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89화 (89/258)

# 89화 인어와 사이렌 (5)

해저 동굴을 지나 마물들의 바다에서 멈추어 인어들을 기다렸다.

[바다님, 바다님. 오지 않아요.]

“곧 올 거야. 기다려.”

인어들도 갑작스러울 것이다.

서로 의견을 나누며 회의도 해야 할 테고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겠지.

빨라도 30분은 걸릴 거야.

안절부절못하는 세이렌들을 진정시키며 기다렸다.

“…너무 늦는데?”

그러길 한 시간이다.

인어들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넌지시 해저 동굴로 돌아가 봤다.

그러나 인어들은 보이질 않았다.

낌새가 이상했다.

세이렌들에게로 돌아온 나는 인상을 구기며 녀석들을 바라봤다.

“혹시 인어가 니들 버리는 거 아니냐?”

그러자 세이렌들이 화를 내며 부리를 세우며 덤벼들었다.

[아니에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인어들은 아직 계속 그곳에 있어요!]

“어유, 알았다. 알았어. 그냥 해 본 말이야.”

사납게 덤벼드는 녀석들의 부리를 막아 내며 진땀을 뺐다. 서로가 이렇듯 애틋하게 아낀다면 궁금해서라도 올 법도 한데.

잠깐, 아직 그곳에 있다고?

나는 세이렌이 한 말이 거슬려 물어봤다.

“혹시 니들, 인어들의 기운을 느낄 수 있냐?”

[네!]

세이렌들은 해맑게 대답했다.

아이고, 골치야.

난 한 시간 동안 뻘짓을 했던 건가.

얼얼해지는 머리를 부여잡고 다시 물었다.

“인어들도 마찬가지겠지?”

[네!]

당당한 세이렌들의 태도에 물어보지 않은 날 탓하기로 했다. 그래, 얘네들이 뭔 잘못이겠어. 몰랐던 내가 잘 못이지.

“더 멀리 숨어 보자.”

세이렌들을 데리고 마물들의 바다 바깥, 북극해의 심해를 향해 나가려고 했다. 기다리기에는 꺼림칙한 곳이지만 서로 GPS가 달렸다는데 어쩔 수가 있나.

심해는 어두컴컴하고 으스스하고 꺼림칙했다. 나는 물론이고 세이렌들에게도 해를 끼칠 만한 것은 없었지만, 기분 나쁜 곳이라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이번 일 끝나면 꼭 성공 수당 받는다.’

껌껌한 심해에서 다시 몇십 분을 기다리던 때였다.

어두운 심해에서도 발발발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르던 세이렌들, 갑자기 내게 다가와 말했다.

[아참, ‘이 바다’에 있는 한 우리들은 어딜 가도 기운을 느낄 수 있어요!]

나는 부글거리는 화를 경이로운 인내심을 발휘해 참아 냈다.

“그으걸, 왜 이제야 말해 주니?”

젠장.

세이렌들의 말에 의하면 북극해라면 어딜 가도 인어들과 세이렌은 서로 기운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젠장, 벌써 한 시간 이상 어물쩍거린 걸 들켜 버렸으니 계획도 들킨 거 아니야?

“어떻게 하면 연결이 끊어지는데?

[바다님! 바다 위로 올라가면 돼요!]

“바다 위?”

귀찮아 죽겠다.

결국 세이렌들을 데리고 위로 헤엄쳤다. 깜깜한 바다에 빛이 들어오고, 얼마 가지 않아 해수면이 나왔다.

“저기로 올라가자.”

마침 떠내려가는 빙산이 있어 세이렌들과 올라갔다.

[차가워!]

녀석들이 발이 시린지 탭 댄스를 추길래 불의 기운을 둘러줬다.

“이미 들킨 것 같지만 그래도 연결이 끊기면 당황할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다.

젠장, 망할, 우라질.

“에라, 이게 뭔 머저리 짓이야.”

세이렌들이 보여 줬던 인어의 비극적인 기억이 날 멍청하게 만들었나 보다. 빙산의 차가운 냉기를 맞으며 냉정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내 방법은 바보 같았다.

세이렌을 유혹해서 인어를 끌어들인다. 무슨 이수일과 심순애도 아니고, 세이렌을 핑계로 인어들을 설득시키는 건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렇게도 좋더냐?’ 같잖아.

인어들을 이수일로 만들 생각도, 내가 김중배가 될 생각도 없었다.

“돌아가자.”

오랜만에 거하게 뻘짓거리를 해 버렸다. 허탈한 마음으로 다시 바다에 들어갔다.

[으앙!]

나를 따라 바다에 들어오던 세이렌들이 갑자기 요상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물었다.

“왜 그래?”

세이렌들은 당황하며 눈가에 눈물까지 맺혀 있었다. 무척 고통스러운 지 인상을 찌푸린 채 부리로 내 턱시도를 잡고 바다 아래로 이끌었다.

[인어들이 아파!]

[많이 아파해!]

[바다님! 돌아가요. 인어들이 아파해요!]

‘이상한 낌새는 못 느꼈는데.’

이곳은 인어들의 섬에서 멀지 않다. 만약 인어들을 해치는 인간들이 있다면 날 지나쳐야 했을 텐데.

[점점 더 멀어져요. 빨리!]

‘처음부터 느낌이 싸하더니.’

녀석들은 인어와 이어져 있다.

무슨 일이 생긴 건 분명하다.

젠장, 점집이라도 차려야 하나.

식유시추선과 능력자들이 탄 배들을 봤을 때부터 느낀 기분 나쁜 예감, 어찌 불길한 예상은 빗나가질 않아.

나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힘을 모았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 온 이후로 가장 힘차고, 빠르고, 날렵하게 인어들의 섬까지 헤엄쳤다.

*

해저 동굴을 지나자마자 비릿한 냄새와 맛이 느껴졌다. 바닷물 속에 섞인 피, 교감의 영향으로 인간을 뛰어넘은 감각을 지닌 나라서 느낄 수 있었다.

해안가로 올라오자 불길한 예감이 확실하게 맞았다는 걸 깨달았다.

평화롭던 인어들의 섬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모래사장에 스며든 핏물과 찢긴 옷, 그리고 비늘과 창살. 나는 그중 찢긴 옷가지 하나를 주워 살폈다. 끈끈한 고무로 만들어진 듯했다. 마치 잠수복과 비슷한 재질.

“헌터들.”

놈들이 인어들을 습격했다.

나는 곧바로 세이렌들을 돌아봤다.

녀석들에게 부탁해 인어들을 추적해 달라고 하려 했으나, 이미 세이렌들은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세이렌들은 인어가 어디 있는지 알아.’

재빨리 세이렌들을 뒤따라갔다.

녀석들은 바다로 향했으나, 해저 동굴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인어들의 섬과 앞바다는 바다 속의 거대한 절벽에 의해 가로막혀 있었는데, 해저동굴을 통해서만 바깥과 안을 오고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세이렌들이 절벽에 깊은 구멍을 찾아냈다. 바위를 파낸 단면이 반듯하여 인공적이다. 자연스레 만들어진 구멍이 아닌 누군가가 파 놓은 구멍이다.

“다른 길로 숨어서 왔던 건가.”

이 무슨 타이밍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나를 마주치지 않고 인어들의 섬으로 기어 들어온 헌터들.

북극해 깊숙한 심해에 자리한 인어들의 섬을 발견할 정도면 녹록한 헌터들은 아닐 테고, 꽤 강하던 인어들이 별 저항도 못하고 끌려간 걸 보면 강한 능력자들일 것이다.

예전 기억들이 떠오른다.

내가 상대했던, 강했던 능력자들.

게르반 형제, 카르마 길드의 창잡이, 크루즈의 마법사 유저.

죽는다는 원초적인 공포와 죽인다는 씁쓸한 경험을 심어 준 무서운 자들이다.

‘어쩌면 알아볼 기회일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두려움과 걱정보단 묘한 설렘이 앞섰다. 그래, 어쩌면 난 이런 ‘기회’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바다님, 이쪽이에요!]

세이렌들은 새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물속을 헤엄칠 땐 돌고래보다 빨랐다. 그러나 전속력으로 헤엄치는 날 따라오지는 못했다.

*

기분 나쁜 석유 냄새가 진동을 했다. 바닷물에 섞인 기름을 따라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해수면에 배의 그림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에 올 때 보았던 배들이었다. 북극해의 석유시추선을 지키기에는 과도한 병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인어들을 포획하러 온 헌터들이었다.

큰 배가 한 대, 작은 배가 일곱 대. 큰 배에서만 인어들의 기운이 느껴졌다. 특히 큰 배는 백 명의 인어를 감금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선박이었다.

‘규모가 상당해.’

인어들의 기운의 곁에서 강한 능력자들의 기운도 많이 느껴졌다.

인어들을 ‘죽지 않게’ 납치한 실력자들이다. 게다가 그런 실력자들의 수가 열 명은 넘어 보인다.

규모로 본다면 대륙 거북이를 포획하러 온 헌터들보다 훨씬 강세였다. 대부분 마물 크루즈에서 마주쳤던 카르마 길드의 헌터들만큼 강하고, 그들 중엔 특출하게 강한 능력자들도 몇 명 보였다.

‘다행히 크루즈에서 마주친 마법사 놈과 게르반 형제들만큼 강한 마나는 느껴지지 않아.’

그럼에도 단언하건대 원장님 없이, 내가 단독으로 상대하는 헌터 무리로는 가장 수가 많고, 강한 자들이다.

하지만 배로 향하는 내 움직임은 그대로였다. 떨리지도 않았다. 약간 아랫배가 간질간질한 긴장감만이 느껴질 뿐이다.

미리 총을 꺼내 불의 기운을 주입했다. 또한 팔목에 방패를 활성화시키고 왼손으로 검을 꺼냈다. 검에는 윙바레의 독한 마취약이 묻어져 있었다.

‘강한 놈들부터 노린다.’

이건 인어들을 구하기 위한 무모한 구출 작전이 아니다.

나는 순식간에 헌터들의 전력을 파악했다. 특별한 기술은 아니었다. 그저 ‘생물’이 가진 본능이다. 본능적인 위기감. 변장한 드래곤의 앞에서 천하의 모든 마물이 두려움에 벌벌 떠는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그리고 나는 마나가 늘어날수록 이러한 감각이 발달하여 주변의 마나를 보다 세밀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온갖 다양한 마물들과 교감한 탓이겠지. 어쩌면 무시무시한 드래곤 옆에서 매일 생활하며 눈칫밥을 먹다 보니 이 위기 감각이 특별하게 발달한 걸지도 몰라.

확실한 건 어느새 나는 상대가 나보다 강한가, 약한가를 잘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나는 저 배 위에 탄 모든 능력자의 마나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위기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원시적으로 비유하자면,

‘강한 놈들부터 노린다.’

사냥에 가깝겠지.

요란할 필요 없다.

나는 야옹이의 힘을 빌려 순식간에 갑판 위로 뛰어 올라가, 우선 강자들에게 달려들어 검을 찔러 넣었다. 죽일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허벅지와 팔을 베는 것만으로도 마취약이 스며들어 저항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곧바로 사태를 파악한 수십 명의 헌터가 총구를 겨눴으나, 나를 맞히는 일은 없었다.

크윽-!

악!

멀리 있는 자는 불꽃의 탄으로,

가까이 있는 자는 마취약이 묻은 검으로, 애매한 위치에서 공격을 피하는 자들은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뿜어내어 제압했다. 곧이어 선실에서 추가 병력이 뛰어나왔지만 내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쓰읍, 역시.”

으으-!

나는 쓰러진 헌터들을 둘러보며 살짝 새어 나온 침을 닦았다. 집중하느라 침이 나오는지도 몰랐네.

일망타진.

모든 헌터들을 제압하고, 행동 불능으로 만드는 것에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작은 배에도 헌터들은 있으나 조무래기였다. 그들은 현명하게도 곧바로 도망치는 것을 선택했다.

나는 멀어지는 셔틀쉽을 바라봤다.

나 혼자의 힘으로 이 많은 헌터들을 몰아냈다. 하지만 이 놀랍고도 믿기지 않은 일이 이젠 담담하게 느껴졌다.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다.

마물원에서 일한 지 일 년 반이다.

비교할 대상이 드래곤뿐이라 깨닫지 못했을 뿐, 나는 강해졌다.

이번에 착각이 아님을 확인했다. 기습이 아니라 정면으로 붙었어도 내가 지지 않았을 것이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데.”

이 모든 건 마물원에서의 경험 때문이겠지. 나는 알게 모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원장님이 의도한 걸까? 에이, 설마, 아무리 드래곤의 가디언이라지만.

애초에 원장님은 나를 마물원 일에 써먹으려고 취직시킨 거잖아?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인데 굳이 드래곤이 그러겠어.

하지만 원장님이 준 여의주를 먹은 이후 눈에 띄게 달라진 건 맞았다. 생각해 보면 원장님이 의뢰한 특별한 일들을 겪으면서부터 마나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 같았다.

어쨌든,

나쁘지는 않다.

이 위험한 세상에서 약한 것보다 강한 게 나으니까. 만약 인어들을 납치한 헌터들을 단번에 제압할 힘이 내게 없었더라면 인어들의 이야기는 시작도 하기 전에 비극으로 끝났겠지.

하하하.

이러다 1년만 더 있으면 풍월을 넘어서 마법이라도 쓰는 거 아니야?

[바다님, 바다님. 못된 인간들을 저대로 두어도 괜찮나요?]

“아차.”

또 망상에 빠져 할 일을 놓치고 말았다. 크흠, 일단 맡은 일은 끝까지 해야지.

“힘 좀 빌려주라.”

나는 세이렌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녀석들은 날 보며 웃었다.

[같이 노래 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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