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인어와 사이렌 (6)
힘을 빌려주길 요청하자, 세이렌과 난 깊게 연결되었다.
‘들려.’
많은 마물과 교감하여 많은 힘을 느꼈지만 세이렌이 된다는 건 그중에서도 무척 특별한 경험이었다.
들린다,
기억이.
이 주변 모든 바다에 잔재해 있는 기억이 노래가 되어 내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미 멀리 도망쳐 버린 셔틀쉽의 헌터들에게서도 ‘노래’가 들렸다.
[와, 굉장해!]
[바다님은 모든 바다의 기억을 읽으시는구나!]
아무래도 세이렌과 교감한 내가 세이렌보다 더 강한 힘을 지니게 된 것 같다.
“노래, 아무 노래나 되는 거지?”
[바다님 마음대로 불러요!]
크흠,
목을 가다듬었다.
사실 ‘방법’은 세이렌과 교감한 이후로 내 머릿속에 저절로 떠오른 상태였다.
상대에게 노래를 불러 주어, 기억의 열매를 맺게 한다. 그러한 기억의 열매를 먹으면 나는 상대의 기억을 읽을 수 있다.
“록 스피릿!”
세이렌들은 경쾌하고 활기차게 불렀으나 나는 새소리를 내는 것보다 내게 익숙한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레드 제플린의 immigrant song, 옛 곡이나 유명 판타지 영화의 주제곡으로 리메이크되었을 만큼 강렬하고 사나운 사운드가 특징인 노래.
“Ah, ah~~~!”
[아아아!]
[아아아아~!]
내 괴성과도 같은 내지름에 세이렌들이 호응하며 따라 불렀다.
그리고 강렬한 록이 바다에 울러 퍼지자 도망치던 셔틀쉽의 헌터들에게서는 물론이고, 쓰러진 헌터들과 평범한 사람들에게서도 몽실몽실 기억의 열매가 맺혔다.
그들은 자기들 머리에 대롱대롱 보라색 수박 같은 열매가 달렸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씩 웃으며 다시 노래를 빙자한 괴성을 내질렀고, 열매는 뚝 떨어져 내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와! 많이 먹어! 역시 바다님!]
[배부르겠다.]
열매들은 입에 닿자마자 연기가 되어 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됐다.’
세이렌들은 추상적인 비유를 한 게 아니었다. 정말 ‘기억이 열린 열매’를 먹는 것이었구나.
맛도 열매와 같다. 오히려 과즙이 가득한 제철 과일보다도 더 맛있는 것 같은데?
헌터들의 기억,
놀랍게도 그중 내가 원하는 기억만 딱딱 골라내어 내 머릿속에 새겨졌다.
“너네들, 진짜 대단하구나.”
나는 새삼 세이렌들의 힘이 경천동지할 위력을 지녔다는 걸 깨달았다. 원하는 기억을 대상에게서 뽑아낼 수 있는 힘이라니, 이 무슨 논리적이지 않는 힘인가.
[바다님, 못된 인간들은 이제 안 ㅤㅉㅗㅈ아가요?]
“걱정하지 마. 저 못된 인간들은 훨씬 더 무서운 걸 마주하게 될 테니까.”
셔틀쉽은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으나 나는 우두커니 서서 바라만 봤다.
이미 필요한 모든 기억은 내게 있기에.
이곳에 원장님은 오지 못한다. 그렇다고 내가 이들을 심문을 할 수도 없다. 하지도 못하고. 다 죽여 버릴 수도 없고 그렇게 하더라도 모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대륙 거북이 때 배운 점이 있다면 보이는 건 사실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다. 원장님은 그때 헌터들을 추궁하여 본진까지 ㅤㅉㅗㅈ아가 털어 버렸고, 그로 인해 마물 크루즈까지 찾아냈었다.
인어들을 습격한 헌터들도 마찬가지, 저만한 세력이면 당연히 본세력이 있을 테고, 뿌리가 멀쩡하면 다시 이와 비슷한 불법 포획 활동을 할 테니 싹을 잘라내는 게 답이다.
내가 그들로부터 훔쳐낸 기억은 뿌리에 대한 것이었다. 의뢰인, 의뢰인을 고용한 고용주, 그리고 고용주가 몸담고 있는 세력까지 모두 알아냈다.
“지금 원장님에게 말해야겠다.”
이제 뭐,
불합리함의 정점에 있는 존재가 나설 일만 남았지.
“아아, 원장님. 들리세요?”
-다정 씨.
통신기를 작동시키자 곧바로 원장님이 연락을 받았다. 지금 인어들을 데리고 미리 말씀하셨던 대기 장소에 간다고 말하며, 빼앗은 기억들로 알아낸 놈들의 본진을 상세히 그녀에게 알려 줬다.
*
갑판의 사람들을 모아 아라크네 거미줄로 묶어 놓고 조타실로 향했다. 조타실의 잠긴 문을 강제로 벗겨 내고 들어가자 헌터들이 고용한 선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그러다 뒤로 발라당 자빠져 비명을 지르기까지 한다.
“으… 으악!”
“괴물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거참, 아무리 그래도 괴물이라니.”
심지어 게거품을 물며 기절한 사람도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했다. 내가 진짜 괴물이라도 되는 줄 아나?
“내 말 잘 들어요.”
나는 그들의 손에 들린 무전기를 바라봤다. 해양 경비대, 순찰대, 근처 군 병력, 혹은 헌터들? 어느 곳에 연락을 취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원 병력이 북극해에 오기까지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긴장한 선원들에게 말했다.
내가 떠나면 헌터들에게 응급 처치를 실시하고 절대 알래스카 방향으로 항해하지 말라고.
혹시 그녀와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민간인이 뭔 죄겠는가.
인어들의 기운이 느껴지는 창고로 향했다. 수송용 선박을 개조한 대형 배에는 인어들 말고도 다른 해양 마물들이 많았다. 아마 이들은 북극해의 마물들을 포획하기 위해 대규모로 조직된 불법 수렵단인 것 같았다. 인어가 덤이든 마물들이 덤이든 상당한 세력임은 분명했다.
역시 내 조치는 현명했어. 이것들은 싹을 잘라내야지.
마물들을 먼저 풀어 주고 인어들이 갇힌 철장을 뜯어 냈다. 마법적인 힘이 느껴졌지만 오리하르콘 브로치의 힘으로 별다른 방해는 받지 않았다.
“괜찮소?”
인어들은 별다른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적잖은 충격을 받았는지 내가 다가가도 몸을 떨며 뒤로 물러났다.
“납니다. 다친 덴 없소?”
칼을 꺼내 인어들의 손을 묶은 줄을 잘라 내려고 했다. 하지만 인어들은 내 얼굴을 확인했음에도 깜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고, 꼬리인지 다리인지 모를 하체를 파닥거리며 내게서 도망치기까지 했다.
“나라니까요. 아니 진짜 너무하네.”
내가 인어들을 구해 줬다.
그러니 비록 인어들에게 환영은 받지 못하더라도 무서워하면 안 되는 거잖아.
겁에 질러 도망치는 인어들을 바라보며 너무 괘씸해서 포박 줄은 그대로 놔둘까 생각할 때였다.
“가… 가디언이십니까?”
유일하게 도망치지 않고 나서서 말을 걸어 주는 인어가 있었다. 인어들의 수장, 뚱보 인어였다.
“그럼 내가 누구겠어요? 벌써 까먹었어요?”
“아니, 그게…….”
“거참 서운하네. 인간들한테 구해 준 게 누군데? 진짜 확, 마! 다 버리고 갈까요? 인간들이 또 몰려올 텐데 놈들이 당신들 지지고 볶든 무시할까?”
젠장, 망할 인어들의 태도에 비위가 상했다. 내가 투정부리듯 화를 내자 그녀는 머뭇거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가디언님, 노여움을 푸시지요. 생김새가 인간과 무척 달라진 데다가 풍기는 기운마저 이질적이라… 저희들이 미처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뭐요? 내가 뭐가 달라졌다고…….”
문득 내 시야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눈동자를 약간 아래로 두자 파란 무언가가 보인다. 너무 자연스러워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화들짝 놀라 손으로 얼굴을 만져보니 입에서 부리가 돋아나 있었다.
‘아, 교감.’
세이렌들과 교감을 나누다가 너무 깊이 빠져 버린 듯했다. 나는 창고에 적재된 알루미늄 판에 얼굴을 비추어 확인했다. 생김새, 사람이 아니다. 부리는 돋아났고, 눈은 독수리의 눈처럼 노랗고 강렬했다. 머리털도 마치 깃털처럼 빳빳하게 솟아 있었다.
‘선원들이 놀란 이유가 있었군.’
아직 세이렌의 마나가 내 몸속에 그대로인 걸 보니 당분간 이런 모습으로 지내야 될 것 같다.
“가디언… 님. 우릴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어쨌든 내가 괴물이 아니라는 걸 알자 인어들은 감사 인사를 전했다. 쭈뼛거리면서 고개를 숙이지만 억지로 하는 느낌보다는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나는 깃털처럼 억세진 머리카락을 박박 긁으며 말했다.
“이젠 떠나기 싫어도 떠날 수밖에 없어요. 위치는 발각되었고 ‘안전하다고’ 느꼈던 북극해도 이젠 헌터의 영역이니. 어떻게 할래요? 따라 올래요?”
질문은 던졌으나 사실 답을 바라고 한 건 아니다. 어차피 인어들의 선택권은 단 한 개뿐이었으니까.
아무 말 없이 인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뿌듯함을 숨기며 인어들에게 담담히 말했다.
“그럼 조용히 따라와요.”
미션 클리어.
다소 불협화음이 껴들었지만 어쨌든 성공했다. 이제 원장님을 만나 수당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일만 남았군.
*
배에서 내려 골렘을 찾아 타고 러시아 방향으로 이동했다. 인어들은 물에서 사는 종족이니 당연히 배 따위 필요 없었다.
세이렌들은 인어들을 구출한 이후로 인어들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인어들은 모르겠지만 세이렌들은 상당히 미안해하고 있었다.
음, 연기를 들키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굳이 말해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인어들과 세이렌들을 데리고 추크치해를 벗어나 베링 해협에 들어설 때였다.
“딱 맞춰 오셨네.”
멀리서부터 느껴졌다.
마나를 잘 읽게 된 나라도,
결코 읽을 수 없는.
두려우나 무엇이 두려운지도 모르며, 강대하나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내가 지금까지 봐 온 모든 생물의 정점에 선 존재. 알아갈수록, 익숙할수록, 더 위대해지는 원장님이었다.
“원장니임!”
골렘에서 내려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보기 드물게 드래곤의 형태로 날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타고 가는 건 아니다. 이곳에 왔던 것처럼 뿅 하고 공간 이동 마법으로 순식간에 마물원까지 가겠지.
인어들과 세이렌들은 무서워하며 바다에서 나오지 않았다. 난 개운함과 뿌듯함을 느끼며 깊은 심호흡을 했다. ‘입’ 대신에 자라난 부리 때문에 숨 쉬기가 곤란했기 때문이다.
‘당분간 외출은 자제해야겠네.’
나는 부리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한국에도 조류 인간은 몇몇 있지만 매우 드물다. 그리고 수많은 종이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드문 종이라는 건 아주 쉽게 차별을 야기한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전에 굳이 종차별을 당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뭔가 기분이…….”
원장님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입안이 간지러웠다. 그녀에게서 아주 거대하고 맛있는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입은 맛을 기억했고, 배는 순식간에 고파져 며칠 동안 굶은 것처럼 허기가 졌다. 세이렌과 교감한 영향 탓이다.
“그러고 보니 꽤 맛있었지.”
기억의 열매, 그 어떤 열매보다 달콤하고 풍부했던 맛.
쩝.
원래대로 돌아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먹을 수는 없을까?
그때였다.
난 원장님의 머리 옆에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하는 열매를 목격하고 말았다. 인간에게 열린 기억의 열매와 달리 무척이나 크고, 맛있어 보이는 열매. 비교도 할 수 없이 달콤하고 환상적이겠지. 정말 맛있어 보여. 먹고 싶다. 열매를 먹고 싶어. 입만 벌리면 돼. 입만 벌리면 저 맛있는 열매가…….
“아, 안 돼!”
저절로 벌어지는 부리를 꾹 다물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젠장! 무슨 짓을 한 거야? 난 필사적으로 식욕을 참아 내며 세이렌의 힘을 억눌렀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다르게 그녀의 기억의 열매는 더욱 커지고, 맛있어졌다.
그럴 생각은 없었다.
의도가 어떻든 나는 드래곤을 상대로 기억을 빼먹는 미친 짓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의지와 다르게 그녀의 머리에는 기억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내 정신은 굶주린 멧돼지처럼 게걸스럽고 사나워져만 갔다.
“안 돼, 점점 커지잖아.”
다행히 원장님은 눈치를 채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도저히,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먹어도 될까? 드래곤의 기억을? 만약 들킨다면, 죽겠지?
아니, 이젠 죽어도 좋아.
하지만 그녀가 나를 싫어한다면 어쩌지?
“싫어한다면…….”
그녀가 나를 미워하고 싫어한다.
그녀가 나를 가디언으로 임명하던 날이 떠오르며, 배신감으로 치를 떠는 원장님의 표정이 오버랩 되었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상상을 하자 나는 깜짝 놀랄 만큼 침착해질 수 있었다.
‘망할 교감, 이래서 깊게 들어가면 안 돼.’
정신을 차렸다.
세이렌의 힘을 최대한 억누르자 그녀에게 맺힌 기억의 열매도 말라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몸에 가득히 차오른 열기를 차갑게 하기 위해 바다에 얼굴을 담갔다.
[괜찮아요.]
그러자 세이렌들이 몰려와,
내게 이렇게 속삭인다.
[아무리 그녀라도.]
[바다님을.]
[알아차리진 못할 거예요.]
[바다님, 염려하지 마세요.]
[기억이 진실로 이끌어요. 기억을 삼켜요.]
[위대한 존재의 기억이라도 바다님은 삼킬 수 있어요.]
[바다님!]
바닷물에 축축하게 얼굴이 젖었으나 나는 그 축축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들어 그녀를 향해 입을 벌렸고, 시들어 가는 열매가 활짝 열려 내 입 속에 풍족하게 들어오는 감각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기억을 읽었다.