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인어와 사이렌 (3)
인어들의 수장이 말해 준 이야기는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어는 멸종 위기였다.
그 점이 내게는 기묘한 장난처럼 다가왔다. 만약에 ‘인간’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면 난 어떤 기분으로 매일을 살아갈까?
‘그냥 살겠지.’
나는 멸망의 앞에서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은 아니었다. 흠, 누가 사과나무를 심었다면 사과가 열리길 같이 기다려 줄 수는 있겠지.
한마디로 굳이 노력하지는 않을 거란 거다.
하지만 평범한 관점에서 보면 종의 멸종은 그 어떤 명분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종의 보존을 위해 처절한 투쟁 중인 인어들처럼 말이다.
그녀들은 종의 보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북극해의 비밀스러운 바다도, 마나로 보호하여 숨겨진 섬도, 투쟁의 수단 중에 하나였다.
그러니 내가 나타났을 때 그렇게 적대적이었겠지. 그렇다고 내 면상에 창을 꽂으려고 한 인어들을 이해해 줄 필요는 없지만.
“우린 드래곤님의 관용이 필요치 않습니다.”
얘기를 듣고 난 후 인어들에게 ‘안전한 보금자리’를 제안하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인어들의 수장은 내 제안에 회의적이었다.
나는 정보가 부족해서 그럴까 싶었다.
“저도 압니다. 드래곤이 어떤 존재인지를. 부담스러우시겠죠. 하지만 우리 원장님은 달라요.”
그래서 부족한 언변으로 열심히 설명했다. 마물원에 대해서 설명하고, 원하는 보금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설명하고, 보호자가 드래곤이기에 그 어떤 외압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마치 영업하러 온 세일즈맨처럼 열렬하게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인어들의 수장의 대답은 NO.
까닭을 물어보니 이렇게 답한다.
‘이유 없는 베풂은 없습니다. 특히 상대가 위대하신 분이면 더더욱,‘
내가 물었다.
“다른 인어님들도 수장님의 의견에 동의하시는 건가요?”
그녀가 대답했다.
“우리들은 겁이 많지요. 바깥으로 나가고자 할 아이들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런가요. 으음, 잠시만요.”
충분한 설명에도 어쩔 수 없었다.
싫다는데 어쩌겠어. 포기해야지.
나는 사실 처음부터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원장님의 제안은 인어들한테 고향을 버리고 생판 모르는 곳에 정착하라 것이며, 이는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을 신뢰하라고 말하는 거다.
‘저만 믿으십시오!’
사기꾼의 전형적인 사탕발림이 아니던가?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되든 인어를 설득시킬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내 의사와 인어들의 결정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원장님의 의견이다.
오두막집을 나와 통신기를 켰다.
곧바로 원장님에게 연락되어 나는 인어를 만났다고 말했다.
“인어들, 찾았습니다. 지성을 가진 종족이더군요.”
-그래요? 다정 씨가 떠나고 조사를 해 봤어요. 아마 그곳의 인어들이 전 우주를 통틀어 살아남은 유일한 인어들일 거예요. 제 제안에 대해선 물어봤나요?
“거절하던데요. 어떻게, 직접 대화라도 해 보실래요?”
이어진 원장님의 대답에 난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간혹 보면 원장님도 이상하다. 대체 평소에 어떤 일을 하기에 지금 상황에서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말하는 걸까?
-전 바빠서, 다정 씨가 알아서 해 줘요.
“제가요?”
-한 번 더 설득해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드래곤조차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에서 폐쇄적으로 살았으니 바깥의 상황을 잘 모를 거예요. 그래도 싫다면 어쩔 수 없죠. 그들의 자유 의지를 존중할 수밖에. 굳이 끌고 올 필요도, 지켜줄 필요도 없어요.
난 콧잔등을 긁으며 대답하고 통신기를 껐다.
“삼고초려 해 보죠.”
세 번만 물어봐야지.
*
오두막집으로 돌아온 나는 대화의 주제를 바꿔 봤다. 환기성 질문이었으나 사실 궁금하기도 했다.
“오면서 노래를 부르는 녀석들을 만났는데 어떤 마물들이죠? 인어들하고도 친밀해 보이던데요.”
대화를 나누며 딱딱한 말투로 웃지 않던 인어 수장이, 처음으로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세이렌들 말씀이시군요.”
마물의 이름은 세이렌이었다.
내 예상대로 세이렌은 인어들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그녀는 방금 전 대화를 나눌 때와 달리, 따뜻한 어투로 세이렌에 대해 설명해 줬다.
“세이렌은 우리들의 동반자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함께하며 죽을 때 같이 스틱스로 돌아가는, 영혼으로 이어진 소울메이트이지요.”
그래서 대화가 엇비슷하게라도 통한 건가? 흥미로운 이야기라 주의 깊게 들었다. 처음으로 목격한, 내 능력과 비슷한 사례였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들의 대량 학살로부터 우리들을 구해 주었으며, 그에 대한 답례로 우리들은 세이렌들을 보호하며 살아갑니다. 드래곤의 가디언이시여, 우리들은 떠나지 못합니다. 우릴 지키는 것만 아니라, 바깥을 지키기 위해서도.”
바깥을 지킨다?
뜻밖의 얘기에 나는 탁상에 찻잔을 밀고, 그 자리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얘기를 들을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머뭇거리며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입니까? 세이렌들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겁니까?”
물어봐도 머뭇거리기만 했다.
말을 꺼내는 걸 망설이는 걸 보니 비밀로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아볼 다른 방법이 있다.
“당신도 보셨죠? 오면서, 세이렌들이 내 주변에서 노래를 부르던 걸요.”
나는 내 능력에 대해서 숨김없이 말해 줬다. 세이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당신이 말해 주지 않아도 직접 물어보면 된다고.
“그런…….”
“그냥 수장님이 말해 주세요. 세이렌들이 왜? 마물이 가진 힘 때문인가요?”
믿기지 않아 하는 모양이지만 계속된 추궁에 결국 말해 주는 그녀였다.
“세이렌들은 기억을 노래합니다.”
“기억……?”
그녀의 말에 세이렌이 ‘바깥’에 나타나면 위험할 거라는 이유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세이렌들은 기억을 노래하며, 듣는 이의 기억을 읽어 내고 또한 잊히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단지 신화의 이야기로 남게 된 것도 모두 세이렌들의 신비로운 힘 덕분. 하지만 바깥의 악인들이 악용한다면…….”
기억을 읽는 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보다.
정보를 얻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이렌들의 힘이 정말 기억을 읽는 능력이라면, 세이렌 마물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하겠지.
‘그래서 더 위험해.’
만약의 만약을 가정해 보자.
단지 인어들이라면 몰라.
헌터들이 인어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더라도 굳이 포획할 가치는 없다는 거지.
하지만 세이렌들의 능력이 밝혀진다면?
원장님이 어부에게 인어 사진을 구한 것처럼, 인어가 아무리 비밀의 바다에서 숨어 지낸다고 하더라도 헌터들의 눈을 천년만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당장이라도 습격해 올지 모른다. 이미 헌터들이 냄새를 맡았고 이곳에 대해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만약의 만약을 가정하며, 세이렌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인어는 더 이상 중요한 존재가 아닌 게 된다.
인어들이라면 포획할 가치가 없지만 세이렌들이라면 충분히 행동할 만하고, 세이렌들을 지키는 인어들은 거추장스러울 테니 모두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가디언이시여?”
망상.
버릇이 도졌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운한 생각에 멈춰 있던 나는 뚱보 인어의 말에 제정신을 찾았다.
‘막을 수 있다면 막는 게 좋겠지.’
난 전보다 더 진중한 태도로 말했다.
“우리라면 세이렌들도 같이 보호할 수 있을 겁니다. 이곳과 똑같은 생태계에서, 원하는 만큼 자유로운 생활 속에서. 다만 안전한 상태로.”
내 진지해진 태도만큼 뚱보 인어도 강하게 의견을 말했다.
“우리더러 터전을 버리라는 겁니까?”
터전이라, 흐음.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다른 말을 꺼냈다.
“대전이에 대해서 알고 계신가요?”
“알고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을 지구로 오게 만들었던 ‘공간의 어긋남’, 다만 대전이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이 큰 어긋남이었다고 하지요.”
“맞아요. 별의별 잡놈… 아니, 별의별 종족들이 다 지구에 섞여 들어왔죠. 비유하자면 지구는 잡탕찌개가 되었단 말입니다. 이제 당신들은 지구에서 크게 신비한 존재가 아니에요. 그냥 잡탕찌개에 추가될 매운탕…….”
젠장, 비유하다 보니 이상하게 돼 버렸네.
“죄송해요. 인어들이 생선이라는 건 아니고 그냥 비유적으로… 아무튼 인어라는 이유만으로 전처럼 사냥을 당하거나 하진 않을 겁니다. 보니까 인어들은 겉모습이 인간과 다를 바 없잖아요? 스스로 밝히지 않으면 사람들도 모를 겁니다.”
내 말에 일리가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가디언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인어들은 인간과 많은 점이 다릅니다. 인간이 백 년을 살아갈 때 우리는 천 년을 살아갑니다.
그들이 육식을 할 때 우리는 물과 해초를 먹고 살아갑니다. 인간과 같이 지내기엔 다른 점이 너무나 많지요. 우리가 인어임이 밝혀지면 인간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 같습니까? 대전이에 의해 흘러들어 온 다른 이종족들이 처음엔 어떤 대우를 받았지요? 가디언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뚱보 인어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대하지는 않겠지. 사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인어라고 하면, ‘다른 호기심’에 접근하는 인간들도 많을 테니까.
“하지만 이곳에 처박혀 있다고 해결되진 않아요.”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뚱보 인어의 말이 맞다고 치자.
그렇기에 더더욱 나서야 한다.
이곳에 있다가 들키기라도 한다면 음지에서 더욱 끔찍한 일을 당할 테니까.
난 그녀를 설득했다.
“마찬가지로 전이에 의해 당신들이 크게 신비한 존재가 아닌 만큼, 그러니까 실존하고 있는 존재임을 사람들이 믿는 만큼 나쁜 놈들은 몰려올 겁니다.”
‘30년 전’이라면 인어의 소문을 듣고 찾으러 가는 사람들은 머저리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런 머저리들을 이제 세간에서 ‘헌터’라고 부른다.
“오면서 석유시추선을 봤습니다. 또한 단지 석유시추선을 지킨다고 하기엔 너무 많은 능력자들을 태운 배들도요. 어쩌면 놈들이 당장 인어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헌터들일지도 모르죠. 옛날이라면 이곳이 안전했겠지만, 당신들은 이젠 설 곳을 잃어 가고 있단 말입니다.”
설득이 통했나?
즉각적으로 대답하던 인어들의 수장은 내 말에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이어진 말은 동의가 아니었다.
“이곳은 마나의 보호로 지켜지고 있어요. 그래도 만약 들킨다면, 다른 바다로 이동하면 되는 일입니다. 세상은 점점 넓어지고 있으니까요.”
난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만큼 당신들을 괴롭힐 적들도 많아지고 있는 겁니다.”
뚱보 인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난 그 모습을 보며 의자를 밀고 나갈 준비를 했다.
“나가 주십시오. 생각이 정리되면 가디언님을 부르겠습니다.”
결국 그녀는 축객령을 내렸다.
나는 오두막집에서 나와 숲을 거닐었다. 나도 모르게 달아오른 뺨의 열기를 숲의 바람이 식혀 준다.
‘알아서 하라지.’
얼마 후에 생각이 정리된 그녀가 다시 NO라고 대답한다면 나는 미련 없이 포기할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밥값을 하지 못해 원장님에게 면목은 없겠지만 맡은 일을 항상 완벽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원장님이 옛날 만화의 악당처럼 한 번 일을 실패했다고 부하를 죽이는 사람도 아니고, 하하.
…….
하하, 그래 의심하지 마. 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원장님도 이번 일은 굳이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했잖아?
라라라~
[바다님!]
열을 식히려고 숲을 돌아다닐 때였다.
어느 순간 세이렌들이 내 곁으로 몰려들었다. 나는 잠시 세이렌들이 왜 숲에 있는지 생각하며 당황했으나, 생각해 보니 녀석들은 새였다. 바다에서 사는 게 이상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