선가 본 듯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자 방금 지나온 해저 동굴에 조각되어 있던 마물임을 알아차렸다.

조각 그림에서는 인어와 인간의 전쟁 속에서 홀로 노래를 부르던 마물이었지. 실존하고 있던 마물이었나?

노래를 부르며 나타났지만 확실히 마물이었다. 녀석들에게서 ‘문’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난 방패를 내리고 총을 허리춤에 멨다. 마물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후부터 인어들이 삼지창을 버리고 조용해졌기 때문이다.

나도 잠자코 마물이 부르는 노래만을 들었다. 아름다웠다. 그 어떤 음악, 현대 가요는 물론이고 옛 클래식에게서조차 느껴 보지 못한 독특한 음률이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또한 슬프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으며, 잔뜩 성난 헤비메탈을 듣는 것처럼 방방 뜨다가, 슬픈 발라드를 듣는 것처럼 차분해지기도 했다.

좋은 음악에는 모든 감정이 담긴다더니 마치 마법과도 같은 음악이다.

“뭐야?”

하지만 그래서 뭐?

난 머리를 긁적이며 인어와 인면조를 바라봤다. 인면조들이 인어의 ‘편’이라는 건 알겠는데, 왜 내게 노래를 불러 주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창을 던지며 적대하더니 이젠 노래를 불러 주네? 어느 장단에 맞춰야 돼?

라라라~!

노래 부르며 다가오는 인면조들에게서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은 내 주변을 맴돌며 황홀한 노랫소리를 내었다.

나는 졸지에 오케스트라 무대의 중앙에 선 듯한 기분이 들었다.

녀석들의 호의가 느껴졌다.

마물들이 날 좋아하는 편이라는 건 마물원 일을 하며 깨달았지만 녀석들은 특히 유별났다. 첫 만남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침내 수십 마리의 인면조가 날 감쌌다. 인어와 나 사이를 녀석들이 가로막았고, 노래는 그 순간 끝이 났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 상황을 파악했다. 노래를 불러 주는 마물이라고? 박수라도 쳐 줘야 될까 싶던 그때였다.

[인어님들 무기를 내려놓으세요!]

[해치지 마시어요! 이분은 바다님이셔요!]

인면조들이 외쳤다.

기이한 일이었다. 분명 인어들과 어떤 연관이 있는 마물들이, 인어들로부터 날 지켜 줬다.

녀석들의 등 깃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교감의 힘은 ‘대화’가 아니다. 연결되었다면 속마음을 공유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마음을 감출 순 있어도 속이지는 못한다.

그래서 녀석들이 진심으로 어미가 새끼를 보호하듯 날 보호해 주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심히 당황스러웠다.

나도 당황했으나 더 당황한 건 인어들이었다. 인어들은 노래가 멈추자 삼지창을 다시 추켜올렸다가, 인면조들이 가로막자 어쩔 줄 몰라 했다.

묘한 대치가 이어질 때, 인어들 중 처음 만난 붉은 머리카락의 인어가 나서서 말했다.

아니, ‘노래’했다.

라라!

그러자 인면조들이 답가한다.

라라라~

[맞아요. 하지만 나쁜 존재는 아녜요.]

인어의 노래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인면조의 노래는 뚜렷하게 이해했다.

노래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이건 좀… 놀라운데.’

그 모습에 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처음이야. 나 말고도 마물과 저만큼 깊은 교감을 나누는 자들이 있었다니.

물론 내 수준은 아니더라도 분명 인어들과 인면조들은 어느 정도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었다.

완전히 알아듣지는 못하더라도 교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면조 마물의 이유 모를 호의에 상황은 요상하게 흘러갔다.

인면조는 인어들의 단순한 반려 마물이 아닌 듯했다. 녀석들의 만류에 인어들이 진심으로 설득을 당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래도 인어들은 쉽사리 적의를 잠재우지 못했다. 맹수처럼 사납고 들끓는 적대감이었다. 한동안 이 불필요한 대치가 이어질 것 같았다.

멈추는 방법은 있지.

인어들이 잠시 공격을 멈춘 그사이, 나는 품에서 상자를 꺼내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예상하건대 인어들은 인간을 극도로 싫어한다.

앞서 봤던 조각들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거라면, 또한 인어들이 이런 깊고 비밀스러운 바다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유추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인간은 자신들의 천적이자, 자신들을 죽일 사냥꾼이다. 그러니 죽기 전에 죽일 수밖에.

하지만 인어들이 인간과 어떤 관계를 가졌든 내 알 바는 아니었다. 나는 인간 정다정으로 온 게 아니니까.

마침내 ‘상자’가 열리고, 드래곤의 기운이 바다 속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며 뿜어져 나왔다. 원장님은 단지 ‘한 숨’ 정도만 넣어 놨다고 했으나, 나는 단지 기운이 분출되는 것만으로도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그리고 용의 기운이 뿜는 압박감은 나뿐만 아니라, 인어들에게도 전달되었다.

화르르!

기운은 곧바로 증발되었으나 충격은 커다랬다. 삼지창을 놓지 못하던 인어들도, 노래를 부르던 인면조들도 모두 꽁꽁 언 채로 굳었으니까.

“다시 소개할게요. 제 이름은 정다정, 마물원 소속 직원이자 드래곤의 가디언입니다.”

한국어로 말했으나 상관없다.

내 턱시도에는 용의 마법이 깃들어 있어 말에 담긴 의지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진작 그럴 것이지.”

인어들은 알아들은 것 같다.

붉은 머리 인어가 황급히 어딘가로 떠났고, 잠시 후 돌아올 땐 웬 문어 한 마리를 데리고 등장했다.

‘저것도 인어인가?’

문어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니 인어 같다. 하지만 생김새는 ‘인어공주’의 ‘바다마녀’와 비슷했다.

충격적인 비주얼만큼이나 그(그녀?)에게서는 다른 인어들보다 훨씬 강한 마나가 느껴졌다.

“가디언이시여.”

오!

물속에서 말하는 건 둘째 치고, 그는 한국말을 사용했다.

“무례를 범하여 죄송합니다. 아직 어린 것들이라 여유로운 판단을 하지 못할 뿐이니,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뚱뚱한 인어가 내게 고개를 숙이자, 방금 전까지 날 공격하던 다른 인어들도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빌었다.

이래서 명함 빨이 중요하다는 거다. 드래곤의 가디언. 이종족들에게는 직빵이라더니 과연 대단하네.

내 주변을 감싼 채 활기차게 돌아다니던 인면조들이 인어들에게로 돌아갔다.

난 어깨를 으쓱하며 녀석들에게 고맙다고 말해 줬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왜 날 지켜 줬는지 물어봐야지.

“딱딱한 분위기는 접어 두고 처음부터 시작하죠. 제 주인의 명으로, 인어님들에게 말씀드릴 게 있어 왔습니다.”

원장님을 주인으로 생각하지도, 평소에 그렇게 부르지도 않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 호칭이 알맞은 것 같았다.

내 말에 뚱뚱한 인어가 반응했다.

약간 싫어하는 기색,

그러나 거절하지는 못한다.

“따라오시지요.”

뚱뚱한 인어가 꼬리를 파닥거리며 움직였다. 나는 따라오라는 신호에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주머니 안에는 권총이 있다. 한 번 공격한 놈이 두 번은 못 하랴? 혹시 모르니 경계하며 인어들의 뒤를 따라갔다.

*

그들은 수면 위로 올라갔다.

난 당연히 바다의 어딘가, 해저 동굴이나 모래벌판에 세워진 알록달록한 산호 집을 예상했다.

하지만 인어들이 사는 곳은 내 상상을 깨부수는 곳이었다.

“땅 위?”

이제 머릿속으로 내가 지나온 길이 어떻게 된 구조인지도 생각하지 못하겠다. 북극해 심해 깊은 곳, 그 너머의 마물의 바다. 그곳에서 해저 동굴로 들어왔더니 이제 수면 위의 ‘육지’라고?

인어들은 하나둘씩 땅을 밞고 올라갔다. 놀랍게도 인어들의 꼬리는 순식간에 갈라져 사람의 다리가 되었다.

난 다시 보는 햇빛과 발바닥에 느껴지는 땅의 감촉에 결국 참지 못하고 물어봤다.

“인어들은… 바다에서 사는 게 아닌가요?”

물어보자마자 인어들의 날카로운 시선들이 내게 꽂혔다. 내가 손님이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삼지창을 던질 기세다.

나는 인어들에 대한 환상을 완전히 거뒀다. 처음 그녀의 금안을 보았을 때 반짝이는 햇살 같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이글거리는 용암 같았다.

“인간들이 우릴 몰아내어 어쩔 수 없이 바다에 둥지를 틀어야 했습니다.”

대답은 뚱뚱한 인어가 했다.

“그들이 뾰족한 창으로 우리의 목을 찌르며 바다로 몰아내기 전까진 지상은 인간들의 전유물이 아니었지요, 가디언님.”

인어와 인간,

역시 조각 그림은 ‘역사’를 기록한 거였구나. 하지만 그들의 역사가 어떻든 간에 날 향한 인어들의 사나운 눈총은 짜증나기 짝이 없었다.

인어들은 내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직까지 날이 잔뜩 선 듯했다. 생각해 보면 사과도 받지 못했다. 망할 놈들, 예쁘면 뭐 하냐. 싸가지가 없네. 그 후로 나는 굳이 대화를 나누지 않고 인어들에게 먼저 물어보지도 않았다.

‘섬이구나.’

인어들을 따라 걸으며, 이곳이 바다 위의 작은 섬임을 알 수 있었다. 해안선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작은 섬, 태평양의 적도 근처에서 볼 법한 평범한 열대 섬이다.

그래, 평범하지. 내가 방금 지나쳐 온 곳이 지구에서 가장 추운 바다인 북극해임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말이야.

“모두 돌아가세요.”

도착한 곳은 섬의 숲에 자리한 오두막집. 뚱뚱한 인어의 호령에 인어들은 떠나갔다.

나는 낡은 탁상에 앉아 차를 대접받았다. 뚱뚱한 인어는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고 기다리라고 했다.

짙은 꽃향기의 이름 모를 차를 홀짝이고 있으니 곧 인어가 방문을 열고 등장했다.

“대체 그 복장은 뭐죠?”

무례한 줄은 알았지만 반사적으로 되묻고 말았다. 그래도 처음 만났을 때 뚱뚱한 중년 여성 인어는 몸 전체를 가리는 녹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옷을 갈아입고 나타난 그녀는 동그스름한 배가 그대로 드러난 속옷 같은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다. 상의는 진주와 산호로 장식하여 화려했고, 다리를 드러내는 하의는 반질반질한 소재로 만들어져 수영복처럼 엄청 매끈해 보였다.

나는 벌떡 일어나 뒤로 물러났다.

주머니 속 권총에 손이 간다.

젠장, 잔뜩 경계할 수밖에 없는 옷차림이었다.

“당황하지 마십시오. 인어들이 예우를 갖추어야 할 때 입는 복장이니.”

반면 그녀는 담담했다.

혼자 난리법석을 떠는 것도 우스워 진정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럼 이야기를 나눠 보지요.”

“알겠습니다. 우선… 인어들에 대해서 알려 주시겠어요?”

그녀는 인어들의 수장이었고,

난 그녀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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